박술음
1. 개요
박술음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사회부 장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이다. 3·1 운동 참여로 퇴학당한 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 연희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6·25 전쟁 중 사회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해외 원조를 유치했으며,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다. 말년에는 영문법 참고서를 출판했으며, 사후에는 동상이 제작되었다.
| 이름 | 박술음 |
|---|---|
| 호 | 취하(醉霞) |
| 출생일 | 1902년 1월 5일 |
| 사망일 | 1983년 2월 13일 |
| 국적 | 대한제국 → 대한민국 |
| 본관 | 밀양 |
| 직업 | 영문학자, 교육자 |
|---|
| 직책 | 사회부 장관 |
|---|---|
| 대수 | 5대 |
| 취임일 | 1952년 10월 9일 |
| 퇴임일 | 1955년 2월 16일 |
| 대통령 | 이승만 |
| 전임 | 최창순 |
| 경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역임 |
|---|---|
| 서훈 | 국민훈장 동백장 |
| 아버지 | 박용헌(朴容憲) |
|---|---|
| 어머니 | 김해 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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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
황병태
황병태는 경제 관료, 교육자, 정치인,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경제기획원 국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산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주중 대사를 역임했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
안병만
안병만은 서울대학교에서 행정학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교수, 총장,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대한민국의 교육인,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사회부 장관 -
허정
허정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4·19 혁명 후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를 지내며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
대한민국의 사회부 장관 -
이윤영 (1890년)
3·1 운동 참여, 신사참배 저항 등의 활동을 한 일제강점기 목사이자 교육자이며 해방 후 조선민주당 창당, 제헌 국회의원, 무임소장관, 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신흥대학 학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 -
황순원
황순원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시로 등단 후 소설로 전향하여 단편 〈소나기〉, 장편 《카인의 후예》 등을 통해 한국인의 삶과 정신, 전통적 가치를 탐구했으며, 간결하고 시적인 문체, 설화적 분위기, 순수성과 동심을 통한 인간 본성 탐구가 특징이다. -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 -
서갑호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한 서갑호는 일본에서 섬유 산업으로 성공 후 귀국하여 방림방적을 설립, 한국 면방직 산업 발전에 기여했으며 주일 대한민국 대표부 부지를 기증하기도 했으나 부정 축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2. 생애
황해도 또는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송도고등보통학교(현 송도고등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휘문고등보통학교(현 휘문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한국 전쟁 이후 195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및 총장으로 부임했다. 6·25 전쟁 중에는 제자인 백두진의 천거로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해외 원조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원조를 받기도 했다. 1983년, 자택에서 노쇠로 사망했으며, 향년 81세였다. 사후에는 그의 제자들이 중심으로 추모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며 그의 동상이 제작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황해도 또는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송도고등보통학교(현 송도고등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하였다.
2.2. 교육 활동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후 연희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4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 영어 교사로 부임했다. 한국 전쟁이후 195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및 총장으로 부임했다.
2.3. 사회부 장관 역임
6·25 전쟁 중 제자인 백두진의 천거로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해외 원조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원조를 받았다. 1952년 10월 9일부터 1955년 2월 16일까지 제5대 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
2.4.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역임
6·25전쟁 중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뒤, 195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및 총장으로 부임했다. 1955년 5월 10일부터 1960년 6월 5일까지 제2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겸 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1966년 2월 1일부터 1977년 4월 19일까지 제6대 총장을 역임했다.
2.5. 말년 및 사망
1983년, 자택에서 노쇠로 사망하였다. 향년 81세였다. 정년 퇴임 후에도 1981년에 영문법 참고서인 『학습영문법』을 출판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으며, 이 외에도 『Model English Grammar』 시리즈 등이 알려져 있다.
3. 학문적 업적 및 저서
| 제목 | 출판 연도 |
|---|---|
| 《Model English Lessons》 3권 | 1959 |
| 《Model English Grammar》 | 1965 |
| 《학습영문법》 | 1981 |
4. 사후
2008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대학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던 추모 문집 준비를 계승한 '박술음 선생 추모 사업 추진 위원회'가 박술음에게 지도를 받은 학생 약 100명에 의해 결성되었다. 모금으로 모인 제작 비용 150으로 홍익대학교 교수 오상일에 의해 청동으로 높이 230cm의 '박술음 선생 입상'이 제작되었다。
2011년 10월 16일, 동 위원회는 행사를 개최할 것을 발표하고, 다음 날인 17일에 박술음 동상 제막식과 추모 문집 헌정식이 개최되어 약 200명이 참석했다. 추모 문집 헌정식에서는 추모 문집 '지구촌 시대를 준비한 선각자: 박술음 선생과 외대의 탄생'이 유족과 학교 측에 헌정되었다。 이 문집은 동명의 서적으로도 발행되었으며, 동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 연수원과 국제관 사이의 부지에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