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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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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해도는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했던 역사적인 지역으로, 고려 시대에는 서해도, 조선 시대에는 황해도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북쪽으로는 평안남도, 동쪽으로는 강원도, 남쪽으로는 경기도, 서쪽으로는 황해와 접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분단으로 인해 현재는 북한의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할되었다.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 수산업, 광업이 발달했으며, 연백미, 조기, 금, 철 등이 유명했다. 주요 도시로는 해주, 사리원, 송림 등이 있으며, 장수산, 구월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역사 유적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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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황해도 지도
조선 후기의 황해도
기본 정보
유형조선 왕국의 도
이름 (한글)황해도
로마자 표기Hwanghae-do
짧은 이름 (한글)황해
짧은 이름 (로마자 표기)Hwanghae
지역해서
수도해주
방언황해 방언
국가조선 왕국
역사
설치1417년
해체1895년
현재황해북도
황해남도
행정
관찰사

2. 어원

고려시대에는 서해와 맞닿아 있다고 하여 서해도(西海道)라는 이름으로 널리 통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황주(黃州)해주(海州)의 두 글자를 따서 황해도(黃海道)라는 도칭(道稱)이 만들어졌다. 바다 이름인 황해와 한자가 같고 실제로 황해를 끼고 있지만, 도의 명칭과는 무관하다. 황해도는 조선시대대한제국, 국권피탈기에도 그 이름이 유지되었다.

광해군 8년(1616년)에 일어난 해주 옥사 사건으로 해주목이 벽성현으로 강등되면서, 해주 대신 연안도호부를 따서 황연도(黃延道)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조 1년(1623년)에 벽성현이 다시 해주목이 되면서 황연도도 다시 황해도가 되었다.
해서(海西)는 황해도의 '해'자와 고려의 수도인 송도(松都) 서쪽에 있었으므로 정해진 이름이다.

3. 자연 환경

황해도는 북쪽으로 평안남도, 동쪽으로 강원도, 남쪽으로 경기도, 서쪽으로 황해에 접해 있었다.

황주, 사리원, 신원리 이동은 상원계(祥原系)가 분포하고, 반도부 해안과 곡산 지방은 조선계가 분포한다. 반도의 기부에서 도의 남부 연백 지방에 걸쳐서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각각 발달하여 있다.

고조선계에 속하는 대단층 산맥이 동서로 3줄기, 남북으로 4줄기가 거의 직교(直交)하여 지형이 매우 복잡하다. 동서 방향으로는 멸악산맥, 수양산맥, 조일령(朝日嶺) 등의 산맥이 뻗어 있는데, 특히 멸악산맥은 황해도의 중추로서 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중요한 산맥이다. 남북 방향으로는 구월산, 자모(慈母)산, 육장현(六將峴), 마식령산맥 등이 뻗어 지형은 대체로 동·서부가 높고 중앙이 낮다.

주요 하천은 예성강과 재령강인데, 유역에는 연백평야와 재령평야를 이루었으며 우리나라 굴지의 곡창지대이다. 해안선의 총연장은 1,618km인데, 웅진반도 이남은 특히 리아스식 해안이다. 연안은 조석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간석지가 널리 발달하여 해안선에 비해 양항이 적고 부근에는 13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해안 지방은 황해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기온의 교차가 커진다. 해안 지대의 연평균 기온은 10 ~ 11도인데 내륙 지방은 9 ~ 10도가 되고 연교차는 전자가 29 ~ 31도인데 비해 후자는 34도 이상이 되는 곳도 있다. 강수량은 평균 900mm 정도로서 소우지대에 속한다.

3. 1. 위치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며 서한만과 경기만 사이에 돌출한 반도부와 동체부로 되어 있는데, 경위도는 동경 124도 34분 ~ 126도 59분, 북위 37도 36분 ~ 39도 6분에 해당된다. 황해도는 북쪽으로 평안도(1896년 이후 평안남도), 동쪽으로 강원도, 남쪽으로 경기도, 서쪽으로 황해에 접해 있었다.

3. 2. 지질

황주, 사리원, 신원리 이동은 상원계(祥原系)가 분포하고, 반도부 해안과 곡산 지방은 조선계가 분포한다. 반도의 기부에서 도의 남부 연백 지방에 걸쳐서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각각 발달하여 있다.

3. 3. 지형

고조선계에 속하는 대단층 산맥이 동서로 3줄기, 남북으로 4줄기가 거의 직교(直交)하여 지형이 매우 복잡하다. 동서 방향으로는 멸악산맥, 수양산맥, 조일령(朝日嶺) 등의 산맥이 뻗어 있는데, 특히 멸악산맥은 황해도의 중추로서 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중요한 산맥이다. 남북 방향으로는 구월산, 자모(慈母)산, 육장현(六將峴), 마식령산맥 등이 뻗어 지형은 대체로 동·서부가 높고 중앙이 낮다.

주요 하천은 예성강과 재령강인데, 유역에는 연백평야와 재령평야를 이루었으며 우리나라 굴지의 곡창지대이다. 해안선의 총연장은 1,618km인데, 웅진반도 이남은 특히 리아스식 해안이다. 연안은 조석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간석지가 널리 발달하여 해안선에 비해 양항이 적고 부근에는 13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황해도는 북쪽으로 평안남도, 동쪽으로 강원도, 남쪽으로 경기도, 서쪽으로 황해에 접해 있었다.

3. 4. 기후

해안 지방은 황해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기온의 교차가 커진다. 해안 지대의 연평균 기온은 10 ~ 11도인데 내륙 지방은 9 ~ 10도가 되고 연교차는 전자가 29 ~ 31도인데 비해 후자는 34도 이상이 되는 곳도 있다. 강수량은 평균 900mm 정도로서 소우지대에 속한다.

4. 역사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고려가 전국을 십도(十道)로 구획하면서 황해도 지역과 현재의 경기도 일부를 관내도(關內道)로 정했다. 관내도는 나중에 5도 양계가 성립되면서 서해도(西海道)로 이름이 바뀌었다.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가지고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조선 시대 초반인 1395년(태조 4년)에 서해도의 이름이 풍해도(豊海道)가 되었다가, 1417년(태종 18년)에 황해도(黃海道)가 되어, 조선 팔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해주에 감영(監營, 당금의 도청)을 두고 감찰사(監察使, 당금의 도지사)를 파견하여 그 지역을 통할하게 했다. 광해군은 황해도를 황연도(黃延道)로 개칭하였으나 다시 환원하였다.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을 23부제로 나누면서 해주부와 개성부에 속해 있다가, 1896년(고종 건양 원년)에 13도(道)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의 건국 준비 과정에서 겸이포읍을 송림시로, 사리원읍을 사리원시로 승격하였다. 대한민국 이북5도위원회 행정구역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소비에트 민정청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1940년대 말 북측의 별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결국 송림시와 사리원시로 승격되었다.

1945년 38선 획정 이후에는 옹진반도(甕津半島)와 연백군(延白郡)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군정은 38도선 이남의 황해도를 경기도에 편입하였다.

1953년 휴전선이 확립되며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황해도 일부 도서(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북한의 점령지가 되었다. 서해 5도 이북의 일부 도서 또한 대한민국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인계하게 되었다. 1954년 황해남북도로 나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기도 개성시, 개풍군 등은 개성직할시로 편성되었다가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에 귀속되었던 황해도 일부 도서는 그대로 경기도 옹진군 관할 지역으로 유지되었고, 1995년에 이르러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1. 고대

황해도 북부는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남부 일대는 진번(眞蕃)이라는 소국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가 설치한 안동도호부에 예속되었다가, 676년에 신라 문무왕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685년 신문왕이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제로 개편하면서 한주(漢州)에 귀속되었다. 발해의 건립 이후에는 그 지역이 발해와의 전선이자 국경이 되었다. 그러나 신라가 삼분되자, 후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4. 2. 고려

고려 성종 14년(995년), 고려가 전국을 십도(十道)로 구획하면서 황해도 지역과 현재의 경기도 일부를 관내도(關內道)로 정했다. 관내도는 나중에 5도 양계가 성립되면서 서해도(西海道)로 이름이 바뀌었다.

1269년(원종 10년) 서북면 병마사의 기관(記官)인 최탄(崔坦) 등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의 54성과 자비령 이북 서해도(西海道)의 6성을 가지고 원나라에 투항하였다.

4. 3. 조선

조선 시대 초반인 1395년(태조 4년)에 서해도의 이름이 풍해도(豊海道)가 되었다가, 1417년(태종 18년)에 황해도(黃海道)가 되어, 조선 팔도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해주에 감영(監營, 당금의 도청)을 두고 감찰사(監察使, 당금의 도지사)를 파견하여 그 지역을 통할하게 했다. 광해군은 황해도를 황연도(黃延道)로 개칭하였으나 다시 환원하였다.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에 따라 전국을 23부제로 나누면서 해주부와 개성부에 속해 있다가, 1896년(고종 건양 원년)에 13도(道) 가운데 하나가 되어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4. 4. 현대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의 건국 준비 과정에서 겸이포읍을 송림시로, 사리원읍을 사리원시로 승격하였다. 대한민국 이북5도위원회 행정구역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으나 소비에트 민정청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1940년대 말 북측의 별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결국 송림시와 사리원시로 승격되었다.

1945년 38선 획정 이후에는 옹진반도(甕津半島)와 연백군(延白郡)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었다. 미군정은 38도선 이남의 황해도를 경기도에 편입하였다.

1953년 휴전선이 확립되며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황해도 일부 도서(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북한의 점령지가 되었다. 서해 5도 이북의 일부 도서 또한 대한민국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인계하게 되었다. 1954년 황해남북도로 나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기도 개성시, 개풍군 등은 개성직할시로 편성되었다가 황해북도에 편입되었다.

한편, 대한민국에 귀속되었던 황해도 일부 도서는 그대로 경기도 옹진군 관할 지역으로 유지되었고, 1995년에 이르러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지리

광복 당시 황해도는 북쪽으로 평안남도, 동쪽으로 함경남도강원도, 남쪽은 경기도와 접했다. 황해도는 북동동에서 남서서 방향의 멸악산맥(滅惡山脈)이 중앙으로 뻗어 있어, 이 산맥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지역이 나뉜다.

멸악산맥 이북 지역은 황주, 사리원, 봉산, 재령, 안악, 신천, 서흥 등이 해당하며, 생활 문화는 평안도에 가깝다. 이 지역은 주로 대동강과 그 지류인 재령강 및 여러 지류들이 흐른다.

멸악산맥 이남 지역은 해주, 옹진, 연안, 배천, 청단, 벽성, 강령 등이 해당하며, 생활 문화는 경기도와 비교적 유사하다. 그러나 경기도와 달리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사용되는 고수를 즐겨 먹고, 명절에는 만두를 올리는 풍습이 있다. 이 지역은 주로 예성강이 흐른다.

멸악산맥과 아호비령산맥 사이의 곡산, 신계, 수안, 신평강원도와 생활 문화가 비슷하다. 대동강의 지류와 예성강의 지류가 모두 흐른다.

멸악산맥은 대체로 9월 평균 18℃의 등온선과 일치한다. 이남의 황남지역은 경기 지방과 같이 중생종(中生種)이 재배되지만, 북쪽의 황평지역은 조생종(早生種)이 재배된다.

북쪽에는 재령평야(載寧平野), 남쪽에는 연백평야(延白平野)라는 두 개의 큰 평야가 있다. 황해도는 북쪽으로 평안도(1896년 이후 남평안도), 동쪽으로 강원도, 남쪽으로 경기도, 서쪽으로 황해에 접해 있었다.

경국대전》에서는 황해도에 2개의 목(牧), 4개의 도호부(都護府), 7개의 군(郡), 11개의 현(縣)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3]속대전》에서는 황주 목사가 황해도 관찰사를 겸임하도록 규정하였다.

조선 시대 법전에 따른 황해도의 행정 구역 직제[3]
수령과 그 품계경국대전 (1484)대전통편 (1785)대전회통 (1865)
목: 목사(牧使), 정3품2: 황주, 해주2: 황주, 해주2: 황주, 해주
부: 도호부사(都護府使), 종3품4: 연안, 평산, 서흥, 풍천7: 연안, 평산, 서흥, 풍천, 곡산, 옹진, 장연6: 연안, 평산, 서흥, 풍천, 곡산, 옹진
군: 군수(郡守), 종4품7: 곡산,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7: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 금천7: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 금천
현: 현령(縣令), 종5품4: 신계, 옹진, 문화, 우봉2: 신계, 문화2: 신계, 문화
현: 현감(縣監), 종6품7: 장련, 송화, 장연, 강령, 은율, 강음 토산5: 장련, 송화, 강령, 은율, 토산6: 장련, 송화, 강령, 은율, 토산, 장연
비고우봉+강음 → 금천



일제강점기에도 황해도는 계속해서 존속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 황해도 행정 구역은 다음과 같다.

6. 행정 구역

1945년 광복 당시 황해도에는 해주시를 비롯하여 벽성군, 연백군, 장연군, 은률군, 송화군, 신천군, 봉산군, 재령군, 금천군, 서흥군, 신계군, 평산군, 황주군, 안악군, 수안군, 곡산군, 옹진군이 있었다. 옹진군은 1945년까지 1읍 10면(옹진읍·부민면·용연면·봉구면·흥미면·동남면·북면·서면·용천면·교정면·가천면)을 관할하였으나, 광복 이후 38선에 의해 교정면과 가천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옹진읍, 부민면, 용연면, 봉구면, 흥미면, 동남면, 북면, 서면, 용천면은 대한민국 경기도 옹진군 (인천광역시)|옹진군]]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인천광역시 옹진군황해남도 옹진군으로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황해도는 존속하였다.

6. 1.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서는 황해도에 2개의 목(牧), 4개의 도호부(都護府), 7개의 군(郡), 11개의 현(縣)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3]속대전》에서는 황주 목사가 황해도 관찰사를 겸임하도록 규정하였다.

조선 시대 법전에 따른 황해도의 행정 구역 직제[3]
수령과 그 품계경국대전 (1484)대전통편 (1785)대전회통 (1865)
목: 목사(牧使), 정3품2: 황주, 해주2: 황주, 해주2: 황주, 해주
부: 도호부사(都護府使), 종3품4: 연안, 평산, 서흥, 풍천7: 연안, 평산, 서흥, 풍천, 곡산, 옹진, 장연6: 연안, 평산, 서흥, 풍천, 곡산, 옹진
군: 군수(郡守), 종4품7: 곡산,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7: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 금천7: 봉산, 안악, 재령, 수안, 배천, 신천, 금천
현: 현령(縣令), 종5품4: 신계, 옹진, 문화, 우봉2: 신계, 문화2: 신계, 문화
현: 현감(縣監), 종6품7: 장련, 송화, 장연, 강령, 은율, 강음 토산5: 장련, 송화, 강령, 은율, 토산6: 장련, 송화, 강령, 은율, 토산, 장연
비고우봉+강음 → 금천


6. 2. 일제강점기

는 사용할 수 없는 문법이므로 제거한다.

일제강점기에도 황해도는 계속해서 존속하였다.

6. 3. 1945년 광복 당시

아래 행정 구역은 '''1945년 광복 당시의 행정 구역'''이다.

7. 인구와 사람들

1944년 황해도 인구는 201만 4931명이었다. 해주시 82,217명, 사리원읍 42,967명, 겸이포읍 53,072명 등이었다. 2008년에는 442만 4157명(휴전선 이북 경기도 포함)으로 증가했다. 황해도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는 평산 신씨, 해주 오씨, 문화 류씨, 해주 최씨, 연안 차씨, 연안 이씨, 풍천 임씨, 연안 김씨 등이 있다.

황해도는 평야가 많아 경지율이 약 34%로 전국에서 가장 높으며, 특히 연백, 신천, 재령, 안악 등 평야지방에서는 50~60%에 이른다. 경지면적은 약 60만ha로서 전국의 약 14%를 차지하며, 농가 1호당 경지면적도 2.4ha에 달하여 전국에서 1위였다. 연백미, 재령미는 품질이 우수하여 예로부터 왕실의 공어미(貢御米)로 쓰여왔고, 특히 재령미는 북률무사미(北栗無砂米)로 유명하였다. 재령평야재령강 상류의 안녕저수지와 서흥강 상류의 재신저수지를 통해 관개되었고, 연백평야는 멸악산 남쪽 산록에 연해저수지·황해저수지를 구축하고 해안에 대규모 제방을 쌓아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 논의 면적이 크게 증가하였다. 주요 전작물은 조, 기장, 수수, , , 등이며, 2년3작농법이 채용되고 혼작·간작 등의 경종법도 보편화되었다. 특용작물로는 면화, 대마, 인삼, 담배 등이 재배된다. 황주사과는 국내는 물론 만주·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명성이 높았다. 동북부 산간지방은 양잠업이 성하여 명주의 소산지이며, 북부 산간지역은 소사육지로 유명했다.

서쪽과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인 황해도는 1,600여 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연해의 수심이 얕고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므로 양식과 어업에 알맞다. 연평도 근해는 대한민국 최대의 조기 어장이며, 이 밖에도 새우·갈치·민어·해삼 등이 많이 잡히고, 용호도를 중심으로 한 옹진반도 연안에서는 김 양식이 성하다. 연안 지방에서는 간척에 의한 대규모의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황해도에는 금, 은, 철, 석탄, 텅스텐, 형석, 아연, 규사, 중정석, 석면, 붕광(硼鑛), 각종 희유 원소광 등 유용광물이 많이 부존한다. 금은 수안홀동·수안·옹진 등 광산이 유명하고, 철광은 하성(재령군)을 최대 광산으로 한다. 갈탄은 사리원 탄전에서, 텅스텐은 곡산군의 기주·백년 광산에서 많이 산출된다.

공업은 풍부한 농산 자원, 지하자원, 노동력 등의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해주는 중화학과 식품 공업 지역, 사리원은 식료품, 섬유 공업과 요업 지역, 송림은 중공업 지역으로 발전했다.

8. 산업

황해도는 예로부터 하천과 연해를 통한 무역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연철(鉛鐵)·면화·미곡의 생산과 더불어 어업 및 제염업에도 힘써왔다. 도내에는 재령평야·연백평야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평지가 곳곳에 잘 발달하여 농업이 주를 이루었다.

서쪽과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1,600여 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연해의 수심이 얕고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므로 양식과 어업에 알맞다. 조기는 연평도 근해가 대한민국 최대의 어장으로,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수천 척의 어선들이 운집하여 파시(波市)를 이루며 대부분이 경인 지방으로 공급되는데, 연간 어획량은 7,000여 톤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새우·갈치·민어·해삼 등이 많이 잡히고, 용호도를 중심으로 한 옹진군 연안에서는 김 양식이 성하다. 또한, 연안 지방에서는 간척에 의한 대규모의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황해도에는 각종 유용광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며, 주요 광물로는 금, 은, 철, 석탄, 텅스텐, 형석, 아연, 규사, 중정석, 석면, 붕광(硼鑛) 및 각종 희유 원소광 등이 있다. 금은 수안홀동·수안·옹진 등 광산이 유명하다. 철광은 하성(下聖:재령군)을 최대 광산으로 하고, 재령·은룡(銀龍, 재령군)·은율·송림(황주군) 등 광산이 있다. 갈탄은 사리원 탄전에서, 텅스텐은 곡산군의 기주·백년 광산에서 많이 산출된다. 형석은 물개(物開:평산군)·은적(銀積:재령군)·하성 등 광산에서, 중정석은 은적·은율·안악 등 광산에서, 석면은 평산·신계 등 각지에서, 규사는 순위도·몽금포·구미포 등 해안에 많이 있다. 아연광은 은적광산에서, 희유원소(稀有元素)광은 적암(積岩:평산군)·소연평도·홀동·해월 등지에서 난다.

공업은 풍부한 농산 자원, 지하자원, 노동력 등의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공업 중심지는 첫째, 해주 중심의 중화학과 식품 공업 지역으로, 화약, 시멘트, 도자기, 조선, 제련, 제철, 제지, 양조, 정비, 제분 공업 등이 있다. 다음은 사리원을 중심으로 한 식료품, 섬유 공업과 요업 지역으로, 조면, 제사, 제분, 시멘트 등의 공업이다. 셋째 지역은 송림 중심의 중공업 지역으로, 제철, 제강, 인조 비료, 코크스 등의 공업이며, 기타 지방에는 농산 가공의 제사(서홍), 양조, 정미업 등의 소규모 공장이 산재해 있다.

8. 1. 농업

평야가 많아 경지율이 약 34%로 전국에서 제일 높으며, 특히 연백, 신천, 재령, 안악 등의 평야지방에서는 50 ~ 60%에 이른다. 경지면적은 약 60만ha로서 전국의 약 14%를 차지하며, 농가 1호당 경지면적도 2.4ha에 달하여 전국에서 1위였다. 연백미, 재령미는 품질이 우수하여 예로부터 왕실의 공어미(貢御米)로 쓰여왔고, 특히 재령미는 북률무사미(北栗無砂米)로 유명하였다.

재령평야는 원래 갈밭으로 덮인 저습지였으나 1920년대에 이르러 재령강의 곡류(曲流)를 바로잡고 배수와 관개에 노력하여 옥답으로 바꾸었는데, 재령강상류의 안녕저수지(安寧貯水池)와 서흥강 상류의 재신저수지는 관개용 대저수지이다. 연백평야는 해안지방을 제외하면 저평하지 않다. 그래서 종래에는 밭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멸악산 남쪽 산록에 연해저수지·황해저수지를 구축하고 해안에 대규모 제방을 쌓아 간척사업을 벌인 결과 논의 면적이 크게 증가하였다.

주요 전작물은 조, 기장, 수수, , , 등이다. 기후관계로 2모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3종류의 작물을 2년에 3번갈아 수확하는 2년3작농법이 채용되고 있으며, 혼작·간작 등의 경종법(耕種法)도 전역에 보편화되었다. 특용작물로는 면화, 대마, 인삼, 담배 등이 많이 재배된다. 풍토가 면화재배에 적합하여 평안남도와 더불어 재래면의 2대 산지였는데, 1940년대에 들어와 완전히 육지면으로 바뀌었다.

이밖에도 대마와 담배는 동북부에서 재배되며, 인삼금천, 서흥 지방에서 많이 재배된다. 과일로는 사과, 배, 복숭아, 밤 등이 많이 재배된다. 황주지방은 일조량이 많고 구릉지는 배수가 양호하여 사과재배에 알맞다. 황주사과는 국내는 물론 만주·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명성이 높았는데, 이후 재배지역은 황주를 중심으로 하여 봉산, 평산, 은율, 송화 등지로 확산되었다.

동북부 산간지방은 양잠업이 성하여 가내공업으로 이루어지는 명주의 소산지이다. 축산업도 활발하며 북부 산간지역은 소사육지로 유명하여 광복 전에는 연간 약 2만 마리를 일본 등지로 수출하였다.

8. 2. 수산업

서쪽과 남쪽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1,600여 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연해의 수심이 얕고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므로 양식과 어업에 알맞다. 대표적인 수산물 어종은 조기로서, 연평도 근해는 대한민국 최대의 조기 어장이다.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수천 척의 어선들이 운집하여 파시(波市)를 이루며 대부분이 경인 지방으로 공급되는데, 연간 어획량은 7,000여 톤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새우·갈치·민어·해삼 등이 많이 잡히고, 용호도(龍湖島)를 중심으로 한 옹진반도 연안에서는 김 양식이 성하다. 또한, 연안 지방에서는 간척에 의한 대규모의 염전이 조성되어 있다.

8. 3. 광업

각종 유용광물의 부존이 많으며 주요 광물은 금·은·철·석탄·텅스텐·형석·아연·규사·중정석·석면·붕광(硼鑛)·각종 희유 원소광 등이다.

금은 수안홀동·수안·옹진 등 광산이 유명하다. 철광은 하성(下聖:재령군)을 최대 광산으로 하고, 재령·은룡(銀龍, 재령군)·은율·송림(황주군) 등 광산이 있고, 갈탄은 사리원 탄전에서, 텅스텐은 단연 타도의 추종을 불허하며, 곡산군의 기주·백년 광산에서 많이 산출된다. 형석은 물개(物開):평산군)·은적(銀積:재령군)·하성 등 광산에서, 중정석은 은적·은율·안악 등 광산에서, 석면은 평산·신계 등 각지에서, 규사는 순위도·몽금포·구미포 등 해안에 많이 있다. 아연광은 은적광산에서, 희유원소(稀有元素)광은 적암(積岩:평산군)·소연평도·홀동·해월 등지에서 난다.

8. 4. 공업

풍부한 농산 자원, 지하자원, 노동력 등의 좋은 조건을 갖추었으나 교통이 불편하여 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공업 중심지는 첫째, 해주 중심의 중화학과 식품 공업 지역이다. 즉 화약, 시멘트, 도자기, 조선, 제련, 제철, 제지, 양조, 정비, 제분 공업 등이다. 다음은 사리원을 중심으로 한 식료품, 섬유 공업과 요업 지역이다. 즉 조면, 제사, 제분, 시멘트 등의 공업이다. 셋째 지역은 송림 중심의 중공업 지역이다. 즉, 제철, 제강, 인조 비료, 코크스 등의 공업이며, 기타 지방에는 농산 가공의 제사(서홍), 양조, 정미업 등의 소규모 공장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9. 교통

주요 종단 국도는 철도 경의선을 따라 도의 중앙부를 종관하는 선과 금천·신계·곡산·평안남도 양덕방면으로 북상하는 도의 동부선이 있으며, 남천에서 신계·수안·평양 방면으로 통하는 선과 해주에서 재령·남포 방면으로 가는 선이 중요하다.

횡단 국도로는 옹진에서 해주·연안·토성에 달하는 선과, 장연에서 해주·남천에 달하는 선이 중요하다.

철도는 1905년에 개통된 경의선의 경의가도와 병행하여 부설됨에 따라 신막·사리원 등의 신흥교통취락이 성립되었으며, 그뒤에 부설된 사리원 장연간의 사장선(沙長線), 사리원 해주간의 토해선(土海線), 해주 옹진간의 해옹선(海甕線, 일명 황해선) 등은 산업지대를 관통하고 있다.

예성강, 재령강의 수운교통은 철도가 개통됨에 따라 쇠퇴하였으나 그 이전에는 물자수송에 지대한 구실을 하였다. 예성강 연안의 하항(河港)은 벽란도, 조포, 한포 등이며, 재령강 연안의 하항은 상해포, 해창, 신환포 등이다. 특히 재령강은 재령평야의 풍부한 농산물과 철광석의 수송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해상교통은 고려시대에 중국, 일본 등지와의 연락로로 많이 이용되었으며 근대적인 개항장은 해주뿐이다. 이 밖에도 겸이포, 나진포, 구미포 등의 양항이 있다.

10. 관광

황해금강(黃海金剛)이라 일컫는 장수산, 곡산군 선암에서 평안남도 양덕까지의 해서금강, 서흥군 귀진사 부근의 소금강, 평산군태백산성, 해서의 웅악(雄岳) 수양산, 단군 전설이 깃든 한국 4대 명산의 하나인 구월산, 역사가 서린 정방산의 기경(奇景), 백사 청송(白砂靑松)의 장산곶과 구미포·몽금포 해수욕장, 배천·연안·평산·신천·삼천군·달천군·안악군·송화 지방의 온천군(溫泉群) 등의 명승지가 있다. 대방태수 장무이묘, 봉산 휴류산성, 당토성, 황주 유물 포사탑 등의 고적이 있다. 또한 심원사 보광전, 성불사 극락전, 응진전, 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 학림사 오층석탑 등 많은 보물이 있어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11. 출신 인물

참조

[1] 서적 韓国時代劇・歴史用語事典 金井孝利 2013-09
[2] 기타
[3] 웹사이트 조선시대법령자료 https://db.history.g[...]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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