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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데이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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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밥 데이즐리는 베이시스트로, 1970년대부터 다양한 밴드와 협력하여 활동했다. 그는 The Powerpact, Mecca, Kahvas Jute 등에서 활동했으며, 1972년 영국으로 건너가 Chicken Shack에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Widowmaker, Rainbow, 오지 오스본의 블리자드 오브 오즈(The Blizzard of Ozz)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며 작곡,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 게리 무어와는 오랜 기간 협력하여 여러 앨범에 참여했으며, 유라이어 힙, 블랙 사바스, 마더스 아미, 리빙 라우드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오지 오스본과의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으며, 1972년부터 Mark Bass 앰프와 피카토 스트링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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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데이즐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로버트 존 데이즐리
출생일1950년 2월 13일
출생지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활동 시기1964년 – 현재
직업음악가, 작곡가, 작사가
악기베이스 기타
장르하드 록
블루스 록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퓨전
웹사이트bobdaisley.com
관련 활동
관련 그룹커버스 주트
위도우메이커
레인보우
오지 오스본
유라이어 힙
게리 무어

2. 초기 활동

데이즐리는 13세에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14세에 베이스로 전향했다. 그는 호주에서 The Powerpact, Mecca, 카바스 주트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특히 Mecca의 싱글 "Black Sally"는 언더그라운드 히트를 기록했고, 휴먼 인스팅트가 커버하기도 했다.[9]

3. 영국에서의 활동 및 밴드 경력

데이즐리는 1972년 잉글랜드 블루스 밴드 치킨 쉑의 베이시스트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 1973년에는 멍고 제리와 함께 활동하며 1974년 앨범 ''Long-Legged Woman Dressed in Black''에 참여했다. 이후 위도우메이커를 공동 결성하여 1975년 동명의 데뷔 앨범과 1977년 ''Too Late to Cry''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1]

1977년, 리치 블랙모어의 밴드 레인보우에 합류하여 앨범 ''롱 라이브 록앤롤''의 일부 트랙에 참여했다.[1] 1977년 7월, 앨범 제작 중이던 레인보우에 합류 제의를 받고 마크 클라크의 후임으로 합류했다. 바빌론의 성문의 일부 곡에만 참여했지만, 해당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7위를 기록했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투어에 참가했고[10], 리더인 리치 블랙모어에 의한 밴드 쇄신에 따라 탈퇴했다. 블랙모어는 그의 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1979년,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된 오지 오스본랜디 로즈(기타, 콰이어트 라이엇), 리 커슬레이크(드럼, 전 유라이어 힙)와 함께 블리자드 오브 오즈를 결성한다.[1] 1979년 10월, 데이즐리는 캠던 타운의 뮤직 머신이라는 장소에서 오스본을 만났다.[1]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오스본은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곧 오스본이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전 콰이어트 라이엇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를 영입했다. 트리오는 전 유라이어 힙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를 고용했고, 밴드 이름을 "The Blizzard of Ozz"로 정했지만, 곧 밴드의 매니지먼트가 단순히 "오지 오스본"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1] 돈 아덴의 JET 레코드에서 싱글 앨범 한 장을 제작한 후, 오즈번의 밴드로 활동하게 된다. 1980년, 데뷔 앨범 『블리자드 오브 오즈 ~ 피로 물든 영웅 전설』이 제작되었고, 데이즐리는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크게 참여하여 「아이 돈 노우」, 「굿바이 투 로맨스」, 「크레이지 트레인」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1981년, 두 번째 앨범 『다이어리 오브 어 매드맨』의 제작에 참여한 후, 앨범 발표 전에 해고되었다[11]

같은 해, 커슬레이크와 함께 유라이어 힙의 앨범 『어보브 더 비욘드』(1982년)과 『헤드 퍼스트』(1983년)의 제작에 참여하여 작곡에도 관여한다. 이 두 작품은 젊은 글램 메탈 팬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1983년의 유라이어 힙 투어에는 참가하지 않고, 오즈번과의 활동을 재개한다.

1986년, 프로듀서 제프 글릭스만으로부터 블랙 사바스 앨범 ''The Eternal Idol''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밴드의 실제 베이시스트인 데이브 스피츠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 최종 앨범에는 스피츠와 데이즐리의 이름이 함께 크레딧되었다. 데이즐리는 블랙 사바스에서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게리 무어와의 약속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4. 게리 무어와의 협업

오스본과의 계약 기간 외에는 게리 무어와 활동했다. 앨범 《빅팀스 오브 더 퓨처》(1984년) 레코딩에 참가한 후, 그 해 겨울에 열린 유럽 투어의 백업 밴드에 합류했으며[12], 12월에는 무어와 필 라이노트의 다큐멘터리 필름 《에메랄드 아일스》에 출연했다. 이후 《런 포 커버》(1985년), 《와일드 프론티어》(1987년)의 레코딩과 투어에 참가했다. 그 외에도 앨범 《애프터 더 워》(1989년)에 참가, 투어 후반에는 무어의 커리어에서 성공작이 되는 블루스 작품 《스틸 갓 더 블루스》(1990년)의 초석을 다졌으며, 차기작 《애프터 아워스》(1992년) 녹음에도 참가했다. 무어와의 신뢰 관계는 계속 이어져 앨범 《파워 오브 더 블루스》(2004년)에도 작곡가와 베이시스트로 참여했다.

5. 그 외 활동 및 프로젝트

데이즐리는 1980년대 이후 베이시스트, 작사가, 프로듀서로서 잉베이 말름스틴, 타카라, 빌 워드, 블랙 사바스, 나이트 레인저의 제프 왓슨 등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4][5] 데이즐리와 왓슨은 보컬리스트 조 린 터너와 드러머 카민 앱피스와 함께 마더스 아미를 결성했다.

2003년, 오지 오스본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에서 실패한 후, 그는 리 커슬레이크, 딥 퍼플스티브 모스, 호주 록 가수 지미 반스와 함께 리빙 라우드(Living Loud)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의 11곡 중 6곡은 ''Blizzard of Ozz''와 ''Diary of a Madman''의 커버곡이었다. 돈 에어리는 리빙 라우드 앨범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2003년 2월 7일, 데이즐리는 호주 블루스 밴드 후치 쿠치 멘(The Hoochie Coochie Men)과 함께 시드니의 더 베이스먼트(The Basement)에서 라이브 쇼를 녹화하여 라이브 DVD와 CD로 발매했다. 전 딥 퍼플 오르가니스트 존 로드와 지미 반스가 참여했다. 2007년, 후치 쿠치 멘은 존 로드가 참여한 스튜디오 앨범 ''Danger: White Men Dancing''을 발매했다. 2014년 9월, 데이즐리는 애들레이드 기반의 하드 록 밴드 체리 그라인드(Cherry Grind)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다.[4][5]

데이즐리의 자서전 ''사실을 위해(For Facts Sake)''는 2013년 8월에 출판되었다.

6. 오지 오스본과의 법적 분쟁

오지 오스본의 초기 앨범에 대한 로열티와 크레딧 문제로 데이즐리는 오스본 측과 오랜 법적 분쟁을 겪었다. 데이즐리와 리 커슬레이크는 돈 아든과 Jet Records를 상대로 공연 로열티 소송에서 승소하여 ''Diary of a Madman''에 자신들의 공연 크레딧을 추가했다.[2] 그러나 초기 앨범의 퍼블리싱 권리를 구매한 오스본 부부를 상대로 미지급 공연 로열티와 크레딧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2]

샤론 오스본은 오지의 지시 없이, 2002년에 로버트 트루히요마이크 보딘이 다시 녹음한 베이스와 드럼 트랙이 포함된 두 앨범의 새로운 CD 버전을 재발매했다.[2] 2003년,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의 소송은 로스앤젤레스의 미국 지방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고, 이 기각은 미국 제9 항소 법원에 의해 유지되었다.[2] 2011년, 소니 레거시는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의 오리지널 베이스와 드럼 파트가 복원된 두 앨범을 재발매했다.

데이즐리는 1991년 앨범 ''No More Tears''까지 오스본과의 관계를 유지했으나,[1] 크레딧 문제로 샤론 오스본과의 법정 투쟁이 발생했다.[11] 2002년 오스본 측이 과거 작품을 재발매했을 때, 데이즐리의 베이스 연주와 작사/작곡 크레딧을 삭제했기 때문에, 2003년 7월에 카슬레이크, 돈 에어리(키보드), 스티브 모스(기타)와 함께 리빙 라우드를 결성했다.[11] 리빙 라우드는 오스본과 음색이 비슷한 보컬리스트 지미 번스를 영입하여, 오스본과의 활동 중에 만든 곡을 연주하고 앨범을 제작하여 저작권 보호를 주장하고 있다.[11]

7. 악기

데이즐리는 1972년부터 Mark Bass 앰프와 피카토 스트링을 사용한다.[6] 오지 오스본의 솔로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는 1961년산 흰색 깁슨 EB-3 베이스와 랜디 로즈의 마샬 앰프를 통해 녹음되었으며, 데이즐리는 오늘날까지도 1960년대 초반의 EB-3 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Blizzard''의 후속작인 ''Diary of a Madman''(과 그가 녹음한 다른 대부분의 앨범들)은 펜더 프레시전 베이스로 녹음되었다.[7] ''No More Tears'' 역시 P-베이스로 녹음되었는데, 이는 싱글 코일 픽업(선버스트)이 장착된 1950년대 초반 모델이었다.[8]

8. 음반 목록

연도밴드음반비고
1970카바스 주트Wide Open
2006카바스 주트Then Again (Live at the Basement)
1973치킨 쉑언럭키 보이
1973뭉고 제리Alright, Alright, Alright (싱글)
1974뭉고 제리Long Legged Woman Dressed in Black
1976위도우메이커위도우메이커
1977위도우메이커Too Late to Cry
2002위도우메이커Straight Faced Fighter컴필레이션
1978레인보우롱 라이브 록 앤 롤
1986레인보우파이널 바이닐컴필레이션
2006레인보우라이브 인 뮌헨 1977CD & DVD
1980오지 오스본블리자드 오브 오즈
1981오지 오스본Diary of a Madman
1982유라이어 힙어보미노그영국 34위, 미국 56위
1983유라이어 힙Head First영국 56위, 미국 159위
1983오지 오스본바크 앳 더 문
1983게리 무어퓨처의 희생자
1985게리 무어Run for Cover
1986오지 오스본얼티메이트 신데이즐리가 대부분의 곡을 공동 작사했지만, 이 음반에는 참여하지 않음
1987오지 오스본Tribute
1987게리 무어와일드 프론티어
1987블랙 사바스이터널 아이돌
1988오지 오스본No Rest for the Wicked
1988잉베이 말름스틴Odyssey영국 10위
1989게리 무어After the War
1990게리 무어스틸 갓 더 블루스
1991오지 오스본노 모어 티어스
1992게리 무어After Hours
1993마더스 아미'Mothers Army''
1996유라이어 힙Time of Revelation
1997마더스 아미Planet Earth
1998마더스 아미Fire on the Moon
2001더 후치 쿠치 멘The Hoochie Coochie Men
2003더 후치 쿠치 멘 with 존 로드Live at the Basement2CD & DVD
2003리빙 라우드Living Loud
2004게리 무어파워 오브 더 블루스
2005리빙 라우드Live in Sydney 2004
2007더 후치 쿠치 멘 with 존 로드Danger. Whitemen Dancing
2018밥 데이즐리 앤 프렌즈Moore Blues For Gary (게리 무어 트리뷰트)
2021The UpstartsThe Upstarts


8. 1. 밴드 활동

데이즐리는 13세에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14세에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의 빠른 성장은 지역적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기타리스트 데니스 윌슨과 함께 The Powerpact와 Mecca에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Mecca의 유일한 싱글 "Black Sally"는 언더그라운드 히트를 기록했고, 휴먼 인스팅트가 그들의 앨범 ''스톤드 기타''에서 이 곡을 커버했다. 이후 데이즐리와 윌슨은 Tamam Shud의 멤버인 팀 게이즈와 대니 데이비슨과 함께 카바스 주트를 결성했다. 그들은 1971년 Infinity Records에서 앨범 ''Wide Open''을 발매했다.[1]

1972년 잉글랜드 블루스 밴드 치킨 섁의 베이시스트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73년 멍고 제리와 함께 활동하며 1974년 앨범 ''Long-Legged Woman Dressed in Black''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위도우메이커를 공동 결성하여 1975년 동명의 데뷔 앨범과 1977년 ''Too Late to Cry'' 두 개의 앨범에 참여했다. 같은 해 그는 리치 블랙모어의 밴드 레인보우에 합류하여 앨범 ''롱 라이브 록앤롤''의 트랙에 참여했다. 그는 1979년 블랙모어의 전 딥 퍼플 멤버인 로저 글로버로 교체될 때까지 레인보우에서 활동했다.[1]

1979년 10월, 데이즐리는 오지 오스본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된 후, 캠던 타운의 뮤직 머신이라는 장소에서 오스본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오스본은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곧 오스본이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전 콰이어트 라이엇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를 영입했다. 트리오는 전 유라이어 힙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를 고용했고, 밴드 이름을 "The Blizzard of Ozz"로 정했지만, 곧 밴드의 매니지먼트가 단순히 "오지 오스본"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1]

데이즐리는 그룹의 첫 앨범 ''Blizzard of Ozz''에 베이스, 작곡, 공동 프로듀싱으로 참여했고, 후속 앨범 ''Diary of a Madman''의 모든 곡을 공동 작곡했지만,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그와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는 해고되었다. 베이시스트 루디 사르조는 ''Diary of a Madman''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을 받았다.[1]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는 이후 돈 아든과 Jet Records를 상대로 공연 로열티 소송에서 승소하여 ''Diary of a Madman''에 자신들의 공연 크레딧을 추가했다. 소송은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고,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는 오스본 부부(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는 알지 못했지만 초기 앨범의 퍼블리싱 권리를 구매했다)를 상대로 미지급 공연 로열티와 크레딧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샤론은 오지의 지시 없이, 2002년에 로버트 트루히요마이크 보딘이 다시 녹음한 베이스와 드럼 트랙이 포함된 두 앨범의 새로운 CD 버전을 재발매했다. 2003년,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의 소송은 로스앤젤레스의 미국 지방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이 기각은 미국 제9 항소 법원에 의해 유지되었다.[2] 2011년, 소니 레거시는 데이즐리와 커슬레이크의 오리지널 베이스와 드럼 파트가 복원된 두 앨범을 재발매했다.[1]

데이즐리는 1980년대 내내 오스본 진영으로 돌아와 여러 앨범을 위해 작곡하고 녹음했으며, ''Bark at the Moon'' (1983), ''The Ultimate Sin'' (1986), ''No Rest for the Wicked'' (1988)에 참여하거나 작곡했다. 그는 1991년 앨범 ''No More Tears''까지 오스본 부부와의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 앨범에는 그의 베이스 연주가 모든 트랙에 실렸다. 마이크 이네즈 (나중에 앨리스 인 체인스에 합류)는 앨범의 홍보 비디오에 출연했다.[1]

밥 데이즐리의 해머 베이스 (프라하 하드 록 카페), 2011


오스본의 밴드를 처음 떠난 후, 데이즐리는 1981년 유라이어 힙이 재결성될 때 커슬레이크와 함께 합류하여 이듬해까지 활동하며 두 개의 앨범, ''어보미노그''와 ''헤드 퍼스트''를 녹음했는데, 이 두 앨범은 밴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다.[1]

오스본과 함께하면서 데이즐리는 또한 게리 무어와 많은 앨범을 녹음했으며 그와 함께 광범위하게 투어를 했다.[1]

1986년, 그는 프로듀서 제프 글릭스만으로부터 블랙 사바스 앨범 ''The Eternal Idol''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밴드의 실제 베이시스트인 데이브 스피츠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 하지만, 최종 앨범에는 스피츠와 데이즐리의 이름이 함께 크레딧되었다. 데이즐리는 블랙 사바스에서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그는 게리 무어와의 약속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 그는 2011년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사망할 때까지 그와 계속 함께 작업했다.[1]

1980년대 이후 데이즐리는 베이시스트, 작사가, 프로듀서로서 잉베이 말름스틴, 타카라, 빌 워드, 블랙 사바스, 나이트 레인저의 제프 왓슨 등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 데이즐리와 왓슨은 다시 뭉쳐 보컬리스트 조 린 터너와 드러머 카민 앱피스와 함께 마더스 아미를 결성했다. 2003년, 오지 오스본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에서 실패한 후, 그는 리 커슬레이크, 딥 퍼플스티브 모스 그리고 호주 록 가수 지미 반스와 함께 Living Loud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앨범의 11곡 중 6곡은 ''Blizzard of Ozz''와 ''Diary of a Madman''의 커버곡이었다. 돈 에어리는 Living Loud 앨범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2003년 2월 7일 데이즐리는 호주 블루스 밴드 The Hoochie Coochie Men과 함께 시드니의 The Basement에서 라이브 쇼를 녹화하여 라이브 DVD와 CD로 발매했다. 전 딥 퍼플 오르가니스트 존 로드와 지미 반스가 참여했다. 2007년, The Hoochie Coochie Men은 존 로드가 참여한 스튜디오 앨범 ''Danger: White Men Dancing''을 발매했다. 2014년 9월, 데이즐리는 애들레이드 기반의 하드 록 밴드 Cherry Grind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다.[4][5]

8. 2. 세션 및 게스트 참여

1980년대 이후 데이즐리는 베이시스트, 작사가, 프로듀서로서 잉베이 말름스틴, 타카라, 빌 워드, 블랙 사바스, 나이트 레인저의 제프 왓슨 등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 데이즐리와 왓슨은 다시 뭉쳐 보컬리스트 조 린 터너와 드러머 카민 앱피스와 함께 마더스 아미를 결성했다.[4] 2003년, 오지 오스본을 상대로 한 두 번째 소송에서 실패한 후, 그는 리 커슬레이크, 딥 퍼플스티브 모스 그리고 호주 록 가수 지미 반스와 함께 리빙 라우드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했다.[4] 이 앨범의 11곡 중 6곡은 ''블리자드 오브 오즈''와 ''Diary of a Madman''의 커버곡이었다. 돈 에어리는 리빙 라우드 앨범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4] 2003년 2월 7일 데이즐리는 호주 블루스 밴드 더 후치 쿠치 멘과 함께 시드니의 The Basement에서 라이브 쇼를 녹화하여 라이브 DVD와 CD로 발매했다.[4]딥 퍼플 오르가니스트 존 로드지미 반스가 참여했다. 2007년, 더 후치 쿠치 멘은 존 로드가 참여한 스튜디오 앨범 ''Danger: White Men Dancing''을 발매했다.[4] 2014년 9월, 데이즐리는 애들레이드 기반의 하드 록 밴드 Cherry Grind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았다.[4][5]

데이즐리가 세션 및 게스트로 참여한 밴드와 음반은 다음과 같다.

연도밴드음반비고
1987블랙 사바스이터널 아이돌
1988잉베이 말름스틴Odyssey영국 10위
1990빌 워드Ward One: Along the Way
1992제프 왓슨론 레인저
1993제프 왓슨어라운드 더 선
1993마더스 아미'Mothers Army''
1995카마인 아피스기타 제우스
1995타카라Taste of Heaven
1997워렌 드마티니크레이지 이너프 투 싱 투 유
1997마더스 아미Planet Earth
1998마더스 아미Fire on the Moon
1998타카라Blind in Paradise
1998Stream낫싱 이즈 세이크리드
2001더 후치 쿠치 멘The Hoochie Coochie Men
2003더 후치 쿠치 멘 with 존 로드Live at the Basement2CD & DVD
2003SilverIntruder
2004칼 코크란Voodooland
2004리빙 라우드Living Loud
2005리빙 라우드Live in Sydney 2004
2007더 후치 쿠치 멘 with 존 로드Danger. Whitemen Dancing


참조

[1] 웹사이트 Bob Daisley's History with the Osbournes http://www.bobdaisle[...] Bob Daisley 2013-06-28
[2] 웹사이트 News – Federal Appeals Court: Ozzy Does Not Owe Royalties http://www.knac.com/[...] Knac.Com 2011-10-20
[3] 서적 For Facts Sake Thompson Music
[4] 웹사이트 Bob Daisley - Cherry Grind are a young band from Adelaide https://www.facebook[...] Facebook 2016-01-24
[5] 웹사이트 Review: Cherry Grind – 'A Room With A View' http://devilsgatemed[...] 2017-08-12
[6] 웹사이트 Bob Daisley, Other Gear http://www.bobdaisle[...] 2014-12-08
[7] 웹사이트 Other Gear {{!}} Bob Daisley http://www.bobdaisle[...] 2015-12-21
[8] 웹사이트 Bob's Guitars {{!}} Bob Daisley http://www.bobdaisle[...] 2015-12-21
[9] 웹사이트 Discogs https://www.discogs.[...] 2024-01-16
[10] 문서
[11] 문서
[12] 웹사이트 Biography | Bob Daisley http://www.bobdaisle[...] 201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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