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로즈
1. 개요
랜디 로즈는 미국의 기타리스트로, 1956년 12월 6일에 태어나 1982년 3월 19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록 기타 연주를 혁신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콰이엇 라이엇과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특히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발표한 앨범 '블리자드 오브 오즈'와 '다이어리 오브 어 매드맨'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로즈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연주 스타일로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사후 롤링 스톤지 선정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21위에 오르는 등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 본명 | 랜달 윌리엄 로즈 |
|---|---|
| 출생 | 1956년 12월 6일 |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
| 사망 | 1982년 3월 19일 |
| 사망지 | 미국 플로리다주 리즈버그 |
| 직업 | 음악가 송라이터 |
|---|---|
| 장르 | 헤비 메탈 하드 록 네오클래시컬 메탈 클래식 |
| 악기 | 기타 |
| 활동 기간 | 1972년 ~ 1982년 |
| 레이블 | 에픽 레코드 소니 뮤직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제트 레코드 |
| 관련 활동 | 오지 오스본 콰이어트 라이엇 |
| 웹사이트 | 랜디 로즈 공식 웹사이트 |
| 주목할 만한 악기 | Jackson RR Signature Model Karl Sandoval "Polka Dot" Custom Flying V Gibson Les Paul Custom |
| 별칭 | (제공된 정보 없음) |
|---|
-
오지 오스본 -
샤론 오스본
샤론 오스본은 영국의 방송인이자 작가, 음악 매니저로, 오지 오스본의 아내이자 매니저로서 그의 솔로 경력 성공에 기여했으며, '오스본가' 등의 방송 출연과 오즈페스트 기획, 여러 논란으로도 유명하다. -
오지 오스본 -
잭 오스본
잭 오스본은 블랙 사바스의 오지 오스본의 아들이자 방송인으로, MTV 리얼리티 쇼 《오스본 가족》에 출연하여 유명해졌으며,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고 두 번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
미국의 헤비 메탈 기타 연주자 -
에디 반 헤일런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기타리스트이자 밴 헤일런의 창립 멤버인 에디 반 헤일런은 혁신적인 기타 연주 기법과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유명하며 록 앤 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알코올 중독 및 질병으로 65세에 사망했다. -
미국의 헤비 메탈 기타 연주자 -
알 피트렐리
알 피트렐리는 미국의 기타리스트로, 앨리스 쿠퍼, 디 스나이더, 사바타지, 메가데스 등 다양한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트랜스 시베리안 오케스트라의 핵심 멤버로도 활동했다. -
1956년 출생 -
조대환
조대환은 강력 및 특수 분야 수사를 담당한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변호사 개업 후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및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
1956년 출생 -
박원순
2. 생애
랜디 로즈는 1956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형 더그와 누나 캐시가 있었으며, 부모는 모두 음악 교사였다. 1958년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후, 어머니 들로레스가 삼 남매를 키웠다. 들로레스는 노스 할리우드에서 뮤소니아라는 음악 교실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7살 때부터 어머니의 음악 교실에서 포크와 클래식 기타를 배웠다. 일렉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후에는 스콧 셸리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셸리는 랜디의 재능이 뛰어나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피아노 레슨도 받아 음악 이론의 기초를 쌓았다.
존 뮈에 중학교에서 켈리 가니를 만나 친해졌고, 함께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16세에 가니와 함께 리틀 우먼(Little Woman)이라는 밴드를 결성, 낮에는 기타를 가르치고 밤에는 공연하며 실력을 키웠다. 버뱅크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케빈 듀브로, 드류 포사이스를 영입하여 밴드 이름을 콰이어트 라이엇으로 변경했다.
콰이어트 라이엇은 로스앤젤레스 클럽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고, 1977년 CBS/소니 레코드와 계약했다. 1978년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을 발매했지만, 모두 일본에서만 발매되었다.
1979년 블랙 사바스에서 탈퇴한 오지 오스본의 밴드 오디션을 보고 합류했다. 오스본은 랜디의 기타 연주를 듣자마자 그를 즉시 영입했다고 회상했다. 1979년 11월, 영국으로 건너가 오스본, 밥 데이즐리와 함께 생활하며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리 커슬레이크를 영입하여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를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 랜디는 자유롭게 기타 연주를 펼쳤으며, 1980년 8월 싱글 "Crazy Train"을 발매하고, 9월에는 앨범을 발매하며 영국 투어를 시작했다. 1981년 미국에서 앨범이 발매되면서 미국 투어를 시작했고, 10월에는 두 번째 앨범 Diary of a Madman을 발매하고 대규모 아레나 투어를 진행했다. 1981년 12월, 기타 플레이어 매거진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1982년 3월 19일, 플로리다주 리스버그에서 투어 버스 기사이자 조종사였던 앤드류 애이콕이 조종한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비행기에는 랜디와 조종사 앤드류 애이콕,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이첼 영블러드가 탑승하고 있었으며, 세 명 모두 즉사했다.
사고 전날, 랜디는 녹스빌 시빅 콜리시엄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다. 오지 오스본은 랜디가 자신의 과음을 지적하며 "너 그렇게 마시다가 언젠가 훅 가는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동 중 밴드는 에어컨 부품 수리를 위해 플로리다주 리스버그에 들렀다. 투어 버스 기사이자 조종사였던 앤드류 애이콕은 허가 없이 단발 엔진 Beechcraft F35 비행기를 조종했다. 첫 비행에는 돈 에이리와 투어 매니저 제이크 던칸이 탑승했고, 이후 랜디와 레이첼 영블러드를 태우고 두 번째 비행을 했다. 애이콕은 투어 버스 위를 저공비행하려다 비행기 날개가 투어 버스와 충돌하며 추락했다. 이 사고로 랜디와 영블러드는 비행기 앞 유리에 머리를 부딪혔고, 비행기는 야자 나무와 충돌 후 근처 저택 차고에 추락해 불길에 휩싸였다. 돈 에이리만이 이 모든 것을 목격했다. 세 명의 시신은 모두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랜디의 시신은 치아 기록과 보석류를 통해 확인되었다.
오지 오스본은 당시 상황에 대해 "큰 폭발음에 잠에서 깼다... 부서진 비행기를 목격했다..."라고 증언했다. 밴드는 다음 날 올란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랜디의 장례식은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퍼스트 루더랜 교회에서 거행되었으며, 오지 오스본 등이 운구를 맡았다. 랜디는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마운틴 뷰 묘지에 안장되었다.
부검 결과 애이콕에게서는 코카인이 검출되었고, 랜디에게서는 니코틴만 검출되었다. NTSB 조사단은 애이콕의 의료 진단서 기간이 만료되었고, 과거 아랍 에미리트에서 비행기 사고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1. 유년기
1956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켈(Kelle)"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인 형 더그와 누나 캐시가 있었다. 부모인 들로레스와 윌리엄은 모두 음악 교사였다. 1958년, 랜디가 태어난 지 17개월이 지난 뒤, 아버지 윌리엄은 가족을 떠나 재혼했다. 그 덕에 삼 남매는 모두 어머니 들로레스가 양육해야 했다. 들로레스는 UCLA에서 음악 학사 학위를 취득한 프로 피아니스트였으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스 할리우드에서 뮤소니아라는 음악 교실을 열었다.
가족은 스테레오 기기가 없어 음악을 들을 수 없었지만, 삼 남매는 집에서 직접 창작곡을 만들어 듣곤 했다. 랜디는 7살 즈음에 어머니의 음악 교실에서 포크와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머지않아 일렉 기타에 관심이 쏠리게 되어 스콧 셸리라는 음악 교사로부터 기타 레슨을 받았다. 셸리는 랜디가 이미 일렉 기타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더 이상 레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그는 음악 이론의 기초를 쌓기 위해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레슨 또한 받았다.
존 뮈에 중학교(John Muir Middle School)에 다닐 때 켈리 가르니를 만나 절친이 되었고, 이후 함께 밴드 활동을 하게 된다. 가르니의 말에 의하면, 둘은 학교에서 자주 튀는 생각과 행동을 하여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가 학교에 있을 때마다 항상 소동이 벌어져서 우린 최대한 휘말리지 않도록 종종 피하곤 했다. 우린 범생이, 운동부, 약쟁이 그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우리였다."
2.2. 콰이엇 라이엇 시절
16세에 켈리 가니와 함께 리틀 우먼(Little Woma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낮에는 어머니의 음악 교실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밤에는 무대에서 공연하며 실력을 쌓았다. 버뱅크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풀 타임으로 기타 관련 활동에 전념했다. 리드 보컬 케빈 듀브로와 드러머 드류 포사이스를 영입하여 밴드 이름을 콰이어트 라이엇으로 변경했다.
콰이엇 라이엇은 로스앤젤레스 클럽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고, 1977년 CBS/소니 레코드와 계약했다. 1978년 3월, 일본에서 데뷔 앨범 콰이엇 라이엇을 발매했으나, 미국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다. 1978년 12월, 두 번째 앨범 콰이어트 라이엇 II를 발매했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만 발매되었다.
2.3. 오지 오스본 밴드 시절
1979년, 블랙 사바스에서 탈퇴한 오지 오스본이 새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슬로터의 베이시스트가 되는 다나 스트럼에게 듣게 되었다. 당시 콰이엇 라이엇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 랜디는 처음에는 오디션을 거절했으나, 지인과 어머니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오디션 당일, 랜디는 깁슨 레스폴 기타와 연습용 앰프를 가지고 로스앤젤레스의 한 스튜디오에서 준비했다. 만취 상태였던 오지 오스본은 랜디의 기타 연주를 듣자마자 그를 밴드 멤버로 즉시 영입했다. 오스본은 후에 "그의 기타 솔로를 듣자마자 나는 마비가 온 건지, 아니면 환각에 취했는지 정신을 못 차렸다"라고 회상했다.
1979년 9월, 오지 오스본 밴드에 정식 합류하면서 콰이엇 라이엇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1979년 11월 27일, 랜디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제트 레코드 사무실에서 오스본, 밥 데이즐리와 만났다. 이후 오스본의 집이자 리허설 장소인 불러시 코티지(Bulrush Cottage)에서 함께 생활하며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 밴드 더 블리자드 오브 오즈(The Blizzard of Ozz)는 리 커슬레이크를 영입하여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를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 랜디는 오스본과 데이즐리의 허락 하에 자유롭게 기타 연주를 펼쳤다. 1980년 8월, 밴드는 앨범의 수록곡 "Crazy Train"을 싱글로 발매했고, 9월에는 앨범 Blizzard of Ozz를 발매하며 영국 투어를 시작했다.
1981년 4월, Blizzard of Ozz가 미국에서 발매되면서 밴드는 미국 투어를 시작했다. 1981년 10월에는 두 번째 앨범 Diary of a Madman을 발매하고 미국에서 대규모 아레나 투어를 진행했다.
1981년 12월, 랜디는 기타 플레이어 매거진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2.4. 사망
1982년 3월 19일, 플로리다주 리스버그에서 투어 버스 기사이자 조종사였던 앤드류 애이콕이 조종한 경비행기 추락 사고로 랜디 로즈는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비행기에는 랜디와 조종사 앤드류 애이콕,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이첼 영블러드가 탑승하고 있었으며, 세 명 모두 즉사했다.
사고 전날인 3월 18일, 랜디 로즈는 녹스빌 시빅 콜리시엄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다. 다음 날, 밴드는 플로리다주 올란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로 향하던 중이었다. 오지 오스본은 그날 밤 버스에서 랜디가 자신의 과음을 지적하며 나눈 마지막 대화를 회상하며, 랜디가 "너 그렇게 마시다가 언젠가 훅 가는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동 중 밴드는 에어컨 부품 수리를 위해 플로리다주 리스버그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는 작은 헬리콥터들과 비행기들이 있는 간이 활주로가 있었다. 투어 버스 기사이자 조종사였던 앤드류 애이콕은 허가 없이 마이크 파틴 소유의 단발 엔진 Beechcraft F35 비행기를 조종했다. 첫 비행에는 키보디스트 돈 에이리와 투어 매니저 제이크 던칸이 탑승했고, 이후 랜디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레이첼 영블러드를 태우고 두 번째 비행을 했다.
두 번째 비행에서 애이콕은 투어 버스 위를 저공비행하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두 번은 성공했지만, 세 번째 시도에서 비행기 날개가 투어 버스와 충돌하며 비행기는 통제력을 잃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랜디와 영블러드는 비행기 앞 유리에 머리를 부딪혔고, 비행기는 야자 나무와 충돌 후 근처 저택 차고에 추락해 불길에 휩싸였다. 버스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키보디스트 돈 에이리만이 이 모든 것을 목격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랜디, 애이콕, 영블러드는 모두 즉사했다. 세 명의 시신은 모두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랜디의 시신은 치아 기록과 보석류를 통해 확인되었다.
오지 오스본은 당시 상황에 대해 "큰 폭발음에 잠에서 깼다... 부서진 비행기를 목격했다... 다른 사람이 오기까지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라고 증언했다. 밴드는 다음 날 올란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록 슈퍼 보울 XIV(Rock Super Bowl XIV) 페스티벌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랜디의 장례식은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퍼스트 루더랜 교회에서 거행되었으며, 오지 오스본, 루디 사르조, 케빈 듀브로우 등이 운구를 맡았다. 랜디는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마운틴 뷰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부검 결과 애이콕에게서는 코카인이 검출되었고, 랜디에게서는 니코틴만 검출되었다. NTSB 조사단은 애이콕의 의료 진단서 기간이 만료되었고, 과거 아랍 에미리트에서 비행기 사고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 음악성과 영향
랜디 로즈는 클래식 기타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서정적인 연주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록 기타 연주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지 오스본 밴드 시절 "Crazy Train"과 "Mr. Crowley"에서 보여준 기타 솔로는 명곡으로 꼽히며 많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롤링 스톤지는 랜디 로즈를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는 기타 월드 잡지가 선정한 100대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 중 4위에 올랐고, 기타 월드가 선정한 50대 최고 속주 기타리스트 목록에서 26위에 올랐다. 롤링 스톤 잡지가 선정한 100대 기타리스트에서는 36위에 올랐다.
다임백 대럴, 존 페트루치, 잭 와일드, 조지 린치, 마이클 로미오, 알렉시 라이호, 믹 톰슨, 폴 길버트, 버킷헤드, 마이크 매크리디 등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랜디 로즈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톰 모렐로는 "어떤 면에서 랜디 로즈는 메탈의 로버트 존슨과 같다. 매우 영향력 있는 작은 작품 목록이다."라고 평가했다.
랜디 로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는 레슬리 웨스트, 리치 블랙모어, 마이클 쉥커, 게리 무어, 찰리 크리스찬, 존 윌리엄스였다.
하지만, 랜디 로즈의 연주가 항상 호평만 받은 것은 아니다. 롤링 스톤지의 J. D. 콘시다인은 Diary of a Madman 음반에서 랜디 로즈의 연주를 "굉장히 기교적이나 창의성이 부족한" 에디 반 헤일런을 흉내내는 아마추어"라고 평가했다. 에디 반 헤일런 또한 1982년에 랜디의 연주에 대해 "그가 한 모든 것은 나에게서 배운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4. 사용 장비
랜디 로즈는 기타 이펙터보다 앰프 사용을 선호했고, 보유수가 적어 주로 단순한 설정을 사용하였다. 그는 Blizzard of Ozz 음반 작업 때는 .009 게이지, Diary of a Madman 음반 작업 때는 .010 게이지 기타줄을 애용하였다.
4.1. 기타
Randy Rhoads영어는 주로 세 가지 기타를 사용했다.
* 1950년대형 깁슨 레스폴 Black beauty (사진 촬영용)
*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 Dimarzio Super Distortion/ PAF/ 칼 산도발 제작의 플라잉 V에 사용
* Super 74(Bridge)/ 깁슨 사 레스폴 커스텀에 사용
* Seymour Duncan Distortion/Jazz Model/ 잭슨 사 기타에 사용.
Randy Rhoads영어는 기타 이펙터보다 앰프 사용을 선호하여 보유수가 적었고 주로 단순한 설정을 사용하였다.
4.2. 이펙터
랜디 로즈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이펙터를 사용했다.
* 던롭 크라이베이비 와우
* 롤랜드 RE-201 스페이스 에코
* MXR 디스토션 +
* MXR 10 밴드 EQ
* MXR 플랜저
* MXR 스테레오 코러스
5. 사후 추모
마샬 앰프사는 랜디 로즈를 추모하며 2008년 NAMM 행사에서 1959RR 모델을 출시했다. 이 앰프는 랜디 로즈의 Super Lead 앰프 외형을 본따 흰색 바탕으로 제작된 마샬 Super Lead 100와트 헤드였으며 한정판으로 출시되었다. 마샬 사의 엔지니어들은 1959RR 모델을 제작할 때 랜디 로즈의 실제 앰프를 면밀히 조사하여 1980년에 그가 마샬 사 공장을 방문했을 때 주문한 특수 하이-게인 설정을 그대로 적용했다.
잭슨 기타사는 랜디 로즈의 기타인 백색 "쇼트윙" 플라잉 V 기타의 레플리카 기타를 출시했다. 잭슨 사의 기타 제작자들은 원본과 최대한 비슷하게 레플리카를 만들기 위해 랜디 로즈의 기타를 조작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면밀히 조사했다. 이 레플리카는 랜디 로즈의 기타처럼 윗쪽 윙 부분과 뒷부분에 검은색 강력 테이프가 붙여진 채로 출시되었다. 오직 60대만이 제작되었고 랜디 로즈의 생일을 따라 가격을 12619.56USD로 책정하여 판매하였다. 2010년, 깁슨 기타 사에서 랜디 로즈가 사용한 1974년형 레스폴 커스텀을 본 따 만든 새 커스텀 숍 시그니처 기타를 제작했다.
2017년 1월 18일, 랜디 로즈는 헤비 메탈 리드 기타 연주를 정의한 것에 대한 공로로 헤비 메탈 역사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21년 10월 30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헌액식에서 오지 오스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자크 와일드, 메탈리카의 커크 해밋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연설했다.
2022년 11월, 다큐멘터리 영화 "랜디 로즈"가 전국 개봉되었다. 안드레 레리스 감독. 이 영화는 2007년에 제작되었지만 랜디 로즈의 유족이 납득하지 못해 무산되었던 것을 랜디 로즈 사망 40주년에 맞춰 손을 보아, 유족에게 일언반구 없이 완성되었다. 오지 오스본에게 승인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여 오지의 곡은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6. 디스코그래피
랜디 로즈는 《블리자드 오브 오즈》(Blizzard of Ozz)에서는 .009 게이지 스트링을, 《다이어리 오브 어 매드맨》(Diary of a Madman)에서는 .010 또는 .011 게이지 스트링을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스트링과 이펙터 페달은 다음과 같다.
| 스트링 | 이펙터 페달 |
|---|---|
로즈는 "MXR Distortion Plus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일한 장비입니다."라고 말했다.
6.1. 콰이엇 라이엇
Quiet Riot영어 (1977), Quiet Riot II영어 (1978), The Randy Rhoads Years영어 (1993) 음반을 발매했다.
1979년, 전 블랙 사바스 보컬리스트 오지 오스본이 새 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왔다. 로즈의 지인이자 미래의 슬로터 베이시스트인 데이나 스트럼은 로즈에게 오디션을 보도록 설득했다. 로즈는 처음에 콰이엇 라이엇 동료 루디 사르조에게 오디션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스트럼의 권유로 오디션에 응했다. 로즈는 1979년 9월 콰이엇 라이엇과의 마지막 공연 직전에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로즈는 깁슨 레스 폴과 연습용 기타 앰프를 가져와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술에 취한 오스본은 "그 망할 기타 솔로를 연주했고, 나는 '내가 뿅 간 건가, 환각을 보는 건가, 도대체 이게 뭔지!' 싶었지."라고 말했다. 오스본은 즉시 그에게 일자리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로즈는 "그냥 가서 몇 개의 리프를 연주했는데, 그는 '당신이 일자리를 얻었어'라고 말했어요. 그는 아직 제 연주를 듣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오디션 후 로즈는 사르조에게 오스본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스본은 술에 취해 스튜디오의 컨트롤 룸에 계속 머물렀다. 로즈의 설명에 따르면 컨트롤 룸에서 나와 그에게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한 사람은 스트럼이었다.
오디션 후 며칠 동안 로즈, 오스본, 스트럼, 그리고 드러머 프랭키 바날리는 오스본이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함께 잼 세션을 가졌다. 콰이엇 라이엇이 미국의 음반 계약을 따내지 못하는 것에 실망한 로즈는 이미 활동 중인 밴드에 합류할 가능성에 대해 어머니와 상의했고,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거니?"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6.2. 오지 오스본
유라이어 힙의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가 새로운 밴드를 완성했는데, 당시에는 더 블리자드 오브 오즈(The Blizzard of Ozz)로 알려졌다. 이 그룹은 데뷔 앨범인 블리자드 오브 오즈를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로즈의 기타 연주는 오스본과 데이즐리가 허락한 자유도 덕분에 변화했다. 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에서의 그의 작업은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고전적인 스케일이나 편곡에 의존하지 않았다. 로즈의 신고전주의 기타 연주에 힘입어, 블리자드 오브 오즈는 특히 미국에서 록 팬들에게 즉각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그들은 앨범에서 "미스터 크롤리"와 "크레이지 트레인" 두 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미스터 크롤리"는 D 단조이고, "크레이지 트레인"은 F# 단조이다. 오스본은 몇 년 후 "어느 날 랜디가 나에게 와서 대부분의 헤비 메탈 곡은 A에서 E 코드 구조로 쓰여진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걸 바꿔보자'라고 말했죠... 그래서 우리는 앨범에 녹음한 거의 모든 곡이 같은 키로 연주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올뮤직 평론가 스티브 휴이는 크레이지 트레인의 메인 기타 리프를 "리치 블랙모어의 딥 퍼플 시절 이후로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마이너 스케일을 완전히 활용한, 클래식한 리프"라고 묘사했다.
"크레이지 트레인"과 "미스터 크롤리"는 각각 Guitar World의 100대 기타 솔로 독자 투표에서 9위와 28위에 올랐다. "크레이지 트레인"은 롤링 스톤의 역대 100대 기타 곡 목록에서 51위에 올랐다.
로즈는 "MXR Distortion Plus는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일한 장비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펙터 페달은 다음과 같다.
* 던롭 크라이 베이비 와우
* 롤랜드:
* RE-201 스페이스 에코
* 볼륨 풋 페달
* 코르그 에코
* MXR:
* 디스토션 +
* 10 밴드 EQ
* 플랜저
* 스테레오 코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