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우
1. 개요
배종우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지도자였다. 선수 시절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1982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으며,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감독으로 2008년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에는 내셔널리그 전기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감독직을 수행하지 못했다. 2011년 신장암으로 사망했다.
| 이름 | 배종우 |
|---|---|
| 로마자 표기 | Bae Jong-Woo |
| 출생일 | 1956년 1월 26일 |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양군 |
| 사망일 | 2011년 9월 11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포지션 | 감독 (과거 공격수) |
| 청소년 클럽 연도 | ??? |
|---|---|
| 청소년 클럽 | 진주고등학교 |
| 클럽 연도 | 1975-1984 |
| 클럽 | 한국전력 축구단 |
| 클럽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03년 1월 1일 |
|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03년 1월 1일 |
|---|
| 감독 연도 | ??? 2002-2011 |
|---|---|
| 감독 클럽 | 한국전력 축구단 (코치)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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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의 축구 감독 -
박영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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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암으로 죽은 사람 -
김윤환 (1932년)
김윤환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으로 5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장, 정무장관을 역임하며 정권 창출에 기여하여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민주국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으며 신장암으로 사망했다. -
신장암으로 죽은 사람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역학과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하여 양자역학 확립에 크게 기여한 독일의 이론물리학자로,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참여했으나 전후 독일 과학 연구 발전에 기여했으며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내셔널리그의 축구 감독 -
윤성효
윤성효는 대한민국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한일은행, 포항 스틸러스, 부산 아이파크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아이파크 등 여러 팀에서 감독을 맡아 FA컵 우승 및 '성효 부적' 별명 등의 업적을 남겼다. -
내셔널리그의 축구 감독 -
조민국
조민국은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럭키금성 황소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2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지도자로서 현대미포조선 감독, 울산 현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2.2. 한국전력 축구단 (1975년 ~ 1984년)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출신으로 함양초등학교, 함양중학교, 진주고등학교에서 활약했으며, 1975년 한국전력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그 해 열린 197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선수 선발 대회에 '실업 선발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고교 홍군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선보였으나 최종적으로 선발되지 못했다.
1977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당시 경희대학교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으나 팀은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1982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성무 축구단을 상대로 2득점을 올린 뒤 서울신탁은행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는 등 팀의 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으나, 서울시청 축구단과의 결승전에서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팀은 우승에 실패하였다. 같은 해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는 총 5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으며, 1984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3. 지도자 경력
배종우는 은퇴 이후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트레이너, 주무, 코치로 활동하였다. 한국전력공사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분사하여 팀이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으로 개편된 이후인 2002년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06년에는 구단 측에 연봉 책정 시스템 변경 및 선수단 정원 증대 방안을 건의하여 팀 전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고, 2008년 팀의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며 팀 개편 이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0년에는 팀의 사상 첫 내셔널리그 전기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 후기 리그 개막 이후 건강 악화로 장기간 입원하여 수석 코치인 어용국이 감독 대행을 맡았다. 수원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1차전에서도 건강 문제로 불참하여 팀은 패배했고, 2차전에서는 경기에 참가해 승리했지만, 합산 결과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고기구를 영입하여 팀을 재구축했으며, 5월경까지 감독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4월 2일 천안시청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주심 판정에 과격하게 항의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3.2.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감독 (2002년 ~ 2011년)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트레이너 및 주무, 코치로 활동했으며, 한국전력공사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분사해 팀이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으로 개편된 이후인 2002년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06년 배종우가 구단 측에 건의한 연봉 책정 시스템 변경 및 선수단 정원 증대 방안이 받아들여져 팀 전력을 강화하는 데 공헌했으며, 2008년 팀의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며 팀 개편 이후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0년 팀의 사상 첫 내셔널리그 전기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나, 후기 리그 개막 이후 건강 악화로 장기간 입원하여 수석 코치인 어용국이 감독 대행을 맡았다. 수원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1차전에서도 건강 문제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해 팀은 0-2로 패했고, 2차전에서는 경기에 참가해 팀의 1-0 승리를 지휘했으나 1, 2차전 합산 결과 1-2로 정규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고기구를 주축으로 팀을 재구축했으며, 그 해 5월경까지 팀의 감독 역할을 수행하며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4월 2일 벌어진 천안시청 축구단과의 경기 도중 주심 판정에 지나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기도 했다.
4. 사망
신장암으로 2011년 9월 11일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선수들은 9월 16일 용인시청 축구단과의 내셔널리그 경기에서 검은 완장을 차고 나오며 조의를 표했다.
2011년 내셔널리그 시상식에서 특별 공로패가 수여되었다.
5. 기타
한국전력 축구단에서 활약하던 시절 서울산업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해 학업을 병행하였다.
1980년 한국전력공사의 '축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유소년 축구지원사업'에 모교인 함양초등학교를 추천, 함양초등학교가 지원 대상 학교로 선정되었다.
6. 수상 경력
| 구분 | 대회 | 결과 | 비고 |
|---|---|---|---|
| 선수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 준우승 | 1982년 |
| 감독 | 내셔널리그 | 준우승 | 2010년 |
| 감독 |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우승 | 2008년 |
| 감독 |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준우승 | 2009년 |
| 감독 | 전국체육대회 | 준우승 | 2009년 |
| 개인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 득점왕 | 1982년 (5골) |
6.1. 선수
* 1975년 ~ 1984년: 한국전력 축구단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 준우승 1회: 1982년
6.2. 감독
*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2002년 ~ 2011년)
| 대회 | 결과 |
|---|---|
| 내셔널리그 | 2010년 준우승 |
|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2008년 우승 |
|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 | 2009년 준우승 |
| 전국체육대회 | 2009년 준우승 |
6.3. 개인
배종우는 1982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5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