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천
1. 개요
백운동천은 1925년 복개 공사가 시작되어 새문안로3길과 자하문로 등으로 변모한 하천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과거 신교, 자수궁교, 금천교, 종침교, 송기교 등의 다리가 존재했다. 백운동천 상류의 계곡부는 백운동 계곡으로 불리며, 인왕산 백운동 계곡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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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은 광화문 앞 사직로에서 시작하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끝나는 광장으로, 역사 회복, 육조거리 재현, 도시문화 공간 등의 역할을 하며, 주변에 주요 시설과 지하철역이 위치하고, 광장 사용과 관련한 논란과 대중문화 등장 등의 특징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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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청계천은 조선시대부터 서울 도심을 흐르는 하천으로, 홍수 예방을 위한 치수 사업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전쟁 후 환경 악화로 복개되었다가 2005년 복원되어 시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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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천
도림천은 서울특별시를 흐르는 하천으로 봉천천, 난곡천, 대방천 등의 지류를 가지며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도심 속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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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로
청계천로는 서울특별시의 도로로, 청계천 복개, 청계고가도로 건설 및 철거, 청계천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의 노선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청계광장에서 시작하여 신답철교까지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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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
청계광장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광장으로, 다양한 시설과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변 시설과 연계되어 문화 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2. 연혁
백운동천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 | 내용 | |
|---|---|
| 1925년 | 도렴동~내자동~신교동 간 1,395m 백운동천 복개 착공. 도렴동~내자동 간 약 290m의 복개도로(현 새문안로3길) 개통. |
| 1926년~1929년 | 내자동~신교동 간 약 970m의 복개도로(현 자하문로) 건설. 당시에는 현재의 자하문로 서쪽 차선을 차지하던 2차선 미만의 도로였음. |
| 1978년 12월 27일 | 내자동~청운국민학교앞 1.6km 4차선 확장 개통. 백운동천 복개도로와, 현재의 자하문로 동쪽 차선을 차지하던 2차선 미만의 도로 사이에 있던 집들을 철거하여 확장함. |
2.1. 일제강점기
* 1925년: 도렴동~내자동~신교동 간 1,395m 백운동천 복개 공사를 시작하였다. 도렴동~내자동 간 약 290m의 복개도로(현 새문안로3길)가 개통되었다.
* 1926년~1929년: 내자동~신교동 간 약 970m의 복개도로(현 자하문로)가 건설되었다. 당시에는 현재의 자하문로 서쪽 차선을 차지하던 2차선 미만의 도로였다.
2.2. 해방 이후
해방 이후 백운동천은 복개 및 도로 확장 공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1978년 12월 27일, 내자동에서 청운국민학교 앞까지 1.6km 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 개통되었는데, 이는 백운동천 복개도로와 기존 도로 사이에 있던 집들을 철거하여 이루어졌다.
3. 백운동 계곡
백운동 계곡은 백운동천 상류의 계곡부를 의미한다.
3.1. 인왕산 백운동 계곡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0호)
백운동 계곡은 백운동천 상류의 계곡을 의미한다.
4. 과거의 다리
조선 시대 백운동천의 다리 목록이다. 송기교 이후부터 영도교까지의 다리는 해당 문서를 참고한다.
* 신교(新橋)
* 자수궁교(慈壽宮橋)
* 금천교(禁川橋)
* 종침교(琮沈橋)
* 송기교(松杞橋)
4.2. 자수궁교(慈壽宮橋)
옥인동 21번지 자수궁 앞에 있었으며, 지금의 자하문로-자하문로16길-17길 사거리 부근에 있었다. 자수교(慈壽橋) 또는 자교(慈橋)라고도 불렸으며, 승정원일기에는 자시궁교(慈始宮橋)로도 기록되어 있다. 1927년에 백운동천에 암거 공사를 진행하면서 소멸되었다.
4.3. 금천교(禁川橋)
지금의 금천교시장 앞에 있었으며, 고려 충숙왕 때 지어졌다고 한다. 물이 흘러나가는 곳은 마치 세 개의 구멍이 있는 수문과 같은 모양으로 되었는데, 돌 위에는 귀면과 연꽃 등의 문양이 양각되어 궁궐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1928년 백운동천을 복개하여 지금의 자하문로를 만들면서 철거되었다. 금청교(禁淸橋)나 금충교(禁忠橋)로도 불렸으며, 궁궐의 금천과는 관계없다.
4.4. 종침교(琮沈橋)
내자동 종교교회 앞에 있던 돌다리로, 종침다리 또는 종교(宗橋)라고도 불렀다. 1908년 종침교 건너편 한옥의 예배당을 ‘종교교회’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되었다. 성종 때 윤씨 폐비를 논하기 위해 입궐하던 허종, 허침 형제가 일부러 다리 밑으로 떨어져 이후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화를 면했다고 해서 형제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종침교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며, 그 이전에는 송첨교(松籤橋)라 불렸다. 1925년 백운동천 복개 과정에서 철거되었다고 한다.
4.5. 송기교(松杞橋)
신문로1가 23번지에 있었으며, 송기전교(松肌廛橋)라고도 불렀다. 송기교를 기준으로 백운동천이 청계천으로 바뀐다.
5.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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