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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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명분으로, 왕권 강화와 훈구 세력 숙청을 위해 일으킨 대규모 사화이다. 연산군은 폐비 윤씨 사사에 연루된 인물들을 처벌하고,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척결한다는 명목 하에 이세좌를 비롯한 훈구 세력을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형, 유배, 파직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언론 탄압과 국문학 발달 저해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폭정을 심화시켜 중종반정의 원인이 되었으며, 조선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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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4년 한국 - 사화
사화는 조선 시대에 발생한 정치적 숙청 사건으로, 훈구와 사림의 대립, 왕권 강화 시도 등의 원인으로 발생했으며, 사림 세력에게 피해를 입혔으나 결국 사림이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 한명회 - 윤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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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왕위에 오르고 훈구파의 권력 독점을 야기하며 조선의 정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한국에 관한 -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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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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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정보 | |
이름 | 갑자사화 |
원어 이름 | 甲子士禍 |
참가자 | 연산군 |
날짜 | 1504년(연산군 10년) |
사망자 | 폐비 윤씨 사망과 관련된 신하 및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한 사람들 이극균, 이세좌, 윤필상, 성준 등 40여 명 |
원인 |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일에 관계한 신하들과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한 사람들이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화를 입음 |
2. 배경과 원인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1482년에 사사되었는데,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킨 이유가 윤씨의 폐비를 찬성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를 위해서라고 공표했다.[1]
중종 때 사관들은 임사홍이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의논하여 연산군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로 합의하고, 임사홍이 폐비 윤씨와 관련된 사실을 연산군에게 보고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관의 평 외에 연산군이 임사홍과 사적으로 만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윤씨 사건을 보고했다는 임사홍은 이극균과의 친분이 발각되어 유자광과 함께 갑자사화 때 죽을 뻔했다는 점 등 객관적으로 볼 때 중종 때 사관의 추측은 신빙성이 떨어진다.[1]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복수를 시작했다는 야사도 갑자사화 한참 전인 연산군 즉위 직후부터 외할머니 신씨에게 매년 곡식을 베풀어 주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외할머니와 교류하고 있었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1]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폐비 윤씨의 죽음이 갑자사화의 계기 및 명분은 될지언정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연산군이 왕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가 와서 사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기에 연산군의 어머니가 사사된 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1]
연산군의 이세좌에 대한 처벌은 갑자사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 처벌 과정은 왕권을 제약하는 대간과 자신의 절대 왕권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훈구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 과정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에도 위를 능멸하는 풍습(凌上之風)이 그다지 수그러들지 않은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숙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연산 9년 9월 연산군은 이세좌가 실수로 자신의 옷에 술을 엎지른 것을 핑계로 '위를 능멸하는 풍습' 운운하며 이세좌를 유배 보냈다.[1] 다음 해인 연산 10년 2월 연산군의 간택령에 홍귀달이 불응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연산군은 '대간들이 간하지 않는 것은 이세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홍귀달의 언사가 불공하고 임금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이세좌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세좌도 홍귀달과 같이 유배 보냈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 이세좌는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척결하는 데에도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를 하는 데에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즉, 갑자사화로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1]
2. 1. 폐비 윤씨 사건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폐출되었다가 1482년에 사사되었는데,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킨 이유가 윤씨의 폐비를 찬성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를 위해서라고 공표했다.[1]중종 때 사관들은 임사홍이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의논하여 연산군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로 합의하고, 임사홍이 폐비 윤씨와 관련된 사실을 연산군에게 보고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관의 평 외에 연산군이 임사홍과 사적으로 만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으며, 윤씨 사건을 보고했다는 임사홍은 정광필과의 친분이 발각되어 유자광과 함께 갑자사화 때 죽을 뻔했다는 점 등 객관적으로 볼 때 중종 때 사관의 추측은 신빙성이 떨어진다.[1]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복수를 시작했다는 야사도 갑자사화 한참 전인 연산군 즉위 직후부터 외할머니 신씨에게 매년 곡식을 베풀어 주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외할머니와 교류하고 있었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1]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폐비 윤씨의 죽음이 갑자사화의 계기 및 명분은 될지언정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연산군이 왕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가 와서 사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기에 연산군의 어머니가 사사된 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1]
연산군의 이세좌에 대한 처벌은 갑자사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 처벌 과정은 왕권을 제약하는 대간과 자신의 절대 왕권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훈구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 과정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에도 위를 능멸하는 풍습(凌上之風)이 그다지 수그러들지 않은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숙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연산 9년 9월 연산군은 이세좌가 실수로 자신의 옷에 술을 엎지른 것을 핑계로 '위를 능멸하는 풍습' 운운하며 이세좌를 유배 보냈다.[1] 다음 해인 연산 10년 2월 연산군의 간택령에 홍귀달이 불응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연산군은 '대간들이 간하지 않는 것은 이세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홍귀달의 언사가 불공하고 임금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이세좌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세좌도 홍귀달과 같이 유배 보냈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 이세좌는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척결하는 데에도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를 하는 데에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즉, 갑자사화로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1]
2. 2. 연산군의 왕권 강화 시도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1482년에 사사되었는데,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일으킨 이유가 윤씨의 폐비를 찬성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과 복수를 위해서라고 공표하였다.[1]중종 때 사관들은 임사홍이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의논하여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와 관련된 사실을 보고했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사관의 평 말고는 연산군이 임사홍과 사적으로 만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일절 없다. 게다가 윤씨 사건을 보고했다는 임사홍은 정작 이극균과의 친분이 발각되어 유자광과 같이 갑자사화 때 죽을 뻔한 사람이라는 점 등 객관적으로 봐서 중종 때 사관의 추측을 믿기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외할머니에게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을 보고 복수를 시작했다는 야사도 갑자사화 한참 전인 연산군 즉위 직후부터 외할머니 신씨에게 매년 곡식을 베풀어 주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외할머니와 교류하고 있었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1]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폐비 윤씨의 죽음이 갑자사화의 계기 및 명분은 될지언정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연산군이 왕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가 와서 사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기에 연산군의 어머니가 사사된 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1]
연산군의 이세좌에 대한 처벌은 갑자사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 처벌 과정은 왕권을 제약하는 대간과 자신의 절대왕권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훈구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 과정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에도 위를 능멸하는 풍습[凌上之風]이 그다지 수그러들지 않은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숙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연산 9년 9월 연산군은 이세좌가 실수로 자신의 옷에 술을 엎지른 것을 핑계로 '위를 능멸하는 풍습' 운운하며 이세좌를 유배 보냈다. 다음 해인 연산 10년 2월 연산군의 간택령에 홍귀달이 불응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연산군은 '대간들이 간하지 않는 것은 이세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홍귀달의 언사가 불공하고 임금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이세좌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세좌도 홍귀달과 같이 유배 보냈다.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 이세좌는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척결하는 데에도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를 하는 데에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즉, 갑자사화로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한 것이다.[1]
2. 3. '위를 능멸하는 풍습' 척결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폐비 윤씨의 죽음이 갑자사화의 계기 및 명분은 될지언정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1] 하지만 연산군이 왕이 되기 전부터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가 기회가 와서 사화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에도 '위를 능멸하는 풍습[凌上之風]'이 수그러들지 않은 것에 큰 불만을 품고 무차별적인 숙청을 계획하고 있었다.[1] 연산군 9년 9월, 연산군은 이세좌가 실수로 자신의 옷에 술을 엎지른 것을 핑계로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언급하며 이세좌를 유배 보냈다.[1] 연산 10년 2월, 연산군의 간택령에 홍귀달이 불응하자 연산군은 '대간들이 간하지 않는 것은 이세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홍귀달의 언사가 불공하고 임금을 경시하는 태도 역시 이세좌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이세좌도 함께 유배 보냈다.[1]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 이세좌는 '위를 능멸하는 풍습' 척결과 폐비 윤씨에 대한 복수 모두에 적합한 인물이었다.[1] 연산군은 갑자사화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복수와 '위를 능멸하는 풍습' 제거를 동시에 꾀하며 왕권을 강화했다.[1]
3. 경과
3. 1. 이세좌 처벌과 갑자사화의 시작
3. 2. 창경궁의 피바람 (3월 20일)
연산군은 1504년 (연산군 10년) 음력 3월 20일 밤, 창경궁 뜰에서 아버지 성종의 후궁들이자 이향과 이봉의 어머니인 귀인 정금이와 엄귀인을 결박하고 직접 구타했다.[2] 연산군은 이향과 이봉에게 두 사람을 구타하도록 명령했는데, 이향은 어두워서 결박당한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명령을 따랐지만, 이봉은 어머니 정씨를 알아보고 망설였다. 이에 분노한 연산군은 귀인 엄씨와 정씨를 살해했다.[2] 다음날 연산군은 이항에게 말 한 마리를 선물했는데, 이는 조롱의 의미로 추정된다.[3]그 후 연산군은 어머니 자순대비의 거소 앞에서 칼을 들고 위협했다. 자순대비의 하인들은 도망가고 자순대비는 공포에 질렸지만, 연산군의 왕비 신씨가 간절히 만류하여 연산군은 돌아갔다.
이후 연산군은 할머니 인수대비의 거소에 침입했다. 이향과 이봉의 머리채를 잡고 침실에 들어가 이항을 시켜 억지로 인수대비에게 술을 올리게 했다. 인수대비가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왜 죽였냐고 따지자 연산군은 불손한 말을 했다. 새벽 12시경, 이향과 이봉이 풀려나면서 음력 3월 20일 밤의 사건은 끝이 났다.
3. 3. 대숙청 (3월 ~ 7월)
갑자사화로 인해 윤필상, 이극균, 이세좌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극형에 처해졌다. 사화는 점점 확대되어 연산군에게 쓴소리를 한 신하들까지 처형당했다.[4][5][6][7][8][9][10][11][12] 인수대비는 연산군의 행위를 꾸짖다가 화병으로 죽었다. 연산군이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여 성종묘에 배사하고자 할 때 반대한 응교 권달수는 처형되었고, 이행은 귀양을 갔다.성종이 윤씨를 폐출하려 할 때 찬성했던 윤필상, 이극균, 김굉필, 이세좌, 성준, 권주, 이주 등 10여 명을 처형했고, 이미 사망한 남효온, 한명회, 정창손, 정여창, 한치형, 어세겸, 심회, 이파 등은 부관참시에 처했으며, 그 제자와 가족들도 처벌하였다.
당시 시신은 부관참시, 쇄골표풍, 능지처참 후 시체를 백관이 모두 보게 하고 사방에 돌려 보이는 등 참혹한 형벌들이 연일 진행되었다. 죄인의 집을 파 연못을 만들고 돌에 죄명을 새기게 하였다. 이 참화는 갑자년에 일어났으며, 뒤이어 언문학대까지 하게 되어 국문학 발달도 침체 상태에 빠졌다. 세자 시절 갈등을 빚기도 했던 문신이자 그의 스승이기도 한 조지서 역시 주살되었다. 유자광이나 임사홍은 이극균과의 친분때문에 죽을뻔했으나 유자광은 이전의 공으로, 임사홍은 윤씨의 폐비를 반대했던 일로 풀려났다.
3. 4. 척흉청 설치와 가혹한 형벌
4.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아래에 제시된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갑자사화는 연산 10년(1504년) 음력 3월 초 홍귀달과 이세좌를 유배 보낸 것을 시작으로 7월까지 이어졌다.[166][167] 그 이후에도 관련된 자의 집을 헐어 연못으로 만들고, 이극균·윤필상이 만든 법을 폐지하고, 이극균을 천거했다는 이유로 연산 10년 11월에 이장곤을 고문하고, 연산 11년 3월에 윤필상을 쇄골표풍하는 등 갑자사화의 여파는 오래 갔다.
- 음력 8월 30일 : 이극균·윤필상 등이 세운 과조를 모두 의논하여 없애게 하였다.[167]
- 음력 9월 1일 : 한치형이 세운 비융사를 폐지하였다.[169]
- 음력 9월 26일 : 무오사화때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잡아오게 하였다.[170]
- 음력 10월 3일 : 이극균·성준 등에게 가 본 자는 자수시켜 치부하게 하였다.[172]
- 음력 10월 13일 : '척흉'이 끝나자 그 기록을 의금부와 대내에 한 부씩 두게 하였다.[173]
- 음력 10월 14일 : 이극균을 난신으로 논하였으니, 그 아들도 또한 당연히 부관참시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이러한 무리가 반드시 많을 터인데, 즉시 아뢰지 아니함은 잘못이라며 의금부 당상 및 의논에 참여한 대신을 모두 국문하게 하였다.[174]
- 음력 10월 21일 : 홍귀달과 이세좌에게 연좌된 사람 가운데 가장 가까운 자는 모두 바다 밖으로 들여보내 종으로 만들어 노역시키고, 무오사화의 범죄자 및 구성(具誠)과 변형량(卞亨良)도 또한 특별히 연좌시키게 하였다.[175]
- 음력 10월 23일 : 이극균 등의 족친을 국문하였다.[176]
- 음력 10월 24일 : 이극균이 천거하였다는 이유로 이장곤을 잡아다 고문하였다.[177] 이극균이 궁성 가까이 살아 궁성 안의 일을 누설하여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178]
- 음력 11월 6일 : 이극균이 이장곤을 천거한 것은 사사로운 정 때문이라고 하며[179] 이장곤이 활쏘기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자 더 고문하였다.[180]
- 음력 11월 17일 : "괴수 역적 중에도 괴수 역적" 이극균이 추천한 이윤종을 잡아다 국문하였다.[181]
- 음력 11월 18일 : 익명 투서를 의심하여 이세좌의 손자로 부마가 된 자를 국문하였다.[183]
- 음력 11월 21일 : 이극균과 이세좌의 처족을 묶어다가 장에 처하여 출송(出送)하게 하였다.[185]
- 음력 11월 30일 : 이세좌, 윤필상, 이파 등의 동성 팔촌과 이성 사촌 등으로서 정배된 사람의 이름 중 국문해야 할 사람을 아뢰게 하였다.[186]
- 음력 1월 30일 : 죄인 한치형의 첩의 집을 숙용(淑容)의 오라비에게 주었다.[187]
- 음력 3월 24일 : 윤필상의 시체를 태워 뼈를 부수어서 바람에 날리게 하였으니 쇄골표풍(碎骨漂風)이라 하였다.[1]
4. 1. 연산 10년 3월
아래에 제시된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갑자사화는 연산 10년 3월 초 홍귀달과 이세좌를 유배 보낸 것으로 시작되어 7월까지 이어졌다.[13][14][15][17][18]- 3월 12일 : 홍귀달의 언사가 불경하다며 죄를 논하고, 사헌부 관원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 3월 13일 :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고치도록 하였다.[16]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편안하여 어디서나 굳건하리라.[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는 글귀를 새긴 패를 환관(宦官)들이 차게 하였다.[19]
- 3월 14일 : 이세좌가 궐문 밖에서 사죄한 일을 함부로 아뢴 승지를 국문하였다.[20] 이세좌의 아들 이수정(李守貞)이 아버지를 따라가려 하자 잡아다 국문하게 했다.[21]
- 3월 15일 : 홍언국을 국문하고 전 대간들을 귀양보냈다.[22][23] 이세좌를 방문한 이를 국문케 하고[24] 이세좌의 일로 의정부 당상과 승지들을 국문케 하였다.[25]
- 3월 16일 : 이세좌를 논하지 않은 홍문관과 대간을 국문케 하였다.[26] 이세좌와 양평군까지 이동한 홍귀달을 다시 잡아와 곤장 때리게 하였다.[27][28]
- 3월 18일 : 전 대간 이세영(李世英) 등을 의금부 옥에 가두고 태 40대씩 때리게 하였다.[29]
- 3월 20일 : 이세좌의 아들과 사위를 귀양 보냈다.[30]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을 창경궁 뜰로 잡아와 그들의 어머니인 엄씨(嚴氏)와 정씨(鄭氏)를 구타하게 하였다. 이어 인수대비의 침전으로 가 왜 어머니를 죽였냐며 추궁하였고, 엄씨와 정씨의 시신을 찢어 산과 들에 버렸다.[31]
- 3월 21일 : 연산군이 전날 엄씨와 정씨를 구타한 안양군 이항에게 말(馬)을 하사하였다.[1]
- 3월 24일 : 대신들이 폐비 윤씨의 시호를 의논하였고, 승정원에 폐비(廢妃)할 때 의논에 참여한 재상과 궁궐에서 나갈 때 시위한 재상 및 사약을 내릴 때 나가 참여한 재상들을 《일기(日記)》를 상고(詳考)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하였다.[32]
- 3월 26일 : 엄씨와 정씨를 서인으로 강등하고[33] 자녀들을 가두었으며[34] 그 족친을 연좌시켰다.[35]
- 3월 27일 : 엄씨와 정씨의 부모와 동생을 모두 장 1백 대를 때려 유배하게 했다.[36] 정씨의 아들 안양군 이항과 봉안군 이봉 그리고 딸 한기(韓紀)와 엄씨의 딸 한경침의 처를 유배 보내고 지나는 고을에서 접대하지 못하게 하였다.[37]
- 3월 28일 : 좌의정 이극균이 이세좌의 일을 잘못 의논하고 죄줄 사람을 율 밖이라 하여 반박한 이유로 국문하였다.[38] 노공필·김응기 등을 국문하였다.[39] 엄씨와 정씨의 재산을 적몰하였다.[40]
- 3월 30일 : 이세좌, 김순손, 이유녕 등의 죄를 논하였다.[41] 정인석(鄭仁石)과 엄산수(嚴山壽)를 교형에서 한 등급 올려 참형에 처하고, "위를 업신여기는 풍습"을 비난하였다.[42] 이세좌를 사사[43]하고 김순손을 처참[44]하게 하여 "군상에게 교만한 자의 경계를 삼"게 하였다.[45]
그 이후에도 관련된 자의 집을 헐어 연못으로 만들고, 이극균·윤필상이 만든 법을 폐지하고, 이극균을 천거했다는 이유로 연산 10년 11월에 이장곤을 고문하고, 연산 11년 3월에 윤필상을 쇄골표풍하는 등 갑자사화의 여파는 오래 갔다.
4. 2. 연산 10년 4월 ~ 7월
연산군 10년(1504년) 3월, 홍귀달과 이세좌를 유배 보낸 것을 시작으로 갑자사화가 발발하였다.[46] 4월 1일, 이극균을 인동현에 유배 보내고,[46] 궁인 나읍덕(羅邑德) 등을 참형에 처하여 효수하였다.[47] 4월 3일에는 이유녕, 박은, 변형량을 귀양보내고 다시는 한양에 들어올 수 없게 하였다.[49] 4월 9일, 의금부 도사 안처직(安處直)이 이세좌가 목매 죽었음을 보고하였다.[50] 안처직은 이세좌가 명주 홑이불 한 폭을 찢어 목을 매 자결했으며, 죽을 때 안색은 평상시와 같았다고 보고했다.[50]4월 18일, 이파의 자손은 서인으로 만들고, 한명회, 심회, 정창손, 정인지, 김승경 등은 종묘에 배향된 자가 있으면 내치게 하였으며, 이세좌의 아들과 친척은 서인으로 하여 영구히 사판(仕版)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51] 또한 이들의 아내 묘 석물도 모두 철거하게 하였다.[52] 4월 23일, 폐비에 관련된 귀인 권씨를 폐서인하고, 봉보 부인 백씨와 전언 두대(豆大)를 부관참시하였다.[53] 4월 24일, 정창손과 한명회 등을 종묘의 배향에서 내치게 하였다.[54] 4월 25일에는 광주(廣州)·고양(高陽) 등의 고을을 혁파할 것을 의논하였고,[55] 지언, 이오을, 미장수를 능지처사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56] 4월 27일, 인수대비가 창경궁 경춘전에서 사망하였다.[58]
윤4월 4일, 영의정 성준이 병으로 사면되었다.[59] 윤4월 5일, 유순 등이 실록을 상고하여 폐비 윤씨가 폐위당할 때 언문을 가지고 온 자는 노공필과 성준이라고 보고하여, 둘의 직첩(職牒)을 거두고 유배 보냈다.[60][61] 윤4월 12일, 이윤걸(李允傑)과 김의장(金義將)을 효수하게 하고, 이극균을 사사(賜死)하게 하였다.[63][64] 윤4월 13일, 윤필상을 사사(賜死)하고 재산을 적몰하였다.[66][67] 윤4월 15일, 정성근, 김취인(金就仁)을 처형하여, 머리를 철물전 앞 다리에 매달게 하였다.[70] 윤4월 16일, 조지서를 잡아와 국문하였는데, 형장 3대를 맞고 사망하였다.[75] 윤4월 17일, 조지서의 시체를 능지하여 팔도에 돌려 보이고, 가산을 몰수하게 하였다.[78] 윤4월 19일, 변형량이 저잣거리에 효수[84]되었다.[85] 윤4월 20일, 이유녕(李幼寧)을 군기시 앞에서 베어 저자에 효수하고, 송흠을 부관참시하였다.[87][88] 윤4월 21일, 송흠(宋欽), 이파, 윤필상, 이세좌를 모두 능지하여 시체를 사방에 돌려 보이게 하고, 정창손, 심회, 한명회를 부관참시하게 하였다.[1] 윤4월 23일, 경연이 정지되었다.[93]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학문에 뜻이 없었고, 신하들은 견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왕을 바로잡지 못했다.[93]
윤4월 26일, 사헌부에서 유자광과 임사홍이 이극균과 사귀었으니 그 죄가 참대시[94]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나, 연산군은 유배형을 속바치고 그대로 일을 보게 하였다.[1] 윤4월 28일, 궁궐 기둥에 붙어있던 홍귀달의 시를 깎아내고 다른 사람이 짓게 하였다.[99] 윤4월 29일, 유자광과 임사홍의 충군을 취소하였다.[100] 5월 1일, 한명회와 정창손 등을 함께 효수하게 하였다.[101] 5월 2일, 연산군이 이세좌의 머리와 사지를 모두 능지하고 효수하였다.[1] 5월 3일, 성준을 국문하고 교수형에 처하고, 한치형을 부관능지[105]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106] 5월 4일, 성준과 한치형의 머리를 효수하였다.[109][110] 5월 7일, 연산군은 위를 능멸하는 풍속을 다스리기 위해 중한 법을 써야 한다고 의정부에 전지하였다.[113] 5월 11일, 청주시로 가서 한명회를 부관참두하고 죄명을 써서 저잣거리에 효시했다.[1] 5월 12일, 박한주(朴漢柱)를 국문 후 능지하였다.[116] 5월 13일, 이세좌의 아들들을 참형하고 효수하였다.[117] 5월 15일, 성준을 능지하여 효수하고 시체를 돌려 보이게 하였다.[120] 5월 17일, 임금에게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라고 하여, 앞으로는 대신과 대간이 서로 탄핵하게 하였다.[122] 5월 19일, 내관 최수연을 베어 머리를 매달고 시체를 돌리며 내시들에게 번갈아 나가서 보게 하였다.[125] 5월 23일, 윤필상의 아들 윤숙, 윤위, 윤준을 베게 하였다.[129] 5월 25일, 내관 방견(方堅)을 참형하여 머리를 매달고 시체를 돌려 보이게 하였다.[134] 5월 30일, 궁중 일을 누설한 홍식과 종친으로서 조사들과 사귀어 결탁한 이총을 참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135]
6월 1일, 이승건(李承健)과 홍한(洪澣)을 부관참시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136] 6월 3일, 이승건과 홍한을 효수하고, 사지를 여러 고을에 돌려 보이게 하였다.[138] 6월 4일, 김천령(金千齡)을 능지처참 후 효수하여 시체를 사방으로 돌려 보이고, 민휘, 윤금손, 심순문, 권헌, 조세보 등을 참형에 처하였다.[139] 6월 6일, 연산군은 죄인이 죽지 않게 하고 죽었더라도 죄주게 하였다.[143] 6월 8일, 소격서의 종 도화(桃花)의 족친 등을 잡아와 국문하였다.[144][145] 6월 9일, 전향과 수근비를 능지하였다.[147] 6월 11일, 의금부가 이총을 거제시에서 능지하여 오니, '종친이 조사와 결탁하고서 나랏일을 논의하였다.'고 찌를 써서 효시했다.[149] 6월 14일, 이극균이 만든 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150] 6월 15일, 박은(朴誾)을 군기시 앞 거리에서 참형하고 효수하였다.[151] 6월 16일, 홍귀달(洪貴達)이 오만함이 심하다며 교형에 처하게 했다.[153] 6월 19일, 전향과 수근비를 평안도 강계군과 함경도 온성군에 안치하고 죄명을 써 붙였다.[155] 6월 20일, 이극균, 윤필상, 이세좌, 이파 등의 집은 연못[池]을 만들고 돌을 세워 죄명을 써 보이게 하였다.[156] 6월 27일, 죄인의 집터에 땅을 파서 가운데가 섬 모양이 되게 하고 죄명을 돌에 새기게 하였다.[158] 6월 28일, 전향과 수근비의 머리를 궁인들이 보고 경계하게 하였고,[159] 군인을 징발하여 죄인의 집에 못을 만들게 하였다.[160]
7월 1일, 임시 관아인 척흉청(滌兇廳)을 두어 갑자사화에 연루된 인물들의 집을 헐어 못을 파고 죄명을 적은 비석을 세우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162] 7월 6일, 이극균, 이세좌, 이파, 윤필상의 자식들도 재산을 적몰하게 하였다.[164] 7월 9일, 척흉청 당상 이손(李蓀) 등이 죄명을 새긴 돌의 건립 연월일을 물었다.[165]
4. 3. 연산 10년 8월 이후
아래에 제시된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갑자사화는 연산 10년(1504년) 음력 3월 초 홍귀달과 이세좌를 유배 보낸 것으로 시작되어 7월까지 이어졌다. 그 이후에도 관련된 자의 집을 헐어 연못으로 만들고, 이극균·윤필상이 만든 법을 폐지하고, 이극균을 천거했다는 이유로 연산 10년 11월에 이장곤을 고문하고, 연산 11년 3월에 윤필상을 쇄골표풍하는 등 갑자사화의 여파는 오래 갔다.[166][167]- 음력 8월 30일 : 이극균·윤필상 등이 세운 과조를 모두 의논하여 없애게 하였다.[167]
- 음력 9월 1일 : 한치형이 세운 비융사를 폐지하였다.[169]
- 음력 9월 26일 : 무오사화때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잡아오게 하였다.[170]
- 음력 10월 3일 : 이극균·성준 등에게 가 본 자는 자수시켜 치부하게 하였다.[172]
- 음력 10월 13일 : '척흉'이 끝나자 그 기록을 의금부와 대내에 한 부씩 두게 하였다.[173]
- 음력 10월 14일 : 이극균을 난신으로 논하였으니, 그 아들도 또한 당연히 부관참시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이러한 무리가 반드시 많을 터인데, 즉시 아뢰지 아니함은 잘못이라며 의금부 당상 및 의논에 참여한 대신을 모두 국문하게 하였다.[174]
- 음력 10월 21일 : 홍귀달과 이세좌에게 연좌된 사람 가운데 가장 가까운 자는 모두 바다 밖으로 들여보내 종으로 만들어 노역시키고, 무오사화의 범죄자 및 구성(具誠)과 변형량(卞亨良)도 또한 특별히 연좌시키게 하였다.[175]
- 음력 10월 23일 : 이극균 등의 족친을 국문하였다.[176]
- 음력 10월 24일 : 이극균이 천거하였다는 이유로 이장곤을 잡아다 고문하였다.[177] 이극균이 궁성 가까이 살아 궁성 안의 일을 누설하여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178]
- 음력 11월 6일 : 이극균이 이장곤을 천거한 것은 사사로운 정 때문이라고 하며[179] 이장곤이 활쏘기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자 더 고문하였다.[180]
- 음력 11월 17일 : "괴수 역적 중에도 괴수 역적" 이극균이 추천한 이윤종을 잡아다 국문하였다.[181]
- 음력 11월 18일 : 익명 투서를 의심하여 이세좌의 손자로 부마가 된 자를 국문하였다.[183]
- 음력 11월 21일 : 이극균과 이세좌의 처족을 묶어다가 장에 처하여 출송(出送)하게 하였다.[185]
- 음력 11월 30일 : 이세좌, 윤필상, 이파 등의 동성 팔촌과 이성 사촌 등으로서 정배된 사람의 이름 중 국문해야 할 사람을 아뢰게 하였다.[186]
- 음력 1월 30일 : 죄인 한치형(韓致亨)의 첩의 집을 숙용(淑容)의 오라비에게 주었다.[187]
- 음력 3월 24일 : 윤필상의 시체를 태워 뼈를 부수어서 바람에 날리게 하였으니 쇄골표풍(碎骨漂風)이라 하였다.[1]
5. 사상자 및 피해자 목록
갑자사화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유배, 태형, 국문, 파직 등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목록이다.
- '''사형, 자결, 구타 등으로 사망'''
이름 | 죄목 및 처벌 내용 |
---|---|
감시손(甘始孫) | 능지처참.[1] |
구성(具誠) | 정성근 등과 함께 처형 후 3일간 효수.[1] |
김순손(金舜孫) | "망령되이 제 스스로 존대한 척하여 군상에게 오만"한 죄로 처참(사형).[1] 머리는 단봉문(丹鳳門)에 효시.[194] |
김의장(金義將) | 저자에서 효수(사형).[1] |
김천령(金千齡) | 연산군을 말린 죄로 능지(사형) 후 효시, 가산 적몰.[1] |
김취인(金就仁) | 용렬한 무리로 국사를 생각지 않고 헛소리를 퍼트린 죄로 정성근 등과 함께 처형.[1] |
곽종번(郭宗蕃) | 신징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사형.[1] |
권헌(權憲) | 옥중에서 사망.[1] |
나읍덕(羅邑德) | 참형(사형).[1] |
노형손(盧亨孫) | 사형 후 불경죄로 효시.[1] |
미장수(未長守) | 능지처사.[1] |
방견(方堅) | 참수(사형) 후 효시.[1] |
변형량(卞亨良) | 유배 후 사형, 저잣거리에 효수.[1] |
성준(成俊) | 금구군으로 유배 후 교수형(사형) 후 효수.[1] |
수근비(水斤非) | 온성군 유배 후 능지처참, 조리돌림.[1] |
신온(信溫) | 참형(사형).[1] |
신징(申澄) | 곽종번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사형 후 능지.[1][204] |
심담(沈淡) | 옥중에서 사망.[1] |
엄씨(嚴氏) | 구타로 사망. |
엄산수(嚴山壽) | 국문 후 참형(사형).[1] |
이극균(李克均) | 인동현 유배 후 사사(사형).[1] |
이수원(李守元) | 이세좌의 아들. 유배 후 참형, 효시.[1] |
이수의(李守義) | 이세좌의 아들. 유배 후 참형, 효시.[1] |
이수정(李守貞) | 이세좌의 아들. 유배 후 참형, 효시.[1] |
이수형(李守亨) | 이세좌의 아들. 유배 후 참형, 효시.[1] |
이세좌(李世佐) | 유배 중 태형 후 거제도 유배, 사사(사형) 명령 후 자결,[1] 능지처참 및 효수.[1] |
이연명(李延命) | 이세좌의 서자. 그 아비로 하여 자리잡은 세력을 믿고 무사를 많이 모아 군상(君上)에게 오만한 죄로 참수(사형).[1] |
이오을(李吾乙) | 능지처사.[1] |
이유녕(李幼寧) | 사천시 유배 후 끌려와 저잣거리에 효수(사형).[1] |
이윤걸(李允傑) | 저자에서 효수(사형).[1] |
이팽손(李彭孫) | 형장으로 사망.[212] |
전향(田香) | 가산 적몰, 강계군 유배 후 능지처참, 조리돌림.[1] |
정성근(鄭誠謹) | 간사한 생각, 거짓 충성으로 은밀히 아첨하는 생각을 가지고 3년간 소식(素食)한 죄로 김취인 등과 함께 처형 후 3일간 효수.[1] |
정인석(鄭仁石) | 국문 후 참형(사형).[1] |
정주신(鄭舟臣) | 정성근의 아들. 아버지 사망 후 슬퍼하다 돌연 사망.[1] |
정씨(鄭氏) | 구타로 사망. |
조지서(趙之瑞) | 국문 도중 사망. 참두 후 제 스스로 높은 체하고 군상(君上)을 능멸한다라는 찌를 달아매어 효시, 능지, 시체 팔도에 보임, 가산 적몰.[1] |
존비(存非) | 참형(사형).[1] |
존이(存伊) | 참형(사형).[1] |
지언(池彦) | 능지처사.[1] |
최수연(崔水淵) | 사형 후 효시.[1] |
최숙근(崔叔謹) | 정성근 등과 함께 처형 후 3일간 효수.[1] |
현내원(玄乃元) | 능지처참.[1] |
홍귀달 | 유배 중 태형, 교형(사형).[1] |
황귀천(黃貴千) | 능지처참.[1] |
- '''유배형'''
이름 | 유배지 및 추가 처벌 내용 |
---|---|
강홍(姜洪)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70대 후 익산군 유배.[190] |
경세창(慶世昌) | 태 60대 후 유배 |
김극핍(金克愊) | 태 40대 후 고산군 유배.[191] |
김내문(金乃文)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70대 후 청안군 유배.[1] |
김세필(金世弼) | 청풍군 유배.[1] |
김양진(金楊震)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예천군 유배.[1] |
노공필(盧公弼) | 이세좌 심방 죄로 국문 후 무장군 유배.[1] |
박광영(朴光榮)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목천군 유배.[1] |
박소영(朴紹榮) | 이세좌 죄를 논하지 않은 죄로 태형 후 진천군 유배.[199] |
박안성(朴安性)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형 후 진잠군 유배.[1] |
박은(朴誾) | 동래군 유배.[1] |
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 | 이천군 유배.[1] |
부수찬 이사균(李思鈞)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보은군 유배.[1] |
서후(徐厚) | 태 40대 후 음성군 유배. |
신봉로(申奉盧) | 진산군 유배.[1] |
유부(柳溥)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은진군 유배.[1] |
유인귀(柳仁貴) | 회덕군 유배.[1] |
유희철(柳希轍) | 태 50대 후 임피군 유배[208] |
이자화(李自華)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아산군 유배.[1] |
안양군(安陽君) 이항(李㤚) | 제천 유배.[1] |
이행(李荇)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충주시 유배.[1] |
정침(鄭沈) | 산음군 유배.[1] |
최숙생(崔淑生) | 제헌왕후 추숭 의논 죄로 태 60대 후 신계군 유배.[1] |
황성창(黃誠昌) | 홍천군 유배.[1] |
홍언국(洪彦國) | 국문 후 유배.[1] |
- '''태형, 국문, 파직 등'''
이름 | 처벌 내용 |
---|---|
감순신(甘順信) | 태 100대 후 전가사변.[1] |
강선(姜善) | 태 100대 후 종.[1] |
내관 강유주(姜有珠) | 태 40대.[188] |
대간 강혼(姜渾) | 태 40대[189] |
내관 김계경(金季敬) | 태 80대.[192] |
내관 김순(金順) | 태 80대.[193] |
김응기(金應箕) | 이세좌 심방 죄로 국문.[195] |
김임(金任) | 이극균과 사귄 죄로 태형.[1] |
내관 김처정(金處汀) | 태 80대.[1] |
내관 김철동(金哲同) | 태 40대.[1] |
내관 김청(金淸) | 태 100대 후 극변에 충군.[196] |
대간 김효간(金効侃) | 태 40대. |
권주(權柱) | 사형 감형, 태 70대, 종.[1] |
내관 만산(萬山) | 태 80대.[1] |
박순무(朴純茂) | 태 100대 후 변방 종.[201] |
내관 박수원(朴修元) | 태 50대.[200] |
내관 박옥(朴玉) | 태 40대.[1] |
변수(邊脩) | 태 70대.[1] |
대간 서후(徐厚) | 태 40대. |
신경(申經) | 태 60대.[1] |
신복의(辛服義) | 태 60대.[1] |
교리 심정(沈貞) | 국문. |
대간 유세침(柳世琛) | 태 40대. |
대간 유숭조(柳崇祖) | 태 40대. |
대간 유희철(柳希轍) | 태 40대. |
윤석보(尹碩輔) | 파직.[205] |
양윤(梁潤) | 이세좌의 사위. 태 60대.[1] |
엄소남(嚴小男) | 태 100대.[207] |
윤여해(尹汝諧) | 이세좌의 사위. 태 60대.[1] |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 | 국문, 태 30대.[1] |
이세걸(李世傑) | 태 80대.[1] |
대간 이세영(李世英) | 태 40대. |
이윤검(李允儉) | 이극균과 사귄 죄로 태 60대.[1] |
이윤종(李胤宗) | 이극균 추천서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로 국문.[1] |
승지 이의손(李懿孫) | 파직.[211] |
이장곤 | 이극균의 추천을 받은 일로 국문. |
이집(李諿) | 파직.[1] |
이창신(李昌臣) | 태 70대.[1] |
내관 전순계(田順戒) | 태 50대[213] |
대간 정사걸(鄭士傑) | 태 40대. |
검률 정흥조(鄭興祖) | 국문[214] |
정현(鄭鉉) | 이세좌의 사위. 태 60대.[1] |
조영손(趙永孫) | 이세좌의 사위. 태 60대.[1] |
조한손(曺漢孫) | 이극균(李克均)의 집에 명함을 들인 이유로 곤장.[215] |
내관 최숙(崔淑) | 태 40대.[1] |
최인(崔潾) | 태 40대 후 유배.[1] |
내관 최침(崔忱) | 태 60대.[216] |
채수(蔡壽) | 태 70대.[1] |
채씨(蔡氏) | 김감(金勘)의 아내, 태 50대.[217] |
비구니 혜명(惠明) | 엄씨(嚴氏)·정씨(鄭氏)의 일에 관계된 귀인 권씨(權氏)의 시체를 불태운 일로 국문.[218] |
- '''부관참시'''
이름 | 추가 처벌 내용 |
---|---|
두대(豆大) | 부관참시.[198] 음력 5월 1일 한명회 등과 함께 효시됨.[1] |
봉보 부인 백씨(白氏) | 부관참시.[1] |
송흠(宋欽) | 부관참시.[1] |
심회(沈澮) | 부관참시.[1] |
이파(李坡) | 부관참시. |
정창손(鄭昌孫) | 부관참시.[1] |
한명회 | 부관참시.[1] |
한치형(韓致亨) | 부관능지, 가산 적몰, 효수.[1] |
홍형(洪泂) | 부관참시.[1] |
- '''기타'''
- 한기(韓紀)의 처 : 백천군으로 유배.[1]
- 한경침(韓景琛)의 처 : 아산군으로 유배.[1]
6. 결과 및 영향
6. 1. 왕권 강화와 훈구 세력 제거
6. 2. 언론 탄압과 국문학 발달 저해
6. 3. 중종반정의 배경
7. 평가
7. 1. 긍정적 평가
7. 2. 부정적 평가
7. 3. 한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의 의미
참조
[1]
저널
조선전기(朝鮮前期) 이세좌(李世佐)의 생애와 갑자사화(甲子士禍) (Research between the Life of Lee-Sehjoa and Kapjasahwa in the early Choson period)
https://kiss.kstudy.[...]
2009-09-01 # 날짜 정보를 YYYY-MM-DD 형식으로 변환. 일 정보가 없어 1일로 가정
[2]
웹인용
안양군과 봉안군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0일 신사 5번째 기사
[3]
웹인용
안양군 이항에게 말을 하사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1일 임오 1번째 기사
[4]
웹인용
이극균·윤필상의 죄를 다시 의논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1일 신사 1번째기사
[5]
웹인용
이극균의 머리를 팔도에 보이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8일 무자 2번째기사
[6]
웹인용
이극균의 서자 이연명을 목베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3일 임인 4번째기사
[7]
웹인용
이세좌의 머리를 매달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일 신묘 2번째기사
[8]
웹인용
한명회의 시체를 저자에 매달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1일 경자 3번째기사
[9]
웹인용
임금을 업신여긴 죄로 윤필상의 뼈를 태워 바람에 날리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3월 24일 기유 2번째기사
[10]
웹인용
두대 등의 뼈를 부수어 바람에 날리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1월 2일 무자 8번째기사
[11]
웹인용
죄인을 처벌할 때 슬퍼하지 못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4일 계축 7번째기사
[12]
웹인용
사헌부에서 유자광·임사홍이 이극균과 친분을 가지고 있음을 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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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6일 병술 1번째기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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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의 관원을 의금부에 가두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2일 계유 4번째기사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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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이 이세좌의 죄를 논하지 않았으므로 옥에 가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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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2일 계유 5번째기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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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세좌를 사면하지 못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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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2일 계유 7번째기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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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고치도록 의정부에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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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3일 갑술 3번째기사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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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을 귀양보내다. 재상이 귀양갈 때는 옥졸로 하여금 압령해 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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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3일 갑술 5번째기사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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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불경죄로 유배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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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3일 갑술 6번째기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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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는 글을 환관에게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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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3일 갑술 8번째기사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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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아뢴 승지를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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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4일 을해 6번째기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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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보가 이세좌의 귀양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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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4일 을해 13번째기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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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간들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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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2번째기사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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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언국을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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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3번째기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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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방문한 자를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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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4번째기사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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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의 일로 의정부 당상과 승지들을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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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7번째기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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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논하지 않은 홍문관과 대간을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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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6일 정축 1번째기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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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가던 홍귀달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6일 정축 3번째기사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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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잡아와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6일 정축 4번째기사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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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간들을 가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8일 기묘 2번째기사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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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의 아들과 사위를 귀양보내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0일 신사 1번째기사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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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군과 봉안군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0일 신사 5번째기사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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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이 폐비 윤씨의 시호를 의논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4일 을유 1번째기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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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를 서인으로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6일 정해 1번째기사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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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의 자녀를 가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6일 정해 2번째기사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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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의 족친을 난신의 예로 연좌시키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6일 정해 3번째기사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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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의 친족을 유배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7일 무자 2번째기사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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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의 자식을 유배보내고 영접하지 못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7일 무자 4번째기사
[38]
웹인용
좌의정 이극균을 이세좌의 일로 국문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8일 기축 1번째기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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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공필·김응기 등을 국문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8일 기축 4번째기사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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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씨와 정씨의 재산을 몰수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8일 기축 6번째기사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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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김순손·이유녕 등의 죄를 논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30일 신묘 1번째기사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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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업신여기는 풍습에 대해 묻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30일 신묘 2번째기사
[43]
용어
사약을 내려 죽게 함
[44]
용어
목 베어 죽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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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사사하고 김순손을 베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30일 신묘 3번째기사
[46]
웹인용
이극균을 인동현에 귀양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일 임진 2번째기사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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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의감 정 김괴가 아뢴 일로 원안군 이수와 집안 사람을 국문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일 임진 3번째기사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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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에 사약내린 일에 관련된 자를 아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일 임진 6번째기사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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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녕·박은 등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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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3일 갑오 4번째기사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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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 도사 안처직이 이세좌가 목매 죽었음을 아뢰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9일 경자 6번째기사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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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한명회·정창손 등 폐비의 일에 관련된 자들을 처벌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8일 기유 6번째기사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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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손·정인지·한명회 등은 아내의 묘 석물도 모두 철거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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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2일 계축 2번째기사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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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의 일에 관련된 자를 처벌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3일 갑인 4번째기사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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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손·한명회 등을 종묘에서 내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4일 을묘 3번째기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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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육조에서 광주·고양 등의 고을을 혁파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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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5일 병진 1번째기사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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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언·이오을·미장수의 시체를 매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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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5일 병진 2번째기사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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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손·한명회 등을 종묘에서 내치는 일을 간하지 않은 대간을 국문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5일 병진 5번째기사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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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왕대비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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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7일 무오 5번째기사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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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성준이 병으로 사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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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4일 갑자 1번째기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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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허침 등이 폐비의 일을 상고하여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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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5일 을축 1번째기사
[61]
웹인용
성준·노공필을 유배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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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5일 을축 2번째기사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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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있는 정성근과 조지서를 잡아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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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9일 기사 4번째기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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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걸·김의장 등을 효수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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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2일 임신 1번째기사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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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좌의정 이극균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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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2일 임신 2번째기사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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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아들과 사위 및 윤필상의 아들을 장 1백에 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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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3일 계유 4번째기사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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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상을 사사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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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3일 계유 5번째기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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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상의 몰수한 재산을 아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3일 계유 6번째기사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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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과 이세좌의 혼인한 집를 아뢰고 관직에 못나가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3일 계유 8번째기사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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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과 이유녕의 일을 쾌히 논하지 않은 일로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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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3일 계유 9번째기사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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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인과 정성근을 처형하고 매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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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5일 을해 1번째기사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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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수·김수동 등이 이극균·이세좌·윤필상의 아들에 대한 처리를 묻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5일 을해 2번째기사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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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근·구성·최숙근 등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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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5일 을해 3번째기사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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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이 정성근·구성·최숙근의 처리를 묻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6일 병자 1번째기사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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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의 일에 언문을 번역한 자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6일 병자 3번째기사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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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서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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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6일 병자 6번째기사
[76]
기타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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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내원·감시손 등을 사형에 청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6일 병자 7번째기사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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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최숙근·정성근의 죄주는 것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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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7일 정축 1번째기사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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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뒤 비가 오니 간사함을 씻어 주는 것이라 풀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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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7일 정축 2번째기사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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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에 관여한 자에 대하여 승정원이 서계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7일 정축 3번째기사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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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허침·박숭질 등의 정성근·조지서의 죄에 대한 논의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7일 정축 4번째기사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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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이 이극균이 목매 죽었음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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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8일 무인 3번째기사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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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족친을 변방으로 옮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9일 기묘 1번째기사
[84]
기타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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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량을 효수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9일 기묘 2번째기사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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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이 내려다보이는 성균관 근처의 인가를 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19일 기묘 5번째기사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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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헌부 지평 이유녕의 졸기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0일 경진 2번째기사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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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흠을 부관 참시하고 권주를 종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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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0일 경진 7번째기사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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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 낭청이 송흠을 부관 참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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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1일 신사 2번째기사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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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집을 드나든 자를 파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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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2일 임오 3번째기사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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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과 사학의 유생이 이유녕의 효수한 곳을 보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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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2일 임오 6번째기사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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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집에 드나든 자에게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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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3일 계미 1번째기사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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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을 정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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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3일 계미 6번째기사
[94]
기타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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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머리를 저자에 매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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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6일 병술 6번째기사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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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근과 아들 정주신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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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7일 정해 4번째기사
[97]
기타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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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과 사귄 유자광·임사홍을 충군시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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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8일 무자 5번째기사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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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기둥에 있던 홍귀달의 시를 깎아내고 다른 사람이 짓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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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8일 무자 7번째기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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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임사홍을 이극균의 일로 충군하지 않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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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9일 기축 12번째기사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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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신·한명회·정창손 등을 효수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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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김제신·한명회·정창손 등을 효수케 하다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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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죄로 노형손의 머리를 매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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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일 경인 3번째기사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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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징과 곽종번을 베고 이철균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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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일 경인 5번째기사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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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징과 유빈 등의 죄를 논하고 처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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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일 경인 10번째기사
[105]
기타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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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을 정승과 의금부 당상으로 하여금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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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3일 임진 3번째기사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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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의 논죄를 재촉하고 한치형·이극균 등의 죄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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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1번째기사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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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온·한형윤 등을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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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2번째기사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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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을 문 밖에서 효수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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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4번째기사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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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형의 머리를 효수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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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7번째기사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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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형이 올린 10조 서를 불태우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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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4일 계사 6번째기사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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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윤을 유배지로 압송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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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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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가 이세좌의 일을 간하지 않은 자를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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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8일 정유 3번째기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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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걸과 이름 자가 같은 이충걸을 충순으로 개명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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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9일 무술 11번째기사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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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검을 이극균과 사귄 죄로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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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0일 기해 5번째기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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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주를 능지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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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2일 신축 6번째기사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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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원과 이수형 형제 등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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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3일 임인 2번째기사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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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과 사귄 김임을 곤장 때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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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3일 임인 5번째기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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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주의 아들을 처벌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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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3일 임인 8번째기사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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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정미수·이계남이 이극균·이세좌·윤필상 등의 족친을 써서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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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5일 갑진 2번째기사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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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 등의 족친으로 관직에 있는 자를 파직시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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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5일 갑진 3번째기사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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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과 대간이 서로 탄핵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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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7일 병오 2번째기사
[123]
웹인용
의금부 이세좌·윤필상 등의 족친 처벌에 대해 묻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7일 병오 5번째기사
[124]
웹인용
내관 최수연·서득관을 엄히 처벌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8일 정미 5번째기사
[125]
웹인용
내관 최수연을 베고 내시들이 보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9일 무신 3번째기사
[126]
용어
봉수
[127]
웹인용
최수연의 효수를 홀로 뒤에 처져서 본 이존명을 처벌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9일 무신 5번째기사
[128]
웹인용
성준·한치형에게 간청한 자를 가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2일 신해 10번째기사
[129]
웹인용
윤필상의 아들을 베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3일 임자 6번째기사
[130]
용어
庇護
[131]
웹인용
죄인들을 비호하는 자를 처벌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3일 임자 8번째기사
[132]
웹인용
윤필상과 이파의 아들을 처벌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3일 임자 2번째기사
[133]
웹인용
죄인의 족친 중 성세순 형제는 유배보내지 못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4일 계축 2번째기사
[134]
웹인용
이덕숭과 정인인의 죄명을 다시 정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25일 갑인 5번째기사
[135]
웹인용
국상 때 놀며 잔치한 사람과 궁중 일을 전하여 말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30일 기미 2번째기사
[136]
웹인용
이승건·홍한을 부관 참시에 처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일 경신 7번째기사
[137]
웹인용
우산군 이종 및 형제를 유배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일 경신 14번째기사
[138]
웹인용
이승건·홍한 등을 효수토록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3일 임술 4번째기사
[139]
웹인용
김천령·민휘 등을 사형에 처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4일 계해 1번째기사
[140]
웹인용
박열·권균 등이 사직을 청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4일 계해 4번째기사
[141]
웹인용
사냥이 온편치 못함을 아뢴 사실에 대해 가부를 묻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4일 계해 6번째기사
[142]
웹인용
권헌과 심담이 옥중에서 죽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5일 갑자 4번째기사
[143]
웹인용
죄인을 죽지 못하게 하고 죽었더라도 죄주도록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6일 을축 3번째기사
[144]
웹인용
소격서의 종 도화와 전향·수근비의 일족을 잡아 오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8일 정묘 6번째기사
[145]
웹인용
잡아온 전향과 수근비의 족친을 국문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8일 정묘 9번째기사
[146]
웹인용
이덕숭을 능지하고 전시시키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8일 정묘 8번째기사
[147]
웹인용
전향과 수근비를 능지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9일 무진 1번째기사
[148]
웹인용
전향에 일에 관련된 자들의 재산을 적몰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1일 경오 2번째기사
[149]
웹인용
무풍정 이총을 효수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1일 경오 5번째기사
[150]
웹인용
이극균이 세운 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4일 계유 7번째기사
[151]
웹인용
전 홍문관 수찬 박은의 졸기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5일 갑술 9번째기사
[152]
웹인용
내시가 결장을 감시함이 부당하다고 아뢴 한형윤·이자화 등을 국문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5일 갑술 8번째기사
[153]
웹인용
전 이조 판서 홍귀달의 졸기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6일 을해 9번째기사
[154]
용어
[155]
웹인용
전향과 수근비의 죄명을 써 전시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19일 무인 1번째기사
[156]
웹인용
이극균·이세좌 등의 집은 못을 만들고 죄명를 써 알리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0일 기묘 6번째기사
[157]
웹인용
유순 등이 조지서·홍식·이세좌 등에 연좌된 자를 아뢰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1일 경진 8번째기사
[158]
웹인용
죄인의 집은 못을 만들게 하고 죄명을 새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7일 병술 8번째기사
[159]
웹인용
전향·수근비의 머리를 궁인들에게 보이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8일 정해 1번째기사
[160]
웹인용
오부 및 서울 근교 민간의 군인을 징발하여 죄인의 집에 못을 만들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8일 정해 3번째기사
[161]
웹인용
전향·수근비의 머리를 외딴 섬에 묻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6월 28일 정해 8번째기사
[162]
웹인용
죄인의 집에 못을 파는 일과 죄명을 새기는 일을 위해 척흉청을 두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7월 1일 기축 8번째기사
[163]
웹인용
신하들에게 활쏘기 시합을 시키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7월 2일 경인 1번째기사
[164]
웹인용
이극균·이세좌 등의 자식도 적몰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7월 6일 갑오 6번째기사
[165]
웹인용
이손 등이 죄명을 새긴 돌의 건립 연월일을 여쭈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4권, 연산 10년 7월 9일 정유 5번째기사
[166]
용어
[167]
웹인용
이극균·윤필상 등이 세운 과조를 모두 의논하여 없애라 전교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5권, 연산 10년 8월 30일 정해 5번째기사
[168]
용어
[169]
웹인용
한치형이 세운 비융사를 혁파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5권, 연산 10년 9월 1일 무자 5번째기사
[170]
웹인용
무오 사화로 살아 남은 자들을 모두 잡아오도록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5권, 연산 10년 9월 26일 계축 2번째기사
[171]
용어
[172]
웹인용
이극균·성준 등에게 가 본 자는 자수시켜 치부케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3일 경신 3번째기사
[173]
웹인용
척흉하는 일을 끝낸 등록을 의금부와 대내에 한 통씩 두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13일 경오 2번째기사
[174]
웹인용
이극균 같은 유가 많은데 아뢰지 않았다 하여, 의논에 참가한 대신을 국문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14일 신미 3번째기사
[175]
웹인용
홍귀달 등과 무오년에 관계된 자들을 연좌시켜 바다 밖에 나누어 두도록 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21일 무인 3번째기사
[176]
웹인용
이극균 등의 족친과 급제하고도 전시에 응하지 않은 홍언필 등을 국문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23일 경진 5번째기사
[177]
웹인용
이극균이 천거하였다 하여 이장곤도 잡아다 고문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24일 신사 4번째기사
[178]
웹인용
이극균이 궁성 가까이 살아 궁성 안의 일을 누설하여 시끄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0월 24일 신사 5번째기사
[179]
웹인용
이극균이 이장곤을 천거한 것은 사사로운 정 때문이라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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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6일 임진 1번째기사
[180]
웹인용
이장곤이 천거된 것에 변명하니, 더 고문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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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6일 임진 4번째기사
[181]
웹인용
이극균이 추천한 이윤종을 잡아다 국문하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17일 계묘 4번째기사
[182]
용어
駙馬; 임금의 사위
[183]
웹인용
익명 투서를 의심하여 이세좌의 손자로 부마가 된 집의 종들을 모두 고문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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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18일 갑진 7번째기사
[184]
용어
妻族; 아내의 가족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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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 등의 처족을 장죄에 처하여 출송하다. 종친들이 원망할까 의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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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21일 정미 2번째기사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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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 등의 친족으로 국문할 사람은 누른 표를 하여 아뢰게 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6권, 연산 10년 11월 30일 병진 6번째기사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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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한치형의 첩의 집을 숙용의 오라비에게 내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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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1월 30일 병진 6번째기사
[188]
웹인용
내관들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9일 경인 6번째기사
[189]
웹인용
최인·경세창 등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8일 기묘 6번째기사
[190]
웹인용
박안성·최숙생 등을 곤장 때리고 유배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7일 무술 2번째기사
[191]
웹인용
황성창·김세필 등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일 임진 9번째기사
[192]
웹인용
내관 김계경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2일 계축 1번째기사
[193]
웹인용
내관 만산·김처정 등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9일 경자 2번째기사
[194]
웹인용
김순손을 베어 단봉문 밖에 두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3일 갑진 4번째기사
[195]
웹인용
노공필과 김응기를 이세좌 심방한 죄로 국문하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7일 무인 4번째기사
[196]
웹인용
국사를 전파하는 것을 금하는 절목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3일 계미 5번째기사
[197]
웹인용
전 주서 권주를 옥에 가두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6일 병술 8번째기사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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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를 심문하고 백씨와 두대를 부관 참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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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3일 갑인 6번째기사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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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의 일을 논하지 않은 박소영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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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일 계사 5번째기사
[200]
웹인용
내관 박수원을 곤장 때리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일 경인 11번째기사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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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누설한 박순무를 종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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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0일 경진 6번째기사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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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량을 유배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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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일 계사 4번째기사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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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수근비의 재산을 적몰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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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5일 병진 7번째기사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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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주을 심문하고 신징을 능지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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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1일 경인 7번째기사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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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보·이집을 파직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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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2일 임오 1번째기사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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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산수와 정인석을 목 베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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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1일 임진 7번째기사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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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소남을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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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5일 병신 2번째기사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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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의 친족을 귀양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5일 병술 6번째기사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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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원·이수의 등을 유배보내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9일 경진 3번째기사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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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를 거제로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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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9일 경진 1번째기사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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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손의 직첩을 가두고 파직시키다
https://sillok.histo[...]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0일 경진 3번째기사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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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팽손이 형장 맞다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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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23일 갑신 6번째기사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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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계를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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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9번째기사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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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좌의 일로 정흥조를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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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3월 15일 병자 8번째기사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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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균의 집을 드나든 조한손을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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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5일 을유 1번째기사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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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 최침을 곤장 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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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5월 3일 임진 2번째기사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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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의 아내 채씨가 아비 채수의 일을 극력 호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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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3권, 연산 10년 윤4월 21일 신사 3번째기사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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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 권씨의 시체를 태운 비구니 등을 국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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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52권, 연산 10년 4월 26일 정사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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