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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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번릉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광화 5년(182년) 경조윤을 지냈으며, 중평 5년(188년) 재물을 주고 태위가 되었으나 한 달 만에 파면되었다. 광희 원년(189년)에는 장양, 단규 등이 하진을 죽이고 소제를 협박하여 사례교위가 되었고, 소녕 원년(189년) 원소가 군사를 이끌고 궁궐에 들이닥치자 하남윤 허상 및 환관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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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번릉은 서생 시절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광화 5년 (182년) 당시 경조윤을 지냈다.

중평 5년(188년) 5월, 영락소부(永樂少府) 번릉은 태위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관직을 재물로 사들인 것이었다. 같은 해 6월에 파면되었다.

광희 원년(189년),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이는 장양·단규 등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소제를 겁박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녕 원년(189년) 8월, 사례교위 원소가 병사를 이끌고 궁궐에 당도하였을 때 번릉은 하남윤 허상 및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2.1. 초기 생애

번릉은 서생 시절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광화 5년 (182년) 당시 경조윤을 지냈다.

중평 5년(188년) 5월, 영락소부(永樂少府) 번릉은 태위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관직을 재물로 사들인 것이었다. 같은 해 6월에 파면되었다.

광희 원년(189년),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이는 장양·단규 등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소제를 겁박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소녕 원년(189년) 8월, 사례교위 원소가 병사를 이끌고 궁궐에 당도하였을 때 번릉은 하남윤 허상 및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2.2. 관직 생활

번릉은 서생 시절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광화 5년(182년) 당시 경조윤을 지냈다.

중평 5년(188년) 5월, 영락소부였던 번릉은 관직을 재물로 사들여 태위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파면되었다.

광희 원년(189년), 장양·단규 등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소제를 겁박하면서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소녕 원년(189년) 8월, 사례교위 원소가 병사를 이끌고 궁궐에 당도하였을 때, 하남윤 허상 및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하였다.

2.3. 최후

중평 5년(188년) 5월, 영락소부였던 번릉은 태위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관직을 재물로 사들인 것이었다. 같은 해 6월에 파면되었다.

광희 원년(189년), 장양·단규 등이 대장군 하진을 죽이고 소제를 겁박하여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소녕 원년(189년) 8월, 사례교위 원소가 병사를 이끌고 궁궐에 당도하였을 때 번릉은 하남윤 허상 및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