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리브리히
1. 개요
베르너 리브리히는 1950년대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한 독일의 축구 선수로,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그는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1951년과 1953년에 독일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1954년 월드컵 결승전에도 출전했다. 1954년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1962년 선수 은퇴 후에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감독을 맡아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다. 1995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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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베르너 리브리히 |
|---|---|
| 출생일 | 1927년 1월 18일 |
| 출생지 |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
| 사망일 | 1995년 3월 20일 |
| 사망지 |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
| 키 | 1.76m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38–1943 |
| 유소년 클럽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
| 클럽 연도 | 1943–1962 |
|---|---|
| 클럽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
| 출장수 (골) | 273 (25) |
| 국가대표팀 연도 | 1951–1956 |
|---|---|
| 국가대표팀 | 서독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16 (0) |
| 감독 연도 | 1965 |
|---|---|
| 감독 클럽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
| 메달 | 남자 축구 |
|---|---|
| 국가 | 서독 |
| 대회 | FIFA 월드컵 |
| 메달 종류 | 1954 스위스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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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란트팔츠주 출신 축구 선수 -
케빈 아크포구마
케빈 아크포구마는 독일과 나이지리아 이중 국적의 축구 선수로, 중앙 수비수로 뛰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TSG 1899 호펜하임 소속이고, 독일 청소년 대표팀과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2013년 프리츠 발터 메달 U-18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
라인란트팔츠주 출신 축구 선수 -
오트마어 발터
오트마어 발터는 1940년대 후반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센터 포워드로 활약했으며, 서독 대표팀에서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고 2004년 독일 연방 공로 훈장을 수훈한 독일의 축구 선수였다.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축구 감독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축구 감독 -
안드레아스 브레메
안드레아스 브레메는 독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90년 월드컵 우승을 포함하여 독일 국가대표팀과 여러 명문 클럽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우승을 거머쥐었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술과 정확한 킥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2024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1927년 출생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
1927년 출생 -
귄터 그라스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비롯한 단치히 삼부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즘의 영향을 다룬 독일의 소설가, 시인, 극작가, 조각가이며, 무장친위대 복무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치 과거 청산과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 선수 경력
리브리히는 선수 시절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활약하며 1951년과 1953년에 독일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서독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결승전을 포함한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3.1. 클럽 경력
리브리히는 1940년대에 1군 무대 신고식을 치른 이래 리그 무대에서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활약했다. 그는 1951년과 1953년에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독일 리그를 2번 우승했다.
1950년, 이탈리아의 밀란이 그에게 이적 제의를 했으나, 고향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거절했다.
1954년 월드컵이 끝난 후, 1954년 12월 1일에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상대했다. 그는 잉글랜드의 중앙 공격수 로니 앨런을 효과적으로 지웠고, 스탠리 매슈스도 잘 막아냈다.
1962년에 고향에서 거의 20년을 활약하고서 축구화를 벗었다. 그러나 1964-65 시즌에 감독으로 복귀했는데, 이때 소속 구단을 강등에서 구제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리브리히는 서독 국가대표팀 경기에 16번 출전했고,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1950년 밀란의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고향에 남기로 결정하면서 거절했다.
3.2.1. 1954년 FIFA 월드컵
리브리히는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결승전을 포함한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WM 시스템의 센터 하프(현재의 센터백)를 맡아 수비에 기여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였다.
조별 리그에서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푸슈카시 페렌츠에게 부상을 입혔는데, 이로 인해 푸슈카시는 결선 토너먼트 2경기에 결장했다. 푸슈카시는 결승전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출전했고, 결국 서독이 3-2로 승리하며 헝가리는 4년 만에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 사건은 서독 우승의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1954년 월드컵 이후, 리브리히는 1954년 12월 1일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중앙 공격수 로니 앨런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스탠리 매슈스도 잘 막아내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4. 감독 경력
리브리히는 1964-65 시즌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감독으로 복귀해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