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라교
1. 개요
벽라교는 일제강점기에 모란봉과 능라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다리이다. 능라도 수원지에서 정제된 물을 평양 시내에 공급하기 위한 대형 수도관 부설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1910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류벽과 능라도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또는 부벽루와 능라도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이 있으며, 일반에서는 수도국 다리 또는 수도교로 불렸다. 1946년 미군 지도와 1949년 사진에도 등장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능라교와 청류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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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없어진 건축물 -
의주읍성
의주읍성은 고구려 때 축조되어 서북 방어 요새로 활용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성곽을 보수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했던 곳이며, 병자호란 때 함락되었다. -
없어진 교량 -
루덴도르프 교
루덴도르프 교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군수품 수송을 위해 건설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되었고, 특히 1945년 미군 점령 과정은 "레마겐의 기적"으로 불린다. -
없어진 교량 -
아소 대교
아소 대교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위치했던 다리였으며, 1971년에 개통되었으나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붕괴되었고, 이후 600m 하류에 신 아소 대교가 건설되어 2021년에 개통되었다. -
대동강의 교량 -
대동강철교
대동강철교는 1905년 경의선 건설 당시 대동강에 놓여 대동강역과 평양역을 연결하고 양각도를 지나는 철교로, 러일 전쟁 물자 수송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잦은 수해로 철교로 대체, 복선화되었고 한국 전쟁 때 파괴 후 복구되어 현재에 이른다. -
대동강의 교량 -
충성의 다리
2. 역사
벽라교는 일제강점기 평양시에 상수도 시설을 확충하면서 건설되었다. 1918년 신문기사에 벽라교(碧羅橋)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이 다리는 미군이 작성한 1946년 지도와 1949년 사진에도 나오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2.1. 건설 배경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모란봉(牡丹峰) 쪽에서 능라도(綾羅島)와 연결하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능라도 수원지에서 정제된 물을 평양시내에 공급하기 위해 대형 수도관을 부설한 다리였다.
다리의 정확한 건설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능라도 수원지에서 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1910년부터이므로 그때 처음 부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 평양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물 공급이 중요해졌고, 이에 따라 능라도에 수원지가 설치되었으며, 평양 시내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도관을 설치하면서 벽라교가 함께 건설되었다.
2.2. 명칭 유래
벽라교(碧羅橋)라는 명칭은 청류벽(淸流壁)과 능라도(綾羅島)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부벽루(浮碧樓)와 능라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수도국(水道局) 다리' 또는 '수도교(水道橋)'로도 불렸다.
2.3. 구조 및 역할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모란봉(牡丹峰) 쪽에서 능라도(綾羅島)와 연결하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능라도 수원지에서 정제된 물을 평양 시내에 공급하기 위해 대형 수도관을 부설한 다리였다. 차량 통행은 불가능했고, 수도국 직원들이 능라도를 출입하던 통로로도 이용되었다. 일반에서는 통칭 수도국(水道局) 다리로 불렸으며, 수도교(水道橋)라고도 했다.
2.4. 해방 이후
벽라교는 일제강점기에 모란봉에서 능라도로 연결되었던 다리로, 능라도 수원지에서 정제된 물을 평양시내에 공급하기 위한 대형 수도관이 부설된 다리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수도국(水道局) 다리 또는 수도교(水道橋)라고도 불렸다.
벽라교는 미군이 작성한 1946년 지도와 1949년 사진에도 등장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벽라교는 서평양에서 능라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현재는 능라도와 대동강 양안을 잇는 능라교(1988년 준공)와 청류교(1995년 준공)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능라도 수원지 정수장은 이전된 것으로 보인다.
3.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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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벽라교와 능라도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모란봉(牡丹峰) 쪽에서 능라도(綾羅島)와 연결하는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는 능라도 수원지에서 정제된 물을 평양시내에 공급하기 위해 대형 수도관을 부설한 다리였다.
다리의 정확한 건설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능라도 수원지에서 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1910년부터이므로 그때 처음 부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8년 신문기사에 벽라교(碧羅橋)라는 명칭이 보인다. 일반에서는 통칭 수도국(水道局) 다리, 수도교(水道橋)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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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능라도 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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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라도 수원지 모형 및 실제 사진을 통해 당시 정수 시설의 규모와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3.3. 모란봉과 대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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