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종
1. 개요
변기종은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연극계에서 활동한 배우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태어나 명동성당 부설 학교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1911년 졸업 후 연극계에 입문했다. 이기세의 극단 유일단에 들어가 신파극을 공연했고, 조선문예단, 신극좌, 조선극우회, 조선연극사 등을 거쳐 청춘좌 단장을 맡았다. 미군정 시기에는 자유극장 위원장으로 좌익 사상에 충실한 작품을 공연했으나 좌익 탄압으로 공연이 중단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영화 《마음의 고향》으로 데뷔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무대예술원 부원장, 한국연극협회 고문, 국립극단 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 이름 | 변기종 |
|---|---|
| 본명 | 변창규 |
| 출생일 | 1895년 7월 29일 |
| 출생지 | 한성부 |
| 사망일 | 1977년 5월 1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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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성우 -
복혜숙
복혜숙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배우 중 한 명으로, 신파극 배우 데뷔 후 영화, 라디오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해방 후에는 대한영화배우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 어용 영화 출연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도 한 배우이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유효하지 않은 id가 지정된 IMDb -
호그와트 레거시
호그와트 레거시는 1890년대 호그와트를 배경으로 고대 마법을 다루는 5학년 학생이 되어 마법을 배우고 전투하며 고블린 반란 등 주요 사건을 겪는 3인칭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
유효하지 않은 id가 지정된 IMDb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2. 생애
변기종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태어나 1902년 명동성당의 전신인 종현성당 부설 학교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911년 학교를 졸업하고 연극계에 입문, 1912년부터 변기종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13년 이기세를 만나 유일단에 입단, 일본 신파극을 수입해 공연했다.
1919년 이기세의 조선문예단에서 연쇄극 《지기》의 순이 부친 역으로 노역 전문 연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여러 극단을 거쳐 1935년 청춘좌 단장을 맡아 공연, 라디오극 출연, 극단 운영을 겸했다.
미군정 시기 조선연극동맹 산하 자유극장 위원장을 맡아 《3·1 운동과 만주영감》, 《태백산맥》 등을 공연했으나, 미군정의 탄압으로 좌파 인맥이 월북하며 공연이 중단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연극, 영화 배우로 활동하며 1949년 《마음의 고향》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1956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무대예술원 부원장, 한국연극협회 고문, 국립극단 단장 등을 역임하고 197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연극 입문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태어났다. 1902년 명동성당의 전신인 종현성당 부설 학교에 입학하여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1년 이 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극계에 뛰어들었다.
1912년경부터 변기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3년 연극 운동의 선구자였던 이기세를 만나 그의 극단 유일단에 입단했다. 이후 이기세와 함께 일본의 신파극을 수입하여 공연하는 활동을 하였다.
2.2. 연극 활동 (일제 강점기)
1919년 이기세의 조선문예단에 합류하여 연쇄극 《지기》에서 순이 부친 역으로 출연하였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으나 노역을 맡아 노역 전문 연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신극좌, 조선극우회, 조선연극사를 거쳐 1935년 청춘좌 단장을 맡았다. 연극 공연과 라디오극 출연, 극단 운영을 겸하였다.
2.3.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
미군정 시기에는 조선연극동맹 산하의 자유극장 위원장에 올랐다. 자유극장은 청춘좌와 성군의 후신 격이었으며, 연극계에 유행한 좌익 사상에 충실한 작품인 《3·1 운동과 만주영감》, 《태백산맥》을 공연하였다. 그러나 점차 미군정의 좌익 탄압이 심화되면서 연극계의 좌파 인맥은 월북하여, 자유극장은 공연을 중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