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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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은 1975년 부산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으로, 7세 김현정 양과 5세 배준일 군이 유괴되어 살해된 사건이다. 두 아이 모두 손발이 묶인 채 교살되었으며, 시신에 낙서가 남겨진 공통점을 보인다. 사건 발생 후 범인이 협박 전화를 걸어 자신의 범행을 주장하고, 과거 살인미수 피해자의 집 전화번호를 언급하는 등 단서를 남겼으나, 결국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김현정 양 피살사건이 발생하고 사흘이 지난 8월 23일 오후 11시에 부산 대교파출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그 전화를 건 남성은 뜻밖에도 자신이 영도구에 소재한 대양공고와 대양중학교 사이에서 김현정 양을 살해했다고 말한 것이다. 처음에 경찰은 그저 장난전화로 생각했는데 이후 20분 뒤에 같은 남성에게서 또 하나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수사 좀 잘해라. 그래서 나를 잡을 수 있겠냐? 7698이다. 7698, 복창해라"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경찰이 7698을 복창하자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2. 사건 발생
2. 1. 김현정 양 피살사건
1975년 8월 20일 저녁 8시, 부산직할시 서구 장림동에 살던 7살 김현정(金賢貞) 양은 핫도그를 사러 집을 나섰다.[3] 집에서 5~10분 거리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핫도그를 사 먹고 돌아오던 길에 실종되었다.[3] 김현정 양의 부모는 딸을 찾아 나섰지만, 가게 주인은 현정이가 핫도그를 사들고 집 쪽으로 곧장 뛰어가더라고 말한 것이 마지막 목격이었다.[3]
다음 날인 8월 21일 새벽 5시 45분, 중구 동광동의 용두산공원에서 관리인 문창홍(文昌弘) 씨가 여자아이의 시신을 발견했다.[3] 시신은 팬티만 입은 채였고,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었다.[3] 범인은 아이의 옷을 찢어 만든 끈으로 손발을 결박했으며, 배에는 검은색 사인펜으로 "범천동 이정숙이가 대신공원에서 죽었다."라는 낙서가 쓰여 있었다.[3]
현장을 조사한 경찰은 초기 보고에서 "걸인으로 보이는 여아가 식중독 내지는 약물중독으로 죽어 있었으며 외상 흔적이 없어서 타살로 보기 어렵다."라고 보고했다.[3]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으며, 여자아이는 전날 실종된 김현정 양으로 밝혀졌다.[3] 김현정 양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경찰은 유괴살인 사건으로 전환하여 수사를 진행했다.[3]
김현정 양은 실종 직후 살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핫도그를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3] 그러나 사건 당일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었고, 주택가에서 범행이 일어났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았다.[3] 수사팀은 면식범의 소행, 원한 관계에 의한 보복 범행, 아동 성추행 전과자, 정신이상자 등을 조사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3]
2. 2. 배준일 군 피살사건
1971년 8월 24일 오후 7시경, 부산 동구 좌천동에 거주하던 5세 배준일 군이 실종되었다. 배 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저녁을 먹고 자는 줄 알았으나, 저녁 8시경 외출 후 9시에 귀가한 배 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배 군의 가족들은 밤새 아이를 찾았고, 마지막 목격자는 배 군 아버지의 직장 동료로, 저녁 7시에 배 군이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을 보고 20원을 쥐여주며 과자를 사 먹고 빨리 들어가라고 말한 것이 마지막이었다.[4]
다음 날인 8월 25일 오전 6시, 서구 충무동의 부산공동어시장 옆 생선상자 적재장에서 상자 짜는 일을 하던 강영숙 씨가 상자들 사이로 튀어나온 작은 손을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손발이 결박된 채 죽어있는 배준일 군의 시신이 있었다. 배 군은 김현정 양과 마찬가지로 교살되었으며, 손발을 묶은 끈은 배 군이 입고 있던 런닝을 찢어 만든 것이었다. 런닝을 걷어 올리자 아이의 배에는 검은 사인펜으로 "후하하 죽였다."라는 낙서가 발견되었다.[4]
살해 수법, 결박 방식, 낙서 등이 김현정 양 사건과 일치하여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경찰에 범인 체포를 위한 특별 지시를 내렸다.[4]
택시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20~30세 정도의 둥근 얼굴에 키는 170cm 정도였으며, 짧은 머리에 두 귀가 드러나 있었고, 미간이 높고 눈과 오른쪽 코 옆에 2개의 검은 점, 오른쪽 입가에 점 1개가 있었다. 베이지색 남방셔츠에 흰색 바탕에 회색 줄무늬 바지, 슬리퍼형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경찰은 이 증언을 토대로 몽타주 10만 장을 배포했다.[5] 부산시경은 필적이 같다는 점을 근거로 김현정 양과 배준일 군 살해범을 동일범으로 보고, 변태성욕자 혹은 정신이상자로 추정하여 현상금 100만 원을 걸고 공개수사했다.[4]
3. 범인의 협박 전화와 추가 단서
이후 사건을 조사하면서 김현정 양 피살사건과 동일한 형태의 살인미수 사건이 1건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은 김현정 양 시신에 적힌 낙서에서 언급된 대신공원이었으며 그 사건 피해자의 이름이 바로 이정숙이었고 그 피해자는 범천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9세였던 이정숙 양은 범인과 4시간 동안 대신공원에서 같이 있었는데, 범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 뒤 자연스럽게 대신공원까지 같이 이동했다고 한다. 그 후 같이 물놀이를 하는데 갑자기 범인이 자신에게 주인님이라 부르라 시켰고 이에 그녀가 범인에게 주인님이라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시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시켰다고 한다. 그러고선 갑자기 이정숙 양을 결박하고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범인은 이정숙 양이 죽은 줄 알고 그대로 떠났지만 다행히도 이정숙 양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등산객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그러나 이정숙 양의 부모가 극도로 불안했던 탓에 병원 측에 딸이 죽었다는 식으로 알리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살인미수였기에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았는데 범인은 자신이 이정숙 양을 살해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자 다음 타깃으로 김현정 양을 살해하고 자신이 이정숙 양을 살해했다고 과시하고자 그런 메시지를 남겼던 것이다. 그리고 범인으로 보이는 자가 전화를 했을 때 외쳤던 숫자 '7698'은 바로 이정숙 양 집의 전화번호 뒷자리였음이 밝혀졌다. 즉, 자신이 이정숙 양을 살해했다고 과시하고자 장난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3. 1. 범인의 전화 내용
8월 23일 오후 11시, 부산 대교파출소에 김현정 양 살해범이라고 밝힌 남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자신이 영도구에 있는 대양공고와 대양중학교 사이에서 김현정 양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장난전화로 여겨졌으나, 20분 뒤 같은 남성이 다시 전화를 걸어 "수사 좀 잘해라. 그래서 나를 잡을 수 있겠냐? 7698이다. 7698, 복창해라"라고 말하며 경찰 수사를 조롱했다. 경찰이 7698을 복창하자 남성은 전화를 끊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김현정 양 피살사건과 동일한 형태의 살인미수 사건이 대신공원에서 발생했으며, 피해자는 범천동에 거주하는 이정숙 양(당시 9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인은 이정숙 양을 살해했다고 믿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이정숙 양은 생존했다. 범인은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기 위해 김현정 양을 살해하고, 시신에 이정숙 양 관련 낙서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화에서 언급된 숫자 '7698'은 이정숙 양 집 전화번호 뒷자리로 확인되었다.
3. 2. 이정숙 양 사건과의 연관성
김현정 양 피살사건 발생 사흘 뒤인 8월 23일 오후 11시, 부산 대교파출소로 걸려온 전화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김현정 양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도구의 대양공고와 대양중학교 사이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으며, 20분 뒤 다시 전화해 "수사 좀 잘해라. 그래서 나를 잡을 수 있겠냐? 7698이다. 7698, 복창해라"라고 말했다. 경찰이 7698을 복창하자 남성은 전화를 끊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김현정 양 사건과 유사한 살인미수 사건이 이전에 발생했음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김현정 양 시신에 적힌 낙서에 언급된 대신공원에서 발생했으며, 피해자는 범천동에 거주하는 이정숙 양이었다. 당시 9세였던 이정숙 양은 범인과 4시간 동안 대신공원에 함께 있었는데, 범인은 이 양에게 자신을 '주인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 뒤 결박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했다. 이정숙 양은 극적으로 생존했지만, 범인은 이 양이 사망했다고 믿고 있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자 범인은 김현정 양을 살해하고, 자신이 이정숙 양을 살해했음을 과시하기 위해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화에서 언급한 '7698'은 이정숙 양 집 전화번호 뒷자리로 밝혀졌다. 즉, 범인은 자신이 이정숙 양을 살해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장난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4. 수사 과정
4. 1. 초동 수사의 문제점
4. 2. 용의자 수사 및 몽타주 배포
4. 3. 유사 사건 수사
김현정 양 피살사건과 배준일 군 피살사건 이후 부산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6][7] 그 중 일부는 범인이 체포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김현정 양 사건 및 배준일 군 사건과는 무관한 인물들로 결론났다.[7]사건 발생 3개월 후인 11월 30일, 영도구 영선동 영선국민학교 화장실에서 8세 이영주 양이 교살된 채 발견되었고, 같은 날 밤 서구 감천동 뒷산에서 13세 이경진 군이 돌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7] 여론은 다시 들끓었고, 이영주 양과 이경진 군을 살해한 범인이 3개월 전 김현정 양과 배준일 군을 살해한 자와 동일인물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7]
12월 1일, 경찰은 산속에 숨어 있던 24세의 부랑자 박홍근을 체포했다. 박홍근은 이영주 양의 외삼촌이었으며, 경찰 조사 결과 이영주 양을 놀러 가자고 꼬드겨 영선국민학교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했고, 같은 날 밤 이경진 군을 꼬드겨 서구 아미동에서 감천동으로 넘어가는 까치고개에서 목 졸라 살해하려다 반항하자 돌로 내리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7][8] 박홍근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8]
이영주 양의 어머니는 딸을 살해한 범인이 자신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숨진 이경진 군의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아들이 비참하게 죽은 것에 대해 오열했다.[7] 3개월 전 딸을 잃었던 김현정 양의 아버지는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동병상련의 심정을 밝혔다.[6]
경찰은 박홍근이 전과 3범의 전과자이며,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된 지 1년도 안 되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민들은 경찰의 범죄 예방 능력에 대해 강력하게 성토했다.[7] 경찰은 두 사건과 김현정 양, 배준일 군 피살사건의 연관성을 수사했지만, 결국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별개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9]
5. 범인 분석 및 미제 사건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었던 오석환(吳碩煥) 박사는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해 범인은 정신이상자가 확실하며 시신에 남긴 글씨와 범행의 치밀성으로 미루어볼 때 고졸 이상의 지적 수준을 지녔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두 사건의 연결성으로 미루어볼 때 제 3의 범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한 신경전문의 황선무(黃善戊) 씨도 시신에 태연하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정도로 대담성을 지닌 것으로 볼 때 역시 범인은 정신이상자이며 첫 번째 피해자인 김현정 양은 예쁜 외모를 한 여자아이였고 또 2번째 피해자인 배준일 군도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라 얼핏보면 여자아이로 착각하기 쉬웠으므로 이같이 예쁜 어린이를 범행 타깃으로 삼은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성도착증과 성격이상자에게서 볼 수 있는 소아성애증과 가학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술했다. 즉, 두 사람 모두 범인은 정신이상자라고 추정한 것이다.[10]
前 경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였던 국회의원 표창원도 자신의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이 사건의 범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20~30대 남성일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던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했다.[1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 사건의 기사를 검색하면 사건 직후에 수많은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고 당시 형사소송법 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만 15년이었으므로 1990년 8월 20일에 김현정 양 피살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같은 해 8월 24일에 배준일 군 피살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5. 1. 전문가 분석
오석환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은 범인이 정신이상자이며, 시신에 남긴 글씨와 범행의 치밀성으로 미루어 고졸 이상의 지적 수준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제3의 범행 가능성을 경고했다. 신경전문의 황선무 씨는 시신에 글씨를 남긴 대담성으로 미루어 범인이 정신이상자이며, 피해자들이 예쁘거나 곱상한 외모를 가진 점을 들어 성도착증, 소아성애증, 가학성을 보인다고 진술했다.[10]전 경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였던 표창원 국회의원은 자신의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범인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20~30대 남성이며, 사건 당시 경찰 수사를 받았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11]
5. 2. 영구 미제 사건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었던 오석환(吳碩煥) 박사는 범인은 정신이상자가 확실하며 시신에 남긴 글씨와 범행의 치밀성으로 미루어볼 때 고졸 이상의 지적 수준을 지녔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두 사건의 연결성으로 미루어볼 때 제3의 범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한 신경전문의 황선무(黃善戊) 씨도 시신에 태연하게 글씨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정도로 대담성을 지닌 것으로 볼 때 역시 범인은 정신이상자이며 첫 번째 피해자인 김현정 양은 예쁜 외모를 한 여자아이였고 또 2번째 피해자인 배준일 군도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라 얼핏 보면 여자아이로 착각하기 쉬웠으므로 이같이 예쁜 어린이를 범행 타깃으로 삼은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성도착증과 성격이상자에게서 볼 수 있는 소아성애증과 가학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술했다.[10]前 경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였던 국회의원 표창원도 자신의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에서 이 사건의 범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20~30대 남성일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던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했다.[11]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 사건의 기사를 검색하면 사건 직후에 수많은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고 당시 형사소송법 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만 15년이었으므로 1990년 8월 20일에 김현정 양 피살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같은 해 8월 24일에 배준일 군 피살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결국 이 사건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참조
[1]
문서
현재의 사하구 장림동
[2]
문서
당시 형사소송법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만 15년으로 규정했다.
[3]
뉴스
끔찍한 유괴殺害를 單純變死로
https://newslibrary.[...]
1975-08-26
[4]
뉴스
몸에 "죽였다" 볼펜 글씨
https://newslibrary.[...]
1975-08-25
[5]
뉴스
犯人 몽타지 10萬 장 살포
https://newslibrary.[...]
1975-08-26
[6]
문서
현재의 금정구 선두구동
[7]
뉴스
두 어린이 連續被殺 유괴殺人... 또 衝擊
https://newslibrary.[...]
1975-12-02
[8]
뉴스
釜山 前科 3犯檢擧 두 어린이 連續被殺
https://newslibrary.[...]
1975-12-01
[9]
뉴스
어린이 誘拐살인 未濟로 해 넘겨
https://newslibrary.[...]
1975-12-22
[10]
뉴스
殘惡한 犯行手法 어린이 非常
https://newslibrary.[...]
1975-08-26
[11]
서적
한국의 연쇄살인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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