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청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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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마산성은 해발 118미터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둘레는 약 6.5킬로미터, 높이는 4~5미터이며, 토석 혼축 방식으로 흙과 돌을 함께 사용했다.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 산성으로, 유사시 시비도성 내 군·관·민의 도피를 위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는 군창 터, 우물터, 절터 등이 남아 있다.

부여 청마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부여 청마산성 (扶餘 靑馬山城)
영어 이름Cheongmasanseong Fortress, Bu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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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청마산성
지정 번호사적 제34호
지정일1963년 1월 21일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1
소유국유, 사유
면적415,808m²
시대삼국시대
좌표:
문화재청 ID13,00340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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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치 및 구조

이 성은 해발 118미터 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백제시대 최대의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6.5킬로미터이며 높이는 4~5미터가량 된다. 성을 쌓는 방법은 흙과 돌을 함께 쓴 토석 혼축식이며, 형태는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이다. 포곡식 산성은 내부에 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넓은 공간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인원이 장기간 머물러 살기에 좋다. 청마산성은 유사시 시비도성 내에 있는 군·관·민이 모두 함께 도피할 목적으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 안에는 군창으로 추정되는 큰 건물터가 3곳이 있으며, 각시우물이라 불리고 있는 우물터와 경룡사라는 절터가 남아 있다.

2.1. 성벽

2.2. 시설

이 성은 해발 118미터 되는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백제시대 최대의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6.5킬로미터이며 높이는 4~5미터가량 된다. 성을 쌓는 방법은 흙과 돌을 함께 쓴 토석 혼축식이며, 형태는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이다. 포곡식 산성은 내부에 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넓은 공간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인원이 장기간 머물러 살기에 좋다. 부여 청마산성은 유사시 시비도성 내에 있는 군·관·민이 모두 함께 도피할 목적으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 안에는 군창으로 추정되는 큰 건물터가 3곳이 있으며, 각시우물이라 불리고 있는 우물터와 경룡사라는 절터가 남아 있다.

3. 역사적 의의

4. 발굴 조사 및 정비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