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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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북옥저(北沃沮)는 기원전 3세기부터 285년까지 존재했던 고대 부족 국가입니다.
위치 및 특징:
- 개마산 동쪽,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남부에 위치했습니다.
- 남옥저에서 약 800리 떨어져 있었으며, 풍습은 남옥저와 비슷했습니다.
- '치구루(置溝婁)'라고도 불렸는데, 고구려 말로 성(城)을 의미합니다.
- 읍루와 접경하고 있었는데, 읍루인들이 배를 타고 노략질을 일삼아 북옥저인들은 여름에는 산 속 바위굴에 숨어 살다가 겨울에 읍락으로 내려와 살았습니다.
역사:
- 초기에는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했으나, 고구려 동명성왕 때부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복속되었습니다.
- 고구려는 태조왕 때 남옥저와 북옥저 전체를 정벌하여, 함흥에서 혼춘에 이르는 동해안 지역을 점유하게 되었습니다.
- 고구려에 복속된 후에도, 백산말갈은 북옥저 문화의 직계로 추정될 정도로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
-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혹은 폴체 문화에 속하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가족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뼈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인 목곽에 안치하는 세골장(洗骨葬) 풍습이 있었습니다.
참고:
- 옥저는 크게 동옥저와 북옥저로 나뉘는데, 동옥저는 함경남도 함흥 일대를 중심으로, 북옥저는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 옥저는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업과 어업이 발달했으며, 고구려에 소금, 어물 등을 공납으로 바쳤습니다.
북옥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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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정보 | |
이름 | 북옥저 (北沃沮) |
별칭 | 치구루 (置溝婁) |
위치 | 남옥저에서 팔백여리 떨어진 곳 |
경계 | 남쪽으로 읍루와 경계를 접함 |
지리 | |
지형 | 바위 구멍 (여름철 은신처) |
문화 | |
풍습 | 남옥저와 유사 |
특이 사항 | 바다에서 얻은 베옷에 대한 전설, 얼굴이 두 개인 사람에 대한 전설, 여인국과 신의 우물에 대한 전설 존재 |
역사 | |
두려움의 대상 | 읍루의 해상 노략질 |
기록 | 위지 동이전에 관구검이 왕기를 파견하여 고구려 왕 '궁'을 쫓아 옥저 동쪽 경계에 이르렀을 때 늙은 노인에게 물어 전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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