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문 보이스
1. 개요
블루 문 보이스는 1954년부터 1968년까지 활동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백 밴드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3년 선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시작했고, 이후 스코티 무어, 빌 블랙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 1954년 드러머 D. J. 폰타나가 합류하면서 밴드는 더욱 탄탄해졌다. 블루 문 보이즈는 선 레코드에서 "That's All Right"와 "Blue Moon of Kentucky"를 발표하며 로커빌리 음악을 시작했고,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갔다.
-
선 레코드 소속 -
빌 블랙
빌 블랙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기 밴드 '블루 문 보이즈'의 베이시스트로 로큰롤 음악에 기여했으며, 자신의 밴드 '빌 블랙 콤보'를 결성하여 히트곡을 내고 비틀즈 미국 투어 오프닝 밴드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뇌종양으로 사망, 사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54년 결성된 음악 그룹 -
포 탑스
포 탑스는 1953년 디트로이트에서 결성되어 모타운 레코드에서 다수의 히트곡을 내며 196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남성 보컬 그룹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
1954년 결성된 음악 그룹 -
아이즐리 브라더스
아이즐리 브라더스는 삼형제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6인조로 활동한 미국의 음악 그룹으로, 가스펠과 두왑으로 시작해 R&B, 소울,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Shout", "Twist and Shout", "It's Your Thing" 등의 히트곡을 냈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 및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 헌액, 그래미 평생 공로상 수상 등 음악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
엘비스 프레슬리 -
그레이스랜드
그레이스랜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거주했던 테네시주 멤피스 소재의 저택으로, 현재는 그의 유품 전시와 묘소가 있는 박물관이자 관광 명소로서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
엘비스 프레슬리 -
라일리 키오
라일리 키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외손녀이자 리사 마리 프레슬리의 딸로, 모델로 데뷔하여 배우,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 등에 출연했고 영화 《워 포니》로 감독 데뷔하여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다.
2. 배경
1953년 7월 18일,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머니 글래디스의 생일 선물로 선 스튜디오에서 잉크 스포츠의 노래 〈My Happiness〉와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을 녹음했다. 당시 스튜디오 소유주 샘 필립스는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비서 마리온 카이스커가 프레슬리의 녹음을 감독하고 데모 음반을 보관했다.
거의 1년 후, 필립스의 요청에 따라 카이스커는 프레슬리에게 연락했고, 그는 1954년 6월 26일 다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 세션에서 샘 필립스는 프레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를 컨트리 음악 밴드 스타라이트 랭글러스의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에게 소개했다. 이후 스코티 무어는 프레슬리에게 더블 베이스 연주자 빌 블랙을 소개하며 밴드 결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3. 선 레코드 시대
1954년 7월 5일, 엘비스 프레슬리, 스코티 무어, 빌 블랙 세 사람은 녹음을 위해 선 스튜디오에 모였다. 처음에는 〈Harbor Lights〉와 〈I Love You Because〉를 녹음했다. 휴식 시간에 아서 크루덥의 〈That's All Right〉를 즉흥적으로 연주했는데, 이를 들은 샘 필립스가 깊은 인상을 받아 정식으로 녹음하도록 했다.
필립스는 이 녹음본을 WHBQ 라디오 방송국의 DJ 듀이 필립스에게 전달했고, 듀이 필립스는 1954년 7월 8일 밤 자신의 라디오 쇼에서 이 곡을 처음으로 방송했다. 다음 날인 7월 9일, 세 사람은 〈That's All Right〉의 싱글 뒷면(B면)에 실릴 곡으로 빌 먼로의 〈Blue Moon of Kentucky〉를 빠른 템포의 로커빌리 스타일로 편곡하여 녹음했다.
이 두 곡이 담긴 싱글 음반은 1954년 7월 19일에 발매되었고, 아칸소, 미시시피,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지역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로커빌리 음악 역사의 중요한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4. 라이브 활동
스코티 무어가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맡아 활동을 이끌었다. 세 멤버는 투어 일정이 없을 때는 각자의 정규직 일을 병행하며 남부 여러 도시를 순회했다. 무어와 블랙은 본 에어 클럽에서 열린 스타라이트 랭글러스 쇼에 프레슬리를 출연시켰으나, 관객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 일로 스타라이트 랭글러스의 다른 멤버들과 갈등이 생기면서, 무어와 블랙은 프레슬리의 밴드 활동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블루 문 보이스는 테네시주 멤피스의 이글스 네스트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할 기회를 얻었다.
샘 필립스의 주선으로 그랜드 올 오프리 무대에 섰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이 실패 이후 필립스는 오프리의 주요 경쟁 프로그램인 루이지애나 헤이라이드 출연을 성사시켰다. 1954년 10월 16일 첫 출연에서 프레슬리는 〈That's All Right〉와 B면 곡인 〈Blue Moon of Kentucky〉를 불렀다. 이 공연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밴드는 헤이라이드의 공식 멤버가 되는 1년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프레슬리는 밥 닐과 새로운 매니저 계약을 맺었다.
1955년 8월 8일, 이전부터 밴드와 간헐적으로 협연했던 D. J. 폰타나가 정식 드럼 연주자로 합류했다. 그는 슈리브포트 공연을 시작으로 이후 모든 투어에 함께했다. 1955년 12월 15일, 행크 스노의 매니저였던 톰 파커 대령이 밥 닐과의 협상 끝에 매니지먼트 계약을 넘겨받아 프레슬리의 공식 매니저가 되었다.
5. RCA 레코드 시대와 그 이후
1956년 1월, 프레슬리는 40에 RCA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1월 10일, RCA 레코드에서 첫 녹음을 진행했으며, 이때 메이 액스턴의 곡인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녹음했다. 블루 문 보이즈는 프레슬리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영화 《러빙 유》 등 프레슬리가 주연한 여러 영화에도 함께 출연했다.
베이시스트 빌 블랙은 1958년에 밴드를 떠났다. 프레슬리가 군 복무를 마치고 1960년에 가진 첫 라이브 공연은 프랭크 시나트라 쇼의 특집 방송 《웰컴 홈 엘비스》였는데, 이때 빌 블랙은 이미 밴드를 떠난 상태였으므로 참여하지 않았다. 빌 블랙은 1965년 10월 21일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블루 문 보이즈 멤버들이 프레슬리와 함께한 마지막 공연은 1968년 컴백 스페셜이었으며, 이때 빌 블랙은 이미 고인이었기에 함께하지 못했다.
2007년, 블루 문 보이즈는 내슈빌에 있는 뮤지션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