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A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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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CA 레코드는 1929년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RCA)가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를 인수하며 설립되었다. RCA는 이후 니퍼/His Master's Voice 상표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1968년 RCA 레코드로 사명이 변경되었으며, 1975년에는 일본 빅터사와 협력하여 일본 레코드 레이블 RVC를 설립했다. 1986년에는 BMG에 매각되어 BMG 뮤직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되었다. RCA 레코드는 팝, 록, 컨트리 음악 등을 다루는 레이블이며, 클래식 음악과 팝/록 음악 아티스트가 소속되어 있다.

RCA 레코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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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소개된 RCA 로고
설립일1900년 1월 9일 (Consolidated Talking Machine Company로 설립)
설립자엘드리지 R. 존슨
에밀 베를리너
국가미국
위치뉴욕 시
웹사이트RCA 레코드 공식 웹사이트
모회사
현재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 (2008년–현재)
이전Consolidated Talking Machine Company (1900–1901)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 (1901–1929)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 (1929–1986)
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 (1986)
베텔스만 뮤직 그룹 (1987–2004)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 (2004–2008)
유통
유통사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국제)
RCA Label Group (영국)
Legacy Recordings (재발매)
장르
장르다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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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01년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RCA 레코드는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RCA)의 약자를 따서 명명되었다. RCA는 BMG에 합병되기 전까지 RCA의 산하에 있었다.

1929년, RCA는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를 인수하여 RCA 빅터 부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RCA는 "그의 목소리" 상표에 대한 신세계 권리를 획득했다. 1931년, RCA 빅터의 영국 자회사인 그래머폰 컴퍼니는 컬럼비아 그래머폰 컴퍼니와 합병하여 EMI를 설립했고, RCA 회장 데이비드 사르노프는 EMI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같은 해 9월, RCA 빅터는 "프로그램 전사" 레코드라고 불리는 최초의 33⅓ rpm 레코드를 출시했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1933년까지 이 형식은 폐기되었다.

대공황 초기, RCA 빅터는 저가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1931년 몽고메리 워드가 독점 판매한 티믈리 튠스 레이블, 1932년 빅터의 하위 레이블로 만들어진 블루버드 레코드, F.W. 울워스 컴퍼니에서 판매한 일렉트라디스크 레이블 등이 있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1933년, RCA 빅터는 블루버드와 일렉트라디스크를 표준 10인치 레이블로 재도입했고, 블루버드 레이블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RCA 빅터는 뉴욕시에 있는 RCA 레코디드 프로그램 서비스 스튜디오에서 RCA 시소러스 레이블로 음악 전기 전사를 제작하여 주요 라디오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했다. 1936년, RCA의 음악 녹음 라이브러리는 NBC의 자체 전사 부서와 통합되었다. 1950년대에는 새미 케이, 프레디 마틴, 로렌스 웰크, 존 세리 시니어 등의 대중 음악이 포함되었다.

1968년 RCA 빅터는 RCA 레코드로 사명을 변경했다. 1986년 모회사 RCA의 실적 악화로 베르텔스만에 매각되어 BMG의 일부가 되었다. 2004년 BMG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하여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2008년 소니가 BMG의 지분을 매수하여 완전 자회사로 한 후, 사명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2011년, 아리스타, 자이브, J의 3개 레이블이 폐쇄되고 소속 아티스트들은 모두 RCA로 전속되었다.

2.1. 설립과 초기 (1901년 ~ 1929년)

1901년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가 설립되었다. 1929년,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RCA)는 당시 세계 최대의 축음기 제조업체인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를 인수하여 RCA 빅터 부서가 되었다. 이 인수에는 유명한 "빅토롤라" 축음기와 레코드가 포함되었으며, RCA는 니퍼/"그의 목소리" 상표에 대한 신세계 권리를 획득했다.

2.2. RCA 빅터 시대 (1929년 ~ 1968년)

1929년, 라디오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RCA)는 당시 세계 최대의 축음기 제조업체인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를 인수하여 RCA의 RCA 빅터 부서가 되었다. 빅터 인수를 통해 RCA는 니퍼/"그의 목소리" 상표에 대한 신세계 권리를 획득했다.

1931년, RCA 빅터는 최초의 33rpm 레코드를 대중에게 판매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대공황 초기에 RCA 빅터는 저가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다. 블루버드 레코드는 1932년 빅터의 하위 레이블로 만들어졌고, 1933년 재도입되어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이 기간 동안 RCA 빅터는 RCA 시소러스 레이블로 음악 전기 전사를 제작했다. 1950년대에는 새미 케이, 프레디 마틴 등 유명 음악가들의 대중 음악이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과 미국 간의 적대 행위로 인해, RCA 빅터와 일본 빅터 회사(Nippon Victor) 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빅터 엔터테인먼트는 오늘날 일본에서 니퍼/His Master's Voice 상표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RCA 빅터는 미국 음악가 연맹의 녹음 금지 조치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거의 모든 노동조합 음악가들은 녹음을 금지당했다. RCA 빅터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잃었다.

1946년, "RCA 빅터"는 레코드 레이블에서 "빅터"를 대체했다. 1949년, RCA 빅터는 7인치 45 rpm 마이크로 홈 바이닐 레코드를 도입했으며, 단순히 "45"로 판매되었다. RCA 빅터는 45를 10인치 및 12인치 78 rpm 레코드의 직접적인 대체품으로 판매했다.

RCA 빅터는 1950년 1월 LP를 발행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1950년에 출시된 최초의 RCA 빅터 LP 중 하나는 자크 오펜바흐파리의 쾌활함이었다.

1950년대에 RCA 빅터는 그루브, 빅 등 세 개의 자회사 레이블을 가지고 있었다. 1953년, RCA 빅터는 새로운 자회사 레이블 "X"를 설립했다.

1953년, RCA 빅터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함께 실험적인 스테레오 세션을 개최했다. 1954년, RCA 빅터는 샤를 뮌슈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녹음하여 최초의 상업적인 스테레오 녹음을 했다. RCA는 이러한 "리빙 스테레오" 녹음 중 많은 부분을 CD로 계속 재발매하고 있다.

1955년, RCA 빅터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녹음 계약을 선 레코드로부터 구매했다. 1956년 동안 레이블에서 1천만 장의 프레슬리 싱글이 판매되었고, 프레슬리는 RCA 빅터의 가장 많이 팔린 아티스트가 되었다.

1957년, EMI/HMV는 RCA 빅터와의 55년간의 관계를 종료했다.

RCA 빅터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여러 개의 말하기 음반을 발매했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컬럼비아 레코드와 함께 미국의 양대 레코드 회사 중 하나였다. 45회전 EP판을 최초로 실용화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내슈빌에서 컨트리 음악 녹음을 활발하게 진행하여 컨트리의 융성에 기여했다. 현지 컨트리 음악을 속칭 "RCA 컨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1950년대에는 엘비스 프레슬리해리 벨라폰테라는 두 거물을 보유하여 록과 칼립소를 석권했다.

2.3. RCA 레코드 시대 (1968년 ~ 현재)

1968년, RCA 빅터는 RCA 레코드로 사명을 변경했다. 1970년대에는 RCA와 일본 빅터, 빅터 음악 산업이 합병하여 RVC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RCA 레이블을 계승했다. 1979년에는 미국 사운드 스트림사의 디지털 녹음기를 사용하여 최초의 디지털 녹음을 실시했다.

1983년, 콤팩트 디스크 소프트 발매를 시작했다. 1986년, 모회사 RCA의 실적 악화로 베르텔스만에 매각되어 BMG의 일부가 되었다. 1987년, BMG Music과 일본 빅터 주식회사의 합병 회사로 BMG 빅터 주식회사를 설립, RVC는 해산되고 각종 자산을 계승했다.

1996년, 일본에서는 JVC 그룹과의 합병 해소 후 BMG의 100% 자회사가 되어 BMG 재팬, BMG 팬하우스, BMG JAPAN으로 계승되었다. 2009년에는 일본 음악 부문과 서양 음악 부문으로 분할되었고, 법인으로서의 BMG JAPAN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합병되었다.

2004년, BMG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하여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2008년, 소니가 BMG의 지분을 매수하여 완전 자회사로 하고, 사명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로 변경했다.

2011년, 아리스타, 자이브, J의 3개 레이블 폐쇄를 발표하고, 소속 아티스트들은 모두 RCA로 전속되었다.

3. 레이블 체계

다음은 RCA 레코드가 과거에 배급했던 레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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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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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스타 레코드
미들랜드 인터내셔널
라우드 레코드
20세기 폭스 레코드
플래닛 레코드
토탈 익스피리언스 레코드
우든 니켈 레코드
밀레니엄 레코드
더블 킥 엔터테인먼트
토터스 인터내셔널 레코드 (디트로이트)

4. 주요 아티스트

클래식 음악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 귄터 반트
* 샤를 뮌슈
* 도쿄 콰르텟
* 토미타 이사오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프리츠 라이너
* 야샤 하이페츠
* 유진 오먼디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팝/록 음악
* 애스트로넛츠
* R. 켈리 (2019년에 계약 해제)
* 안티-플래그 (일본반 발매 당시 표기)
* 벨벳 리볼버
* 워크 더 문
* 에벌리 브라더스
* 엘비스 프레슬리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 케샤
* Circus of Power영어
* 제퍼슨 에어플레인
* 제퍼슨 스타쉽
* 존 덴버
* 실비 발탄
* 스콜피온스
* 테이트 맥레이
* 대릴 홀 & 존 오츠
* 체트 앳킨스
* 딥 퍼플
* 데이비드 보위 (일본반 발매 당시 표기)
* Duane Eddy영어
* 티나셰
* 도트리
* 해리 닐슨
* 해리 벨라폰테
* 페어그라운드 어트랙션
* 미스터 미스터
* 밀레니엄 퍼레이드
* 릭 애스틀리
* 마일리 사이러스
* 라이즈(RIIZE)

5. 한국과의 관계

RCA는 1975년 일본에서 음악을 출판하기 위해 일본 빅터사의 출판 부서인 빅터 뮤지컬 인더스트리즈 Inc.와 협력하여 일본 레코드 레이블 RVC를 설립했다.

6. 비판 및 논란

케니 로저스는 1987년 RCA 레코드를 떠난 후, 레이블이 자신의 경력을 망치려 한다고 비난했다. 로저스는 1982년 당시 밥 서머가 레이블 대표로 있을 때 선급금 20(당시 컨트리 음악계에서 가장 큰 계약)를 받고 RCA와 계약을 맺었다.

2007년 여름, 켈리 클락슨과 당시 소니 BMG의 수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클락슨의 멀티 플래티넘 앨범 브레이크어웨이의 후속작인 마이 디셈버의 방향성을 놓고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클락슨은 "어둡고, 더 강렬한 록 지향적인 곡들로 그녀만의 작곡 능력을 보여주는" 마이 디셈버의 수록곡들을 직접 썼지만, 데이비스는 클락슨에게 이전처럼 "세련되고 라디오 친화적인 곡"을 위해 고용된 히트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할 것을 주장했다. 클락슨은 앨범을 변경하는 것을 거부했고, 2007년 6월에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2010년 11월, 에이브릴 라빈은 자신의 네 번째 앨범인 굿바이 럴러바이의 긴 발매 지연이 RCA와 관련된 "많은 관료적인 BS"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 앨범은 결국 2011년 3월에 발매되었다. 2011년 10월, 라빈은 RCA를 떠나 자매 레이블인 에픽 레코드와 계약했음을 확인했다.

2017년 초, 브룩 캔디는 처음에 계획했던 데뷔 스튜디오 앨범 Daddy Issues의 발매를 앞두고 RCA를 떠났다. 그녀는 떠난 이유로 창의적인 억압을 들며, 레이블이 자신의 사운드와 이미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 했고, 그녀가 공개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지시했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나중에 "주먹질을 해가며 [RCA]에서 벗어나려고 싸웠다"고 주장했고, 소니가 그녀가 발매하지 못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폐기된 앨범의 녹음에 대한 소유권을 가져가, 음악적으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RCA 레코드는 R. 켈리의 성적 비위 의혹을 무시했다. 여기에는 폭력적인 컬트를 운영하며 십 대들을 성적 행위를 대가로 인질로 삼아 감금한 혐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켈리는 Mute R. Kelly 캠페인의 압박이 거세지기 전인 2018년까지 RCA 레코드를 통해 계속해서 음악을 발매했다. 2019년 1월, Lifetime의 다큐멘터리 Surviving R. Kelly 방영 이후, RCA 레코드는 그의 계약을 해지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스튜디오 마스터 녹음은 RCA 빅터의 캠던 창고가 철거되면서 파괴된 것으로 여겨졌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스튜디오 마스터 녹음은 RCA 빅터의 캠던 창고가 철거되면서 파괴된 것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초, RCA 빅터는 캠던 창고를 철거했다. 이 창고에는 1902년부터의 빅터 카탈로그와 금고 마스터(대부분 테이프 이전의 왁스 및 금속 디스크), 테스트 프레싱, 래커 디스크, 매트릭스 대장, 리허설 녹음 등 4개 층 분량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회사는 엔리코 카루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조지 거슈윈, 글렌 밀러, 팻스 월러, 지미 로저스와 같은 더 중요한 마스터들을 보존했지만(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마스터가 저장되지 않았는지는 미스터리), 다른 얼마나 많은 자료가 보존되었거나 손실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철거가 시작되기 며칠 전, 미국과 유럽의 일부 수집가들은 창고에 들어가 개인 소장용으로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구출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 직후, 레코드 수집가들과 RCA 빅터 관계자들은 인근 다리에서 창고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는 것을 지켜봤는데, 건물에는 많은 스튜디오 마스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잔해는 불도저로 델라웨어 강으로 밀어 넣었고, 그 위에 부두가 건설되었다. 1973년, 라흐마니노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RCA는 그의 완전한 녹음을 LP로 재발매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RCA 레드 씰의 이사였던 R. 피터 문베스에 따르면, RCA는 RCA 아카이브가 불완전했기 때문에 수집가로부터 특정 레코드의 사본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고 타임 잡지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