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투르 다마스
1. 개요
비투르 다마스는 포르투갈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두 번의 프리메이라리가 우승과 세 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라싱 산탄데르에서 스페인 무대를 경험하고, 포르투갈로 돌아와 비토리아, 포르티모넨스, 그리고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다마스는 29번의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으며, UEFA 유로 1984와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은퇴 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골키퍼 코치와 감독 대행을 역임했으며, 55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 전체 이름 | 비투르 마누엘 아폰수 다마스 드 올리베이라 |
|---|---|
| 출생일 | 1947년 10월 8일 |
| 출생지 | 리스본, 포르투갈 |
| 사망일 | 2003년 9월 13일 |
| 사망지 | 리스본, 포르투갈 |
| 키 | 1.80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연도: 1961–1966 클럽: 스포르팅 CP |
|---|---|
| 프로 클럽 | 연도: 1966–1976 클럽: 스포르팅 CP 출장수 (골): 229 (0) 연도: 1976–1980 클럽: 라싱 산탄데르 출장수 (골): 131 (0) 연도: 1980–1982 클럽: 비토리아 기마랑이스 출장수 (골): 33 (0) 연도: 1982–1984 클럽: 포르티모넨스 출장수 (골): 51 (0) 연도: 1984–1989 클럽: 스포르팅 CP 출장수 (골): 103 (0) |
| 총 출장수 (골) | 547 (0) |
| 국가대표팀 연도 | 1969–1986 |
|---|---|
| 국가대표팀 | 포르투갈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29 (0) |
| 감독 연도 | 1989 1989–1990 1989 1991–1992 1999–2000 2000–2001 |
|---|---|
| 감독 클럽 | 스포르팅 CP (임시) 스포르팅 CP (수석 코치) 스포르팅 CP (임시) 아틀레티쿠 로리냐넨스 스포르팅 CP B |
| 메달 정보 | 종목: 남자 축구 국가: 포르투갈 대회: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종류: 1984 프랑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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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출생 -
나빈 람굴람
나빈 람굴람은 모리셔스의 정치인으로, 1995년, 2005년, 2010년, 2024년에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동당 당수가 되었고, 다양한 논란에 연루되기도 했다. -
1947년 출생 -
지우마 호세프
지우마 호세프는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학생 운동과 무장 투쟁에 참여한 후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탄핵되었고, 현재 신개발은행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
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세군다 디비시온의 축구 선수 -
리카르도 알로스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인 리카르도 알로스는 세군다 디비시온 득점왕과 라리가 공동 득점왕을 차지하며 발렌시아 CF 등 여러 클럽에서 활동했다. -
스포르팅 CP의 축구 선수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스포르팅 CP의 축구 선수 -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 '황금 세대'의 일원인 루이스 피구는 스포르팅 CP,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에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세리에 A 등 주요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0년 발롱도르,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리스본 출신인 다마스는 19세에 고향 연고의 스포르팅 리스본 소속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후보 선수로 2년을 보낸 후 주전으로 도약, 1973-74 시즌 2관왕을 포함하여 두 번의 프리메이라리가 우승과 세 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달성했다.
1976년 여름, 다마스는 스페인 무대로 진출해 라싱 산탄데르에 입단했다. 그는 칸타브리아 연고 구단의 주전 선수였고, 4년 중 마지막 시즌을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보냈다.
거의 33세가 된 다마스는 포르투갈 무대로 복귀해 비토리아와 포르티모넨스에서 2년씩 보냈다. 이후 스포르팅에 복귀하여 5시즌 동안 활약하였으며, 1988-89 시즌에 우루과이의 로돌포 로드리게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41세에 은퇴한 다마스는 스포르팅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사자 군단"(Leões)의 감독대행을 맡아 3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2.1. 스포르팅 리스본에서의 초기 경력
리스본 출신인 다마스는 19세에 고향 연고의 스포르팅 리스본 소속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후보 선수로 2년을 보낸 후 주전으로 도약, 1973-74 시즌 2관왕을 포함하여 두 번의 프리메이라리가 우승과 세 번의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달성했다.
2.2. 스페인 무대 진출
리스본 출신인 다마스는 1976년 여름에 스페인 무대로 진출해 라싱 산탄데르에 입단했다. 그는 칸타브리아 연고 구단의 주전 선수였고, 4년 중 마지막 시즌을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보냈다.
2.3. 포르투갈 복귀 및 선수 생활 마무리
거의 33세가 된 다마스는 포르투갈 무대로 복귀해 비토리아와 포르티모넨스에서 2년씩 보냈다. 이후 스포르팅에 복귀하여 5시즌 동안 활약하였으며, 1988-89 시즌에 우루과이의 로돌포 로드리게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2.4. 은퇴 이후
비투르 다마스는 41세에 은퇴한 후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사자 군단"(Leões)의 감독대행을 맡아 3승 1무 2패를 기록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다마스는 1969년 4월 6일부터 1986년 7월 11일까지 29번의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UEFA 유로 1984와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벤피카의 마누엘 벤투의 후보 골키퍼로 대회에 참가했다. 1986년 월드컵에서 벤투는 훈련 도중 종아리뼈가 굴절되는 중상을 당했고, 다마스는 조별 리그 폴란드전(0-1 패)과 모로코전(1-3 패)에 출전했다.
4. 사망
비투르 다마스는 55세의 나이로 리스본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5. 수상
비투르 다마스는 선수 시절 스포르팅 CP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프리메이라리가에서 1969-70, 1973-74 시즌에 우승했고, 타사 드 포르투갈에서는 1970-71, 1972-73, 1973-74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87년에는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