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광 (삼국지)
1. 개요
사광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인물로, 사촌 사휘 등이 손권에게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여대의 부탁으로 사휘 등을 설득하여 항복하게 했지만, 사휘 등은 결국 처형당했다. 사광은 여대의 탄원과 사휘 설득의 공로로 처형은 면했지만 관직을 잃고 평민으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행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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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오 사씨 -
사일
사일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초 교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정궁을 보좌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합포 태수를 역임했으나, 손권에게 귀순 후 사휘의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며 격변기의 사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
창오 사씨 -
사휘
사휘는 오나라 손권 치하에서 교주를 다스리던 사섭의 아들로, 아버지 사섭 사후 손권의 조치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여대에게 항복한 후 형제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
동오 사람 -
시삭
시삭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위사로, 손침의 모반을 고발하고 제거 계획에 참여했으며, 손침 제거 후 그의 일족 처형에 협력했고 그의 아들 시참은 진나라의 도교 도사였다. -
동오 사람 -
손하
손하는 오나라 장수로, 유씨에서 손책의 총애로 손씨 성을 받았고 손견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손책 사후 손권을 섬겨 이술 토벌 등에 공헌했으나 손익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다 규람과 대운에게 살해당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사광은 사촌 사휘(士徽) 등이 손권(孫權)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담하지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여대(呂岱)의 부탁으로 사휘 등을 설득하여 항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사휘 등은 모두 처형당했다. 사광은 여대의 탄원과 사휘 등을 항복시킨 공적으로 처형되지 않았고, 관직이 박탈되어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2.1. 반란 가담 거부와 사촌 설득
사촌 사휘(士徽) 등이 손권(孫權)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광은 가담하지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여대(呂岱)의 부탁으로 사휘 등을 설득하여 항복하도록 하였다. 다음날 사휘 등은 모두 처형당하였다. 사광 자신은 여대의 탄원과 사휘 등을 항복하도록 설득한 공적으로 처형되지는 않았고, 관직이 박탈되어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2.2. 사휘 등의 처형과 사광의 강등
사광은 사촌 사휘 등이 손권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가담하지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었던 여대의 부탁으로 이들을 설득하여 항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사휘 등은 모두 처형당했다. 사광 자신은 여대의 탄원과 사휘 등을 항복시킨 공적으로 처형되지 않았고, 관직이 박탈되어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2.3. 그 후의 행적
사촌 사휘 등이 오의 손권에게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의 교주자사인 여대와 사이가 좋았던 사광은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 사광은 여대에게 사촌들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들을 설득하러 갔다. 그리고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건 하에 사휘 등을 항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손권은 사휘 등을 용서할 뜻이 없었고, 여대의 속임수에 의해 사휘 형제는 모두 몰살당했다. 사광은 여대의 사면 탄원과 사휘 등을 항복시킨 공적으로 아버지와 함께 사형을 면했지만, 관직을 박탈당하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사광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으므로, 아버지가 처형당할 때 함께 죽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