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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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하는 《삼국지》에 기록된 오나라의 인물로, 본래 유씨였으나 손책에게 손씨 성을 하사받았다. 손견을 따라 종군하며 심복으로 활약했고, 손책과 손권을 섬기며 위구중랑장, 여강태수, 노강태수를 역임했다. 손익이 살해된 사건에 연루되어 살해당했으며, 아들 손환이 그의 뒤를 이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환의 아버지로 언급될 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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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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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손하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종실전에 주로 남아 있다.
손하는 본래 유(俞)씨였으나, 손책의 총애를 받아 손씨 성을 하사받고 손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손견의 거병에 젊은 나이로 종군하여 복심으로 중용되었고, 각지를 전전하며 참전한 전투에서는 항상 선봉을 맡았다. 손견 사후에는 손분이 군벌을 계승했고, 휘하의 여러 장수들은 일시적으로 원술 군에 흡수되었지만, 여범과 함께 손책을 따라 독립하기까지의 불우한 시대를 계속 지탱했다.
후에 위장군이 되고 경성 땅에 둔쳤다. 건안 9년(204년), 단양태수 손익(孫翊)이 측근 변홍(邊鴻)에게 살해되자, 분노하여 손익 아래의 관리 규람(嬀覽)과 대운(戴員)을 찾아가 직무에 온전하지 못해 손익이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고 꾸짖었다. 이에 규람과 대운은 손하를 죽였다.[1] 아들 손환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의 군은 조카 손소가 이어받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환이 등장할 때 아버지로서 이름과 약력이 나올 뿐이며, 이야기 속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2. 1. 손견, 손책을 섬기다
본래 성이 유(俞)였으나, 손책(孫策)의 사랑을 받아 손씨를 하사받고, 손씨의 적에 이름이 올랐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오서》에 따르면, 본래 손견(孫堅)의 족자로 유씨에게 양자로 들어갔다가 손씨로 돌아온 것이라 한다. 바탕이 충직하며,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민첩하였다. 어려서부터 손견이 정벌하면 좇아 앞장서, 후에는 측근의 병사를 거느리고 심복이 되었다. 손책을 따라 오회 지방을 평정하였고, 손권(孫權)이 이술을 정토하자 이를 좇아 이술을 깨부수고 위구중랑장에 임명되었으며 여강태수를 겸임했다.[1]여범(呂範)전에 따르면, 손견 사후 손분(孫賁)이 원술(袁術)에게 의탁한 이래 손씨 사람들 대부분이 일시적으로 원술 밑에 들어갔지만, 오직 여범과 손하 두 사람만은 시종 손책을 섬겼다.[1]
손견이 거병할때 젊은 나이로 종군하여 복심으로 중용되어 각지를 전전하며, 참전한 전투에서는 항상 선봉을 맡았다. 손견 사후에는 손분이 군벌을 계승했고, 휘하의 여러 장수들은 일시적으로 원술 군에 흡수되었지만, 여범과 함께 손책을 따라 독립하기까지의 불우한 시대를 계속 지탱했다. 손책의 독립 후에는 오군과 회계군으로의 진격에 종군하여 공적을 세웠으며, 오정 현령이 되었다(「오찬전」).[1]
손권 시대에는 이술 토벌의 공적으로 위구중랑장까지 출세하여, 노강군태수를 맡았다.[1]
2. 2. 손권을 보좌하다
손하는 본래 유(俞)씨였으나, 손책(孫策)의 총애를 받아 손씨 성을 하사받고 손씨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오서》에 따르면, 본래 손견(孫堅)의 족자로 유씨에게 양자로 들어갔다가 손씨로 돌아온 것이라 한다. 그는 충직한 성품을 지녔으며, 말은 어눌했으나 행동은 민첩하였다. 어려서부터 손견의 정벌에 종군하여 앞장섰으며, 후에 측근 병사를 거느리고 심복이 되었다. 손책을 따라 오회 지방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손권(孫權)이 이술을 정벌할 때도 참전하여 이술을 격파하고 위구중랑장에 임명되었으며, 여강태수를 겸임했다.[1]여범(呂範)전에 따르면, 손견 사후 손분(孫賁)이 원술(袁術)에게 의탁하면서 손씨 일족 대부분이 일시적으로 원술 휘하에 들어갔지만, 여범과 손하 두 사람만은 손책을 끝까지 섬겼다고 한다.[1]
이후 위장군에 임명되어 경성에 주둔하였다. 건안 9년(204년), 단양태수 손익(孫翊)이 측근 변홍(邊鴻)에게 살해당하자, 분노하여 손익 휘하의 관리 규람(嬀覽)과 대운(戴員)을 찾아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손익이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고 꾸짖었다. 이에 규람과 대운은 손하를 살해하였다.[1]
손권 시대에 이술 토벌에 공을 세워 위구중랑장까지 진급하고, 노강 태수를 겸임하였다. 그러나 손익이 규람과 대운에게 암살당했을 때 연루되어 살해당했다. 아들 손환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의 군대는 조카 손소가 이어받았다.[1]
2. 3. 죽음
건안 9년(204년), 단양태수 손익(孫翊)이 측근 변홍(邊鴻)에게 살해되자, 손하는 분노하여 손익 아래의 관리 규람(嬀覽)과 대운(戴員)을 찾아가 직무에 온전하지 못해 손익이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고 꾸짖었다. 규람과 대운은 서로 의논하여 "백해(손하)는 손익과 사이가 먼데도 이렇게 분노하는데, 만일 토로(손권)가 오면, 우리의 식솔들과 무리들은 남아나질 않겠다."라고 하고 손하를 죽였다. 손익이 규람·대원에게 암살당했을 때, 휩쓸려 살해당한 것이다. 아들 손환은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의 군은 조카 손소가 이어받았다.3. 친족 관계
4. 기타
손하의 원래 성은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유니코드 U+4FDE)이다. 일본어 번역본으로 가장 널리 보급된 번역서인 『정사 삼국지 7권 오서 Ⅱ』(고미나미 이치로 역, 치쿠마 학예 문고, ISBN 4-480-08088-0, 최소 7쇄 이전)에서는 "愈"로 표기되었다. 이 때문에 해당 번역본을 주요 자료로 사용한 "정사 준거"라고 칭하는 창작 삼국지 작품에서 종종 '''유하'''로 표기되고 있다.
같은 책 육항전에 기재된 영도독 찬은 유찬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글자체가 다를 뿐이다(와 愈처럼 글자가 다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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