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학당
1. 개요
사부학당은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교육 기관으로, 특히 북부학당의 설치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존재한다. 통설에 따르면 북부학당은 태종 때부터 설치 시도가 있었으나, 세종 연간인 1445~1446년에 폐지되어 4부 학당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소세양, 임권 등의 기록을 통해 1500년 전후까지 북부학당이 존속했다는 이설도 제기된다. 1661년 현종 2년에 북부학당 재설치 시도가 있었으나 흉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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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교육 -
서당
서당은 조선시대 사설 초등 교육기관으로, 아동들에게 한문과 유교 경전을 가르쳤으며 훈장이 학생들을 지도했고, 다양한 설립 주체와 교육 내용, 개인별 맞춤 교육 방식을 특징으로 하며,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의 보루였으나 근대 교육 제도 도입 후 쇠퇴하여 현재는 일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조선의 교육 -
경연
경연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서를 강론하며 국정을 논하던 제도로, 중국에서 유래하여 고려에 도입된 후 조선 시대에 교육, 학술,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며 발전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성리학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성리학 -
김집 (1574년)
사계 김장생의 아들이자 조선 중기 문신이자 예학자인 김집은 율곡 이이, 성혼의 성리학과 송익필의 예학을 계승하고 인조반정 공신을 비판하는 등 강직한 성품을 보였으며, 『신독재문집』 등의 저서를 남기고 많은 제자를 배출하여 조선 후기 예학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쳐 문묘에 배향되고 동방 18현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2. 북부학당 설치와 폐지에 대한 논란
조선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北部學堂)을 설치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실제로 설치되었는지와 폐지 시점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통설에 따르면 세종 때 폐지되었다고 하나, 임권과 소세양의 기록에는 조선 중기까지 존속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있다.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설치하려 했으나 흉년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2.1. 통설: 세종 대 폐지
세종 때인 1445~6년(세종 27~28년)경에 북부학당(北部學堂)이 폐지되어 4부 학당만이 존속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보통 이를 4학(四學)이라고도 한다.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을 설치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끝내 설치되지 못하였다.
2.2. 이설: 조선 중기까지 존속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北部學堂)은 여러 차례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설치를 보지 못하고, 1445~1446년(세종 27~28년)경에 폐지되어 4부 학당만이 존속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보통 이를 4학(四學)이라고도 한다.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북부학당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완성하지 못하였다. 임권의 묘갈명과 소세양의 기록에 따르면 1500년 전후 조선 중기에도 북부학당이 존속했다는 주장이 있다.
2.2.1. 임권, 소세양 등의 기록
소세양은 소년 시절 북부학당에서 임권과 임추 형제를 만나 교류하다가 오랜 친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임권의 묘갈명에 따르면 임권의 생애 초반(1500년 전후)에도 북부학당이 존속했다고 한다.
3. 1661년(현종 2년) 북부학당 재설치 시도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북부학당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