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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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부학당은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교육 기관으로, 특히 북부학당의 설치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존재한다. 통설에 따르면 북부학당은 태종 때부터 설치 시도가 있었으나, 세종 연간인 1445~1446년에 폐지되어 4부 학당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소세양, 임권 등의 기록을 통해 1500년 전후까지 북부학당이 존속했다는 이설도 제기된다. 1661년 현종 2년에 북부학당 재설치 시도가 있었으나 흉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사부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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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부학당 설치와 폐지에 대한 논란

조선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北部學堂)을 설치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실제로 설치되었는지와 폐지 시점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통설에 따르면 세종 때 폐지되었다고 하나, 임권과 소세양의 기록에는 조선 중기까지 존속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있다.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설치하려 했으나 흉년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2.1. 통설: 세종 대 폐지

세종 때인 1445~6년(세종 27~28년)경에 북부학당(北部學堂)이 폐지되어 4부 학당만이 존속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보통 이를 4학(四學)이라고도 한다.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을 설치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끝내 설치되지 못하였다.

2.2. 이설: 조선 중기까지 존속

태종 때부터 북부학당(北部學堂)은 여러 차례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설치를 보지 못하고, 1445~1446년(세종 27~28년)경에 폐지되어 4부 학당만이 존속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보통 이를 4학(四學)이라고도 한다.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북부학당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완성하지 못하였다. 임권의 묘갈명과 소세양의 기록에 따르면 1500년 전후 조선 중기에도 북부학당이 존속했다는 주장이 있다.

2.2.1. 임권, 소세양 등의 기록

소세양은 소년 시절 북부학당에서 임권임추 형제를 만나 교류하다가 오랜 친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임권의 묘갈명에 따르면 임권의 생애 초반(1500년 전후)에도 북부학당이 존속했다고 한다.

3. 1661년(현종 2년) 북부학당 재설치 시도

1661년(현종 2년)에 다시 북부학당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