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노 바리나가
1. 개요
사비노 바리나가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2회, 코파 에바 두아르테 1회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내전 중 잉글랜드로 피난하여 사우샘프턴 FC 2군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레알 마드리드,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베티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CA 오사수나, CD 말라가, 레알 베티스 등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나이지리아와 모로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88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Sabino Barinaga Alberdi |
|---|---|
| 출생일 | 1922년 8월 15일 |
| 출생지 | 두랑고, 스페인 |
| 사망일 | 1988년 3월 19일 |
| 사망지 | 마드리드, 스페인 |
| 신장 | 1.80m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36–1938 |
|---|---|
| 유소년 클럽 | 사우샘프턴 |
| 프로 클럽 연도 | 1938–1939 |
| 프로 클럽 | 사우샘프턴 |
| 출장 (골) | 0 (0) |
| 프로 클럽 연도 | 1939–1950 |
| 프로 클럽 | 레알 마드리드 |
| 출장 (골) | 149 (70) |
| 프로 클럽 연도 | 1941–1943 |
| 프로 클럽 | → 바야돌리드 (임대) |
| 출장 (골) | 13 (5) |
| 프로 클럽 연도 | 1950–1954 |
| 프로 클럽 | 레알 소시에다드 |
| 출장 (골) | 56 (22) |
| 프로 클럽 연도 | 1954–1955 |
| 프로 클럽 | 베티스 |
| 출장 (골) | 21 (6) |
| 총 출장 (골) | 239 (103) |
| 국가대표팀 | 해당 없음 |
|---|
| 감독 연도 | 1955 |
|---|---|
| 감독 클럽 | 베티스 |
| 감독 연도 | 1957–1959 |
| 감독 클럽 | 오사수나 |
| 감독 연도 | 1959–1960 |
| 감독 클럽 | 베티스 |
| 감독 연도 | 1960–1961 |
| 감독 클럽 | 오비에도 |
| 감독 연도 | 1961–1963 |
| 감독 클럽 | 말라가 |
| 감독 연도 | 1963–1964 |
| 감독 클럽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 감독 연도 | 1965–1966 |
| 감독 클럽 | 발렌시아 |
| 감독 연도 | 1966 |
| 감독 클럽 | 세비야 |
| 감독 연도 | 1968 |
| 감독 클럽 | 베티스 |
| 감독 연도 | 1968 |
| 감독 클럽 | 아메리카 |
| 감독 연도 | 1968–1969 |
| 감독 클럽 | 나이지리아 |
| 감독 연도 | 1969–1970 |
| 감독 클럽 | 마요르카 |
| 감독 연도 | 1970–1971 |
| 감독 클럽 | ASFAR |
| 감독 연도 | 1971–1972 |
| 감독 클럽 | 모로코 |
| 감독 연도 | 1973–1974 |
| 감독 클럽 | ASFAR |
| 감독 연도 | 1973–1974 |
| 감독 클럽 | 오비에도 |
| 감독 연도 | 1974–1975 |
| 감독 클럽 | 카디스 |
| 감독 연도 | 1978 |
| 감독 클럽 | 오비에도 |
| 감독 연도 | 1980–1982 |
| 감독 클럽 | ASFAR |
-
모로코에 거주한 스페인인 -
후안 카를로스 가리도
후안 카를로스 가리도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CD 온다, 비야레알 CF B팀을 거쳐 비야레알 CF 1군 감독으로 UEFA 유로파 리그 4강, 리그 4위의 성적을 냈으며, 이후 여러 클럽을 거쳐 2024년 6월 페르세폴리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스페인의 난민 -
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
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는 스페인 내전으로 잉글랜드로 피난 후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하다 84세에 사망했다. -
FAR 라바트의 축구 감독 -
발터르 메이위브스
발터르 메이위브스는 벨기에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벨기에 국가대표팀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0과 1982년 월드컵에 참가했고, 감독으로서 여러 클럽을 지휘하며 컵 대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바리나가는 스페인 내전을 피해 잉글랜드로 건너가 사우샘프턴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후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대신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했고, 레알 바야돌리드 임대 시절을 거쳐 레알 마드리드에서 9년간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우승 등을 경험했다. 이후 레알 소시에다드를 거쳐 레알 베티스에서 은퇴했다.
2.1. 유년 시절과 잉글랜드 생활
바리나가는 비스카이아 도 두랑고 출신으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청소년기에 세 남매 중 둘과 함께 잉글랜드로 건너갔다. 1937년에 그와 함께 잉글랜드로 피난 간 사람들 중에는 에밀리오 알데코아, 호세 가예고, 라이문도 레사마 등 훗날 축구계에 입문한 이들도 있었다. 그는 인근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사우샘프턴의 눈에 띄었고, 1년 동안 구단의 2군에서 활약하며 62골을 넣었다.
2.2. 레알 마드리드 시절
바리나가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잉글랜드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축구를 시작해 사우샘프턴의 2군에서 활약하며 62골을 기록했다.
전쟁이 끝나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바리나가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제의를 거절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1940년 4월 28일,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라 리가 원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세군다 디비시온의 바야돌리드로 임대되어 48경기에서 38골을 기록했다. 1947년 12월 14일에는 오스 벨레넨스스를 상대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1호골을 득점했다.
바리나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9년 동안 활약하며 3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특히 1946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상대로 득점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1943년 6월 13일,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준결승전에서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3분 만에 4골을 기록하며 11-1 대승을 이끌었다.
1950년, 바리나가는 자유 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다.
2.3. 레알 소시에다드와 레알 베티스
바리나가는 1950년에 자유 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으며, 마지막 해에는 주로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후 고향 바스크 연고의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3년 동안 1부 리그에서 더 활약했다. 1954년 여름, 자신의 요청으로 선수단을 떠나 베티스로 이적하여 그곳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감독 경력
바리나가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구단에서 감독일을 시작했다. 1957-58 시즌에 그는 1부 리그의 오사수나 감독을 맡았고, 이후 10여 년 동안 대체로 1부 리그 감독을 맡았다. 1961-62 시즌에는 말라가를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시켰지만, 이듬해에 강등당했다. 베티스 또한 1967-68 시즌에, 마요르카도 1969-70 시즌에 강등당했다.
해외로 떠난 바리나가는 몇 달 동안 멕시코의 아메리카 감독을 맡았고, 이후 나이지리아와 모로코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가 은퇴하기 전에 맡은 마지막 감독직은 오비에도였는데, 몇 년 전까지 1부 리그 경험이 있었지만, 소속 구단의 1977-78 시즌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5. 수상 내역
| 구분 | 대회명 | 우승 연도 |
|---|---|---|
| 레알 마드리드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 1946, 1947 |
| 레알 마드리드 | 코파 에바 두아르테 | 1947 |
5.1. 선수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1946, 1947
* 코파 에바 두아르테: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