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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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는 스페인 내전을 피해 잉글랜드로 피난, 사우샘프턴에서 축구를 시작한 스페인 축구 선수였다. 1940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아레나스 게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아틀레틱 빌바오로 이적하여 1942-43 시즌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다. 1946-47 시즌에는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도 한 경기에 출전했다. 1957년에는 SD 인다우추로 이적했고, 이후 세스타오와 아레나스 게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84세의 나이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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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
본명라이문도 페레스 레사마
출생일1922년 11월 29일
출생지스페인 바라칼도
사망일2007년 7월 23일
사망지라과르디아, 스페인
1.78m
포지션골키퍼
클럽 경력
청소년 클럽사우샘프턴
클럽사우샘프턴 (1939–1940)
아레나스 게초 (1940–1941)
아틀레틱 빌바오 (1941–1957)
바라칼도 (임대, 1955)
인다우추 (1957–1958)
세스타오 (1958–1960)
아레나스 게초 (1960–1961)
출장 및 득점 (총합)237 (0)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스페인 (1947)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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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2.1. 잉글랜드 피난

레사마는 비스카이아 도 바라칼도 출신으로, 14세 때 스페인 내전을 피해 잉글랜드로 피난을 갔다. 1937년 5월 23일, 레사마는 형제 루이스와 함께 아바나 항을 통해 사우샘프턴에 입항했다. 이들은 3,889명의 바스크인 미성년자 난민에 포함되었으며, 이들 중에는 에밀리오 알데코아, 사비노 바리나가, 호세 가예고 등 훗날 축구 선수가 된 이들도 있었다.

사우샘프턴에서 레사마는 더 델에서 가까운 나자렛관 학교에서 축구를 하던 중 사우샘프턴의 눈에 띄어 연습생으로 합류, 2군을 거쳐 1940년 6월 1일 아스널과의 원정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린 풀럼과의 경기에도 출전, "성자들"은 어니 콜레트, 레슬리 콤프턴, 에디 해프굿, 레슬리 존스, 버너드 조이 등 5명의 아스널 선수들을 배치하여 2-1 승리를 거두었다. 레사마는 찰튼 애슬레틱과의 경기에도 출전했으며, 전쟁 기간 동안 영국 왕립공군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2.2. 아틀레틱 빌바오

1940년, 스페인으로 돌아온 레사마는 세군다 디비시온아레나스 게초에 입단했다. 1941년, 아틀레틱 빌바오로 이적하였고, 1942년 9월 27일에 5-0으로 이긴 베티스와의 안방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다. 1942-43 시즌, 빌바오 선수단은 레사마 외에도 텔모 사라, 호세 루이스 파니소, 그리고 아구스틴 가인사가 포진되어 있었고, 이들은 리가와 코파를 모두 석권하여 2관왕을 달성했다. 그는 아틀레틱이 1944년과 1945년에 코파 정상을 방어하도록 도왔고, 1950년에 또다시 코파 우승을 달성했다.

빌바오에서 활약하면서, 레사마는 1946-47 시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어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는 1947년 1월 26일에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했는데, 그는 1-4로 패한 포르투갈과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전에 호세 바뇬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빌바오에서 활약하는 동안, 레사마는 소속 구단에서의 막판 5년 동안 도합 12번의 리그 경기에 출장하는 데에 그쳤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261경기, 리그만 한정해서 197번 활약했던 그는 1957년에 빌바오를 떠났다.

2.3. 말년

레사마는 1957년에 2부 리그의 인다우추에 입단하였고, 당시 추스 페레다미겔 존스가 같은 선수단에 있었다. 그는 세스타오에서 2년을 더 보낸 후, 1960년에 아레나스 게초로 복귀했다.

레사마는 향년 84세로, 알라바 도 라과르디아에서 심장 마비로 타계했다. 간혹 아틀레틱의 구단 훈련장이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훈련장 명칭은 빌바오 인근의 레사마 군을 따 명명한 것이다.

3. 수상

3.1.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동하면서, 라리가 1942-43 시즌,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1943, 1944, 1944-45, 1949-50 시즌, 코파 에바 두아르테 1950 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2. 개인

리카르도 사모라 트로피 1946-47 시즌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