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케 요시나리
1. 개요
사타케 요시나리는 일본 제국의 귀족으로, 1872년 의형 사타케 요시나오의 양자가 되었고, 1884년 아버지 사타케 요시타카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1892년 귀족원 후작 의원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으며, 센슈 공원 명명, 아키타현 육영회 총재, 다자와 소수이 사업 등에 기여했다. 1915년 종2위에 서임되었으며, 다음 날 사망하여 장남 요시하루가 가독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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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2.1. 가문 계승
1872년 10월 14일, 의형 사타케 요시나오의 양자가 되었다. 1881년 12월, 아버지 요시타카의 적자가 되었다. 1884년 12월,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2.2. 정치 활동
1892년, 만 25세가 되어 귀족원 후작 의원에 취임했고, 사망할 때까지 귀족원 의원으로 재직했다. 같은 해, 구보타성의 공원이 아키타현으로 이관될 때 "센슈 공원"이라고 명명했다. 1897년에 창립된 아키타현 육영회의 총재에 취임했다. 다자와 소수이 사업에도 진력했다.
2.3. 지역 사회 공헌
1892년 구보타성의 공원을 아키타현으로 이관하면서 "센슈 공원"이라고 명명했다. 1897년 아키타현 육영회 총재에 취임했다. 다자와 소수이 사업에도 힘썼다.
3.1. 부모
* 아버지: 사타케 요시타카
* 생모: 오쓰카 씨 (측실)
3.2. 형제자매
* 누나: 마사코 - 사타케 요시나가의 정실
* 누나: 캉코 - 자작 사타케 요시타다의 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