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 하루노
1. 개요
오쿠보 하루노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육군 대장까지 진급했으며, 한국주둔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오다와라 번의 다이묘였던 오쿠보 씨의 후손으로, 메이지 유신 당시 보신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 도야마학교장을 거쳐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 참전했으며, 1907년 남작 작위를 받았다. 1910년 한국 병합 이후 조선주둔군 사령관을 지냈으며, 1915년 사망하여 종이위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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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1등 서보장 수훈자 -
쇼와 천황
쇼와 천황은 메이지 천황의 손자로 태어나 124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에 관여했다는 논란이 있으며, 전후에는 상징적인 천황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
훈1등 서보장 수훈자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
1915년 사망 -
세르게이 비테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는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이자 총리로서 러시아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으며,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 금본위제 도입, 포츠머스 조약 체결, 1905년 혁명 당시 개혁 촉구 등 격동기 러시아 정치·경제 상황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
1915년 사망 -
아나톨리 스테셀
아나톨리 스테셀은 러시아 제국 장군으로 러일 전쟁 당시 뤼순 요새 사령관을 지냈으며, 러시아-튀르크 전쟁과 의화단 운동에도 참전했으나 뤼순 요새 항복 후 러시아에서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일본에서는 초기 방어 성공을 인정받는 등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
공2급 금치훈장 수훈자 -
도조 히데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육군 대신, 참모총장,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진주만 공격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
공2급 금치훈장 수훈자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2. 생애 및 군 경력
1894년 소장으로 승진하여 제7 보병여단장이 되었고, 청일 전쟁에서 만주 하이청과 풍청 등지에서 전투를 치렀다. 1895년 대만 점령에도 참가했다. 1897년 제1 근위여단장이 되었다.
1900년 중장으로 진급하여 육군훈련감찰부 참모총장이 되었다. 1902년 5월 제6 보병사단장이 되었다. 러일 전쟁 당시 제6 보병사단은 일본 제2군에 배속되었다가 샤허 전투 이후 묵덴 전투 전에 일본 제4군으로 이동했다. 종전 후 욱일장 1등급과 금계훈장 2등급을 받았다. 1906년 7월 제3 사단장으로 전보되었고, 1907년 9월 남작 작위를 받아 화족이 되었다.
1908년 8월 7일 대장으로 승진하여 한국주둔군 사령관이 되었다. 1911년 8월 18일 예비역으로 편입되었으며, 1915년 1월 사망 후 종이위에 추증되었다.
2.1. 초기 생애
오쿠보 하루노는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오다와라 번의 전 다이묘였던 오쿠보씨의 후손으로, 도토미국(현 시즈오카현 이와타시)의 신사에서 세습 신관으로 봉직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메이지 유신기의 보신 전쟁에 참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쿠보는 신생 일본 제국 육군을 위해 오사카의 군사 학교에 다녔고, 1870년 10월 추가 훈련을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1875년 7월 귀국 후, 육군성 내 여러 참모직을 역임했다. 1880년 5월 구마모토 진대 보병 제14연대 대대장이 되었고, 1882년 12월 참모본부로 복귀했다. 1886년 3월 보병 제12연대장이 되었고, 1889년 대좌로 승진했다. 1890년 6월 육군 도야마학교 교장이 되었고, 1891년 6월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었다.
2.2. 메이지 유신과 군 입대
오쿠보 하루노는 오다와라 번의 번주였던 오쿠보씨의 후손으로, 도토미국(현재의 시즈오카현 이와타시)의 신사에서 세습 신관을 지내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메이지 유신의 보신 전쟁에 사무라이로 참전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쿠보는 신생 일본 제국 육군을 위해 오사카의 군사 학교에 다녔고, 1870년 10월 추가 훈련을 위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2.3. 군 경력 초기
오쿠보 하루노는 사무라이 가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오다와라 번의 전 다이묘였던 오쿠보 씨의 후손으로 도토미국(현 시즈오카현 이와타시)의 신사에서 세습 신관으로 봉직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메이지 유신의 보신 전쟁에서 사무라이로 싸웠다.
메이지 유신 이후, 오쿠보는 신생 일본 제국 육군을 위해 오사카의 군사 학교에 다녔고, 1870년 10월 추가 훈련을 위해 프랑스로 파견되었다. 1875년 7월 귀국 후, 육군성 내 여러 참모직을 역임했다. 1880년 5월 구마모토 진대 보병 제14연대 대대장이 되었고, 1882년 12월 제국 육군 참모본부로 복귀했다. 1886년 3월 보병 제12연대장이 되었고, 1889년 대령으로 승진했다. 1890년 6월 육군 도야마학교 교장이 되었고, 1891년 6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었다.
1894년 소장으로 승진하여 제7 보병여단장이 되었고, 이 여단은 청일 전쟁에서, 특히 만주 하이청과 풍청에서 광범위한 전투를 치렀다. 1895년 대만 점령에도 참가했다. 1897년 12월 오쿠보는 제1 근위여단장이 되었다.
2.4. 청일 전쟁 참전
1894년 육군 소장으로 승진하여 보병 제7여단장을 겸임하며 청일 전쟁에 참전하였다. 해성 및 봉황성 방면 수비대 사령관을 역임하였고, 1895년 대만 점령에도 참가했다.
2.5. 러일 전쟁과 승진
1900년, 오쿠보는 중장으로 승진하여 육군훈련감찰부 참모총장이 되었다. 1902년 5월 제6 보병사단장이 되었다. 러일 전쟁 중, 제6 보병사단은 일본 제2군에 배속되었지만, 샤허 전투 이후 묵덴 전투 전에 일본 제4군으로 이동했다. 전쟁 후 그는 욱일장 1등급과 금계훈장 2등급을 수여받았다. 1906년 7월 제3 사단장으로 전보되었고, 1907년 9월 남작 작위를 받아 화족이 되었다.
2.6. 조선군 사령관 역임
1908년 8월 7일, 오쿠보 하루노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고 같은 해 12월부터 한국주둔군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10년 한국 병합에 따라 한국주둔군이 조선주둔군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오쿠보 하루노는 조선주둔군 사령관이 되었다.
2.7. 사망
1915년 1월 26일에 사망했으며, 사후 특지에 의해 종이위에 추서되었다. 묘소는 아오야마 묘원(1이 1-22)이다.
3.1. 일본
| 연도 | 내용 |
|---|---|
| 1887년(메이지 20년) 5월 27일 | 훈사등 욱일장(旭日章) 소수장(勲四等旭日小綬章) |
| 1895년(메이지 28년) | 5월 23일 - 훈삼등 수보장(瑞宝章)(勲三等瑞宝章) |
| 1905년(메이지 38년) 11월 30일 | 훈일등 수보장(瑞宝章)(勲一等瑞宝章) |
| 1906년(메이지 39년) 4월 1일 | 금궤훈장(金鵄勲章) 공이급(功二級金鵄勲章), 훈일등 욱일장(旭日章) 대수장(勲一等旭日大綬章), 메이지 37, 38년 종군기장(明治三十七八年従軍記章) |
| 1907년(메이지 40년) 9월 21일 | 남작(男爵) |
| 1912년(다이쇼 원년) 8월 1일 | 한국병합기념장(韓国併合記念章) |
| 1915년(다이쇼 4년) | 1월 26일 - 훈일등 욱일동화대수장(勲一等旭日桐花大綬章) |
| 연도 | 외국 훈장 등 수여 허가 |
|---|---|
| 1910년(메이지 43년) | 4월 26일 - 대한제국: 한국황제폐하 남서순행기념장(韓国皇帝陛下南西巡幸記念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