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군부
1. 개요
삼군부는 조선 시대 군사 관련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으로, 여러 차례 설치와 폐지를 반복했다.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삼군도총제부를 의흥삼군부로 개편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군사력 통일 및 군정 체계를 확립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여러 차례 명칭과 기능이 변경되었으며, 1457년 오위도총부로 개편되면서 폐지되었다. 1865년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다시 설치되었으며, 1868년 청사를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두고 재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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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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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의 군사 -
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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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사 -
장용영
장용영은 조선 정조 때 국왕 호위를 위해 설치된 특수 군영으로, 숙위 체계 강화를 위해 설립되어 궁궐 숙위 및 국왕 호위 임무를 수행하며, 조직 확대, 독자적인 재정 운영, 체계적인 무예 훈련을 통해 강화되었으나, 정조 사후 재정 부담과 정치적 상황 변화로 폐지되었다.
2.2. 의흥삼군부 설치
이성계 일파는 고려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운 뒤, 사병의 군영(軍營)을 도총중외제군사부라 부르다가 조선 건국 직후 이를 의흥친군위로 고쳤다. 1391년(공양왕 3) 이성계는 오군(五軍)을 줄여 3군으로 하고 스스로 도총제사가 되어 군사 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건국 이듬해인 1393년에는 삼군도총제부를 의흥삼군부로 개편하고, 의흥친군의 좌·우 2위(衛) 및 고려 말기에 침체하였다가 재건된 8위를 합한 3군·10위를 통솔하게 하고 중방(상장군·대장군의 회의소)을 폐지하여 군정 체계를 확립하였다. 정도전을 판의흥삼군부사로 임명하고, 광화문 남쪽, 도평의사사의 동쪽 맞은편에 삼군부 청사를 두었다.
3. 구성
초기 삼군부는 중군, 좌군, 우군의 3군 체제로 구성되었고, 각 군은 특정 지역을 관할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삼군부는 주관(周官)의 사마(司馬) 직위로서 군무병권을 전담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궐 안 수비, 도성 순찰 외에도 군정·군무에 관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군 인사, 병적, 우역을 담당했던 병조는 사무 처리에 그쳤고, 중추원의 병기, 군정, 숙위, 경비 등의 직무는 삼군부로 이관되었다.
3.1. 3군 체제
1395년(태조 4)에 개편된 편제를 보면, 중군(中軍)은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 및 동북면(東北面)에, 좌군(左軍)은 강릉·교주·경상·전라의 제도(諸道)에, 우군(右軍)은 양광도·서해도 및 서북면(西北面)에 각각 속하였다. 10위(衛)를 개칭한 10사(司)는 다음과 같다.
| | 소속 10사(司) | |
|---|---|
| 중군(中軍) | 의흥시위사(義興侍衛司)·충좌시위사(忠佐侍衛司)·웅무시위사(雄武侍衛司)·신무시위사(神武侍衛司) |
| 좌군(左軍) | 용양순위사(龍驤巡衛司)·용기순위사(龍騎巡衛司)·용무순위사(龍武巡衛司) |
| 우군(右軍) | 호분순위사(胡賁巡衛司)·호익순위사(虎翼巡衛司)·호용순위사(虎勇巡衛司) |
속사(屬司)로는 사인소(舍人所)가 있어서 대소 양반의 아들, 사위, 아우, 조카를 수용하고, 경사(經史)·병서(兵書)·율문(律文)·산수(算數)·사어(射御) 등을 가르쳤고, 숙위(宿衛)에도 충당하는 한편 각자의 자질에 따라 발탁 등용하였다.
3.2. 권한
삼군부는 군정·군무, 대궐 안의 수위, 도성의 순찰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했다. 군 인사, 병적, 우역을 맡았던 병조는 사무 처리만 담당했고, 중추원의 병기, 군정, 숙위, 경비 등은 삼군부로 이관되었다.
4. 변천
조선 건국 초기,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이 평정된 것을 계기로 1400년(정종 2) 사병 혁파와 함께 군사 제도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추원을 삼군부로 개칭하고, 승정원을 설치하여 왕명 출납 기능을 분리하였으며, 경·외(京外)의 병마를 모두 삼군부에 속하게 하고 정치와 군사를 분리하여 삼군부 직원은 의정부 직을 겸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삼군부는 중추원, 병조 등과 기능을 교차하며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1401년(태종 1) 의흥삼군부를 승추부로 고쳤고, 1403년에는 3군에 각각 도총제부를 두었으며, 1405년 승추부를 병조에 합병하였다. 1409년 삼군진무소를 설치하였다가 곧 의흥부로 고쳐 군사 기밀, 왕의 호위, 순찰, 명령 전달 등을 맡게 하였으나, 1412년 의흥부를 폐지하고 다시 병조가 군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세종 즉위 초 의건부(義建府)를 삼군부에 통합했다. 1432년 삼군도총제부를 폐지하고 중추원을 설치하여 숙위·경비를 맡게 하고, 3군은 정3품아문으로 강등, 진무소를 설치하여 병권을 장악하게 했다.
1457년(세조 3) 삼군진무소를 오위진무소로 고쳤다가 곧 오위도총부로 개편하면서 삼군부는 사실상 폐지되었다. 1865년(고종 2) 비변사를 의정부로 흡수시키고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였으며, 1868년 정식으로 재설치되었다.
4.1. 정종 대
1400년(정종 2) 사병 혁파 후 경·외(京外)의 병마를 삼군부에 통합하고, 정치와 군사를 분리하여 삼군부 직원은 의정부 직을 겸하지 못하게 하였다. 중추원을 삼군부로 개칭하고, 승정원을 설치하여 왕명 출납 기능을 분리하였다.
4.2. 태종 대
1401년(태종 1) 태종은 의흥삼군부를 승추부로 고쳤고, 1403년에는 3군에 각각 도총제부를 두어 승추부와 분리시켰으며, 1405년에는 승추부를 병조에 합병하였다. 1409년 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를 설치하였다가 곧 의흥부(義興府)로 고쳐 군기(軍機, 군사 기밀), 시위(侍衛, 왕의 호위), 순작(巡綽, 순찰), 품명출령(稟命出令, 명령 전달) 등을 맡게 하였으나, 1412년 의흥부를 폐지하고 다시 병조가 군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4.3. 세종 대
세종 즉위 초 의건부(義建府)를 삼군부에 통합했다. 1432년(세종 14) 삼군도총제부를 폐지하고 중추원을 설치하여 숙위·경비를 맡게 하고, 3군은 정3품아문으로 강등, 진무소를 설치하여 병권을 장악하게 했다.
4.4. 세조 대 이후
1457년(세조 3) 삼군진무소를 오위진무소로 고쳤다가 곧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로 개편하면서 삼군부는 사실상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