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티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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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샨티 호건은 1925년부터 1937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미국의 야구 선수였다. 포수였던 그는 보스턴 브레이브스, 뉴욕 자이언츠, 워싱턴 세네터스 등에서 뛰었다. 1928년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 후 타율 .333, 10홈런, 71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1931년에는 .996의 수비율로 내셔널 리그 수비 기록을 세웠다. 통산 타율 .295를 기록했으며, 은퇴 후에는 마이너 리그 감독으로 활동했다.

샨티 호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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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카드에 담긴 샨티 호건
본명James Francis Hogan (제임스 프랜시스 호건)
포지션포수
타석/투구우타/우투
신장185cm
체중108kg
출생일1906년 3월 21일
출생지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
사망일1967년 4월 7일
사망지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선수 경력
MLB 데뷔1925년 6월 23일
마지막 MLB 경기1937년 6월 13일
소속 팀보스턴 브레이브스 (1925~1927)
뉴욕 자이언츠 (1928~1932)
보스턴 브레이브스 (1933~1935)
워싱턴 세너터스 (1936~1937)
통계
타율0.295
홈런61
타점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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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샨티 호건의 초기 생애에 대한 내용은 제공된 원본 소스에 없으므로, 해당 섹션에는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2.1. 유년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매사추세츠주 소머빌 출신인 호건은 1924년 케이프코트 야구 리그의 오스테빌 타운 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시즌 타율 0.385를 기록하며 팀 MVP로 선정되었고, 오스테빌의 웨스트 베이 필드에서 "역대 가장 긴 홈런"을 쳤다고 전해진다. 소머빌 고등학교 팀 동료이자 미래의 메이저리거인 대니 맥페이든과 함께 오스테빌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3. 프로 선수 경력

호건은 1925년 6월 18일 19세의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하고, 5일 후 1925년에 외야수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28년 1월 10일, 로저스 혼스비와 맞트레이드되어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1928년 뉴욕 자이언츠의 호건
1928년 뉴욕 자이언츠의 호건


1932년 12월 29일,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다시 이적했다. 1935년 8월 5일, 브레이브스는 과체중을 이유로 호건을 방출했다. 이후 워싱턴 세네터스를 거쳐 1937년 6월 13일에 메이저 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3.1. 보스턴 브레이브스 (1925-1927)

호건은 19세의 아마추어 자유 계약 선수로 1925년 6월 18일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을 맺고, 5일 후 1925년에 외야수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그는 즉시 마이너 리그로 보내져 우스터 팬서스와 올버니 세너터스에서 뛰었다. 1926년에는 린 파푸스에서 뛰면서 포수로 전향했다. 1927년에는 브레이브스에서 71경기에 출전하여 229타수에서 66안타(2루타 17개, 3루타 1개, 홈런 3개 포함)를 기록, .288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의 강한 어깨는 인상적인 58.1%의 도루 저지율로 내셔널 리그 포수 중 1위를 차지하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3.2. 뉴욕 자이언츠 (1928-1932)

1928년 1월 10일, 로저스 혼스비와 맞트레이드되어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 트레이드는 논란이 많았는데, 자이언츠 구단주 찰스 스톤햄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인 혼스비를 호건과 지미 웰시와 맞바꾸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1928년 뉴욕 자이언츠의 호건
1928년 뉴욕 자이언츠의 호건


논란에도 불구하고, 호건은 1928년 시즌에 .333의 타율, 25개의 2루타, 10개의 홈런, 71타점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자이언츠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2경기 뒤진 2위를 차지했고, 호건은 내셔널 리그 MVP 투표에서 8위를 차지했다.

호건은 보드빌 배우로도 활동했는데, 유대인 팀 동료 앤디 코헨과 함께 공연했다. 이들은 1928년 시즌 후 로우 서킷에서 공연을 시작했으며, 10월 15일 맨해튼의 로우 코모도어 극장에서 첫 무대를 가졌다.

앤디 코헨은 호건이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었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 메이저 리그에서 쫓겨났다"라고 회상했다. 호건은 체중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존 맥그로 감독은 그의 식사 영수증을 확인하며 체중을 조절하려 했지만, 호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바꿔 먹었다.

1929년 시즌, 호건은 .300의 타율, 5개의 홈런, 45타점을 기록했고, 자이언츠 투수진을 리그 최저 팀 평균자책점으로 이끌었다. 1930년 시즌에는 타율 .339, 13개의 홈런, 75타점을 기록하며 공격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931년 시즌, 호건은 4시즌 연속 .300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고, .996의 수비율로 내셔널 리그 수비 기록을 세웠다. 1931년 8월 19일에는 3개의 병살을 기록한 최초의 포수가 되었다.

1932년 시즌, 팀 성적이 부진했고, 빌 테리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호건은 거스 만쿠소로 교체되었다. 1932년 12월 29일, 호건은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이적했다.

3.3. 보스턴 브레이브스 복귀 (1933-1935)

호건은 브레이브스에서 두 번째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공격력은 감소했지만, 1933년에도 수비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쳐 리그 포수 중 .997의 수비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75%의 도루 저지율로 메이저 리그 단일 시즌 포수 기록을 세웠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33년 5월부터 1934년 8월까지 호건은 실책 없이 121경기를 출전하여 포수로서 깨지지 않은 내셔널 리그 기록을 세웠다. 1934년에는 타율이 .262로 향상되었고, 4개의 홈런과 34타점을 기록했다. 1935년에는 포수로 56경기만 출전하여 .301의 타율과 2개의 홈런, 25타점을 기록했다. 1935년 8월 5일, 브레이브스는 호건을 방출했는데, 당시 뉴스 보도에서는 그의 과체중을 방출 요인으로 언급했다.

3.4. 워싱턴 세네터스 (1936-1937)

호건은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1936년 1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23, 홈런 1개, 7타점을 기록하며 부분적인 선수로 활약했다. 1937 시즌에는 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52, 5타점을 기록했다. 1937년 5월 2일, 포수 조니 리들을 대가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5월 20일에 트레이드가 무효화되어 선수들은 원래 팀으로 복귀했다. 호건은 31세였던 1937년 6월 13일에 메이저 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전했고, 세네터스는 8일 후 그를 방출했다.

4. 선수 경력 통계

13년간의 메이저 리그 경력 동안, 호건은 989 경기에 출전하여 3,180 타수에서 939개의 안타를 기록, 통산 .295의 타율을 기록했고, 61개의 홈런, 474 타점, .348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그는 통산 .985의 수비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선수 생활 동안 리그 평균보다 6점 높은 수치였다. 호건은 내셔널 리그 포수 중 수비율 1위 2회, 도루 저지율 1위 2회, 아웃 1위를 1회 기록했다.

5. 은퇴 이후

1952년, 코튼 스테이트 리그의 핫 스프링스 배서스의 감독으로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했다. 1967년 4월 7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