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단 (2014년)
1. 개요
서북청년단은 1946년 11월 30일 월남한 이북 출신 청년들이 대공 투쟁을 위해 결성한 극우 반공 단체이다. '서북청년회'라는 정식 명칭으로 활동했으며, 좌우익의 충돌에서 우익 진영의 선봉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자들에게 공격을 가했고, 특히 제주 4.3 사건 당시 미군정의 지시를 받아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47년 대동청년단과의 통합 과정에서 분열을 겪었고, 일부는 이승만 노선을 따르며 대한청년단에 흡수되었다. 서북청년단 재건 시도에 대해 제주도민들은 4.3 사건의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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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설립된 단체 -
스파르타 대대
스파르타 대대는 2014년 도네츠크에서 창설된 친러시아 분리주의 무장 조직으로, 돈바스 지역 주요 전투에 참여하고 전쟁 범죄 혐의를 받았다. -
2014년 설립된 단체 -
프로젝트 위기
프로젝트 위기는 백진우가 2014년에 설립한 교육 운동 단체로, 획일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신을 위한 공부'를 강조하며 교육 개혁을 위해 콘퍼런스 개최, 다큐멘터리 제작, 교육 미디어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
극우 정치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칠레 쿠데타로 집권하여 1990년까지 칠레를 군사 독재 통치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그의 통치는 인권 침해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했으며 1998년 인권 침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사망했다. -
극우 정치 -
백인 우월주의
백인 우월주의는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이데올로기로, 과학적 인종주의에서 기원하여 노예 제도, 인종 차별, 나치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현대에도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폭력적인 극단주의 단체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운동 단체 -
참여연대
참여연대는 1994년 박원순에 의해 설립된 시민단체로, 정치 및 경제 권력 감시, 시민 권리 확대, 사회 개혁을 위한 활동을 하며, 회비와 후원금으로 재정을 운영하고, 11개의 활동 기구와 4개의 부설 기관을 운영하며 월간 참여사회 등 간행물을 발행한다. -
대한민국의 시민사회운동 단체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2. 조직의 역사
과거의 서북청년단은 월남한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조직한 우익청년운동단체로 북한 사회개혁 당시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 반공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서북청년회’로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지주 집안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이 돼 결성되었다.
서북청년단은 대한혁신청년회·함북청년회·북선청년회(北鮮靑年會)·황해도회청년부·양호단(養虎團)·평안청년회(平安靑年會) 등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창단되었는데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돕는 등 좌우익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익 진영의 선봉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으며 특히 미군정은 제주 4.3 사건에서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들을 파견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이 된 서북청년단은 갈취와 약탈, 폭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살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4월 지청천이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기존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자, 대동청년단 합류를 둘러싸고 서북청년회는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었는데,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다. 초기의 서북청년회가 김구 노선을 지지한 데 반해 당시 서북청년회의 합동반대 파는 문봉제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이승만 노선을 따랐으며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2.1. 결성 배경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들이 모여 서북청년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주로 식민지 시대에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지주 집안 출신 청년들이었다. 정식 명칭은 ‘서북청년회’였다.
서북청년회는 대한혁신청년회, 함북청년회, 북선청년회(北鮮靑年會), 황해도회청년부, 양호단(養虎團), 평안청년회(平安靑年會) 등이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창단했으며,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돕는 등 좌우익 충돌 시 우익 진영의 선봉을 담당했다.
1947년 4월, 지청천이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기존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면서, 서북청년회는 대동청년단 합류를 두고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었다.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고, 합동반대파는 문봉제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이승만 노선을 따랐으며,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초기 서북청년회는 김구 노선을 지지했다.
2.2. 주요 활동
과거 서북청년회는 월남한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을 위해 조직한 우익청년운동단체였다. 북한 사회개혁 당시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 반공단체로, 정식 명칭은 ‘서북청년회’였다.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지주 집안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었다.
대한혁신청년회·함북청년회·북선청년회(北鮮靑年會)·황해도회청년부·양호단(養虎團)·평안청년회(平安靑年會) 등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창단하였으며,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도왔다. 이들은 좌우익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익 진영의 선봉을 담당했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했다.
특히, 미군정은 제주 4.3 사건 당시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들을 파견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이 된 서북청년단은 갈취와 약탈, 폭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살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4월 지청천이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기존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자, 대동청년단 합류를 둘러싸고 서북청년회는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었다.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다. 초기의 서북청년회가 김구 노선을 지지한 데 반해, 당시 서북청년회의 합동반대 파는 문봉제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이승만 노선을 따랐으며,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
2.3. 분열과 해체
1947년 4월 지청천이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기존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자, 서북청년회는 대동청년단 합류를 둘러싸고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었다.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다. 초기의 서북청년회가 김구 노선을 지지한 데 반해, 당시 서북청년회의 합동반대 파는 문봉제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이승만 노선을 따랐으며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