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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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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서울 옥천암에 있는 마애보살좌상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곳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고종을 위해 복을 빌면서 불상에 흰색 칠을 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로,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적인 상호와 유려한 수인, 유연한 천의 표현 등이 특징이며, 고려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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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서울 玉泉庵 磨崖菩薩坐像)
유형보물
번호1820
지정일2014년 3월 11일
주소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 (홍은동)
시대고려시대
소유자옥천암
수량마애불 1점
문화재청 ID12,18200000,11
기타 정보
이름 (원어)옥천암 마애좌상(玉泉庵 磨崖坐像)
국가서울특별시
유형유형문화재
번호17
지정일1973년 6월 7일
해지일2014년 3월 11일
문화재청 ID21,00170000,11

2. 역사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보살 앞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4] 또한 조선 후기에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아들인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복을 빌었다고 하며, 이때부터 불상에 하얀 칠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4] 이 때문에 마애보살좌상은 백불(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도 불린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성현(成俔, 1439~1504)이 쓴 『용재총화(慵齋叢話)』에도 이 마애보살좌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유래를 짐작하게 한다.[3]

3. 특징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은 높이 5m가 넘는 대형 마애상으로, 전면에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일반적으로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 불린다.[3][4] 조선 시대 학자 성현(成俔, 1439-1504년)의 『용재총화』에도 이 불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3]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불상 앞에서 기원했으며, 흥선대원군의 부인도 아들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등 서울의 이름난 불교 존상 중 하나이다.[4]

이 마애보살좌상은 사실적인 얼굴 표현, 유려한 손 모양(수인),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옷주름 등 뛰어난 조각 수준을 보여준다.[3] 전체적으로 고려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고려 시대 불교 조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3][4]

3. 1. 형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 경내의 거대한 암석에 새겨진 높이 5m의 마애보살좌상으로[3], 상 전체에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흔히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 ‘백불(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고 불린다.[3][4]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 후기 고종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이곳에서 복을 빌 때부터 하얗게 칠을 하였다고 한다.

머리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양쪽 어깨를 따라 팔꿈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비교적 둥근 타원형으로 양감이 부드럽고, 눈이 가늘고 입이 작게 표현되어 고려 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4] 눈, 코, 입이 단아하며 전체적으로 단정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이다.[4]

옷은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는 방식(통견)으로 입고 있으며, 신체는 건장하면서도 유연하게 표현되었다.[4]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와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넓은 띠 형태의 옷주름은 선이 깊지는 않지만 신체 전반에 걸쳐 유연하고 부드럽게 흘러내린다.[3]

손 모양(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아미타불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3] 수인의 형태는 유려하게 표현되었다.[3]

이 마애보살좌상은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에도 기록되어 있다.[3]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상호(相好) 표현, 유려한 수인, 유연한 옷주름 등 훌륭한 조각 수준을 보여준다.[3] 고려 후기(12~13세기) 마애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되며[4],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이나 개성 관음굴 석조보살반가상과 비교되는 특징을 지닌다.[3]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고려 시대 불교 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3]

3. 2. 양식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로서,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과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보인다.[3] 높이 5m에 달하는 대형 마애상으로, 전면에 흰색 호분이 칠해져 있어 일반적으로 ‘백불(白佛)’, ‘해수관음(海水觀音)’, ‘보도각 백불(普渡閣 白佛)’ 또는 ‘백의관음(白衣觀音)’ 등으로 불린다.[3] 성현(成俔, 1439-1504년)의 『용재총화』에도 이 마애보살좌상에 대한 기록이 확인된다.[3]

머리에는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화려한 꽃무늬와 수술 장식이 특징적이다.[4] 머리카락은 어깨를 따라 팔꿈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상호, 相好)은 비교적 둥근 타원형으로 양감이 부드럽고, 가는 눈과 작은 입 등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사실적이고 단아한 인상을 준다.[3][4]

신체는 건장하면서도 유연하며 전체적으로 단정한 모습이다. 옷은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어깨에 드리워진 천의(天衣)와 가슴에 대각선으로 걸쳐있는 넓은 띠주름이 유연하게 흘러내려 훌륭한 조각 표현을 보여준다.[3] 옷주름 선은 깊지 않지만 신체 전반에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손 모양(수인, 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댄 설법인(說法印) 형태이며,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아미타불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수인의 형태 또한 유려하다.[3]

전체적으로 개성 관음굴 석조보살반가상 2점과 비교되는 고려 후기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3]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고려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3] 고려 12~13세기 마애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힌다.[4]

4. 보존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사면을 모두 개방한 각(閣)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이 위에 팔작지붕의 전실형 건물을 세워 마애상을 보호하고 있다.[4]

5. 사진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고시 제2009-221호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장 2009-06-04
[2]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장 2014-01-13
[3]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2014-03-11
[4]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표기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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