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혜종
1. 개요
서하 혜종은 서하의 제3대 황제이다. 7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생모 일족인 량씨가 섭정하여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는 국력이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으며, 혜종은 16세에 친정을 시작했으나 량씨 세력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아들로 서하 숭종 이건순과 진왕 차거가 있다.
| 이름 | 혜종 |
|---|---|
| 전체 이름 | 위명 병상 (嵬名秉常) 리빙창 (李秉常) |
| 칭호 | 구더 주궈 증푸 정민 다밍 황제 (就德主國增福正民大明皇帝) 공더 주궈 증푸 정민 다밍 황제 (功德主國增福正民大明皇帝) 밍성 황제 (明盛皇帝) 당구트어: 벽을 바라보는 성의 황제 (𘅞𗹼𗍁𘓺𘋨) |
| 묘호 | 혜종 (惠宗) |
| 시호 | 강정황제 (康靖皇帝) |
| 출생 | 1060년 |
| 사망 | 1086년 |
| 묻힌 곳 | 헌릉 (獻陵, 서하 왕릉 5호 무덤으로 추정) |
| 즉위 | 1067년 |
|---|---|
| 퇴위 | 1086년 |
| 이전 | 의종 |
| 이후 | 숭종 |
| 연호 | 건도 (乾道): 1068년 천사예성국경 (天賜禮盛國慶): 1069년–1073년 대안 (大安): 1074년–1084년 천안예정 (天安禮定): 1085년–1086년 |
| 아버지 | 의종 |
|---|---|
| 어머니 | 공숙황후 양씨 |
| 섭정 | 공숙황후 양씨 (1067년–1076년) 양이매 (1076년–1085년) 양이부 (1085년–1086년) |
|---|
| 왕조 | 서하 |
|---|---|
| 대수 | 3대 |
| 연호 | 건도 : 1068년 천사예성국경 : 1069년-1074년 대안 : 1075년-1085년 천안예정 : 1086년 |
| 생년 | 다도 5년 (1061년) |
| 몰년 | 천안예정 원년 7월 10일 (음력) (1086년 8월 21일) |
| 아버지 | 의종 |
| 어머니 | 공숙황후 |
| 황후 | 소간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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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년 출생 -
완안 오아속
완안 오아속은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 완안부의 수장으로서 잉거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고 동생 아골타와 함께 여진 부족을 통합하고 고려와의 전쟁을 통해 완안부의 위상을 높였으며 수분하 유역을 평정하여 금나라 건국에 기틀을 다진 인물로 희종으로부터 황제로 추존되었다. -
1061년 출생 -
예국공주
북송 시대 귀비 동씨의 셋째 딸인 예국공주는 생전에는 공주로 봉해지지 못했으나 요절 후 초국공주로 추증되었고, 여러 차례 작위가 더해졌으며, 그녀에 대한 기록은 여러 역사 문헌에 남아있다. -
1086년 사망 -
사마광
사마광은 북송 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며 《자치통감》 편찬으로 유명하고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했으며 철종 시대에 재상으로 복귀하여 신법 폐지를 주도하는 등 시대적 배경과 평가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인물이다. -
1086년 사망 -
경성왕후
경성왕후는 고려 현종과 원순숙비 김씨의 딸로 덕종의 왕후에 책봉되었으나, 덕종 사후 자녀 없이 52년간 과부로 지내다 유정관숙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서하의 황제 -
서하 숭종
서하 숭종은 혜종의 급사로 즉위하여 량태후의 섭정을 받다가 친정을 시작하여 개혁 정치를 펼치고 요나라 멸망에 기여하여 영토를 확장한 서하의 제4대 황제이다. -
서하의 황제 -
서하 인종
서하 인종은 금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문화 정책을 펼쳤으나 군사력 약화와 외척 세력 대두로 서하의 국세가 쇠퇴했다.
2. 생애
아버지 의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혜종은 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혜종을 대신하여 생모 량씨 일족이 왕조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는 국력이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다. 16세가 되자 친정을 시작했지만, 량씨 세력이 강대하여 친정은 명목뿐이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것은 이러한 우울함 때문이라고 한다.
2.1. 즉위 배경
아버지 의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7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생모 일족인 량씨가 왕조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는 국력이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다.
2.2. 섭정과 권력 투쟁
아버지 의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혜종은 겨우 7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였기에 혜종의 생모인 량씨 일족이 왕조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는 국력이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다. 혜종은 16세가 되자 친정을 시작했지만, 량씨 세력이 강대하여 친정은 명목뿐이었다. 혜종이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것은 이러한 우울함 때문이라고 한다.
2.3. 북송과의 관계
아버지 의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혜종은 겨우 7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생모의 일족인 량씨가 왕조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는 국력이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다. 16세가 되자 친정을 시작했지만, 량씨의 세력이 강대하여 친정은 명목뿐이었다.
2.4. 사망
아버지 의종이 갑작스럽게 죽자, 혜종은 겨우 7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생모 일족인 량씨가 왕조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 시기 서하의 국력은 쇠퇴하여, 북송의 침공을 받았다. 16세가 되자 친정을 시작했지만, 량씨의 세력이 강대하여, 친정은 명목적인 것에 불과했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는데, 이는 그의 우울함 때문이라고 한다.
3.2. 황자
* 소간황후 양씨 (昭簡皇后 梁氏, ?–1099)
이건순 (西夏崇宗 李乾順; 1084년 – 1139년), 장남
진왕(晉王) 이찰가(李察哥), 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