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군 (선거구)
1. 개요
선산군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설되어 선산군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였다. 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군위군 선거구와 통합되어 군위군·선산군 선거구가 되면서 폐지되었다. 역대 국회의원으로는 육홍균, 김우동, 김동석, 신준원 등이 있다.
| 이름 | 선산군 |
|---|---|
| 의회 | 국회 |
| 연도 | 1948년 |
| 폐지 | 1963년 |
| 유형 | 국회 |
| 이후 선거구 | 군위군·선산군 |
| 의원수 |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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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 정치 -
구미시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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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 정치 -
구미시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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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단양군 (선거구)
단양군 선거구는 1948년 신설되어 1963년 제천군과 통합 폐지될 때까지 5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며, 조종승, 장영근, 조종호 등이 당선되었다. -
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고창군 갑
고창군 갑은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신설되어 고창군 지역을 관할했으며, 1963년 선거구 통합으로 폐지되었고 김영동, 김수학, 정세환, 류진 등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
경상북도의 폐지된 선거구 -
영천시 (선거구)
영천시 선거구는 1995년 영천시와 영천군 통합 이후 15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존재했던 국회의원 선거구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청도군 편입으로 영천시·청도군 선거구로 변경되어 폐지되었으며,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이 주로 당선되었다. -
경상북도의 폐지된 선거구 -
상주군 을
상주군 을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상주군 일부에 설치되었다가 1963년 상주군 갑 선거구와 통합되며 폐지된 선거구로, 전진한, 백남식, 김정근, 김기영 등이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무소속 후보 강세 속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2. 역사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산군 전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로 신설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군위군 선거구와 통합되면서 군위군·선산군 선거구를 이루게 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4. 역대 선거 결과
4.1.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육홍균 후보가 45.49%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당선되었다. 무소속 권영호 후보는 27.86%, 무소속 최재혁 후보는 26.64%를 득표했다. 대동청년단 김성묵 후보는 득표를 하지 못했다.
4.2.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경상북도 선산군에서는 대한국민당 육홍균 후보가 8,724표(득표율 22.69%)를 얻어 당선되었다. 무소속 김동석 후보는 6,866표(17.85%), 무소속 신준원 후보는 5,895표(15.33%), 무소속 이재기 후보는 4,061표(10.56%), 무소속 이재현 후보는 3,271표(8.50%), 무소속 김경환 후보는 3,112표(8.09%), 무소속 배재후 후보는 2,528표(6.57%), 무소속 강석균 후보는 2,102표(5.46%), 무소속 심재건 후보는 1,235표(3.21%), 무소속 김종묵 후보는 653표(1.69%)를 얻었다. 총 유효 투표수는 38,447표였다.
4.3.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김우동 후보가 38.4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자유당 육홍균 후보는 25.09%로 2위를 기록하였다. 그 외, 무소속 이재기 후보는 15.12%, 무소속 김정준 후보는 10.97%, 무소속 김여산 후보는 5.66%, 무소속 김동석 후보는 3.44%, 무소속 노승억 후보는 1.19%를 득표하였다.
4.4.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195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초 개표 결과는 자유당 김우동 후보가 41.00%의 득표율로 제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1959년, 재검표가 실시되면서 무소속 김동석 후보로 당선자가 바뀌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이 만연했던 당시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4.4.1. 재검표 사건
195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초 개표 결과는 자유당 김우동 후보가 41.00%의 득표율로 제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1959년, 재검표가 실시되면서 무소속 김동석 후보로 당선자가 바뀌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이 만연했던 당시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