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
1. 개요
성혜림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평양영화연극대학을 졸업하고 배우로 활동했으며, 김정일과의 관계를 통해 북한 사회에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김정일과의 동거를 시작하여 아들 김정남을 낳았으나, 김일성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건강 악화로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그녀의 묘는 모스크바에 있으며, 김정일 사후 관리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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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성혜림 |
|---|---|
| 로마자 표기 | Seong Hye-rim |
| 출생일 | 1939년 1월 24일 |
| 출생지 | 창녕군, 경상남도, 조선 |
| 사망일 | 2002년 5월 18일 |
| 사망지 | 모스크바, 러시아 |
| 배우자 | 리평 (전 남편), 김정일 (후 남편) |
| 자녀 | 2명 (김정남 포함) |
| 가족 | 성혜랑 (언니), 이한영 (조카) |
| 직업 | 영화 배우 |
| 학력 | 평양연극영화대학 |
| 종교 | 무종교 |
| 아버지 | 성유경 |
|---|---|
| 어머니 | 김원주 |
| 형제 자매 | 성일기 (오빠), 성혜랑 (언니) |
| 조카 | 리일남, 리남옥 |
| 관련 링크 | 北 김정남 생모 '성혜림의 묘'를 찾아 |
|---|---|
| 참고 자료 | 【秘録金正日(31)】塀で隠され育った長男、正男「こんな生活嫌だ」迫る内妻をピストルで脅し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림과 고영희 ‘김정남’ 밀입국 파문] 관광說…망명說…후계자수업說…왜? 4가지 미스터리 “김정일 셋째 아들, 치명적 사고로 치료 중” 고영희 동생, 2001년에 미국 망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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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자 연극 배우 -
리춘히
리춘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방송인이자 조선중앙텔레비전 아나운서로, 1971년 입사 후 수석 앵커로서 북한의 주요 뉴스와 성명 발표를 담당하며 북한 체제의 '얼굴'로 여겨진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여자 영화 배우 -
김연실 (배우)
김연실은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가수로, 영화 데뷔 후 연극 배우와 대중가요 가수로도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는 영화에 출연,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에서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
평양연극영화대학 동문 -
문기남
문기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으로 선수 시절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2003년 대한민국으로 귀순 후 울산대학교 축구팀 감독을 맡았다. -
평양연극영화대학 동문 -
리춘히
리춘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방송인이자 조선중앙텔레비전 아나운서로, 1971년 입사 후 수석 앵커로서 북한의 주요 뉴스와 성명 발표를 담당하며 북한 체제의 '얼굴'로 여겨진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1937년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1948년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한 후, 평양 제3중학교와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했다. 1955년 평양영화연극대학에 입학했으나, 1957년 출산으로 인해 중퇴했다. 이후 복학하여 졸업하고 1959년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1960년대에는 《온정령》, 《백일홍》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 배우로 활동했다.
성혜림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여동생 성혜랑의 회고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혜림의 친구 김영순은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라는 회고록을 통해, 김정일과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가족과 함께 10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2.1. 가족 배경
성혜림의 아버지는 성유경(1905~1982)이며, 어머니는 민족주의 잡지 기자 출신 김원주(1908~1994)이다. 성혜림의 부모는 좌익 공산주의 활동가였으며, 1945년 12월 남조선노동당의 전신 조직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성혜림은 서울 풍문여자중학교에 다녔으나, 1948년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하였다. 언니 성혜랑(1935~)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양육했으며, 후에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3. 김정일과의 관계
김정일은 성혜림보다 5살 연상이었고, 리평과의 사이에서 딸 리옥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혜림의 미모와 성격에 매료되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며 친분을 쌓았다. 김정일은 리평에게 성혜림과의 이혼을 요구했고, 1968년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북한 사회는 혁명적이라는 명분하에 비상식적인 행동을 묵인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성혜림과 같은 여성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외국 영화를 보며 자란 김정일은 성혜림에게 매료되었다.
3.1. 김정남 출생과 은둔 생활
김정일과 성혜림은 1971년 아들 김정남을 출산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1975년까지 김일성에게 비밀로 유지되었다. 김일성은 성혜림의 출신 가문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김정남은 김정일의 측근을 제외하고는 '없던 일'로 취급되어 숨겨져야 했다.
성혜림과 김정남은 평양직할시 중구역 중성동에서 격리된 채 생활해야 했다. 김정일은 성혜림이 김정남과 함께 격리된 곳을 나가고 싶다고 말하자 권총을 꺼내 "말을 안 들으면 쏴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일은 고영희와 동거를 시작했고,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성혜림에게 "아들(김정남)을 두고 나가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성혜림을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어 우울증을 앓게 했고, 1970년대 후반에는 주사를 맞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밤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4. 망명 시도와 죽음
1980년대 초부터 성혜림은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차 모스크바를 자주 방문했다. 1996년 성혜림의 서방 망명설이 제기되었으나, 대한민국 정보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2002년 5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4.1. 사후
성혜림의 묘는 모스크바 트로예쿠로프스코예 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묘주 김정남(廟主 金正男)"이라고 새겨져 있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묘소 관리가 소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5. 가족 관계
| 구분 | 내용 |
|---|---|
| 친정 아버지 | 성유경 (1905년 ~ 1982년 4월 13일) |
| 친정 어머니 | 김원주 (1908년 음력 12월 20일 ~ 1994년 11월 3일) |
| 오빠 | 성일기 (1933년 ~ 2021년) |
| 언니 | 성혜랑 (1935년 음력 12월 20일 ~ ) |
| 조카 | 리일남 (1960년 4월 2일 ~ 1997년 2월 25일): 대한민국으로 귀순했으나 피살. 언니 성혜랑의 아들. |
| 조카 | 리남옥 (1966년 1월 17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망명 생활. |
| 첫째 남편 | 리평(李平): 김정일의 고등학교 선배인 리종혁의 형 |
| 딸 | 이옥돌 |
| 사위 | 왕송림 |
| 시아버지 (첫째 남편) | 리기영 |
| 둘째 남편 | 김정일 |
| 시아버지 (둘째 남편) | 김일성 |
| 시어머니 (둘째 남편) | 김정숙 |
| 아들 | 김정남 |
| 며느리 | 신정희: 거주 |
| 손자 | 김한솔 (1995년 6월 16일 ~ ): 거주 |
| 손녀 | 김솔희: 거주 |
| 손자 | 김이순 |
| 손녀 | 김금솔 |
6. 평가 및 영향
성혜림의 삶은 북한 권력층 내부의 복잡한 관계와 개인의 희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김정일과의 관계는 그의 아들 김정남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혜림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그의 여동생 성혜랑의 회고록에서 비롯되었다. 성혜랑은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망명했다. 성혜림의 친구였던 김영순은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라는 회고록을 출판하여, 성혜림과 김정일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가족과 함께 10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된 사실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영순의 부모와 자녀는 사망했고, 남편은 행방불명되었다. 김영순은 2003년 대한민국으로 탈북했다.
김정일은 성혜림과 동거하며 아들 김정남을 낳았지만, 김일성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했다. 성혜림과 김정남은 격리된 채 생활해야 했고, 김정일은 성혜림에게 권총을 겨누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일이 고영희와 동거하면서 성혜림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다가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성혜림의 묘는 모스크바 트로예쿠르프스코예 국립공동묘지에 있으며, 묘비에는 "묘주 김정남"이라고 새겨져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관리가 소홀해졌고, 김정남마저 암살되면서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