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김정일의 아들)
1. 개요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으로, 197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한때 후계자로 거론되었으나,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 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된 사건 이후 후계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는 해외 유학을 통해 개혁·개방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김정은의 권력 승계와 3대 세습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남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되었으며, 이복동생 김정은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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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정남 |
|---|---|
| 출생일 | 1971년 5월 10일 |
| 출생지 | 평양, 북한 |
| 사망일 | 2017년 2월 13일 |
| 사망지 |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 |
| 사망 원인 | 암살 |
| 국적 | 북한 |
| 민족 | 한민족 |
| 부모 |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
| 로마자 표기 | Gim Jeongnam |
|---|
| 한자 표기 | 金正男 |
|---|
| 소속 | 북한 |
|---|---|
| 군종 | 조선인민군 육군 |
| 계급 | 대장 |
| 출신 학교 | 김일성종합대학 |
|---|
| 배우자 | 신정희 이혜경 |
|---|---|
| 동거인 | 서영라 |
| 자녀 | 6명 (김한솔 포함) |
| 친척 | 김씨 일가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 직책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컴퓨터위원회 위원장 |
|---|---|
| 임기 시작 | 1988년 |
| 직책 2 |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
| 임기 시작 2 | 2007년 6월 |
| 직책 3 | 조선인민군 대장 |
| 임기 시작 3 | 1995년 |
| 임기 종료 3 | 20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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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살인 사건 -
2017년 핀즈베리파크 테러
2017년 6월 19일 런던 핀즈베리 파크에서 극우 성향의 백인 남성 대런 오스본이 라마단 기간 중 타라위 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무슬림들을 차량으로 공격하여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
2017년 살인 사건 -
가나가와현 토막 살인 사건
가나가와현 토막 살인 사건은 2017년 시라이시 타카히로가 SNS를 통해 자살을 원하는 여성들을 유인하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연쇄 살인 사건이다. -
테러로 죽은 사람 -
함병춘
함병춘은 법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서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정희 정부의 외교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및 주미 한국 대사, 전두환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했다. -
테러로 죽은 사람 -
존 레논
존 레논은 비틀즈 멤버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솔로 활동과 평화 운동으로 20세기 대중음악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예술가이다. -
김일성가 -
김설송
김설송은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김정일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몰타와 유럽에서 유학하며 외국어를 배웠다. -
김일성가 -
김여정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나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조선로동당 핵심 실세로 부상하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대미 압박을 주도하기도 한다.
2. 생애
김정남은 1971년 5월 10일 평양에서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정식 결혼 관계가 아니었고, 어릴 때 헤어졌다. 9살 때부터 해외 유학을 떠나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개혁·개방에 관심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어린 시절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 북한에서는 폐쇄적인 생활을 했고, 동갑내기 배다른 숙부인 김현이 유일한 친구였다.
1999년 12월 7일 캄보디아 주재 북한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되었다. 2001년 도미니카 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었는데, 본인은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콤퓨터쎈터 위원장을 맡았던 경력으로 미루어 일본 IT 산업 시찰이 목적이라는 설도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신뢰를 받았으며, 무기 수출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책임자도 맡았다. 그러나 1998년 3월 국가안전보위부 제1차장 김영룡 숙청 이후 국가안전보위부 제1차장에 임명되었다가, 2002년 5월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임되었다.
FNN은 파리의 한 병원에 김정남이 방문한 것을 두고 김정일의 건강 관리를 총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후 후계자 순위에서 밀려났으며, 이복동생 김정은의 암살 위협으로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 2012년 러시아 언론은 김정남이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호텔에서 쫓겨났다고 보도했으나, 호텔 측은 부인했다.
2.1. 출생과 성장 배경
1971년 5월 10일, 김정일과 영화 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평양에서 태어났다. 성혜림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실혼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성혜림과 그 아이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당시 김정일은 계모 김성애와 대립하고 있었고, 이때 자세한 내용이 알려졌다면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김정남은 평양 중심부의 대저택에 격리되어 외할머니와 외숙모(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와 함께 살았다.
한편,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항상 김정남의 편이었으며, 김정남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후에 김일성도 딸 김경희·장성택 부부의 중재를 받아들여 첫 손자인 김정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당 활동에 전념하는 김정일을 대신하여 김정남을 귀여워하게 되었으며, 1994년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손자"라고 소개했다. 반대로 아버지 김정일과 후처 고영희 사이에 새로 태어난 손자 김정은이나 김정철은 김일성이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며, 김경희·장성택 부부에 의해 만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복형제인 김정은 등은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원산에서 생활했고, 김일성으로부터 생일 축하를 직접 받은 김정남은 곧 "황태자"의 지위를 확정했다고 당국에서 여겼다고 한다. 김정남의 생일은 호화롭게 축하되었고, 매년 생일 선물로 1(일본 엔화로 약 1억 엔 상당)가 쓰였다고 한다.
9살 때부터 해외 유학을 떠나면서 식견을 넓혔으며,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우기도 했고, 개혁·개방에 관심이 있다고 알려졌다. 어린 시절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폐쇄적인 생활을 한 탓에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배다른 숙부인 김현이 김정남의 유일한 친구였다.
2.2. 후계자 지명과 좌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는 유교적인 장자 상속 사회라는 사회 구조와 정서를 가지고 있어, 한때 김정남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황장엽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 비서는 김 위원장 사후 장남인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장성택이 그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998년 김정남은 북한의 미래 지도자로서 사회안전성부의 고위직에 임명되었고, 정보기술(IT) 산업 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01년 1월,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하이를 방문하여 중국 관계자들과 IT 산업에 대해 논의했다.
2007년 8월 28일에는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가 러시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김정남의 복귀 소식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첫째 아들인 그가 다른 형제들을 권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남은 이모 성혜랑의 1996년 미국 망명으로 그 위상이 크게 위협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만약 내가 후계자라면 나와 마카오에서 만날 수 있었겠느냐."라며 "나는 그(김정일)의 아들일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을 밝힐 위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남은 현재 서방 언론과 접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2.3. 해외 생활과 북한 체제 비판
김정남은 1971년 5월 10일 평양에서 태어나 9살 때부터 해외 유학을 하며 식견을 넓혔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 개혁·개방에 관심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조선콤퓨터쎈터 위원장을 맡으며 IT 분야에 관심을 보였고, 2001년 도미니카 공화국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그는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이 목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 IT 산업 시찰 목적이라는 설도 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 책임자였으나, 후계자 순위에서 밀려난 후 이복동생 김정은에 의해 암살 위협을 느껴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 2012년 러시아 언론은 김정남이 김정은에 의해 자금 지원이 끊겨 호텔에서 쫓겨났다고 보도했으나, 호텔 측은 이를 부인했다.
김정남은 일본어는 몰랐지만,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광둥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1995년부터는 중국 베이징에서도 생활을 시작했고, 상하이의 경제 발전을 보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희망하게 된다.
2001년 5월, 김정남은 위조 여권을 사용하여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인한 당혹감 때문에 중국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김정남의 실각은 도쿄 사건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김정남 자신은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에 실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쿄 신문 편집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은 후 "개혁과 시장 개방을 주장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가 그가 "자본주의자가 되었다"고 결정하게 했다고 썼다.
김정남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졌으며, 북한 지도부가 붕괴할 경우 중국이 그를 대체 지도자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었다.
2007년 1월 30일, 홍콩에 있는 여러 정보기관이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중화인민공화국 특별행정구인 마카오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로 마카오의 금융기관인 뱅코 델타 아시아(BDA)에 있던 약 24에 달하는 북한 관련 계좌가 동결되었는데, 중국-북한 관계 관계자는 베이징에서 같은 날 시작된 금융 제재 문제에 관한 미-북 전문가 회의와 관련하여 김정남이 마카오에 입국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2011년 당시에는 마카오에 체류하며 활동했다고 알려진다. 김정일의 장남이라는 입장이면서도 후계자 문제(후술)를 둘러싸고 북한의 정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비판이나 의견을 서방 세계에 널리 전달했기 때문에, 군부를 중심으로 북한 측에서 눈엣가시로 여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 출판된 일본 기자 고미 요지(五味洋治)의 책 나의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나에서 고미 요지는 김정남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김정남이 김정은의 지도력이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며 그가 너무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개혁 없이는 북한이 붕괴될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면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2.4. 김정남 암살 사건
2017년 2월 13일,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VX 신경 작용제에 노출되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복동생인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암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공격 직후 북한 용의자 4명은 공항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정남은 과거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여 아버지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는 주장이 있다. 그는 도쿄 신문 편집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이 "개혁과 시장 개방을 주장"했기 때문에 "자본주의자"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남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북한 지도부 붕괴 시 중국이 그를 김정은의 대체 지도자로 고려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암살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다음 해인 2012년부터 북한 정보당국의 최우선 목표였으며, 김정은은 이복형을 제거하라는 상시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2년에는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2.4.1. 암살 실행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경,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명의 여성에게 암살당했다. 이 여성들은 김정남의 얼굴에 무언가를 묻혔고, 김정남은 곧 사망하였다. 초기에는 보툴리눔 중독, 독극물 스프레이, 독침 등 다양한 사망 원인이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암살이 2012년부터 북한 정보당국의 최우선 목표였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남이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살려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사실도 공개하였다.
2017년 2월 19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암살을 실행한 인도네시아, 베트남 출신 여성 2명을 사주한 4명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발표하였다.
2017년 2월 24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의 시신에서 VX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두 여성이 차례로 김정남의 얼굴에 손을 댄 점으로 미루어 보아, 북한이 서로 만나면 VX가 되는 이원화 화학무기 형태의 VX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김정남 암살에 가담한 여성 2명은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2.4.2. 암살범과 재판
2017년 2월 13일,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명의 여성에게 VX 신경 작용제를 이용한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 여성들은 김정남의 얼굴에 VX 성분을 묻혔으며, 북한이 이원화 화학무기 형태의 VX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암살 실행에 가담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출신 여성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TV 몰래카메라에 참여하는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2019년 3월,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는 석방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이 '위험한 무기 또는 수단으로 고의적인 상해를 입힌' 혐의를 인정하여 3년 4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을 받아 5월 3일 석방되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사건 당일 출국한 북한 국적 남성 4명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 소속으로 추정되며, 인터폴을 통해 국제 수배되었으나, 북한으로 귀국 후 김정은의 명령으로 암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북한 당국은 사건 연루를 부인하고 있으나, 김정은이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4.3. 암살 배후와 원인
2017년 2월 13일,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두 명의 여성에게 얼굴을 공격당한 후 사망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암살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다음 해인 2012년부터 북한 정보당국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2년 4월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살려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낸 사실도 공개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암살을 실행한 인도네시아, 베트남 출신 여성 두 명을 사주한 일당 4명이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이라고 발표했다. 김정남의 시신에서는 VX 성분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북한이 서로 만나면 VX가 되는 이원화 화학무기 형태의 VX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정남의 암살 배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과거 개혁, 개방을 주장하여 김정일의 눈 밖에 났으며, 도쿄 신문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개혁과 시장 개방을 주장"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을 "자본주의자"로 여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북한-미국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외국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북한 외부 언론과 직접 대화한 유일한 북한 가족 구성원이었다.
김정남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붕괴될 경우 중국이 김정은을 대체할 인물로 고려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김정은은 이복형을 제거하라는 상시 명령을 내렸으며, 2012년에는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김정남은 그해 말 이복형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냈다.
2019년 6월 10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 미국 관리들을 인용하여 김정남이 CIA 정보원이었다고 보도했다. 안나 피필드의 책은 이보다 앞서 김정남이 해외에서 미국 정보 요원과 함께 촬영된 적이 있으며, 12만 달러의 현금이 든 배낭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3. 후계자설과 권력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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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후 김정남은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장남이었던 김정남은 조선의 유교 전통에 따라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사실상 첩의 소생이었고 김정일은 그의 존재를 숨겼다. 김정남은 후계 문제에 대해 "관심 없고, 시켜도 안 한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서방 언론에서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통해 후계에 관심이 없으며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2010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되자,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을 들어 역정보 가능성을 제기했다. CRS는 김정은의 권력 행사에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정부는 김정은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김정남을 더 선호했다는 주장이 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판했는데, 이는 생존 전략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김정남은 이복동생 김정은의 지시로 암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암살 이유는 탈북자의 망명 정부 구상과 관련 있다는 견해도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남 암살을 이유로 북한을 테러 지원 국가로 재지정했고, 2018년 미국 정부는 북한의 VX 가스 암살을 결론짓고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2018년, NHK는 주영캉이 장성택의 김정남 후계자 옹립 정보를 김정은에게 밀고하여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3.1. 초기 후계자 거론
2007년 8월 28일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러시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김정남의 복귀 소식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첫째 아들인 그가 다른 형제들을 권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정남은 이모 성혜랑의 1996년 미국 망명으로 그 위상이 크게 위협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는 유교적인 장자 상속 사회라는 사회 구조와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때 김정남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황장엽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 비서는 김 위원장 사후 장남인 김정남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장성택이 그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김정남은 "만약 내가 후계자라면 나와 마카오에서 만날 수 있었겠느냐"라며 "나는 그(김정일)의 아들일 뿐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을 밝힐 위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김정남이 서방 언론과 접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8년 김정남은 북한의 미래 지도자로서 사회안전성부의 고위직에 임명되었다. 그는 또한 정보기술(IT) 산업 개발을 담당하는 북한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01년 1월, 그는 아버지와 함께 상하이를 방문하여 중국 관계자들과 IT 산업에 대해 논의했다.
3.2. 김정은과의 권력 갈등
2009년 이후 김정남은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장성택, 김정은, 김옥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장성택은 김정남 대신 김정은을 지지하며 권력 핵심 요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했다.
2007년 8월 28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김정남의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가 다른 형제들을 권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정남은 성혜랑의 미국 망명으로 인해 위상이 크게 위협받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는 유교적인 장자 상속 사회라는 특성 때문에 김정남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황장엽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 비서는 장성택의 후원을 이유로 김정남의 후계 가능성을 높게 전망했다.
김정남은 자신이 후계자가 아니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입장을 밝힐 위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 언론과의 접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부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10년 김정일의 후계자로 3남 김정은이 내정되었지만,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정보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CRS의 래리 닉시 박사는 김정은의 권력 행사에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며,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김정은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김정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김정남을 더 선호했다는 주장이 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김정남의 실각은 2001년 도쿄 디즈니랜드 방문을 위한 위조 여권 사용 사건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김정남 자신은 개혁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쿄 신문 편집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스위스 교육 이후 개혁과 시장 개방을 주장하여 아버지로부터 "자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북한 지도부 붕괴 시 중국이 대체 지도자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12년 1월 14일, 김정남은 베이징에서 에어차이나 마카오행 항공편을 기다리던 중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확인해주며 혼자 여행한다고 말했다.
2012년에 출판된 일본 기자 고미 요지(五味洋治)의 책 나의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나에서 김정남은 김정은의 지도력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경험 부족과 어린 나이를 지적했다. 그는 또한 개혁 없이는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보 당국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복형을 제거하라는 상시 명령을 내렸고, 2012년 김정남은 암살 시도를 당한 후 이복형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보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이 5년 전부터 김정남 암살을 계획했으며, 암살 이유는 김정은의 "편집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이 김정남을 북한 최고 지도자로 옹립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정남 암살 1주년인 2018년 2월 13일, NHK는 주영캉이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는 정보를 김정은에게 밀고하여 장성택 처형과 김정남 암살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의 유교 전통에서는 장자가 계승하는 것이 관례였고,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장남이었기에 김정남도 후계자 후보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정남은 사실상 첩의 소생인 서장자(庶長子)였고, 김정일은 그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김정남은 후계 문제에 대해 "관심 없고, 시켜도 안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9년 6월 5일, 서방 언론에서는 김정남의 망명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김정남은 인터뷰를 통해 후계에 관심이 없으며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후계 결정에 대해 "내부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3.3. 장성택과의 관계
장성택은 강선제강소로 좌천되었으나,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도움으로 복권되었다. 이후 장성택은 김정남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옹립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김정남과 장성택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장성택은 김정남 대신 김정은을 지지하며 권력 핵심 요직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했다. 본래 김정남은 장성택, 김정은, 김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으로, 2009년 무렵에는 김정일의 병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2009년 4월 9일, 제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4. 가족 관계
| 구분 | 내용 |
|---|---|
| 증조부 | 김형직 (1894년 7월 10일 ~ 1926년 6월 5일) |
| 작은 증조부 | 김형록 (1895년 ~ 1904년), 김형권 (1905년 12월 4일 ~ 1936년 1월 12일) |
| 증조모 | 강반석 (1892년 5월 7일 ~ 1932년 7월 31일) |
| 조부 | 김일성 (1912년 4월 15일 ~ 1994년 7월 8일) |
| 작은 조부 | 김철주 (1916년 6월 12일 ~ 1935년 6월 14일), 김영주 (1920년 9월 21일 ~ 2021년 12월 13일) |
| 조모 | 김정숙 (1917년 12월 24일 ~ 1949년 9월 22일) |
| 외조부 | 성유경 (1905년 ~ 1982년 4월 13일) |
| 외조모 | 김원주 (1908년 12월 20일 ~ 1994년 11월 3일) |
| 아버지 | 김정일 (1941년 2월 16일 ~ 2011년 12월 17일) |
| 작은 아버지 | 김만일 (1944년 ~ 1947년) |
| 고모 | 김경희 (1946년 5월 30일 ~ ) |
| 고모부 | 장성택 (1946년 1월 22일 ~ 2013년 12월 22일) |
| 어머니 | 성혜림 (1937년 3월 6일 ~ 2002년 5월 18일) |
| 외삼촌 | 성일기 (1933년 ~ 2021년) |
| 이모 | 성혜랑 (1935년 ~ ) |
| 첫째 배우자 | 신정희 |
| 장남 | 김금솔 (1999년 ~ ) |
| 둘째 배우자 | 이혜경 (1970년 ~ ) |
| 서장자 | 김한솔 |
| 셋째 배우자 | 서영라 (1976년 7월 2일 ~ ) - 내연녀 |
| 넷째 배우자 | 장길선 |
| 서자 | 김이순 |
김정남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성혜림은 김정일과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진 네 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반대로 성혜림과의 관계를 비밀로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김정남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성혜랑에게 맡겨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게 했다.
김정남은 두 명의 아내와 한 명의 정부를 두었으며, 적어도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첫 번째 아내 신정희(1980년경 출생)는 베이징 북쪽 교외에 있는 용궁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두 번째 아내 이혜경(1970년경 출생), 아들 김한솔(1995년 출생), 딸 설휘(1998년경 출생)는 마카오의 12층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그의 정부이자 전 고려항공 승무원이었던 서영라(1980년경 출생)도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