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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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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창녕군은 경상남도 북단에 위치한 군으로, 가야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을 격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우포늪, 부곡온천 등 관광 명소와 다양한 교육 기관을 갖추고 있다. 행정 구역은 2읍 1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교통 시설로는 고속도로와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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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위치
위치 (대한민국)
기본 정보
한글 표기창녕군
한자 표기昌寧郡
로마자 표기Changnyeong-gun
맥큔-라이샤워 표기Ch'angnyeong-gun
관할 국가대한민국
속한 지역영남
방언경상 방언
면적533.09 km²
인구 (2024년 9월)56,246 명
가구 (2024년 9월)27,007
인구 밀도140.1 명/km²
행정 구역2읍, 12면
창녕군 엠블럼
창녕군 깃발
행정
상위 자치 단체경상남도
하위 행정 구역2읍 12면
행정 구역 분류 코드38330
군수성낙인 (국민의힘)
국회의원박상웅(국민의힘,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군청 소재지창녕읍 군청길 1 (교리 1)
상징
군목은행나무
군화가시연꽃
군조따오기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창녕군청 홈페이지

2. 역사

창녕 지역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영남 내륙 평야 지역 중 하나로, 경지가 많고 땅이 비옥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거주해왔다. 가야시대 유물부터 출토되고 있으며, 신라 시대에는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이라 불렸다. 555년(진흥왕 16년)에 하주(下州)를 두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고, 757년 경덕왕이 화왕군(火王郡)으로 개명하였다. 이 때, 현효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940년 고려 태조가 현재의 이름인 창녕군으로 개명하였고, 현효현은 현풍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창산(昌山) 또는 하산(夏山)이라고도 불렸다. 1018년 창녕군과 현풍현이 모두 밀성군(밀양)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 창녕현에 감무가 파견되어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창녕은 오랜 역사에 걸맞게 많은 충신과 대학자들을 배출한 학문의 고장이다.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17] 중 한 명인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 사육신 성삼문의 본관이 창녕이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선생의 아들인 김언상 선생이 창녕 고암에 거하였으며,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 선생이 창녕현감으로 부임하여 지역인 성천기(成天祺)[18]와 함께 8서재[19]를 지어 학문을 고양하기도 했다. 조선 4대 성리학파 중 남명학파와 우계학파의 창시자인 남명(南冥) 조식과 우계(牛溪) 성혼의 본관이 창녕이다.

창녕을 비롯한 영남우도 지역민들은 의(義)와 예(禮)를 숭상하는 기질이 강하였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으로 나타난다. 조선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를 비롯하여 창녕의 성천희(成天禧), 합천정인홍, 고령의 김면 등이 대표적인 이 지역 의병장들이다. 곽재우와 성천희는 창녕지역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고, 곽재우가 여생을 마친 곳이 현재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있는 망우정[20]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낙동강·남강 도하를 저지하고, 왜군의 낙동강 병참선을 차단하여 임진왜란 초기 열세에 몰린 조선에 승리의 발판을 제공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21] 또한 임진년 왜군에게 빼앗긴 국토 중 최초로 수복한 곳이 바로 창녕 영산[22] 현풍현이다.[23] 정유재란 시에는 가토 기요마사모리 데루모토가 이끄는 왜 우군 6만명과 최초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 창녕이다. 성천희의 건의로[24] 창녕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와 성안의(成安義)[25]의 지휘로 의병과 승병 2천명이 목숨을 건 항전으로[26] 왜 우군 6만명을 막아내 왜군의 경상도를 통한 북진을 차단하여 정유재란의 판도를 바꾸었다. 정묘호란·병자호란 당시에도 밀양의 국담(菊潭) 박수춘 선생이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인조의 항복으로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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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호란 이후 호란을 야기한 인조를 대신하여 광해군을 복립시키기 위해 창녕인 성지도(成至道), 고령인 박희집(朴禧集), 합천인 정한(鄭澣) 등이 광해군 복립운동을 주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세기말 일제의 침략 시에도 1915년 묘지계출 반대운동(성근호), 항일의병 (노승용, 노응규, 우재룡), 항일 유림운동(노상직, 노도용, 성순영, 이정후, 강신혁), 3.1 운동 창녕 24인 결사대[27] 등 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우석 성재경 선생이 농업 근대화를 위해 일제강점기 양파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해 재배 성공한 지역이다.

근대 시기 창녕군은 행정구역 변화를 겪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대구부 창녕군으로 개편되었고,[28] 1896년 8월 4일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개편되었다.[29] 1914년 4월 1일 영산군과 통폐합되었으며[30], 1918년 읍내면이 창녕면으로, 1936년 남곡면이 남지면으로 개칭되었다.[31] 1955년 7월 1일 창락면이 창녕면에 합면되었고,[32] 1960년 1월 1일 창녕면이 창녕읍으로,[33] 1963년 1월 1일 남지면이 남지읍으로 승격되었다.[34]

1914년 통폐합 당시 행정구역 변동은 다음과 같다.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창녕군 성상면(城上面)·성하면(城下面)성산면
창녕군 고암면·월미면(月未面)고암면
창녕군 읍내면(邑內面)·고암면 일부창녕읍
창녕군 창락면(昌樂面)·어촌면 일부창녕읍
창녕군 대초면(大招面)·지포면(池浦面)대지면
창녕군 대곡면(大谷面)·합산면(合山面)·개복면(介福面)대합면
창녕군 유장면(遊長面)·어촌면(漁村面) 일부유어면
창녕군 이방면·오야면(五也面)이방면
창녕군 남곡면(南谷面)·영산군 도사면(道沙面)남지읍
영산군 읍내면(邑內面)영산면
영산군 장가면(丈加面)·마고면(麻姑面)장마면
영산군 길곡면길곡면
영산군 부곡면부곡면
영산군 도천면도천면
영산군 계성면계성면


2. 1. 고대

창녕 지역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영남 내륙 평야 지역 중 하나로 경지가 많고 땅이 비옥하여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하고 거주하여 가야시대 유물부터 출토되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이었다. 555년(진흥왕 16년)에 하주(下州)를 두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다. 757년 경덕왕이 화왕군(火王郡)으로 개명하였다. 이 때, 현효현을 속현으로 두고 있었다. 940년 고려 태조가 현재의 이름인 창녕군으로 개명하였다. 현효현은 현풍현으로 개칭되었다.

2. 2. 중세

신라 시대에 창녕 지역은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이라 불렸다. 555년(진흥왕 16년)에 하주(下州)를 설치했다가 565년에 폐지했다. 757년 신라 경덕왕이 화왕군(火王郡)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효현(玄驍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940년 고려 태조가 현재의 이름인 창녕군으로 개명했으며, 현효현은 현풍현(玄風縣)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는 창산(昌山) 또는 하산(夏山)이라고도 불렸다. 1018년 창녕군과 현풍현이 모두 밀성군(밀양)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 창녕현에 감무를 파견하여 주현으로 승격했다.

창녕은 오랜 역사만큼 많은 충신과 대학자를 배출한 학문의 고장이다.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17] 중 한 명인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의 본관이 창녕이다.

2. 3. 조선

창녕 지역은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영남 내륙 평야 지역 중 하나로 경지가 많고 땅이 비옥하여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하고 거주하여 가야시대 유물부터 출토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창산(昌山) 또는 하산(夏山)이라고도 불렸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창녕은 많은 충신과 대학자들을 배출한 지역이며 학문의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와 같이 경상남·북도로 행정지역을 나눈 것이 아니라 낙동강을 중심으로 경상좌도(慶尙左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로 나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좌(江左, 낙동강 왼편-현재 안동지역), 강안(江岸, 낙동강 인접지역), 강우(江右, 낙동강 오른편-현재 지리산 인근지역)으로 나누어지고 창녕은 강우와 강안을 통상 지칭하는 경상우도 지역 문화권에 속하였다. 특히, 성주, 고령, 현풍, 창녕, 영산, 의령, 합천, 밀양 등 강안지역은 농지가 많고 비옥하여 경제적으로 풍요하여 인재가 많고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 충신 두문동 72현[17] 중 한 명인 정절공(貞節公) 성사제(成思齊), 사육신 성삼문의 관향이 창녕이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선생의 아들인 김언상 선생이 창녕 고암에 거하였으며, 문목공(文穆公) 한강(寒岡) 정구 선생이 창녕현감으로 부임하여 지역인 성천기(成天祺)[18]와 함께 8서재[19]를 지어 더욱 학문을 고양한 역사가 있다. 이와 같은 학문의 뿌리로 인해 조선 4대 성리학파인 남명학파, 퇴계학파, 우계학파, 율곡학파 중 두 학파 남명학파와 우계학파의 창시자인 남명(南冥) 조식과 우계(牛溪) 성혼의 본관이 바로 창녕이다.

창녕을 비롯한 강우·강안의 영남우도 지역민들은 의(義)와 예(禮)를 숭상하는 기질이 강하였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으로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를 비롯하여 창녕의 성천희(成天禧), 합천정인홍, 고령의 김면 등이 대표적 이 지역 의병장들이다. 특히, 곽재우와 성천희는 창녕지역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고 곽재우가 여생을 마친곳이 현재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있는 망우정[20]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낙동강·남강을 도하하여 전라도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이 지역 의병들이 낙동강·남강을 방어선으로 하는 항전으로 저지하고 왜군의 낙동강 병참선을 차단하여 임진왜란 초기 열세에 몰린 조선에 승리로의 반환의 단초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으며[21], 임진년 왜군에게 빼앗긴 국토 중 최초로 수복한 곳이 바로 창녕 영산[22] 현풍현이다.[23] 정유재란 시에도 전라도를 통해 북상하려는 왜 좌군과 경상도를 통해 북상하려는 왜 우군 중 가토 기요마사모리 데루모토가 이끄는 왜 우군 6만명과 최초의 전투가 일어난 곳이 바로 창녕이다. 성천희의 건의로[24] 창녕과 인근 지역민들의 힘으로 쌓은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성안의(成安義)[25]의 지휘로 의병 1천명, 영산 보림사 스님들을 비롯한 승병 1천명 총 2천명의 의·승병들이 모두 목숨을 건 항전으로[26] 왜 우군 6만명을 막아내 왜군의 경상도를 통한 북진을 원천 차단하여 정유재란의 판도를 바꾼 구국의 역사가 있다. 정묘호란·병자호란 당시에도 밀양의 국담(菊潭) 박수춘 선생이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인조의 항복으로 해산하였다. 양대호란 이후 호란을 야기한 인조를 대신하여 유능한 광해군을 복립시키기 위해 창녕인 성지도(成至道), 고령인 박희집(朴禧集), 합천인 정한(鄭澣) 등이 광해군 복립운동을 주도하였으나 실패한 역사가 있으며, 19세기말 일제의 침략 시에도 1915년 묘지계출 반대운동(성근호), 항일의병 (노승용, 노응규, 우재룡), 항일 유림운동(노상직, 노도용, 성순영, 이정후, 강신혁), 3.1 운동 창녕 24인 결사대[27] 등 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우석 성재경 선생이 농업 근대화를 위해 일제강점기 양파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해 재배 성공한 지역이다. 그리고, 창녕을 비롯한 강안·강우 지역 인물들은 현대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에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창녕군 성상면(城上面)성산면가복리, 대산리, 방리, 연당리, 운봉리
창녕군 성하면(城下面)대견리, 냉천리, 정녕리, 후천리
창녕군 고암면고암면간상리, 대암리, 억만리, 원촌리, 중대리
창녕군 월미면(月未面)감리, 계상리, 우천리
창녕군 읍내면(邑內面)읍내면교동, 교상동, 교하동, 말흘리, 송현동, 술정리, 조산리, 직교리
창녕군 고암면도야리, 하리
창녕군 창락면(昌樂面)창락면신촌리, 여초리, 옥천리, 용석리, 탄하리, 퇴천리
창녕군 어촌면외부리
창녕군 대초면(大招面)대지면구미리, 용소리, 본초리, 창산리, 효정리
창녕군 지포면(池浦面)모산리, 석리, 왕산리
창녕군 대곡면(大谷面)대합면내울리, 대곡리, 도개리, 소야리, 신당리, 주매리, 퇴산리
창녕군 합산면(合山面)대동리, 등지리, 목단리, 십이리, 이방리, 합리
창녕군 개복면(介福面)모전리, 장기리, 평지리
창녕군 유장면(遊長面)유어면가항리, 대대리, 미구리, 부곡리, 선소리, 세진리
창녕군 어촌면(漁村面)광산리, 진창리, 풍조리
창녕군 이방면이방면모곡리, 상리, 석리, 성산리, 옥천리, 현창리
창녕군 오야면(五也面)거남리, 동산리, 등림리, 송곡리, 안리, 장천리, 초곡리
창녕군 남곡면(南谷面)남곡면고곡리, 대곡리, 반포리, 수개리, 시남리, 아지리, 월하리, 칠현리
영산군 도사면(道沙面)남지리, 마산리, 용산리, 성사리, 신전리, 학계리
영산군 읍내면(邑內面)영산면교리, 구계리, 동리, 봉암리, 서리, 성내리, 신제리, 월령리, 죽사리
영산군 장가면(丈加面)장마면대봉리, 동정리, 산지리, 신구리, 장가리, 초곡리
영산군 마고면(麻姑面)강리, 유리
영산군 길곡면길곡면길곡리, 마천리, 오호리, 증산리
영산군 부곡면부곡면거문리, 구산리, 노리, 부곡리, 비봉리, 사창리, 수다리, 온정리, 청암리, 학포리
영산군 도천면도천면일리, 도천리, 논리, 우강리, 덕곡리, 어만리, 송진리, 예리
영산군 계성면계성면봉산리, 광계리, 신당리, 사리, 명리, 계성리



: 15면 - 읍내면, 고암면, 성산면,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대지면, 창락면, 남곡면, 장마면, 부곡면, 영산면, 길곡면, 도천면, 계성면



영산현(靈山縣)은 1631년에 설치되었다. 1637년에는 창녕현이 영산현에 합쳐졌다.

2. 4. 임진왜란과 창녕

창녕을 비롯한 낙동강 우측의 영남우도 지역민들은 의(義)와 예(禮)를 숭상하는 기질이 강했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으로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를 비롯하여 창녕의 성천희(成天禧), 합천정인홍, 고령의 김면 등이 대표적인 이 지역 의병장들이다.[17] 특히, 곽재우와 성천희는 창녕지역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고 곽재우가 여생을 마친곳이 현재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있는 망우정이다.[20]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낙동강·남강을 도하하여 전라도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이 지역 의병들이 낙동강·남강을 방어선으로 하는 항전으로 저지하고 왜군의 낙동강 병참선을 차단하여 임진왜란 초기 열세에 몰린 조선에 승리로의 반환의 단초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으며[21], 임진년 왜군에게 빼앗긴 국토 중 최초로 수복한 곳이 바로 창녕 영산[22] 현풍현이다.[23]

정유재란 시에도 전라도를 통해 북상하려는 왜 좌군과 경상도를 통해 북상하려는 왜 우군 중 가토 기요마사모리 데루모토가 이끄는 왜 우군 6만명과 최초의 전투가 일어난 곳이 바로 창녕이다. 성천희의 건의로[24] 창녕과 인근 지역민들의 힘으로 쌓은 창녕 화왕산성에서 의병장 곽재우와 성안의(成安義)[25]의 지휘로 의병 1천명, 영산 보림사 스님들을 비롯한 승병 1천명 총 2천명의 의·승병들이 모두 목숨을 건 항전으로[26] 왜 우군 6만명을 막아내 왜군의 경상도를 통한 북진을 원천 차단하여 정유재란의 판도를 바꾼 구국의 역사가 있다.

2. 5. 근대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대구부 창녕군으로 개편하였다.[28] 1896년 8월 4일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개편하였다.[29]

1914년 4월 1일 영산군(靈山郡)과 통폐합하여 15개 면이 설치되었다.[30]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창녕군 성상면(城上面), 성하면(城下面)성산면가복리, 대산리, 방리, 연당리, 운봉리, 대견리, 냉천리, 정녕리, 후천리
창녕군 고암면(高岩面), 월미면(月未面)고암면간상리, 대암리, 억만리, 원촌리, 중대리, 감리, 계상리, 우천리
창녕군 읍내면(邑內面), 고암면읍내면교동, 교상동, 교하동, 말흘리, 송현동, 술정리, 조산리, 직교리, 도야리, 하리
창녕군 창락면(昌樂面), 어촌면창락면신촌리, 여초리, 옥천리, 용석리, 탄하리, 퇴천리, 외부리
창녕군 대초면(大招面), 지포면(池浦面)대지면구미리, 용소리, 본초리, 창산리, 효정리, 모산리, 석리, 왕산리
창녕군 대곡면(大谷面), 합산면(合山面), 개복면(介福面)대합면내울리, 대곡리, 도개리, 소야리, 신당리, 주매리, 퇴산리, 대동리, 등지리, 목단리, 십이리, 이방리, 합리, 모전리, 장기리, 평지리
창녕군 유장면(遊長面), 어촌면(漁村面)유어면가항리, 대대리, 미구리, 부곡리, 선소리, 세진리, 광산리, 진창리, 풍조리
창녕군 이방면(梨房面), 오야면(五也面)이방면모곡리, 상리, 석리, 성산리, 옥천리, 현창리, 거남리, 동산리, 등림리, 송곡리, 안리, 장천리, 초곡리
창녕군 남곡면(南谷面), 영산군 도사면(道沙面)남곡면고곡리, 대곡리, 반포리, 수개리, 시남리, 아지리, 월하리, 칠현리, 남지리, 마산리, 용산리, 성사리, 신전리, 학계리
영산군 읍내면(邑內面)영산면교리, 구계리, 동리, 봉암리, 서리, 성내리, 신제리, 월령리, 죽사리
영산군 장가면(丈加面), 마고면(麻姑面)장마면대봉리, 동정리, 산지리, 신구리, 장가리, 초곡리, 강리, 유리
영산군 길곡면(吉谷面)길곡면길곡리, 마천리, 오호리, 증산리
영산군 부곡면(釜谷面)부곡면거문리, 구산리, 노리, 부곡리, 비봉리, 사창리, 수다리, 온정리, 청암리, 학포리
영산군 도천면(都泉面)도천면일리, 도천리, 논리, 우강리, 덕곡리, 어만리, 송진리, 예리
영산군 계성면(桂城面)계성면봉산리, 광계리, 신당리, 사리, 명리, 계성리



1918년 읍내면을 창녕면으로 개칭하였다. 1936년 4월 1일 남곡면을 남지면으로 개칭하였다.[31] 1955년 7월 1일 창락면을 창녕면에 합면하였다.[32] 1960년 1월 1일 창녕면을 창녕읍으로 승격하였다.[33] 1963년 1월 1일 남지면을 남지읍으로 승격하였다.[34]

2. 6. 현대



구 행정구역신 행정구역
창녕군 성상면(城上面), 성하면(城下面)성산면
창녕군 고암면(高岩面), 월미면(月未面)고암면
창녕군 읍내면(邑內面), 고암면 일부창녕읍
창녕군 창락면(昌樂面), 어촌면 일부창녕읍
창녕군 대초면(大招面), 지포면(池浦面)대지면
창녕군 대곡면(大谷面), 합산면(合山面), 개복면(介福面)대합면
창녕군 유장면(遊長面), 어촌면(漁村面) 일부유어면
창녕군 이방면(梨房面), 오야면(五也面)이방면
창녕군 남곡면(南谷面), 영산군 도사면(道沙面)남지읍
영산군 읍내면(邑內面)영산면
영산군 장가면(丈加面), 마고면(麻姑面)장마면
영산군 길곡면(吉谷面)길곡면
영산군 부곡면(釜谷面)부곡면
영산군 도천면(都泉面)도천면
영산군 계성면(桂城面)계성면


  • 1918년 읍내면을 창녕면으로 개칭하였다.
  • 1936년 4월 1일 남곡면을 남지읍으로 개칭하였다.[31]
  • 1955년 7월 1일 창락면을 창녕면에 합면하였다.[32] (14면)
  • 1960년 1월 1일 창녕면을 창녕읍으로 승격하였다.[33] (1읍 13면)
  • 1963년 1월 1일 남지면을 남지읍으로 승격하였다.[34] (2읍 12면)
  • 1971년 남지읍 고곡출장소를 설치하였다.
  • 19세기 말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1915년 묘지계출 반대운동(성근호), 항일의병 (노승용, 노응규, 우재룡), 항일 유림운동(노상직, 노도용, 성순영, 이정후, 강신혁), 3.1 운동 창녕 24인 결사대[27]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배출되었다.
  • 우석 성재경 선생이 농업 근대화를 위해 일제강점기 양파를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해 재배 성공한 지역이다.

3. 지리

경상남도 중앙 북단에 위치한 창녕군은 북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경상북도 고령군과 접하고 있다. 동쪽은 산악을 경계로 경상북도 청도군경상남도 밀양시가, 서남쪽은 낙동강을 사이로 합천군, 의령군이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함안군, 창원시와 접하고 있다.[35]

우포늪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포늪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나, 여름에는 평균 23.9°C, 겨울에는 평균 영하 1.2°C 정도로 한서의 차이가 심하며, 여름에는 가뭄과 수해가 잦다.[35]

3. 1. 우포늪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 늪이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 있으며 습지 면적은 약 2,313km2(70만 평)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다.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 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 3월 2일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가 되었으며, 1999년 2월 8일 환경부에 의해 습지보호지역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36]

우포늪


창녕군에 위치한 우포늪은 한국에서 가장 큰 늪지이다. 이 늪지는 약 1억 4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군 유어, 이방, 대합, 대지면 등에 걸쳐 있으며, 면적은 231만 m2를 넘고, 둘레는 7.5km에 달한다. 멸종위기 식물인 가시연꽃을 포함하여 340종 이상의 식물과 62종의 야생 조류, 28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우포늪은 일제강점기193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12월 3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자, '창녕의 논병아리 서식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1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73년 7월 19일 철새 수 감소로 인해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었다. 2001년 1월 13일, 생물상의 지리적, 경관적 가치를 재평가한 결과, 습지보호지역 제524호로 지정되었다.[12] 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이다.(대한민국의 람사르 협약 등록 목록 참조)[11]

3. 2. 부곡온천

1973년 부곡면 거문리에 온천 휴양지가 개발되었다. 이 해에 덕암산 아래에서 천연 온천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48개의 지열정에서 하루 3,000톤 이상의 온천수가 나온다. 1977년 부곡온천은 고급 호텔, 레크리에이션 시설, 공원, 조림 등을 갖춘 국립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가장 유명한 호텔 및 스파 중 하나는 부곡하와이로, 워터파크와 놀이공원, 대형 호텔을 갖춘 리조트 스타일 시설이다.[37]

4. 행정 구역

창녕군의 행정 구역은 2읍 12면, 139리 775반으로 구성되어 있다.[38] 면적은 532.72km2이다.[39] 2023년 7월 말을 기준으로 인구는 32,134세대, 57,617명이다.[40]

읍·면한자세대인구면적(km2)행정구역 지도
창녕읍昌寧邑7,94315,92861.42
남지읍南旨邑6,08411,74355.23
고암면高岩面1,0721,74644.48
성산면城山面1,0061,55547.03
대합면大合面2,3023,64746.56
이방면梨房面1,4612,33146.60
유어면遊漁面1,0931,70333.29
대지면大池面1,3432,36517.87
계성면桂城面1,3842,19527.86
영산면靈山面2,7995,07429.36
장마면丈麻面1,1261,82429.99
도천면都泉面1,5322,58725.45
길곡면吉谷面9081,46227.57
부곡면釜谷面2,0813,45727.57



읍·면법정리
창녕읍신촌리, 말흘리, 여초리, 토천리, 옥천리, 외가마리, 용석리, 조산리, 송현리, 직교리, 탐하리, 도야리, 교하리, 교상리, 술정리, 교리, 하리
남지읍남지리, 마산리, 학계리, 용산리, 신전리, 성사리, 아지리, 고곡리, 수개리, 시남리, 질현리, 반포리, 대곡리, 월하리
고암면중대리, 대암리, 감리, 간상리, 계상리, 억만리, 원촌리, 우천리
성산면후천리, 정녕리, 운봉리, 대견리, 가복리, 냉천리, 대산리, 방리, 연당리
대합면십이리, 대동리, 등지리, 모전리, 소야리, 주매리, 도개리, 대곡리, 내사리, 장기리, 신당리, 토산리, 평지리, 목단리, 이방리, 합리
이방면안리, 동산리, 석리, 현창리, 성산리, 상리, 모곡리, 옥천리, 초곡리, 거남리, 송곡리, 장천리, 등림리
유어면가마골리, 미구리, 가항리, 세진리, 대대리, 선소리, 진창리, 광산리, 풍조리
대지면왕산리, 모산리, 석리, 창산리, 효정리, 본조리, 구미리, 용주리
장마면강리, 유리, 장가리, 초곡리, 산지리, 신귀리, 동정리, 대봉리
부곡면부곡리, 거문리, 사창리, 온정리, 청암리, 노리, 학포리, 구산리, 비봉리, 수다리
영산면구계리, 교리, 성내리, 동리, 서리, 죽사리, 신제리, 월령리, 봉암리
길곡면증산리, 오호리, 길곡리, 마천리
도천면도천리, 덕곡리, 일리, 예리, 어만리, 논리, 우강리, 송진리
계성면명리, 사리, 신당리, 계성리, 광계리, 봉산리


5. 군청

현재 창녕군청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위치하고 있다.

6. 관광


창녕군 일대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이다. 약 1억 40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군 유어·이방·대합·대지면 등 231만m2에 걸쳐 있고, 둘레는 7.5km에 전체 면적은 70만여 평, 가로 2.5km, 세로 1.6km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로 꼽히는 이곳에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가시연꽃 등 340여 종의 식물과 62종의 조류, 28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자 그 해 12월 3일 '창녕 백조 도래지'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73년 7월 19일 찾아드는 철새의 수가 감소한 것을 이유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지되었다. 그러나 우포늪 생물 지리적ㆍ경관적 가치를 다시 평가, 2011년 1월 13일 문화재청은 '창녕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을 국가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재지정했다[42]

부곡면 거문리에 위치한 온천이다. 1973년 덕암산 밑에서 자연 황천의 온천이 발견된 후, 48개 온천공에서 1일 3000ton의 풍부한 온천수가 나오고 있다. 주변 일대 경관이 아름다워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고급호텔과 여관, 위락 시설, 공원 녹지 등이 갖추어진 국내 제일의 온천 지구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 '''가마야 온천'''

7. 교육 기관

창녕군에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등 다양한 교육 기관이 있다.


7. 1. 고등학교

7. 2. 중학교

7. 3. 초등학교

8. 교통

창녕군에는 여러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함양울산고속도로창녕 분기점에서 교차한다. 중부내륙고속도로에는 창녕 나들목, 영산 나들목, 남지 나들목이 있다.

또한, 국도 5호선, 국도 20호선, 국도 24호선, 국도 79호선이 지난다.

8. 1. 고속도로

8. 2. 버스

창녕군에서는 영신버스가 농어촌버스 노선 37개를 운행하고 있다.[1]

8. 2. 1. 농어촌버스

영신버스에서 농어촌버스 노선 37개를 운행하고 있다.[1]

8. 2. 2. 시외버스

9. 출신 인물

10. 자매 도시

국가도시
대한민국창원시
대한민국순창군
대한민국군포시
중국상지
일본센다이


참조

[1] 웹사이트 Population statistics https://jumin.mois.g[...] 2024-01-01
[2] 법령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05-26
[3] 법령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08-04
[4] 법령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
[5] 법령 도령 제2호 1936-03-03
[6] 법령 법률 제360호 지방자치단체의폐치분합및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55-06-29
[7] 법령 법률 제538호 읍설치에관한법률 1960-01-01
[8] 법령 법률 제1177호 읍설치에관한법률 1962-11-21
[9] 웹사이트 2009 Changnyeong population statistics http://www.cng.go.kr[...] 2011-07-21
[10] 웹사이트 Changnyeong population https://web.archive.[...] 2011-07-12
[11] 뉴스 (경남)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며 쉴 수 있는 곳은? http://myfriday.join[...] Friday 2006-11-27
[12] 뉴스 창녕 우포늪 천연기념물 재지정 http://news.naver.co[...] 연합신문 2011-01-13
[13] 웹사이트 Hwawang Mountain http://moamt.co.kr/x[...]
[14] 웹사이트 주민등록 인구통계 - 행정안전부 https://jumin.mois.g[...] 2024-01-03
[15] 웹인용 2023년 7월 주민등록 인구 https://jumin.mois.g[...]
[16] 웹인용 2023년 7월 주민등록 인구 https://jumin.mois.g[...]
[17] 서적 두문동 72현
[18] 서적 덕계 오건
[19] 서적 한강 8서재
[20] 서적 곽재우의 호 망우당
[21] 서적 임진년 선조 교지 망우선생문집
[22] 서적 영산현
[23] 서적 임진왜란 주요 낙동강 좌현 탈환 전투
[24] 서적 조선왕조실록 선조 82권 11월 20일 조선왕조실록
[25] 서적 성안의
[26] 서적 화왕산성 전투 망우선생문집
[27] 서적 3.1운동 창녕 24인 결사대
[28] 법령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05-26
[29] 법령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08-04
[30] 법령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
[31] 법령 도령 제2호 1936-03-03
[32] 법령 법률 제360호 지방자치단체의폐치분합및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55-06-29
[33] 법령 법률 제538호 읍설치에관한법률 1960-01-01
[34] 법령 법률 제1177호 읍설치에관한법률 1962-11-21
[35] 웹사이트 창녕 기본 현황, 지리, 기후 http://www.cng.go.kr[...] 2011-07-22
[36] 웹사이트 우포늪 http://tour.cng.go.k[...] 창녕군 문화관광 2011-07-20
[37] 웹사이트 부곡온천 http://tour.cng.go.k[...] 창녕군 문화관광 2011-07-20
[38] 웹인용 창녕군 통계연보 2009 http://www.cng.go.kr[...] 2011-07-14
[39]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www.cng.go.kr[...] 2011-07-02
[40] 웹인용 창녕군청 월별인구 통계 https://jumin.mois.g[...] 2023-08-07
[41] 뉴스 (경남)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며 쉴 수 있는 곳은? http://myfriday.join[...] Friday 2006-11-27
[42] 뉴스 창녕 우포늪 천연기념물 재지정 https://news.naver.c[...] 연합신문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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