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 (남제)
1. 개요
소부(蕭敷)는 남제의 황족으로, 소순지의 차남이다. 남제에서 후군, 장사왕행참군, 태자사인, 태자세마 등을 역임했으며, 녕삭장군을 거쳐 여릉왕자의참군을 지냈다. 497년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동생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한 후 시중, 사공으로 추증되었고, 영양군왕으로 추봉되어 영양소왕으로 시호되었다. 부인은 영양경태비 왕씨이며, 자녀로는 소백유와 소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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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년 출생 -
무령왕
무령왕은 501년부터 523년까지 백제를 다스린 제25대 국왕으로, 왕권 강화, 군사적 활동, 양나라 및 일본과의 교류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능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제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제 (남조) -
남제
남제는 소도성이 유송으로부터 선양받아 건국한 남조 시대의 왕조로, 고제와 무제 시대에는 안정적인 통치를 보였으나 황족 간의 권력 다툼과 폭정으로 혼란해져 소연에 의해 멸망했다. -
제 (남조) -
소승지
소승지는 남조 송나라의 무장으로, 남제 고제의 아버지이며, 북위의 침공을 막고 구지 세력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사후 추증되었고, 아들 소도성이 남제를 건국한 후 선황제로 추존되었다. -
양 (남조) -
후량 (남조)
후량은 6세기 중엽 소찰이 세운 국가로, 강릉 주변을 통치하며 북방 왕조의 제후국 역할을 수행했지만 양나라 문화를 계승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
양 (남조) -
후경의 난
후경의 난은 548년에서 552년 사이 후경이 양 무제를 배반하고 일으킨 반란으로, 건강 함락과 양 무제 사망 등 양나라에 큰 혼란을 야기하며 강남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남조의 쇠퇴를 가속화했다.
2. 생애
소순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 남제 관직 ====
소부는 남제에서 후군(後軍), 장사왕행참군(長沙王行參軍), 태자사인(太子舍人), 태자세마(太子洗马)를 역임했다. 남해왕우(南海王友), 단양윤승(丹陽尹丞),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 건위장군(建威將軍), 수군내사(随郡内史)를 거쳐 녕삭장군(寧朔將軍)으로 승진했으며, 여릉왕자의참군(廬陵王諮議參軍)을 역임했다.
소부는 제나라의 장사왕 소황 밑에서 행참군을 처음 맡았다. 행참 챔피언 정로이부 군사를 지냈고, 입조하여 태자사인으로 전임되었다. 태자세마로 승진했고, 남해왕 소자한의 왕우를 지냈으며, 단양윤승으로 출향했다. 입조하여 태자중사인으로 들어가, 건위장군·수군내사로 임명되었다. 녕삭장군으로 진급하고, 여릉왕 소보원 밑에서 자의참군으로 소환되었다.
==== 사망 ====
건무 4년 (497년) 8월 6일,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후 ====
502년 동생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하면서 시중(侍中), 사공(司空)이 추증되었다. 영양군왕(永陽郡王)으로 추봉되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시호는 영양소왕(永陽昭王)이다.
2.1. 남제 관직
소부(蕭敷)는 남제에서 후군(後軍), 장사왕행참군(長沙王行參軍), 태자사인(太子舍人), 태자세마(太子洗马)를 역임했다. 남해왕우(南海王友), 단양윤승(丹陽尹丞), 태자중사인(太子中舍人), 건위장군(建威將軍), 수군내사(随郡内史)를 거쳐 녕삭장군(寧朔將軍)으로 승진했으며, 여릉왕자의참군(廬陵王諮議參軍)을 역임했다.
소부는 제나라의 장사왕 소황 밑에서 행참군을 처음 맡았다. 행참 챔피언 정로이부 군사를 지냈고, 입조하여 태자사인으로 전임되었다. 태자세마로 승진했고, 남해왕 소자한의 왕우를 지냈으며, 단양윤승으로 출향했다. 입조하여 태자중사인으로 들어가, 건위장군·수군내사로 임명되었다. 녕삭장군으로 진급하고, 여릉왕 소보원 밑에서 자의참군으로 소환되었다.
2.2. 사망
소부(蕭敷)는 497년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동생인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한 뒤 시중(侍中), 사공(司空)이 추증되었고, 영양군왕(永陽郡王)으로 추봉되었으며, 영양소왕(永陽昭王)으로 추시되었다.
2.3. 사후
502년 동생 소연이 양나라를 건국하면서 시중(侍中), 사공(司空)이 추증되었다. 영양군왕(永陽郡王)으로 추봉되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시호는 영양소왕(永陽昭王)이다.
3. 가족 관계
3.2. 자녀
* 영양공왕 소백유
* 소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