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순지
1. 개요
소순지는 남북조 시대 유송과 남제의 인물로, 소도성의 종제로 소도성을 보좌하며 군사적 활동을 펼쳤다. 남제 건국에 기여하여 임상현후에 봉해졌으며, 양주 자사를 역임했다. 남제 무제 즉위 후에는 시중, 위위, 태자첨사 등을 지냈으며, 영군장군과 단양윤을 역임했다. 형주 자사 소자향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다. 사후에는 진북장군으로 추증되었고, 양나라가 건국된 후 태조 문황제로 추존되었다. 슬하에 11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셋째 아들 소연은 양 무제가 되었다.
| 이름 | 소순지 (蕭順之) |
|---|---|
| 작위 | 임상현후 (臨湘縣侯) |
| 시호 | 문황제 (文皇帝) |
| 묘호 | 태조 (太祖) |
| 출생지 | 유송 난릉군 중도리현 (현재의 장쑤성 창저우시 우진구) |
|---|---|
| 사망지 | 건강 (남제) (현재의 난징시) |
| 배우자 | 장부인 (張夫人) |
| 자녀 | 소역 소부 (蕭敷) 소연 (양 무제) 소장 (蕭暢) 의흥공주 (義興公主) 희안공주 (熙安公主) 소융 (蕭融) 소홍 (蕭宏) 소수 (蕭秀) 소위 (蕭偉) 소단 (蕭দ্যাল) 9번째 아들 소회 (蕭恢) |
| 아버지 | 소도사 (萧道赐) |
|---|---|
| 어머니 | 소도사의 첩 |
| 추존 작위 | 즉위 전: 임상헌후 (臨湘縣侯) 즉위 후: 문황제 (文皇帝) |
|---|
| 묘소 | 건릉 (建陵) |
|---|---|
| 존호 | 문황제 (文皇帝) |
| 가문 | 난릉 소씨 (蘭陵 蕭氏) |
|---|---|
| 직업 | 장군 |
-
제 (남조)의 시중 -
남제 명제
남제 명제는 본래 소란이며, 소소업을 폐위하고 스스로 황위에 올라 전제 군주로 아들을 위해 숙청을 자행했으며 북위와 전쟁을 벌였고, 총명하고 검소했지만 의심 많은 성격으로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이다. -
제 (남조)의 시중 -
소장무
남제 무제의 황태자 소장무는 고제의 맏손자로서 불교 숭상과 육질관 설립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사치스러운 성격으로 무제의 질책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 소소업의 폐위와 살해로 가문이 멸족되었다. -
송 (남조)의 장군 -
단도제
유송 시대의 장군 단도제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북위의 침략을 막는 데 공헌했으나, 문제의 경계심으로 숙청당하여 유송의 국력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
송 (남조)의 장군 -
남제 무제
남제 무제 소색은 남제 2대 황제로, 재위 기간 동안 백성 생활 안정과 국가 재정 확보에 힘써 '영명의 치'라 불리는 번성기를 이끌었으나 만년에는 사치를 즐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후계자 쟁탈전의 원인이 되었다. -
송 (남조)의 정치인 -
심약
심약은 남조 시대 송, 제, 양나라를 섬긴 문인이자 관료로서, 강남 호족 출신으로 경릉팔우의 일원이었으며, 궁체시의 선구자이자 사성팔병설을 주창하여 영명체와 근체시 발전에 기여했고, 양나라 건국 공신이자 역사서 편찬자이다. -
송 (남조)의 정치인 -
조충지
조충지는 남북조시대의 과학자, 역학자, 수학자로, 세계 최초로 원주율 값을 소수점 아래 6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하고 《대명력》 편찬에 기여했으며, 구의 부피 공식 유도, 지남차 재발명 등 기술 분야에서도 혁신적인 업적을 남겨 그의 업적을 기리는 크레이터와 소행성 이름이 존재한다.
2. 생애
소순지는 소도성의 종제로, 젊은 시절부터 소도성과 친밀했다. 소도성이 정벌을 나설 때마다 군 통솔을 보좌하고, 야간의 침소를 경호했다. 원휘 원년(473년), 왕칙근 등과 함께 3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위의 회북 여러 성을 공격했으나, 북위의 위원에게 패했다. 원휘 2년(474년), 소도성이 진군장군·남연주자사가 되자, 순지는 진군부장사를 지냈다. 이후 황문랑·안서장사·오군 내사를 역임했다.
승명 원년(477년), 원찬이 심유지의 난에 호응하여 석두성에 근거하고, 황회가 반란 측에 붙어 석두성으로 향하자, 순지는 가병을 이끌고 주작교를 지키며 이를 막았다. 또한 보국장군·효기장군으로 수군을 이끌고 난 진압에 나섰다.
제 건국에 공을 세워, 예장왕 소의를 대신하여 양주 자사에 임명되었다. 건원 4년(482년), 무제가 즉위하자, 임상현후에 봉해졌다. 시중·위위를 역임했다. 7월, 예주 자사가 되었다. 후에 태자첨사로 전임했다. 영명 3년(485년), 영군장군의 호를 받았다. 후에 단양윤이 되었다. 영명 8년(490년), 형주 자사 파동왕 소자향이 반란을 일으키자, 순지는 반란 진압에 나서 소자향을 항복시켰다.
사망 후, 진북장군의 칭호를 추증받았으며, 시호를 의라고 했다. 천감 원년(502년), 셋째 아들인 양 무제가 건국하자, 문황제로 추존되었으며, 묘호를 태조라고 했다.
3. 가족
소순지의 처는 문헌황후 장씨(文獻皇后 張氏, ? ~ 471)로, 이름은 장상유(張尚柔)이다. 소생으로는 소연, 장사선무왕 소의, 영양소왕 소부, 형양선왕 소창, 의흥장공주, 신안목공주가 있다.
소순지의 후궁은 다음과 같다.
* 태비 이씨(李太妃): 계양간왕 소융의 생모
* 태비 진씨(陳太妃): 임천정혜왕 소굉, 소위의 생모
* 태비 오씨(吳太妃): 안성강왕 소수, 소담의 생모
* 태비 비씨(費太妃): 파양충렬왕 소회와 아들 1명의 생모
3.1. 부모
| 부친 | 소도사 |
|---|---|
| 모친 | 사씨(史氏) |
3.2. 형제
* 문선후(文宣侯) 소상지
* 충간후(忠簡侯) 소숭지
3.4. 아들
| 봉호 | 시호 | 이름 | 생몰년도 | 생모 | 별칭 | 비고 | |
|---|---|---|---|---|---|---|---|
| 1 | 장사군왕 | 선무(宣武) | 소의 | ? ~ 500년 | 문헌황후 장상유 | ||
| 2 | 영양군왕 | 소(昭) | 소부 | 461년 ~ 497년 | 문헌황후 장상유 | ||
| 3 | 양국공 | 소연 | 464년 ~ 549년 | 문헌황후 장상유 | 양나라 초대 황제 | ||
| 4 | 형양군왕 | 선(宣) | 소창 | ? ~ 500년 | 문헌황후 장상유 | ||
| 5 | 계양군왕 | 간(簡) | 소융 | 472년 ~ 501년 | 황태비 이씨 | ||
| 6 | 임천군왕 | 정혜(靖惠) | 소굉 | 473년 ~ 526년 | 황태비 진씨 | ||
| 7 | 안성군왕 | 강(康) | 소수 | 475년 ~ 518년 | 황태비 오씨 | ||
| 8 | 남평군왕 | 원양(元襄) | 소위 | 476년 ~ 533년 | 황태비 진씨 | ||
| 9 | 파양군왕 | 충렬(忠烈) | 소회 | 476년 ~ 526년 | 황태비 비씨 | ||
| 10 | 시흥군왕 | 충무(忠武) | 소담 | 478년 ~ 522년 | 황태비 오씨 |
3.5. 딸
| 봉호 | 시호 | 이름 | 생몰년도 | 생모 | 부마 | 비고 | |
|---|---|---|---|---|---|---|---|
| 1 | 의흥공주 | 소(昭) | 소영예(蕭令嫕) | 문헌황후 장상유 | 왕림 | ||
| 2 | 신안공주 | 목(穆) | 왕무장 | ||||
| 3 | 여요공주(余姚公主) |
4. 평가
소순지에 대한 별도의 평가는 원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소순지가 소도성을 도와 군사적인 활동을 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