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강왕
1. 개요
송 강왕은 기원전 328년 형 척성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송나라의 마지막 군주이다. 그는 즉위 후 주변 강국들의 정세에 따라 국정이 좌우되는 상황에서, 기원전 320년 송나라 최초로 왕호를 칭하며 대외 확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망을 샀고, 결국 기원전 286년 제, 위, 초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살해당하고 송나라는 멸망했다.
| 이름 | 연(偃) |
|---|---|
| 성 | 자(子) |
| 씨 | 대(戴) |
| 작위 변동 | 송나라 공작 → 송나라 왕 |
|---|---|
| 즉위 | 기원전 318년 |
| 군주 | 송나라 |
| 연호 | 새 연호 사용 |
| 폐지 | 기원전 286년, 제나라에 합병 |
| 이전 | 체성군 |
| 이후 | 국가 멸망 |
| 생몰 | ? ~ 기원전 286년 |
|---|---|
| 사망 장소 | 위나라 원현 |
| 아버지 | 미상 |
|---|
-
기원전 286년 사망 -
장자
장자는 중국 전국 시대의 철학자로, 《장자》를 저술하여 개인의 자유와 무위자연의 삶을 추구했으며 노장사상으로 도교에 영향을 미쳤다. -
전국 시대의 군주 -
위 문후
위 문후는 전국시대 위나라의 군주로서 이회, 오기 등 인재를 등용하고 법가적 개혁을 통해 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법치를 통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여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전국 시대의 군주 -
제 선왕
제 선왕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로, 소진과 맹자를 등용하여 국정을 자문하고 정치 이론에 대한 조언을 구했으며, 한나라를 구원하고 위나라를 격파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직하를 번성시켰다. -
기원전 3세기 사망 -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기원전 3세기 사모스 출신 천문학자로, 지구 중심설에 기반한 천체 계산법을 제시한 저서와 더불어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여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
기원전 3세기 사망 -
에우클레이데스
2. 즉위
기원전 328년에 형 척성군(剔成君)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여 송공(宋公)이 되었다. 척성군에게는 시호를 올리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 말, 송나라는 초나라, 제나라, 위나라 등 3국에 둘러싸여 항상 강대국의 정세에 따라 국정이 좌우되었다. 송 양공(宋襄公) 이후로는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송공 언은 이러한 정세 속에서 즉위 10년(기원전 320년)에 다른 제후들이 잇달아 왕을 칭하자, 송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왕을 자칭했다. 이후 강왕은 제나라의 속국을 멸망시키고, 주변 각국에 대해 자국의 국력에 맞지 않는 군사 행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정치에 자신감이 생긴 강왕은 백성에게 포학 정치를 실시하고, 신하의 미모의 아내를 빼앗거나 간언하는 신하를 가차없이 처벌하는 등 공포 정치를 행하여, 국내외에서 송의 걸왕으로 불렸다.
3. 치세
기원전 328년에 형 척성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척성군에게는 시호를 올리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 말, 송나라는 초, 제, 위 등 3국에 둘러싸여 항상 강대국의 정세에 따라 국정이 좌우되었다. 송 양공 이후 큰 활약 없이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송공 언은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 10년(기원전 320년)에 각 제후들이 왕을 잇달아 칭하자, 송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왕을 자칭했다.
3.1. 칭왕과 대외 확장
기원전 328년에 형 척성군(剔成君)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송공(宋公)이 되었다. 척성군에게는 시호를 올리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 말, 송나라는 초, 제, 위 등 3국에 둘러싸여 항상 강대국의 정세에 따라 국정이 좌우되었다. 송 양공(宋襄公) 이후 큰 활약 없이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송공 언은 이러한 상황에서 즉위 10년(기원전 320년)에 각 제후들이 왕을 잇달아 칭하자, 송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왕을 자칭했다. 이후, 강왕은 제나라의 속국인 등(희성)을 멸망시키는 등 주변 각국에 대해 자국의 국력에 맞지 않는 군사 행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에 자신감을 얻은 강왕은 민중에게 포학 정치를 실시하고, 신하의 아내를 빼앗거나 간언하는 신하에게는 용서 없는 처사를 하는 등 공포 정치를 하여, 제멋대로 폭정을 행했기 때문에, 국내외로 "송의 걸왕"으로 불렸다고 한다.
3.2. 폭정과 몰락
기원전 328년에 형 척성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송공(宋公)이 되었다. 척성군에게는 시호를 올리지 않았다.
송공 언은 즉위 10년(기원전 320년)에 다른 제후국들이 왕을 칭하자, 자신도 송나라 왕을 칭했다. 이후 강왕은 제나라의 속국을 멸망시키고 주변 국가에 대해 자국의 국력에 맞지 않는 군사 행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정치에 자신감이 생긴 강왕은 백성들에게 포악한 정치를 펼치고, 신하의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거나 간언하는 신하를 가차없이 처벌하는 등 공포 정치를 행하며 폭정을 일삼아, 국내외에서 송나라의 걸왕으로 불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제후국들은 "송 강왕은 은나라의 폭군 주왕의 자손이며, 그가 다시 나타났다. 힘을 합쳐 주왕을 멸해야 한다."라는 구실로 송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송나라 백성은 왕의 폭정에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싸울 의지가 없었다.
기원전 286년, 제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강왕은 살해되고 송나라는 멸망했다. 송나라 영토는 이들 세 나라에 의해 3분되었다. 이로써 은나라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조는 완전히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