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원공
1. 개요
송 원공은 춘추 시대 송나라의 군주로, 송 평공의 첩복 소생으로 태어났다. 평공 사후 송나라 군주가 되었으며, 즉위 후 화재를 진압하고 주나라를 공격하는 등 여러 사건을 겪었다. 화씨, 상씨 세력과의 권력 다툼으로 내분이 일어나 혼란을 겪었으며, 노 소공의 귀국을 돕기 위해 진나라로 가던 중 사망했다. 아들 송 경공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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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군주 -
송 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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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군주 -
송 애공
송 애공은 춘추 시대 송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내부 권력 다툼과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여 송나라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
춘추 시대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춘추 시대의 군주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원공 8년, 화재가 나자 정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화재를 다스렸다. 원공 9년 봄, 상술의 아들 상영(向寧)의 청을 받아 주나라를 공격하고, 충읍(蟲邑)을 포위, 함락하여 주나라로부터 우나라 포로들을 돌려받았다. 이는 주나라가 우(鄅)나라를 습격하여 우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았는데, 우부인이 송나라 상술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원공 10년, 화씨(華氏)와 상씨(向氏)를 미워해 여러 공자들을 속여 죽이려 했으나, 화정(華定)과 화해(華亥)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6월 병신일, 공자 인(寅) · 공자 어융(御戎) · 공자 주(朱) · 공자 고(固) · 공손 원(援) · 공손 정(丁)은 살해당했고, 상승(向勝)과 상행(向行)은 구금되었다. 원공은 화씨에게 석방을 청했으나 협박을 받았고, 결국 화씨와 인질을 교환하기로 하고 결맹했다. 태자 난과 난의 아우 공자 신(辰) · 공자 지(地)를 화해에게 인질로 주고, 대신 화해의 아들 무척(無慼) · 상영의 아들 나(羅) · 화정의 아들 계(啓)를 인질로 받았다. 이때 공자 성(城) 등은 정나라로 달아났다. 초 평왕에게 쫓겨난 폐태자 건과 소주 목공의 아들 예갑(郳甲)도 송 원공 편에 섰다가 정나라로 달아났다. 이들은 귀염(鬼閻)에서 화씨와 싸웠으나 패했고, 공자 성은 진나라로 달아났다.
화해는 인질로 잡은 공자들에게 밥을 먹이고서야 자기 밥을 먹었고, 원공도 매일 화씨 집에 가서 그리했다. 화해가 이를 꺼려 공자들을 풀어주려다가 상영이 인질을 잡은 이유를 지적하자 그만뒀다. 원공은 대사마 화비수(華比遂)의 도움을 청해 10월에 자신이 잡은 인질들을 죽이고 화씨와 상씨를 공격했다. 화씨와 상씨는 진나라로 달아났고, 화비수의 아들 화등(華登)은 오나라로 달아났다. 화해는 달아나면서 노쇠한 소사구 화경(華牼)에게 자신의 인질들을 맡겨 원공에게 돌려보냈다.
원공 11년, 화해 등은 진나라에서 송나라 남리로 돌아와 반란을 일으켰다. 화비수의 아들 소사마 화추(華貙)와 어사 화다료(華多僚)는 사이가 나빴다. 화다료는 원공에게 화추가 망명한 화씨와 상씨를 불러들이려 한다고 모함했다. 원공은 화비수와 의논하고 화추를 맹제로 사냥 보냈다가 그대로 축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화추의 가신 장개(張匄)가 이를 알고 화다료를 죽이고 화비수를 협박해 화씨와 상씨를 불러들였다. 악대심(樂大心) 등이 화씨와 상씨를 막았으나, 화씨는 남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6월, 송나라는 화씨와 상씨에 대한 방비를 갖추었다.
10월, 오나라로 망명한 화등이 오군을 거느리고 화씨를 구원했으나, 제나라 대부 오지명(烏枝鳴)이 오군을 격파했다. 원공은 화등의 남은 군대와 싸워 졌으므로 달아나려 했으나, 주인 복(濮)이 말리고 군세를 다시 떨쳤다. 오지명이 검을 사용하도록 권하자 원공은 이를 받아들여 화씨를 패주시켰다. 송군과 제군은 화씨를 추격했고, 복이 화등의 머리를 얻었다고 거짓 선전해 신리에서 화씨를 패주시켰다. 원공을 위해 싸우던 적루신(翟僂新)은 화씨에게 점거당한 신리 땅에서, 화씨를 돕던 화주(華妵)는 공리에서 원공에게 귀순했다. 11월, 진나라로 망명한 공자 성이 진나라의 원군을 끌고 왔고, 진나라는 조나라 · 제나라 · 위나라와 연합해 송나라를 구원했다. 송나라 구원군은 자구(赭丘)에서 화씨와 싸워 화표(華豹) · 장개 · 간주를 죽이고 화씨를 크게 무찔러 남리를 포위했다. 그러나 초나라에서 위월(薳越)이 화씨를 구원했다.
원공 12년, 송나라 측 제후연합군이 더 이상 싸우다 반격에 해를 입을 것을 꺼려, 결국 화해 등을 송나라에서 초나라로 축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원공은 화비수 대신 공손 기를 대사마로 삼고, 화정 대신 변앙(邊卬)을 대사마로 삼고, 악기려를 사성으로 삼고, 상영 대신 중기(仲幾)를 좌사로 삼고, 악대심(樂大心)을 화해 대신 우사로 삼고, 악만(樂晩)을 대사구로 삼아 국인을 안정시켰다.
원공 15년, 노나라에서 임금 노 소공이 삼환 중 계손씨와 싸우다 스스로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사건에 개입해 진나라에 노 소공의 귀국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진나라로 가는 중에 송나라 경내의 곡극(曲棘)에서 11월 기해일에 사망했다. 아들 경공이 뒤를 이었다.
2.1. 출생과 성장
송 원공은 26대 송공 송 평공의 첩복 소생으로, 어머니는 송나라 예사도(芮司徒)의 딸 기(棄)였다. 기는 태어날 때 붉고 털이 있어 버려졌는데, 송 평공의 어머니이자 송 공공의 부인 공희(姬姓)가 주워다 길렀다. 장성한 기는 미녀가 되었고, 공희는 평공의 첩으로 주었다. 기는 좌(佐) - 훗날의 송 원공 - 를 낳았는데, 좌는 용모는 볼품없었으나 마음씨는 착했다.
평공 39년 가을, 평공이 참소를 듣고 형 태자 좌(痤)를 죽이면서 송 원공이 태자로 책봉됐다. 당시 태자 좌는 사이가 나쁜 시인 혜장이려의 참소를 받았고 좌사 상술(向戌)과 기가 모두 이려의 참소에 찬동해 갇혀 있었다. 공자 좌는 태자 좌에게 사면 요청을 받았고, 정오까지 소식이 없으면 사면되지 못한 것으로 알겠다고 들었다. 이를 전해들은 상술의 방해로, 상술과 떠들다가 시간이 정오가 되어 태자 좌는 자결했다.
평공 44년, 평공이 죽으면서 좌가 송공이 됐다.
2.2. 태자 책봉과 즉위
송 원공은 송 평공의 첩복 소생으로, 어머니는 예사도(芮司徒)의 딸 기(棄)였다. 기는 태어날 때 붉고 털이 있어 버려졌으나, 송 평공의 어머니인 공희가 주워 길렀다. 장성한 기는 미녀가 되었고, 공희는 평공에게 첩으로 주었다. 기는 아들 좌(佐)를 낳았는데, 이가 곧 송 원공이다. 원공은 용모는 볼품없었으나 마음씨는 착했다고 한다.
기원전 537년, 평공이 참소를 듣고 형 태자 좌(痤)를 죽이면서 원공이 태자로 책봉되었다. 당시 태자 좌는 사이가 나쁜 시인 혜장이려(惠牆伊戾)의 참소를 받았고, 좌사 상술(向戌)과 기가 모두 이려의 참소에 찬동하여 갇혀 있었다. 공자 좌는 태자 좌에게 사면 요청을 받았고, 정오까지 소식이 없으면 사면되지 못한 것으로 알겠다고 들었다. 그러나 상술의 방해로 정오가 지나 태자 좌는 자결했다.
기원전 532년, 평공이 죽자 원공이 송공으로 즉위했다.
2.3. 내란과 갈등
송 원공은 송 평공의 아들로, 평공이 참소를 듣고 형 태자 좌(痤)를 죽이면서 태자가 되었다. 당시 태자 좌는 혜장이려의 참소를 받았고, 좌사 상술(向戌)과 원공의 어머니 기(棄)가 모두 이려의 참소에 찬동하여 태자 좌는 갇히게 되었다. 공자 좌(훗날 원공)는 태자 좌에게 사면 요청을 받았으나, 상술의 방해로 시간이 지체되어 태자 좌는 자결했다.
송 평공 44년(기원전 532년), 평공이 죽자 원공이 왕위를 이었다.
2.3.1. 화재 진압
송 원공 8년(기원전 524년)에 화재가 발생하자 정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화재를 진압하였다.
2.3.2. 주나라 공격
송 원공 9년(기원전 523년) 봄 2월, 원공은 상술의 아들 상영(向寧)의 청을 받아들여 친히 주나라를 공격했다. 이는 주나라가 우(鄅)나라를 습격하여 우나라 사람들을 포로로 잡았는데, 우부인이 송나라 상술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원공은 한 달 동안 충읍(蟲邑)을 포위하고 점령하여, 주나라로부터 우나라 포로들을 돌려받았다.
2.3.3. 화씨, 상씨와의 권력 투쟁
송 원공 10년(기원전 522년), 원공은 평소 미워하던 화씨(華氏)와 상씨(向氏)를 제거하려 했다. 원공은 여러 공자들을 속여 죽이려 했으나, 화정(華定)과 화해(華亥)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화해는 병을 핑계로 문병 온 원공 측의 공자들을 잡아 가두었다. 6월, 공자 인(寅) · 공자 어융(御戎) · 공자 주(朱) · 공자 고(固) · 공손 원(援) · 공손 정(丁)은 살해당했고, 상승(向勝)과 상행(向行)은 구금되었다.
원공은 화씨에게 석방을 청했으나 협박을 받았다. 결국 화씨와 인질을 교환하기로 하고, 태자 난(欒)과 난의 아우 공자 신(辰) · 공자 지(地)를 화해에게 인질로 보냈다. 대신 화해의 아들 무척(無慼) · 상영의 아들 나(羅) · 화정의 아들 계(啓)를 인질로 받았다. 이때 공자 성(城) 등은 정나라로 달아났다. 초 평왕에게서 망명 온 폐태자 건과 소주 목공의 아들 예갑(郳甲)은 원공 편에 가담했다가 정나라로 달아났다. 이들은 귀염(鬼閻)에서 화씨와 싸웠으나 패배했고, 공자 성은 진나라로 달아났다.
화해는 인질로 잡은 공자들에게 밥을 먹이고서야 자기 밥을 먹었고, 원공도 매일 화씨 집에 와서 그리했다. 화해가 이를 꺼려 공자들을 풀어주려 했으나 상영의 반대로 그만두었다. 원공은 대사마 화비수(華比遂)의 도움을 받아 10월에 자신이 잡은 인질들을 죽이고 화씨와 상씨를 공격했다. 화씨와 상씨는 진나라로 달아났고, 화비수의 아들 화등(華登)은 오나라로 달아났다. 화해는 달아나면서 노쇠한 소사구 화경(華牼)에게 자신의 인질들을 맡겨 원공에게 돌려보냈다.
원공 11년(기원전 521년), 화해 등은 진나라에서 송나라 남리로 돌아와 반란을 일으켰다. 화비수의 아들 소사마 화추(華貙)와 어사 화다료(華多僚)는 사이가 나빴다. 화다료는 원공에게 화추가 망명한 화씨와 상씨를 불러들이려 한다고 모함했다. 원공은 화비수와 의논하고 화추를 축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화추의 가신 장개(張匄)가 이를 알고 화다료를 죽이고 화비수를 협박해 화씨와 상씨를 불러들였다. 악대심(樂大心) 등이 화씨와 상씨를 막았으나, 화씨는 남리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6월, 송나라는 화씨와 상씨에 대한 방비를 갖추었다.
10월, 오나라로 망명한 화등이 오군을 거느리고 화씨를 구원했으나, 제나라 대부 오지명(烏枝鳴)이 오군을 격파했다. 원공은 화등의 남은 군대와 싸워 졌으므로 달아나려 했으나, 주인 복(濮)이 말리고 군세를 다시 떨쳤다. 오지명이 검을 사용하도록 권하자 원공은 이를 받아들여 화씨를 패주시켰다. 송군과 제군은 화씨를 추격했고, 복이 화등의 머리를 얻었다고 거짓 선전해 신리에서 화씨를 패주시키니, 화씨에게 점거당한 신리 땅에서 적루신(翟僂新)이, 화씨를 돕던 화주(華妵)가 공리에서 원공에게 귀순했다. 11월, 진나라로 망명한 공자 성이 진나라의 원군을 끌고 왔고, 진나라는 조나라 · 제나라 · 위나라와 연합해 송나라를 구원했다. 송나라 구원군은 자구(赭丘)에서 화씨와 싸워 화표(華豹) 등을 죽이고 화씨를 크게 무찔러 남리를 포위했다. 그러나 초나라에서 위월(薳越)이 화씨를 구원했다.
원공 12년(기원전 520년), 송나라 측의 제후연합군이 더 이상의 싸움을 꺼려, 결국 화해 등을 송나라에서 초나라로 축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원공은 화비수 대신 공손 기를 대사마로 삼는 등 국인을 안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