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니 스케모토
1. 개요
쇼니 스케모토는 1489년, 히젠국의 센고쿠 다이묘 쇼니 마사스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7년, 아버지와 형이 오우치 씨에게 멸망당한 후, 가신들의 보호를 받으며 쇼니 씨를 재건했다. 1530년, 오우치 요시타카의 침공을 격퇴했으나 류조지 씨의 대두로 세력이 쇠퇴했고, 오우치 씨와의 화의가 배신으로 끝나 영지를 빼앗겼다. 1536년, 가신 스에 오키후사의 공격을 받아 자결했으며, 그의 아들 쇼니 후유히사가 쇼니 씨의 혈맥을 이었다.
| 씨명 | 쇼니 씨(少弐氏) |
|---|---|
| 이름 | 쇼니 스케모토(少弐資元) |
| 이명 | 쇼호시마루(初法師丸), 마쓰호시마루(松法師丸) |
| 계명 | 심월본료대거사(心月本了大居士) |
| 관위 |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 |
| 출생 | 1489년 |
|---|---|
| 사망 | 1536년 9월 19일 |
| 묘소 | 센쇼지(専称寺) |
| 아버지 | 쇼니 마사스케(少弐政資) |
|---|---|
| 형제 | 요리타카(頼隆), 다카쓰네(高経), 에가미 스케타네(江上資種), 미나미 도노(南殿, 마쓰라 마사시(松浦政)의 아내) |
| 배우자 | 오토모 지카하루(大友親治)의 딸 |
| 자녀 | 후유히사(冬尚), 지바 다네요리(千葉胤頼), 마사오키(政興), 모토모리(元盛), 마쓰라 시게(松浦鎮) |
| 시대 |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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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6년 사망 -
앤 불린
앤 불린은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헨리 8세와의 결혼을 위해 종교 개혁에 영향을 미쳤으며, 딸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으나, 혐의로 처형되었다. -
1536년 사망 -
체칠리아 갈레라니
체칠리아 갈레라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모델이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정부였으며, 궁정에서 쫓겨난 후 문학 서클을 열고 살롱을 운영하다 63세에 사망했다. -
쇼니씨 -
쇼니 요시요리
쇼니 요시요리는 무로마치 시대의 무장으로, 아버지와 형의 전사 후 동생과 함께 쓰시마로 피신하여 가문 재건을 위해 노력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쇼니씨 -
쇼니 요리히사
쇼니 요리히사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규슈를 관할한 쇼니 씨의 5대 당주 쇼니 사다쓰네의 아들로, 겐코의 난과 겐무 신정에서 활약하고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지지했으나, 세력 다툼과 패배로 은거하여 사망했다. -
할복한 사람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할복한 사람 -
노기 마레스케
노기 마레스케는 메이지 시대와 다이쇼 시대에 활약한 일본 제국 육군 대장으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나 막대한 인명 피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며, 메이지 천황 서거 후 아내와 함께 자결하여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군사적 능력과 자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인물이다.
2. 생애
1489년 히젠국의 센고쿠 다이묘 쇼니 마사스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7년 아버지 마사스케와 형 다카쓰네는 무로마치 막부의 추토령을 받은 스오국의 오우치 씨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당시 스케모토는 어렸기 때문에 요코타케 스케사다 등 옛 신하들에 의해 히젠 미네 군의 니시지마 성에서 보호받았다. 원복을 행할 무렵에 분고국의 오토모 마사치카의 후원을 받아 쇼니 씨를 일으켰다.
1530년 오우치 요시타카의 명을 받은 지쿠젠국 슈고다이 스기 오키카즈의 침공을 받았으나 다테나와테 전투에서 가신 류조지 이에카네 등의 도움으로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류조지 씨의 힘이 대두되어 쇼니 씨의 힘은 차츰 쇠퇴하였다. 거듭되는 오우치 씨의 침공에 견디지 못하고 이에카네의 진언을 받아 요시타카와 화의를 맺었으나, 이 화의는 오우치의 모략이었고, 1535년 스케모토는 오우치 씨에게 모든 영지를 넘겨주게 되었다.
1536년 다자이 다이니 관직을 받은 요시타카는 가신 스에 오키카타에게 스케모토를 공격할 것을 명했고, 스케모토는 가즈미네 성(센쇼지)에서 자결했다. 가즈미네 성은 공교롭게도 아버지 마사스케가 자결한 곳이기도 했다. 스케모토의 아들 후유히사는 하스이케 성(하스이케성)의 오타 스케미쓰(마사미쓰의 할아버지)에게로 달아나 쇼니 씨의 혈맥을 보존하였다.
2.1. 출생과 가문의 몰락
조쿄(長享) 3년/엔토쿠(延徳) 원년(1489년) 히젠국(肥前国)의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 쇼니 마사스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메이오(明応) 6년(1497년) 아버지 마사스케와 형 다카쓰네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추토령을 받은 스오국(周防)의 오우치 씨(大内氏)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당시 스케모토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요코타케 스케사다 등 옛 신하들에 의해 히젠 미네 군(三根郡)의 니시지마 성(西島城)에서 보호받았다. 원복(元服)할 무렵 분고국(豊後国)의 오토모 마사치카의 후원을 받아 쇼니 씨를 일으켰다.
2.2. 쇼니 가문 재건과 류조지 가문의 대두
1489년 히젠국의 센고쿠 다이묘 쇼니 마사스케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7년 아버지 마사스케와 형 다카쓰네는 무로마치 막부의 추토령을 받은 스오국의 오우치 씨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당시 스케모토는 어렸기 때문에 요코타케 스케사다 등 옛 신하들에 의해 히젠 미네 군의 니시지마 성에서 보호받았다. 원복을 행할 무렵에 분고국의 오토모 마사치카의 후원을 받아 쇼니 씨를 일으켰다.
1530년, 오우치 요시타카의 명을 받은 지쿠젠국 슈고다이 스기 오키카즈의 침공을 받았으나 다테나와테 전투에서 가신 류조지 이에카네 등의 도움으로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류조지 씨의 힘이 대두되어 쇼니 씨의 힘은 차츰 쇠퇴하였다. 거듭되는 오우치 씨의 침공에 견디지 못하고 이에카네의 진언을 받아 요시타카와 화의를 맺었으나, 이 화의는 오우치의 모략이었고, 1535년 스케모토는 오우치 씨에게 모든 영지를 넘겨주게 되었다.
2.3. 오우치 가문과의 화의와 배신
교로쿠 3년(1530년) 오우치 요시타카의 명을 받은 지쿠젠국 슈고다이 스기 오키유키의 침공을 받았으나, 다테나와테 전투에서 가신 류조지 이에카네 등의 도움으로 이를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류조지 씨의 힘이 대두하게 되어 쇼니 씨의 힘은 차츰 쇠퇴하였다. 또한 거듭되는 오우치 씨의 침공에 견디지 못하고 이에카네의 진언을 받아 요시타카와 화의를 맺었다. 그러나 이 화의는 오우치의 모략이었고, 덴분 4년(1535년) 스케모토는 오우치 씨에게 모든 영지를 넘겨주게 되었다.
2.4. 최후
덴분 4년(1535년), 스케모토는 오우치 씨에게 모든 영지를 넘겨주게 되었다.
덴분 5년(1536년) 다자이 다이니 관직을 받은 요시타카는 가신 스에 오키카타에게 스케모토를 공격할 것을 명했고, 스케모토는 가즈미네 성(센쇼지)에서 자결했다. 가즈미네 성은 공교롭게도 아버지 마사스케가 자결한 곳이기도 했다.
스케모토의 아들 후유히사는 하스이케 성(하스이케성)의 오타 스케미쓰(마사미쓰의 할아버지)에게로 달아나 쇼니 씨의 혈맥을 보존하였다.
2.5. 사후
1536년 오우치 요시타카(大内義隆)는 가신 스에 오키카타(陶興房)에게 스케모토를 공격할 것을 명했고, 스케모토는 가즈미네 성(梶峰城)에서 자결했다. 이 성은 공교롭게도 아버지 마사스케가 자결한 곳이기도 했다.
스케모토의 아들 쇼니 후유히사(冬尚)는 하스이케 성(蓮池城)의 오타 스케미쓰(小田資光, 마사미츠의 할아버지)에게로 달아나 쇼니 씨의 혈맥을 보존하였다.
3. 이름자를 받은 인물
* 에가미 모토타네 (에가미 씨, 에가미 다케타네의 숙부이며, 스케모토 옹립에 공헌하였다.)
* 오다 모토미츠 (오다 씨, 스케미쓰의 아들, 마사미쓰의 아버지이다.)
* 쇼니 모토모리 (넷째 아들, ※스케모토가 자결했을 당시 1세였으며, 원복 때 요절한 아버지 스케모토의 한 글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