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효황후
1. 개요
숙효황후는 명나라 경태제의 황후이다. 본래 예왕 주기옥의 측실이었으며, 경태제 즉위 후 귀비로 봉해졌다. 아들 주견제가 태자가 된 후 왕씨를 폐하고 황후가 되었으나, 아들이 요절하고 경태제마저 폐위되면서 시호가 추탈되었다. 영종 복위 후에는 능묘가 파헤쳐지고 친족이 폄하되었다.
| 휘 | 항온현(沆穩賢) |
|---|---|
| 시호 | 숙효황후(肅孝皇后) |
| 씨족 | 항(杭)씨 |
| 아버지 | 항욱(杭昱) |
| 배우자 | 경태제 |
| 자녀 | 회헌태자(懷獻太子) 주견제 |
| 즉위 (황후) | 경태(景泰) 3년 5월 2일 (1452년 5월 20일) |
|---|---|
| 폐위 (황후) | 경태(景泰) 7년 2월 21일 (1456년 3월 26일) |
| 사망 | 경태(景泰) 7년 2월 21일 (1456년 3월 26일) |
| 사망 장소 | 순천부, 자금성 |
| 매장지 | 청릉(清陵) |
| 재위 기간 | 1452년 ~ 1456년 |
|---|---|
| 계승 | 왕황후 |
| 계승자 | 효장예황후 |
| 추증 시호 | 숙효황후(肅孝皇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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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미상 -
손니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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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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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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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전쟁은 진나라 멸망 후 항우와 유방 세력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유방의 승리로 끝나 한나라가 건국되었으며, 신분 질서의 변화와 민본주의 정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2. 생애
항씨는 서민 항욱의 딸로 태어났다. 정통 연간에 예왕 주기옥(훗날의 경태제)의 저택에 들어가 측실이 되었다. 주견제朱見濟중국어를 낳았고, 토목의 변으로 경태제가 즉위하자 귀비가 되었다.
경태 3년 (1452년), 경태제는 조카 황태자 주견심(훗날의 성화제)을 폐하고, 친아들 주견제를 황태자로 세우려 했다. 왕황후가 반대했지만, 경태제는 격노하여 왕씨를 폐하고 항씨를 황후로 세웠다. 아버지 항욱은 정3품 지휘사에 봉해졌다. 그러나 이듬해 주견제는 요절했다. 경태 7년 (1456년) 2월, 항황후는 붕어했다. 숙효황후(肅孝皇后)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탈문의 변 이후, 중조한 영종은 친아들 주견심이 폐태자가 된 원한을 잊지 않고, 항씨의 시호를 박탈하고, 항씨의 능묘를 파헤치고, 항씨의 친족을 폄하했다.
2.1. 황후 이전
항씨는 원래 성왕(郕王) 주기옥의 측실이었다. 토목의 변으로 주기옥이 경태제로 즉위하자 귀비로 진봉되었고, 황자 주견제를 태자로 바꾼 후에는 황후 왕씨를 폐하고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몇 달 못가 황태자 주견제는 세상을 떠났고, 회헌태자(懷獻太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경태 7년(1456년)에 황후 항씨도 붕어하였다.
2.2. 황후 시절과 죽음
항씨는 성왕(郕王) 주기옥의 측실이었다. 토목의 변으로 인해 주기옥이 경태제로 즉위하자 귀비로 진봉되었고, 황자 주견제를 태자로 책봉한 후에는 황후 왕씨를 폐하고 황후가 되었다. 그러나 몇 달 못가 황태자 주견제는 세상을 떠났고, 회헌태자(懷獻太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경태 7년(1456년)에 황후 항씨도 붕어하였다. 황후가 죽은 지 1년쯤에 경태제가 폐위당하고, 회헌태자는 세자(世子)로 격하되었으며, 황후 항씨도 그 지위를 추탈당했다.
시호는 숙효황후(肅孝皇后)이나, 경태제가 폐위당한 이후로 황후의 시호도 추탈되었다. 능묘는 미상이다.
2.3. 사후
경태제가 폐위된 후, 항씨는 황후의 시호가 추탈되었고, 능묘는 미상이다.
4. 기타
경태제의 황후였던 항씨는 경태제가 폐위된 후 황후 지위와 시호가 추탈되었으며, 능묘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