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평군
1. 개요
순평군은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정종과 숙의 기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이다. 순평군은 순평군에 봉해졌으며, 순창 설씨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1425년 의평군의 사패 위조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1442년 관직에서 파면된 바 있다. 1443년 관직이 복권되었으나 처형과 간통으로 1450년 탄핵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불혹이 넘어서야 학문을 시작하여 효경을 배웠으며, 1456년 사망하여 시호는 충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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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의 자녀 -
무림군
무림군은 조선 세조의 아들 정종과 숙의 기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정부인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었으며, 세조의 순행을 호종하고 문폐사로 활동하며 지방 실정을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조선 정종의 자녀 -
도평군
도평군은 조선 정종의 아들로, 기생 첩을 사랑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세종의 비호를 받았고, 예종 즉위년에 군호를 하사받았으며 1470년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1456년 사망 -
한확
한확은 조선 초 문신으로, 명나라 외교에서 활약하며 세종 대에 사신으로 공물 면제를 주청하고,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에 책록되어 우의정에 올랐으며, 세조의 명나라 책봉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명나라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 -
1456년 사망 -
하위지
하위지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3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으며, 세조 즉위 후 육조 직계제를 반대하다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처형된 사육신 중 한 명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1417년(태종 17) 정종과 숙의 기씨(淑儀 奇氏)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순평군(順平君)에 봉해졌고,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설존(薛存)의 딸 순창 설씨(淳昌 薛氏)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두었다.
1425년 의평군의 사패 위조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며 1442년에도 관직에서 파면된 바 있다. 1443년 12월 관직이 복권되어 이듬해에는 종2품 중의대부로 승격되었으나 처형과 간통을 하여 1450년 탄핵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순평군은 불혹이 넘도록 일자무식이었는데, 종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종학에 다니게 되어 처음으로 《효경(孝經)》을 읽게 되었다. 교수관이 효경의 첫장 제목인‘개종명의장 제일(開宗明義章 第一)’이란 일곱 자를 가르쳤지만 순평군은 이를 외우지 못하고 “내가 지금 늙고 둔하니 ‘개종(開宗)’ 두 자만 알면 족하겠다.”하여 집에 돌아가는 말 위에서도 그 글자를 암송하였다. 종에게도 “너희들도 ‘개종’ 두 자를 외워두었다가 내가 막히면 가르쳐다오.” 하고 일러두었다. 순평군은 임종시에 식구들을 모아놓고, “영구히 종학과 이별하는 것이 대단히 통쾌하다.”는 말을 남겼다.
순평군은 1456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2.1. 초기 생애
1417년(태종 17) 정종과 숙의 기씨(淑儀 奇氏)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순평군(順平君)에 봉해졌고,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설존(薛存)의 딸 순창 설씨(淳昌 薛氏)와 혼인하였다.
1425년 의평군의 사패 위조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며 1442년에도 관직에서 파면된 바 있다. 1443년 12월 관직이 복권되어 이듬해에는 종2품 중의대부로 승격되었으나 처형과 간통을 하여 1450년 탄핵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순평군은 불혹이 넘도록 일자무식이었는데, 종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종학에 다니게 되어 처음으로 《효경(孝經)》을 읽게 되었다. 교수관이 효경의 첫장 제목인‘개종명의장 제일(開宗明義章 第一)’이란 일곱 자를 가르쳤지만 순평군은 이를 외우지 못하고 “내가 지금 늙고 둔하니 ‘개종(開宗)’ 두 자만 알면 족하겠다.”하여 집에 돌아가는 말 위에서도 그 글자를 암송하였다. 종에게도 “너희들도 ‘개종’ 두 자를 외워두었다가 내가 막히면 가르쳐다오.” 하고 일러두었다. 순평군은 임종시에 식구들을 모아놓고, “영구히 종학과 이별하는 것이 대단히 통쾌하다.”는 말을 남겼다.
순평군은 1456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2.2. 불우한 사건
1425년 의평군의 사패 위조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며 1442년에도 관직에서 파면된 바 있다. 1443년 12월 관직이 복권되었으나, 처형과 간통을 하여 1450년 탄핵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2.3. 학문 수련
순평군은 불혹이 넘도록 글을 알지 못했다. 종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종학에 다니게 되어 처음으로 《효경(孝經)》을 배우게 되었다. 교수관이 《효경》의 첫 장 제목인 ‘개종명의장 제일(開宗明義章 第一)’을 가르쳤지만, 순평군은 이를 다 외우지 못하고 “내가 지금 늙고 둔하니 ‘개종(開宗)’ 두 자만 알면 족하겠다.”라고 하였다. 순평군은 집에 돌아가는 말 위에서도 ‘개종’ 두 글자를 암송하였고, 종에게도 “너희들도 ‘개종’ 두 자를 외워두었다가 내가 막히면 가르쳐다오.” 하고 일러두었다.
2.4. 사망
순평군은 1456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