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문학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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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문학 논쟁은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일본에서 발생한, 순수 문학의 가치와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다. 1960년대 논쟁은 히라노 켄의 주장에서 시작되어, 순문학 개념의 쇠퇴를 주장하며 사회파 추리소설 등 중간 소설의 부상을 강조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오오츠카 에이지가 순문학 잡지의 판매 부진을 지적하며 순문학의 가치 하락을 주장했고, 이에 쇼노 요리코가 반박하며 논쟁이 격화되었다. 이 논쟁은 문학의 예술성과 상업성, 가치 평가 기준, 문단 내 권력 구조 등 다양한 쟁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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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문학 논쟁 | |
---|---|
개요 | |
유형 | 문학 논쟁 |
시기 | 1920년대 |
주요 논점 | 문학의 사회적 역할, 예술의 자율성, 대중성 |
배경 | |
시대적 배경 |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사회 변동과 문학의 대중화 |
사상적 배경 | 자유주의, 사회주의, 낭만주의 등 다양한 사상의 영향 |
주요 인물 | |
주요 논객 | 기쿠치 간 다니자키 준이치로 히로쓰 가즈오 사토 하루오 무샤노코지 사네아쓰 가와바타 야스나리 요코미쓰 리이치 가와카미 데쓰타로 하야시 후사오 오사라기 지로 나카니시 이노스케 우노 고지 곤도 시로 미우라 쓰토무 도요시마 요시오 기시다 구니오 무로세 사이세이 야마모토 유조 오자키 시로 구메 마사오 마쓰오카 유즈루 오카자키 후미오 가타카미 덴엔 기노시타 모쿠타로 미야기 요시마사 호리 다쓰오 다키이 고사쿠 나카야마 요시히데 아라 마사미쓰 우스이 요시미 가와모리 요시조 고바야시 히데오 무라카미 기요시 도미나가 고타로 가메이 가쓰이치로 혼다 슈고 나카무라 미쓰오 미야모토 유리코 구라하라 고레히토 나카노 시게하루 고바야시 다키지 도쿠나가 스나오 하야마 요시키 기무라 소하치 가자하야 야스히로 세키 데루히코 오자와 쇼타로 사사키 효에이 하라 시로 아오노 스에키치 가타야마 데쓰 기쿠다 기쿠오 가미무라 히토시 다케다 린타로 이토 세이 하라다 히로시 오가와 미메이 가이호 세이 오타 기쿠오 우에다 모키치 마쓰무라 에이이치 요시카와 에이지 미나미 히로시 세토구치 데쓰야 쓰지 준 다나카 히데미쓰 고이즈미 기시로 후나야마 가쿠에이 쓰보이 시게지 미야케 유키코 가노 지로 요시미즈 요시히코 기시 유키오 이와타 가즈오 오카자키 요시이에 스기야마 헤이스케 스기우라 시게타케 다케모토 마스지 나카무라 무라오 가타야마 세쓰로 시라이시 데쓰조 미야케 마사루 가와세 겐파쿠 기타무라 기긴 우치다 효고 이와사키 세이키 마에다 고에이 기시모토 스가루 |
전개 과정 | |
발단 | 기쿠치 간의 문예춘추 창간과 순문학 옹호론 |
주요 쟁점 | 예술의 자율성 vs 사회적 책임 순수 문학 vs 대중 문학 예술 지상주의 vs 현실 참여 |
절정 | 다양한 문학 단체 및 비평가들의 참여로 논쟁 심화 |
결말 | 뚜렷한 결론 없이 사회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소멸 |
영향 | |
문학계 |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 확대, 다양한 문학 사조 형성 |
사회 |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가, 문학 비평 문화 발전 |
참고 문헌 | |
참고 서적 | 日本文学研究資料叢書『大正期の文学論争』有精堂出版、1985年 尾崎秀樹『大衆文学論』講談社文芸文庫、1999年 紅野謙介『文学のኪያ시대』岩波書店、2013年 |
2. 1960년대 순문학 논쟁
1960년대 일본에서는 순문학의 개념과 범주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 히라노 켄은 마쓰모토 세이초 등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중간소설의 대두로 순문학 개념이 역사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1]
이후 1970년대에 에토 쥰이 쓰지 쿠니오, 카가 오토히코 등을 비판한 포니 논쟁이나, 무라카미 류를 "서브컬처"라고 비판한 것도 순문학을 둘러싼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1]
2. 1. 논쟁의 발단
1961년 9월, 히라노 켄이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뛰어난 중간소설들이 등장하면서 순문학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1]이에 대해 이토 세이가 가장 먼저 반응했고, 다카미 준이 히라노 켄을 격렬하게 비판했다.[1] 후쿠다 츠네아리에 따르면, 이러한 논쟁은 사실 그 전해 1월 오오오카 쇼헤이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푸른 늑대』를 비판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1] 오오오카 쇼헤이는 이어서 마쓰모토 세이초, 미즈카미 츠토무 등의 중간소설을 평론가들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다며 비판했다.[1] 당시 외국에 나가 있던 이토 세이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히라노 켄의 글에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1]
2. 2. 순문학 논쟁의 전개
1961년 9월, 히라노 켄이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마츠모토 세이초 등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뛰어난 중간소설들이 등장하면서 순문학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이토 세이가 가장 먼저 반응했고, 타카미 쥰이 히라노 켄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후쿠다 츠네아리에 따르면, 이러한 논쟁은 사실 그해 1월 오오오카 쇼헤이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푸른 늑대』를 비판했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오오오카 쇼헤이는 이어서 마츠모토 세이초, 미즈카미 츠토무 등의 중간소설을 비평가들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해외에 있던 이토 세이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히라노 켄의 글에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이 순문학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일어났으며, 1970년대에 에토 쥰이 츠지 쿠니오, 카가 오토히코 등을 비판한 포니 논쟁이나, 무라카미 류를 '서브컬처'라고 비판한 사건도 순문학 논쟁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3. 1990년대 순문학 논쟁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는 오오츠카 에이지가 순문학 문예잡지의 판매 부진을 순문학의 문화적 가치 저하와 연결하면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쇼노 요리코는 오오츠카의 주장에 대해 문학의 가치를 상업적 성공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3. 1. 오오츠카 에이지와 쇼노 요리코의 대립
오오츠카 에이지는 만화 잡지 편집자 출신으로서, "판매량이 많은 작품이 그 사회에 필요한 것=가치"라는 시장 원리를 전제로 순문학의 가치를 평가했다.[2] 그는 1990년대 후반, 문예 잡지의 낮은 판매량이 순문학의 문화적 존재 가치가 낮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4]이에 대해 쇼노 요리코는 순문학을 철저히 옹호하며 오오츠카 에이지의 주장에 반박했다.[5] 1998년경, 쇼노 요리코는 오오츠카 에이지가 1980년대에 주장한 "안 팔리는 순문학은 상품으로서 떨어진다"라는 주장에 대해 항의했다.[2] 당시 『요미우리 신문』의 문예 시평이 평론가가 아닌 신문 기자가 작성하고, 『분게이슌주』 좌담회에서 나오키상 작가들이 "안 팔리는 소설에는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쇼노 요리코의 항의에 영향을 주었다.
쇼노 요리코는 2002년 고단샤에서 발행하는 군조에 기고한 〈돈키호테의 간간가〉를 통해 오오츠카 에이지의 견해가 문학에 상품 가치만을 인정하고 예술로서의 문학에 해를 끼친다고 비판했다.
쇼노 요리코는 비판자들이 남성 작가의 작품만을 순문학으로 간주하고 여성 작가를 경시하거나 묵살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3. 2. 논쟁의 확산과 쟁점
1998년경, 오오츠카 에이지가 1980년대에 주장한 "안 팔리는 순문학은 상품으로서 떨어진다"라는 주장에 대해, 쇼노 요리코는 항의했다.[2]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서 문예 시평을 평론가가 아닌 신문 기자가 작성하고, 분게이슌주에서 나오키상 작가들의 좌담회에서 '안 팔리는 소설에는 가치가 없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쇼노 요리코의 항의에 영향을 주었다. 후쿠다 카즈야는 쇼노의 항의를 "히스테릭"하다고 비판했다.[3] 쇼노 요리코는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텐타마 오야 시라즈 돗페르겡게르』를 발표했는데, 이 소설에는 "유치"한 순문학 비판을 반복하는 문단 "요괴"들의 모습이 쇼노 특유의 문체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쇼노는 비판자들이 순문학을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만 한정하고, 여성 작가의 존재를 경시하거나 묵살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2002년, 오오츠카 에이지가 "문예지는 안 팔리기 때문에 상품으로서 꽤 위험하다"라는 발언을 하자, 쇼노는 『돈키호테의 간간가』(군조 2002년 5월호)를 발표하여 오오츠카의 견해를 문학에 상품 가치만을 인정하고 예술로서의 문학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오오츠카는 『불량 채권으로서의 "문학"』(군조 2002년 6월호)에서, 쇼노의 주장은 "초보자는 문학에 모든 의미로 입을 대지 마라." "문학의 기준으로 '판매량'을 들먹이지 마라."라는 의미라고 반박했다.[4]
오오츠카는 "기존 유통 시스템 밖에서 문학 시장을 만든다"는 대안을 제시하며 문학 프리마켓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쇼노는 오오츠카가 제1회에만 관여하고 이후 사무국 체제로 이행한 것을 비판했다.
오오츠카, 쇼노, 후쿠다 외에도 여러 평론가와 작가가 논쟁에 참여했지만, 문학의 예술적인 측면과 유통 과정의 문제가 뒤섞여 논의되기도 했다. 이 논쟁은 문학의 예술적 측면과 상업적 측면, 문학의 가치 평가 기준, 문단 내 권력 구조 등 다양한 쟁점을 드러냈다.[5]
4. 한국 문학에의 시사점
일본의 순문학 논쟁은 한국 문학계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문학의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가치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순문학/대중문학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일본의 논쟁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특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관점이 순문학 논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1]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일본에서 일어난 순문학 논쟁은 오오츠카 에이지가 "순문학 문예잡지의 판매 부진은 순문학의 문화적 가치가 낮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히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쇼노 요리코는 순문학을 옹호하며 비판했다.[1] 오오츠카 에이지는 만화잡지 편집자 출신으로, "판매량이 높은 작품이 사회에 필요한 것, 즉 가치가 있다"는 시장 원리를 전제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반면 쇼노 요리코는 순문학의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논쟁을 이어갔다.[1]
참조
[1]
간행물
"「アクチュアリティ」の時代: 純文学論争における平野謙"
https://doi.org/10.1[...]
日本近代文学会
2014
[2]
웹사이트
"「経済効果だけで芸術の価値を計るな」と言い続けています。"
http://www.webchikum[...]
www.webchikuma.jp
2020-10-19
[3]
서적
ドン・キホーテの「論争」
講談社
[4]
웹사이트
"「不良債権としての『文学』」(「群像」2002年6月号) 大塚英志"
http://www.bungaku.n[...]
[5]
웹사이트
徹底抗戦!文士の森
http://www.kawade.co[...]
www.kawade.co.jp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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