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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구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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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창 구암정은 조선 초기의 인물인 양배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에 세워진 정자이다. 양배는 남원 출신으로, 학문이 높았으나 사화를 겪으며 벼슬을 버리고 아우 양돈과 함께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이들이 즐겨 앉았던 바위는 배암, 돈암 또는 형제암으로 불리며, 양배 사후에는 지계사에 위패가 모셔졌다. 현재 구암정은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만수탄 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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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구암정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구암정 정보
이름구암정 (龜岩亭)
구암정 그림
구암정
국가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131
지정일1990년 6월 30일
주소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1028
수량1동
문화재청 ID31,01310000,35

2. 건립 배경 및 인물

구암정은 조선 초기의 인물인 양배/楊培중국어의 덕망을 흠모하여 후학들이 대한제국 광무 2년(1898)에 지은 것이다.[1] 구암은 양배의 호다.[1] 순창 구미에서 태어난 양배는 학문이 매우 높았으나, 무오사화, 갑자사화등 몇 차례의 사화(士禍)로 어진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길을 포기하고, 아우 돈(敦)과 함께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1] 이들 형제가 즐겨 앉았다는 만수탄의 바위를 배암(培巖), 돈암(敦巖) 또는 형제암이라고 부른다.[1] 적성면 지북에 있었던 지계사(芝溪祠)가 양배의 위패를 모셨던 곳이다.[1]

2. 1. 양배(楊培)

양배(楊培)는 남원 출신으로 학문이 매우 높았으나, 무오사화갑자사화 등 사화(士禍)를 겪으며 어진 선비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길을 포기하였다.[1] 아우 양돈(楊敦)과 함께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1] 이들 형제가 즐겨 앉았다는 만수탄의 바위를 배암(培巖), 돈암(敦巖) 또는 형제암이라고 부른다.[1] 사후 적성면 지북에 있었던 지계사(芝溪祠)에 위패가 모셔졌다.[1]

2. 2. 양돈(楊敦)

양돈(楊敦)은 양배의 아우로, 형과 함께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서 고기를 낚으며 은둔 생활을 하였다.[1] 이들 형제가 즐겨 앉았다는 만수탄의 바위는 돈암(敦巖) 또는 형제암이라고 불린다.[1]

3. 귀암정과 형제암

귀암 양배는 남원 사람으로, 학문이 높았으나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아우 돈(墩)과 함께 자연 속에 묻혀 살았다.[1]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는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培巖)·돈암(敦巖)이라 부르거나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르고 있다.[1]

그가 죽은 뒤에 사림에서는 지계사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들은 그의 덕망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귀암정’이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관련 유적

4. 1. 지계사(芝溪祠)

5. 기타

귀암정은 현재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만수탄 위에 위치해 있다.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귀암 양배는 남원 사람으로,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자연 속에 묻혀 아우 양돈과 함께 세상을 잊고 살았다.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는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돈암이라 부르거나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사림에서는 ‘지계사’를 지어 제사를 모시고 있으며, 후손들은 그의 덕망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귀암정’이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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