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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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타산드로스는 기원전 4세기에 키프로스 솔로이 왕국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장군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의 태수로 임명되었으며, 디아도코이 전쟁에서 에우메네스 편에 서서 안티고노스에 대항했다. 가비에네 전투에서 패배한 후 영토를 잃고 이후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스타산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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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스타산드로스는 기원전 4세기에 솔로이 왕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키프로스의 10개 도시 왕국은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의 봉신 국가였다.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키프로스 왕국은 마케도니아로 전향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에 대한 그들의 충성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감안하여 키프로스인들을 사면했다. 스타산드로스와 그의 형제 스타사노르는 마케도니아 군에 입대하여 친위대까지 빠르게 승진했는데, 이는 그들이 솔로이 왕실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그의 경로 지도.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그의 경로 지도.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후, 그의 제국은 분열되었다. 기원전 321년에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스타산드로스는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디아도코이 전쟁 기간 동안 그는 에우메네스 편에 서서 안티고노스에 대항했다. 기원전 317년, 메디아 태수 페이톤파르티아의 이전 장군이었던 필로타스(필리포스의 오기)를 처형하고 동생 에우다모스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에 스타산드로스를 포함한 제국 동방을 지배하는 태수들이 연합하여 페이톤과 싸웠다. 또한 같은 해, 안티고노스와 에우메네스와의 전투에서 스타산드로스는 다른 동방의 태수들과 마찬가지로 에우메네스에게 가담하여 자국령과 박트리아에서 1500명의 보병과 1000기의 기병을 이끌고 참전했다. 그는 〈파라에타케네 전투〉와 〈가비에네 전투〉에서 기병 부대를 이끌고 싸웠다. 가비에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에게 패배했다. 가비에네 전투 이후 아군의 배신으로 에우메네스가 안티고노스에 인도되자 스타산드로스의 영지는 안티고노스의 손에 넘어갔다. 안티고노스는 아레이아를 처음 에우이토스에 주었지만 에우이토스가 이내 사망했기 때문에 에우아고라스를 태수로 임명했다. 이후 스타산드로스의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2.1. 키프로스 출신 장군

스타산드로스는 기원전 4세기에 솔로이 왕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키프로스의 10개 도시 왕국은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의 봉신 국가였다.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키프로스 왕국은 마케도니아로 전향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에 대한 그들의 충성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감안하여 키프로스인들을 사면했다. 스타산드로스와 그의 형제 스타사노르는 마케도니아 군에 입대하여 친위대까지 빠르게 승진했는데, 이는 그들이 솔로이 왕실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그의 경로 지도.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그의 경로 지도.


알렉산드로스 사후, 스타산드로스는 드랑기아나를 다스렸다. 디아도코이 전쟁 기간 동안 그는 에우메네스 편에 서서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에 대항했다. 가비에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에게 패배한 후, 그의 영토는 에우이투스에게 넘어갔다. 스타산드로스의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2.2. 알렉산드로스 사후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후, 그의 제국은 분열되었다. 기원전 321년에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스타산드로스는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기원전 317년, 메디아 태수 페이톤파르티아의 이전 장군이었던 필로타스(필리포스의 오기)를 처형하고 동생 에우다모스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에 스타산드로스를 포함한 제국 동방을 지배하는 태수들은 자신들이 그 반복된 실패의 사례가 되는 것을 두려워 연합하여 페이톤과 싸웠다.

같은 해, 안티고노스와 에우메네스와 전투 시 스타산드로스는 다른 동방의 태수들과 마찬가지로 에우메네스에게 가담하여 자국령과 박트리아에서 1500명의 보병과 1000기의 기병을 이끌고 등장했다. 그리고 〈파라에타케네 전투〉와 〈가비에네 전투〉에서 함께 기병 부대를 이끌고 싸웠다. 가비에네 전투 이후 아군의 배신으로 에우메네스가 안티고노스에 인도 되자 스타산드로스 영지는 안티고노스의 손에 넘어 갔다. 안티고노스는 아레이아를 처음 에우이토스에 주었지만 에우이토스가 이내 사망했기 때문에 에우아고라스를 태수로 임명했다. 태수 영지를 내준 뒤 스타산드로스가 어떻게 되었는 지는 불분명하다.

2.3. 디아도코이 전쟁

기원전 321년 이전의 스타산드로스의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알렉산더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 기원전 321년에 개최된 트리파라디소스 회의에서 스타산드로스는 아레이아와 도란기아나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디아도코이 전쟁 기간 동안 그는 에우메네스 편에 서서 안티고노스에 대항했다. 기원전 317년, 메디아 태수 페이톤파르티아의 이전 장군이었던 필로타스(필리포스의 오기)를 처형하고 동생 에우다모스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에 스타산드로스를 포함한 제국 동방을 지배하는 태수들이 연합하여 페이톤과 싸웠다. 또한 같은 해, 안티고노스와 에우메네스와의 전투에서 스타산드로스는 다른 동방의 태수들과 마찬가지로 에우메네스에게 가담하여 자국령과 박트리아에서 1500명의 보병과 1000기의 기병을 이끌고 참전했다. 그는 〈파라에타케네 전투〉와 〈가비에네 전투〉에서 기병 부대를 이끌고 싸웠다. 가비에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에게 패배했다. 가비에네 전투 이후 아군의 배신으로 에우메네스가 안티고노스에 인도되자 스타산드로스의 영지는 안티고노스의 손에 넘어갔다. 안티고노스는 아레이아를 처음 에우이토스에 주었지만 에우이토스가 이내 사망했기 때문에 에우아고라스를 태수로 임명했다. 이후 스타산드로스의 행적과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