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보이드
1. 개요
스티븐 보이드는 북아일랜드 출신의 배우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보험 회사, 여행사 등에서 일하며 연극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런던 무대에서 경력을 쌓았다. 영화 《벤허》에서 메살라 역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로마 제국의 멸망》, 《징기스칸》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1977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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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계 북아일랜드인 -
앨런 매너스
앨런 매너스는 린필드 FC에서 프로 데뷔하여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한 골키퍼로, 린필드 FC와 샴록 로버스 FC에서 여러 차례 리그 우승과 컵 우승을 달성하고 얼스터 올해의 축구 선수상 등을 수상한 후 2023년 은퇴했다. -
북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 -
토미 메이컴
토미 메이컴은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아일랜드 전통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에 알리고 더 클랜시 브라더스 멤버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포크 음악가, 작곡가, 시인이다. -
북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 -
가스 에니스
가스 에니스는 북아일랜드 출신 만화 작가로, 《프리처》, 《히트맨》 등의 대표작을 통해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목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슈퍼히어로 장르를 전복시키며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
앤트림주 출신 -
제임스 네즈빗
제임스 네즈빗은 1965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BBC 드라마 《Virtuoso》로 데뷔하여 《콜드 핏》, 《블러디 선데이》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이며, 영화 《웨이킹 네드》, 《호빗》 시리즈에도 출연하고 자선 활동도 하는 인물이다. -
앤트림주 출신 -
제임스 오어
제임스 오어는 1798년 아일랜드 반란 이후 망명자들의 삶을 그린 시를 쓴 아일랜드 시인으로, 대표작 "승객"은 망명길에 오른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을 묘사하며 사회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2. 초기 생애 및 연극 경력
스티븐 보이드는 북아일랜드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한 후 더 큰 무대를 찾아 런던으로 이주했다. 초기에는 보험 회사나 여행사에서 일하며 밤이나 주말에 연극 활동을 이어갔고, 웨이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기 기회를 모색했다. 극단 활동을 통해 3년간 무대 경험을 쌓았으며, 'The Arts Council Midland Theatre Company'에 참여하고 BBC에도 출연하며 점차 경력을 넓혀나갔다.
1956년, 그는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고 영화계에 진출했다. 데뷔작은 아일랜드인 스파이 역을 맡은 The Man Who Never Was였다. 3년 후인 1959년에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대작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찰턴 헤스턴)의 숙적인 로마 장교 메살라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1. 어린 시절과 가족
스티븐 보이드는 1931년 7월 4일 앤트림주 화이트하우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부모인 제임스 알렉산더 밀러와 그의 아내 마사 보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자녀 중 막내였다. 윌리엄, 또는 빌리라고 알려진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글렌곰리로 이사했다. 보이드는 아일랜드 장로교 신자로 자랐으며, 지역 공립 초등학교와 밸리클레어 고등학교에 다녔다.
14세에 보이드는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얼스터 그룹 극단에 합류하여 극장의 뒷일들을 배웠다. 그는 조셉 토멜티가 쓴 벨파스트 가족의 이야기인 얼스터 라디오 프로그램 "맥쿠이즈"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경찰로 출연하여 벨파스트에서 명성을 얻었다.
보이드는 결국 조역을 거쳐 주연 배역을 맡게 되었다. 19세가 되기 전에 그는 서머 스톡 컴퍼니와 함께 캐나다 투어를 했다. 1950년, 그는 클레어 트리 메이저 컴퍼니와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스탠리 코왈스키 역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공연했다. 보이드는 나중에 이를 "내 평생 최고의 연기"였다고 회상했다.
20세가 되었을 때, 보이드에게는 광범위한 연극 경험이 있었지만, 그는 큰 무대를 갈망했다. 1952년,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고 레스터 스퀘어의 영화관 밖에서 버스킹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는 말 그대로 굶주릴 지경이었다. 보이드는 오데온 극장의 문지기로 일하기도 했다.
길 건너편의 레스터 스퀘어 영화관은 1950년대 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을 안내하도록 그를 고용했다. 시상식에서 그는 배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경에게 눈에 띄었고, 그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보이드를 윈저 레퍼토리 그룹의 감독에게 소개했다. 이때부터 보이드의 영국 무대 경력은 "깊고 푸른 바다"와 "바넷의 어리석음"에서의 공연으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2.2. 연극 경력 시작
스티븐 보이드는 1931년 7월 4일 앤트림주 화이트하우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부모인 제임스 알렉산더 밀러와 그의 아내 마사 보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자녀 중 막내였다. 윌리엄, 또는 빌리라고 알려진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글렌곰리로 이사했다. 보이드는 아일랜드 장로교 신자로 자랐으며, 지역 공립 초등학교와 밸리클레어 고등학교에 다녔다.
14세에 보이드는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얼스터 그룹 극단에 합류하여 극장의 다양한 업무를 배우며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벨파스트를 배경으로 한 조셉 토멜티의 라디오 드라마 "맥쿠이즈"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경찰관 역을 맡아 지역에서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보이드는 점차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조역에서 주연 배우로 성장했다. 19세가 되기 전에는 서머 스톡 컴퍼니 소속으로 캐나다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1950년에는 클레어 트리 메이저 극단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스탠리 코왈스키 역을 연기했다. 보이드는 훗날 이 시기의 연기를 "내 평생 최고의 연기"였다고 회상했다.
20세 무렵, 보이드는 이미 폭넓은 연극 경험을 쌓았지만 더 큰 무대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1952년,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거나 레스터 스퀘어의 영화관 앞에서 버스킹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때로는 굶주림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오데온 극장의 도어맨으로 일하게 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레스터 스퀘어의 한 영화관에서 1950년대 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안내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때 배우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경의 눈에 띄게 되었다. 레드그레이브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보이드를 윈저 레퍼토리 그룹의 감독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보이드의 영국 연극계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깊고 푸른 바다(The Deep Blue Sea)"와 "바넷의 어리석음(Barnett's Folly)"과 같은 작품에 출연하며 점차 명성을 얻어갔다.
2.3. 런던 시절
보험 회사나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밤이나 주말에 연극 활동을 이어갔다. 극단에 들어가 3년 동안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웨이터 등으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면서 연기 기회를 모색했다. 그러던 중 'The Arts Council Midland Theatre Company'에 참여하게 되었고, BBC에도 출연하며 경력을 넓혀나갔다.
1956년에는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고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아일랜드인 스파이 역할을 맡은 The Man Who Never Was였다.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3년 뒤에는 유명한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찰턴 헤스턴)의 라이벌인 메살라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3. 영화 경력
보험 회사나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밤이나 주말에 연극 활동을 이어갔고, 극단에 들어가 3년 동안 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후 런던으로 이주하여 웨이터 등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연기 기회를 모색했고, The Arts Council Midland Theatre Company에 참여하고 BBC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1956년,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고 영화 The Man Who Never Was에서 아일랜드인 스파이 역을 맡으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3년 후인 1959년에는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찰턴 헤스턴 분)의 숙적인 '메살라' 역을 연기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유럽 영화에 주로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77년 6월 2일, 심장 발작으로 4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3.1. 초기 영화 출연
보이드가 처음으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역할은 이웬 몬태규의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 결코 없었던 사나이(1956)에서 친나치 성향의 아일랜드 스파이를 연기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1956년 4월에 개봉했다.
이후 그는 20세기 폭스와 10년 계약을 맺었고, 스튜디오는 그를 할리우드로 데뷔시키려 했으나 실제 할리우드 촬영장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보이드의 다음 촬영지는 포르투갈이었으며, 이곳에서 미래의 스타 마이클 케인과 로버트 쇼가 함께 출연한 한국의 언덕에 참여했다. 1956년 6월에는 타이론 파워가 주연을 맡은 컬럼비아 스튜디오의 해난 사고 영화 선박 포기!에 캐스팅되었다. 이 영화는 1956년 여름 런던에서 촬영되었으며, 영국 해군은 촬영을 위해 130000L 규모의 물탱크를 건설하기도 했다.
1956년 11월, 보이드는 20세기 폭스 영화 태양의 섬 촬영을 위해 영국령 서인도 제도로 떠났다. 이 영화는 대릴 재넉이 제작하고 알렉 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도로시 댄드리지가 주연을 맡았다. 보이드는 극중 조앤 콜린스의 상대역인 젊은 영국 귀족을 연기했다. 이후 그는 J. 아서 랭크가 제작한 제2차 세계 대전 로맨스 영화 마르세유의 야수(Seven Thunders)에 대여되어 출연했다. 나치 점령 하의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1957년 봄, 마르세유 현지와 런던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으며, 이 작품에서 보이드는 가장 비중 있는 주연 역할을 맡았다.
같은 시기,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성공에 힘입어 차기작의 남자 주인공을 직접 선택할 기회를 얻었고, 보이드를 낙점했다. 1957년 8월부터 10월까지, 바르도, 보이드, 알리다 발리는 로제 바딤 감독의 로맨스 영화 밤은 하늘을 덮었다를 파리와 스페인 말라가 지방에서 촬영했다. 바르도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은 보이드의 할리우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보이드는 1958년 1월 마침내 할리우드에 도착하여 20세기 폭스의 서부 영화 브라바도스를 통해 할리우드 데뷔를 이루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네 명으로 구성된 무법자 무리의 리더 역할을 맡았으며, 그레고리 펙과 조앤 콜린스가 함께 출연했다. 실제 촬영은 멕시코 모렐리아에서 진행되었다.
3.2. 《벤허》와 국제적 명성
보이드가 처음으로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웬 몬태규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결코 없었던 사나이》(1956)에서 친나치 성향의 아일랜드 스파이 역을 맡으면서였다. 이 영화는 1956년 4월에 개봉하여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안겨주었다.
이후 20세기 폭스와 10년 계약을 맺고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했지만, 실제 할리우드 촬영장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포르투갈에서 촬영한 《한국의 언덕》에 미래의 스타 마이클 케인, 로버트 쇼와 함께 출연했고, 타이론 파워 주연의 재난 모험 영화 《선박 포기!》(1956)에도 캐스팅되었다.
1956년 11월에는 대릴 재넉이 제작한 20세기 폭스 영화 《태양의 섬》 촬영을 위해 영국령 서인도 제도로 갔으며, 이 영화에서 조앤 콜린스의 상대역인 젊은 영국 귀족을 연기했다. 또한 J. 아서 랭크가 제작한 제2차 세계 대전 배경의 로맨스 영화 《마르세유의 야수》(Seven Thunders)에 출연하여 주연급 역할을 맡았다.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의 성공 이후 차기작 남자 주인공으로 보이드를 직접 선택했다. 두 사람은 1957년 8월부터 10월까지 로제 바딤 감독의 로맨스 영화 《밤은 하늘을 덮었다》를 촬영했으며, 이 작품은 보이드가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데 기여했다.
1958년 1월, 보이드는 마침내 할리우드에 도착하여 그레고리 펙, 조앤 콜린스와 함께 출연한 20세기 폭스의 서부 영화 《브라바도스》에서 무법자 무리의 리더 역을 맡으며 할리우드 데뷔를 이루었다.
1959년, 그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대작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유다 벤허(찰턴 헤스턴 분)의 로마인 친구이자 숙적이 되는 '메살라' 역을 맡았다. 이 역할에서의 강렬한 연기는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보이드를 국제적인 스타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벤허》의 성공은 그의 경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3. 1960년대 활동
1959년 영화 『벤허』에서 찰턴 헤스턴이 연기한 주인공의 숙적인 메살라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역할은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주었으며, 1960년대 그의 경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960년대 어느 시점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세 채의 집을 소유하기도 했다. 선셋 스트립 위, 타잔자, 그리고 팜스프링스에 각각 집이 있었으며, 팜스프링스에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골프를 즐겼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활동 무대를 넓혀 유럽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다.
3.4. 1970년대 활동과 유럽 영화 출연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으며, 1970년대 들어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자, 보이드는 유럽 영화와 여러 편의 텔레비전 파일럿 및 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는 호세 안토니오 니에베스 꼰데 감독과 함께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1970년작 마르타, 1971년작 대사기극, 1975년작 카사 만차다가 있다. 컬트 영화 감독 로맹 가리와 함께 1971년 마약 스릴러 영화 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서부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라켈 웰치와 함께 출연한 1971년작 해니 콜더, 1973년작 더 맨 콜드 눈, 1973년작 저 더티 독스, 1976년작 Potato Fritz독일어 (원제: Montana Trap) 등이 있다.
보이드는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72년에는 코르막 조이스의 손 촬영을 위해 호주로, 1972년부터 1973년까지는 컨트롤 팩터와 더 매니퓰레이터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1972년에는 스쿠버 다이빙 어드벤처 영화 자메이카 리프의 보물 촬영을 위해 자메이카로, 1973년에는 텔레비전 파일럿 키 웨스트 촬영을 위해 플로리다로 갔다. 1977년에는 인기 텔레비전 쇼 하와이 파이브-O에 게스트 스타로 출연하기 위해 하와이로 갔다. 그가 출연한 '반란군을 올려' 에피소드는 하와이 파이브-O의 열 번째 시즌 첫 에피소드로, 1977년 9월 15일 보이드의 사망 이후 방영되었다.
1970년대 그의 역할 중 가장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것은 1977년 영국 범죄 스릴러 영화 더 스퀴즈에서 연기한 다채로운 아일랜드 갱스터 역이었다.
영화 프로듀서 유언 로이드(샤라코, 더 맨 콜드 눈, 특수공작원 등 제작)는 편지에서 스티븐 보이드를 "제가 평생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하고 친절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이 직업에서는 드문 경우입니다."라고 평가했다.
1977년 6월 2일, 보이드는 심장 발작으로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개인사
보험 회사나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밤이나 주말에 연극을 계속했고, 이후 극단에 들어가 3년 동안 무대에 섰다. 그 후 런던으로 가서 웨이터 등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기회를 엿보던 중 'The Arts Council Midland Theatre Company'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며, BBC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1956년,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맺고 아일랜드인 스파이를 연기한 영화 The Man Who Never Was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3년 후인 1959년에는 영화 벤허에서 찰턴 헤스턴이 연기한 주인공의 숙적 '메살라'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유럽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다.
1977년 6월 2일, 심장 발작으로 인해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5. 사망
1977년 6월 2일, 심장 발작으로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출연작 목록
스티븐 보이드가 출연한 주요 작품 목록은 아래와 같다. 상세한 내용은 영화 및 텔레비전 드라마 섹션을 참고할 수 있다.
6.1. 영화
보이드가 처음으로 호평을 받은 역할은 이웬 몬태규의 책을 바탕으로 한 1956년 영화 존재한 적 없는 사나이에서 나치에 동조하는 아일랜드 스파이 역이었다. 이후 20세기 폭스와 계약하고 양지의 섬,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한 위험한 사랑, 그레고리 펙과 공연한 서부극 브라바도스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1970년대에는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자 유럽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했다.
| 연도 | 제목 | 원제 | 배역 | 비고 |
|---|---|---|---|---|
| 1953 | 블랙 13 | Black 13 | 경찰 | 크레딧 미표기 |
| 1954 | 봄의 라일락 | Lilacs in the Spring | 보몬트의 풀사이드 동반자 | 크레딧 미표기 |
| 1955 | 데이지라 불린 악어 | An Alligator Named Daisy | 앨버트 오섀넌 | |
| 1955 | 본 포 트러블 | Born for Trouble | ||
| 1956 | 존재한 적 없는 사나이 | The Man Who Never Was | 패트릭 오라일리 | |
| 1956 | 힐 인 코리아 | A Hill in Korea | 심스 사병 | |
| 1956–57 | 애기 모험 | The Adventures of Aggie | 텔레비전 시리즈 | |
| 1957 | 27인의 표류자 | Seven Waves Away | 윌 매킨리 | |
| 1957 | 양지의 섬 | Island in the Sun | 유언 템플턴 | |
| 1957 | 마르세유의 야수 | Seven Thunders | 데이브 | |
| 1958 | 위험한 사랑 | Les Bijoutiers du clair de lune | 램버트 | 영국 개봉명: Heaven Fell That Night |
| 1958 | 브라바도스 | The Bravados | 빌 재커리 | |
| 1959 | 죽도록 사랑하련다 | Woman Obsessed | 프레드 카터 | |
| 1959 | 베스트 오브 에브리싱 | The Best of Everything | 마이크 라이스 | |
| 1959 | 벤허 | Ben-Hur | 멧살라 |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
| 1961 | 빅 갬블 | The Big Gamble | 빅 브레넌 | |
| 1962 | 리사 | Lisa | 피터 종먼 | 영국 개봉명: The Inspector |
| 1962 | 빌리 로즈의 점보 | Billy Rose's Jumbo | 샘 롤린스 | |
| 1962 | 황제의 비너스 | Venere imperiale | 쥘 드 카누빌 | |
| 1964 | 제3의 비밀 | The Third Secret | 앨릭스 스테드먼 | |
| 1964 | 로마 제국의 멸망 |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 리비우스 | |
| 1965 | 징기스칸 | Genghis Khan | 자무가 | |
| 1966 | 오스카 | The Oscar | 프랭크 페인 | |
| 1966 | 헤로인 커넥션 | The Poppy Is Also a Flower | 벤슨 | 텔레비전 영화 |
| 1966 | 마이크로 결사대 | Fantastic Voyage | 찰스 그랜트 | |
| 1966 | 천지창조 | The Bible: In the Beginning... | 니므롯 | |
| 1967 | 황금소의 발호 | The Caper of the Golden Bulls | 피터 처치먼 | |
| 1968 | 비밀 지령 K | Assignment K | 필립 스콧 | |
| 1968 | 샬라코 | Shalako | 보스키 풀턴 | |
| 1969 | 노예들 | Slaves | 매케이 | |
| 1970 | 카터의 군대 | Carter's Army | 보 카터 대위 | TV 영화 |
| 1971 | 마르타 | Marta | 돈 미겔 | 스페인어 영화 ../Y al tercer año, resucitó의 일부로도 알려짐 |
| 1971 | 아프리카 이야기 | African Story | 아널드 틸러 | |
| 1971 | 서부의 여걸 한니 | Hannie Caulder | 목사 | 크레딧 미표기 |
| 1971 | 대사기극 | The Great Swindle (Historia de una traición) | 아르투로 / 데이브 바턴 | |
| 1971 | 킬 킬 킬 | Kill! Kill! Kill! Kill! | 브래드 킬리언 | |
| 1972 | 악마는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 The Devil Has Seven Faces | 레온 우르루티아 (보석상) | |
| 1972 | 코맥 조이스의 손 | The Hands of Cormac Joyce | 코맥 조이스 | TV 영화 |
| 1973 | 저 더티 독스 | Those Dirty Dogs (Campa carogna... la taglia cresce) | 채드우드 윌러 대위 | |
| 1973 | 빅 게임 | The Big Game | 레이턴 반 다이크 | |
| 1973 | 더 맨 콜드 눈 | The Man Called Noon | 라임스 | |
| 1974 | 자메이카 리프의 보물 | The Treasure of Jamaica Reef | 휴고 그레이엄 | |
| 1975 | 법의 왼손 | The Left Hand of the Law (La polizia interviene: ordine di uccidere) | 란자 | |
| 1975 | 조직에 도전한 사나이 | The Man Who Challenged the Organization (L'uomo che sfidò l'organizzazione) | 스티븐 맥코믹 형사 | |
| 1975 | 제니 돌란의 삶 | The Lives of Jenny Dolan | 조 로시터 | TV 영화 |
| 1976 | 몬타나의 황금 요새 | Montana Trap (Potato Fritz) | 빌 아르디손 | |
| 1977 | 레이디 드라큘라 | Lady Dracula | 드라큘라 백작 | 사후 개봉 |
| 1977 | 최후의 대결 | The Squeeze | 빅 | 사후 개봉 |
| 1977 | 병원의 여자들 | Women in Hospital (Frauenstation) | 오버호프 의사 | 사후 개봉 |
| 1977 | 불가능한 사랑 | Impossible Love (Questo sì che è amore) | 알바로 | 사후 개봉 |
| 1977 | 하와이 파이브-O | Hawaii Five-O | 다니엘 코스티건 | 텔레비전 시리즈, 에피소드: "Up the Rebels" (사후 방영) |
6.2. 텔레비전 드라마
1970년대에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자, 스티븐 보이드는 유럽 영화와 더불어 여러 편의 텔레비전 파일럿 및 쇼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가 출연한 주요 텔레비전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애기 모험 (1956–57)
* 악의 심포니 (1966) - 텔레비전 영화, 벤슨 역
* 카터의 군대 (1970) - 텔레비전 영화, 보 카터 대위 역
* 코맥 조이스의 손 (1972) - 텔레비전 영화, 코맥 조이스 역
* 키 웨스트 (1973) - 텔레비전 파일럿
* 제니 돌란의 삶 (1975) - 조 로시터 역
* 하와이 파이브-O (1977) - 텔레비전 시리즈, 다니엘 코스티건 역 (사후 방영)
특히 1977년에는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하와이 파이브-O에 다니엘 코스티건 역으로 게스트 출연했다. 그가 출연한 '반란군을 올려'(Up the Rebels영어) 에피소드는 시즌 10의 첫 에피소드로, 1977년 9월 15일 보이드가 사망한 이후에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