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빈
1. 개요
신석빈은 일제강점기 출생하여 정읍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읍군 갑 선거구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평양방송에 출연해 납치된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1986년 사망했다.
| 이름 | 신석빈 |
|---|---|
| 한자 표기 | 辛錫斌 |
| 출생 | 1897년 |
| 사망 | 1986년 6월 4일 |
| 사망 장소 | 평안북도 |
| 직업 | 정치인 |
| 주요 경력 | 제헌 대한민국 국회의원 제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
| 정당 | 무소속 |
| 기타 활동 |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회 위원 |
-
정읍제일고등학교 동문 -
윤철상
윤철상은 민주화추진협의회,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에서 주요 당직을 거쳐 제15대,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정읍제일고등학교 동문 -
이승로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
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대한민국의 제2대 국회의원 -
권중돈
권중돈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무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민주당, 신민당 등 야당에서 활동하며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2. 생애
전라북도 정읍군 (현 정읍시)에서 태어나 정읍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지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정읍군 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을 1기 역임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후 종로구의 한 여관에 하숙하던 중 북한에 납치되었다. 이후 엄항섭 등과 함께 휴전 운동을 벌였고,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맡기도 했다. 1964년에는 평양방송에 출연하여 "납치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986년 6월 4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1. 정치 활동
전라북도 정읍군 (현 정읍시)에서 태어나 정읍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라북도 내무국장을 거쳐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정읍군 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1기 역임했다.
| 선거명 | 결과 | 비고 |
|---|---|---|
| 제2대 총선 (전북 정읍군 갑) | 당선 (17,987표, 39.62%) | 초선 |
1950년 6월 한국 전쟁 때 종로구의 한 여관에 하숙하던 중 북한에 납치되었다. 1950년 12월에는 재교육을 위해 만포시 부근으로 이주되었고, 1951년 7월 엄항섭한국어 등과 함께 휴전 운동을 벌여 즉시 종전과 휴전 협상을 호소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8년 연말 무렵 평안북도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4년 7월 26일부터 안재홍 등과 함께 평양방송에 출연하여 "납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86년 6월 4일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2. 한국 전쟁과 납북
1950년 6월 한국 전쟁 때 종로구의 한 여관에서 하숙하던 중 북한에 납치되었다. 1950년 12월 재교육을 위해 만포시 부근으로 이주되었고, 1951년 7월 엄항섭한국어 등과 함께 휴전 운동에 참여하여 즉시 종전과 휴전 협상을 호소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8년 연말 무렵 평안북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4년 7월 26일부터 안재홍 등과 함께 평양방송에 출연하여 "납치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986년 6월 4일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3. 납북 이후
1950년 6월 한국 전쟁 때 종로구의 한 여관에 하숙하던 중 북한에 납치되었다. 1950년 12월에는 재교육을 위해 만포시 부근으로 이주되었고, 1951년 7월 엄항섭한국어 등과 함께 휴전 운동을 벌여 즉시 종전과 휴전 협상을 호소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8년 연말 무렵 평안북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4년 7월 26일부터 안재홍 등과 함께 평양방송에 출연하여 "납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86년 6월 4일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4. 사망
1950년 6월 한국 전쟁 때 종로구의 한 여관에서 하숙하던 중 북한에 납치되었다. 1950년 12월 만포시 부근으로 재교육을 위해 이주되었고, 1951년 7월 엄항섭 등과 함께 휴전 운동에 참여하여 즉시 종전과 휴전 협상을 호소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1956년 7월 재북 평화통일 촉진 협의회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맡았고, 1958년 연말 무렵 평안북도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4년 7월 26일부터 안재홍 등과 함께 평양방송에 출연하여 "납치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986년 6월 4일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3.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50년 | 총선 | 무소속 | 17,987표 (39.62%) | 1위 | 당선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