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부
1. 개요
심원부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전리판서를 역임하고 이제현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고려 멸망 후 절의를 지켜 두문동에 들어갔으며, 조선 건국 후 벼슬을 거절하고 자손들에게도 벼슬에 나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고려오은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청기세고》에 시문집이 실려 있다. 개성 두문동 서원과 장성 경현사에 배향되었다.
심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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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고려 말 전리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익재 이제현의 문인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절의를 지켜 두문동에 들어갔다. 「부조현언지록」에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왕촉(王蠋)의 말에 경복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조선 건국 후 나라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주고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자손들에게도 벼슬에 나가지 말 것을 경계하였다.
3. 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조부 | 심연(沈淵) | 고려조 합문지후 |
| 부친 | 심룡(沈龍) | 고려조 전리정랑, 증 문하시중,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
| 모친 | 김씨(金氏) | |
| 형 | 심덕부(沈德符) | 고려조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 문하시중 · 조선조 청성백(靑城伯) 영삼사사 문하부 좌정승 |
| 조카 | 심인봉(沈仁鳳) | 의흥삼군부 도총제 |
| 조카 | 심의귀(沈義龜) | |
| 조카 | 심도생(沈道生) | 본명 심계년(沈繼年), 고려조 성주지사(成州知事) |
| 조카 | 심징(沈澄) | 인수부윤, 경창부윤 |
| 조카 | 심온(沈溫) | 조선 제4대 세종의 국구(장인),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영의정 |
| 조카 | 심종(沈淙) | 조선 태조 이성계의 부마(사위), 청원군(靑原君), 경상도 절도사 |
| 조카 | 심정(沈泟) | 의흥삼군부 동지총제 |
| 본인 | 심원부(沈元符) | 고려조 전리판서, 악은(岳隱), 고려오은(高麗五隱), 두문동칠십이현 |
| 장남 | 심천윤(沈天潤) | 고려조 영동정(令同正), 소류 심성지(小流 沈誠之, 1896년 을미의병 청송의병대장)의 14대조, 송소 심호택(松韶 沈琥澤, 송소고택 제1대 장주 · 대한제국 내부주사)의 17대조 |
| 차남 | 심천주(沈天柱) | 고려조 현령(縣令), 임진왜란 의병장 심기일 (沈紀一, 증 병조참판), 심대승 (沈大承, 훈련원 판관 · 군자감정 · 임진왜란 의병장 · 증 좌승지)의 7대조, 심명보(沈明輔, 국회의원 · 민주정의당 대변인 · 총재(대통령) 비서실장 · 사무총장)의 21대조, 심우영(沈宇永, 경상북도지사 · 청와대 행정수석 · 총무처 장관)의 23대조 |
| 삼남 | 심천식(沈天湜) |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인 |
5. 문집
《청기세고》에 심원부의 시문집 《악은선생일고(岳隱先生逸稿)》가 실려있다.
6. 서원과 사당 배향
심원보는 개성특별시 개풍군 광덕면에 있던 두문동 서원과 전남 장성군 남면 삼태리에 있는 경현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