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쿠시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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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쓰쿠시 지진은 덴무 천황 7년(679년) 규슈 북부 쓰쿠시국에서 발생한 대지진이다. 일본서기와 분고국 풍토기 등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땅이 갈라지고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온천이 분출하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 지진 규모는 지진학자들에 의해 M6.5~7.5 정도로 추정되며, 미노 단층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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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세기 지진 - 하쿠호 지진
684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하쿠호 지진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대규모 지진으로, 산사태, 하천 범람, 건물 붕괴, 특히 쓰나미로 인해 도사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으며, 난카이 지진의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이고 덴무 천황 시대의 활발한 지진 활동과 함께 발생했다.
쓰쿠시 지진 | |
---|---|
지진 정보 | |
이름 | 679 쓰쿠시 지진 |
위치 | 규슈 북부 |
규모 | 6.5~7.5 Mw (모멘트 규모) |
영향 지역 | 규슈, 일본 |
1900년 이전 발생 여부 | 예 |
관련 문서 |
2. 지진 기록
덴무 천황 7년(679년) 12월 (율리우스력 679년 1월 18일-2월 15일, 그레고리력 679년 1월 21일-2월 18일 사이) 규슈 북부 쓰쿠시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진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는 사서마다 다르고 각 사서에서도 정확하게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없다.[18]
지진학자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의 규모를 MK = 3.6으로 추정하고[21] 일본 기상청 규모 M6.7 정도라고 계산했다. 우사미(2003)는 M6.5-7.5 사이의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22]
2. 1. 《일본서기》의 기록
덴무 천황 7년[18] 12월 (율리우스력 679년 1월 18일 - 2월 15일, 그레고리력 679년 1월 21일 - 2월 18일 사이)에 쓰쿠시국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너비 2장 (약 6m), 길이 3000장 이상 (약 10km)이나 되는 땅이 갈라져 마을의 민가가 많이 파괴되었다. 언덕이 무너져 그 위에 있던 집은 통째로 이동했지만 부서지지 않아,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언덕이 무너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날이 밝은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18]
- 『일본서기』 권 제29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덴무 천황 7년 12월 이달
> 쓰쿠시국에 대지가 흔들리다. 땅이 갈라져 너비 2장. 길이가 3천 장 이상. 백성들의 집이 매 마을마다 많이 무너졌다. 이 때 백성 한 집이 언덕 위에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저녁에 언덕이 무너져 내려가자, 집은 온전하고, 무너진 곳은 없었다. 집안 사람들은 언덕이 무너져 집이 피한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다음 날 아침에 알고 크게 놀랐다.
> 고마산(군 남쪽에 있다) 옛날 이 산에 토구모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고마히메였다. 이로 인해 고마산이라고 한다. 아스카 기요미하라 궁에 거처하시는 천황의 시대인 무인년에 큰 지진이 있어 산 언덕이 갈라지고 무너져, 이 산의 한 골짜기가 무너져 온천이 곳곳에서 나왔다. 증기가 뜨거워 밥이 빨리 익었다. 다만 한 곳의 온천은 그 구멍이 우물과 같아 길이가 1장 이상으로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물 색깔은 남색과 같았다. 항상 흐르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놀라 화가 나서 진흙을 1장 이상 뿜어냈다. 지금은 분노탕이라고 한다.
- 『일본서기』 12월 27일 조항에는 되새(랍자조)[20]가 하늘을 덮고 서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굉관이상현상의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20]
2. 2. 《분고국 풍토기》의 기록
다음은 덴무 천황 7년(율리우스력 679년 1월 18일-2월 15일, 그레고리력 679년 1월 21일-2월 18일 사이)에 쓰쿠시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과 함께 분고국 풍토기에 남아있는 고마산(五馬山) 붕괴 및 온천 분출, 간헐천 관련 기록이다.[19]2. 3. 기타 기록
덴무 천황 7년 12월 (율리우스력 679년 1월 18일 - 2월 15일, 그레고리력 679년 1월 21일 - 2월 18일 사이)에 쓰쿠시국을 중심으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일은 사서마다 다르고 각 사서에서도 정확하게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없다.[18]너비 2장 (약 6m), 길이 3000장 이상 (약 10km)의 땅 갈라짐이 생겨 마을의 민가가 다수 파괴되었고, 언덕이 무너져 그 위에 있던 집은 이동했지만 파괴되지 않아 집안 사람들은 언덕 붕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날이 밝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18]
- 『일본서기』 권 제29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일본서기』 12월 27일 조항에는 되새(랍자조)[20]가 하늘을 덮고 서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하며, 굉관이상현상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설도 있다.[20]
지진학자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에 대해 규모 ''M''K = 3.6을 부여[21], 규모 ''M'' = 6.7로 환산했다. 우사미(2003)는 ''M'' = 6.5 - 7.5[22]로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3. 지진의 규모 및 진원
덴무 천황 7년[3] 12월 (율리우스력 679년 1월 18일 - 2월 15일, 그레고리력 679년 1월 21일 - 2월 18일 사이)에 쓰쿠시국을 중심으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일은 불명이다.
너비 2장 (약 6m), 길이 3000장 이상 (약 10km)의 땅 갈라짐이 생겨 마을의 민가가 다수 파괴되었고, 언덕이 무너져 그 위에 있던 집은 이동했지만 파괴되지 않아 집안 사람들은 언덕 붕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날이 밝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4]
『일본서기』 권 제29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덴무 천황 7년 12월 이달
>
> 쓰쿠시국에 대지가 흔들리다. 땅이 갈라져 너비 2장. 길이가 3천 장 이상. 백성들의 집이 매 마을마다 많이 무너졌다. 이 때 백성 한 집이 언덕 위에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저녁에 언덕이 무너져 내려가자, 집은 온전하고, 무너진 곳은 없었다. 집안 사람들은 언덕이 무너져 집이 피한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다음 날 아침에 알고 크게 놀랐다.
『분고국 풍토기』에 따르면, 고마산이 무너져 온천이 곳곳에서 솟아났고, 그 중 하나가 간헐천이었다고 한다.[5] 무인년은 덴무 천황 7년이다.
> 고마산(군 남쪽에 있다) 옛날 이 산에 토구모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고마히메였다. 이로 인해 고마산이라고 한다. 아스카 기요미하라 궁에 거처하시는 천황의 시대인 무인년에 큰 지진이 있어 산 언덕이 갈라지고 무너져, 이 산의 한 골짜기가 무너져 온천이 곳곳에서 나왔다. 증기가 뜨거워 밥이 빨리 익었다. 다만 한 곳의 온천은 그 구멍이 우물과 같아 길이가 1장 이상으로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물 색깔은 남색과 같았다. 항상 흐르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놀라 화가 나서 진흙을 1장 이상 뿜어냈다. 지금은 분노탕이라고 한다.
이 지진 조항 "12월 이달" 바로 앞 『일본서기』 12월 27일 조항에는 랍자조(되새)[6]가 하늘을 덮고 서쪽에서 동북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하며, 거시적 이상 현상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설도 있다.[7]
> 12월 계축 초하루 기묘.
>
> 랍자조가 하늘을 가렸다.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날아갔다.
가와스미 히로시는 이 지진에 대해 규모 ''M''K = 3.6을 부여[8], 규모 ''M'' = 6.7로 환산했다. 우사미(2003)는 ''M'' = 6.5 - 7.5[9]로 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3. 1. 미노 단층
1988년 다자이후의 가미쓰 토루 조사 중 구루메시 교육위원회가 가미쓰 토루 일부가 미끄러져 떨어져 나가 8세기 후반 경 판축토로 복구한 흔적을 발견했다.[23] 이후 조사에서 7세기 경 땅에서 물이 분출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후쿠오카현 미이군 기타노정(현 구루메시) 고가노우에 유적에서도 땅이 갈라지고 물이 분출한 흔적 등이 발견되어 지진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나타났다.[24]1992년에는 미노 단층을 포함하는 거대 단층인 오이와케 단층 위의 야마카와 마에다 유적에서 점토층과 함께 아이라Tn 화산재층(약 2만 수천년 전 지층)에서 2m 정도 되는 단층 균열이 발견되었다. 오이와케 단층 채굴 조사 결과 2만 5천년 사이 미노 단층의 활동으로 보이는 지진 활동 증거가 3차례 발견되었으며, 이 중 가장 최근의 지진 활동은 6세기 이후, 13-14세기 이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규슈 북부의 7세기 경 집중적인 지진 기록은 679년 일어난 쓰쿠시 지진밖에 없으며, 주변에 7세기 경 지진 발생 흔적이 집중된 것으로 보아 가장 강력했던 최근 지진은 쓰쿠시 지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5] 미노 단층과 한꺼번에 이을 경우 단층의 총 길이는 동서 약 20km, 활동 정도는 연간 변위 0.1mm-1mm 정도이며 우향으로 응력을 받는 정단층인 것으로 추정된다.[26][27]
2015년에는 미노 단층에 있는 마스우다 고분군(구루메시 다누시마루정 마스우다 소재, 6세기 경 축조 추정) 중 원분 4기가 쓰쿠시 지진의 피해로 붕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다.[28]
참조
[1]
논문
Aftereffects of Subduction-Zone Earthquakes: Potential Tsunami Hazards along the Japan Sea Coast
https://www.research[...]
2015-09
[2]
서적
Encyclopedia of Earthquakes
Asakura Publishing
2010
[3]
문서
[4]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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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倉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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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적
新収 日本地震史料 一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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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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読売新聞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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