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스틴 가마라
1. 개요
아구스틴 가마라는 두 차례 페루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추구하며, 볼리비아를 페루에 편입하려 했다. 페루-볼리비아 연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칠레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벌였고, 융가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에 공식 임명되었다. 두 번째 임기 중 볼리비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잉가비 전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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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페루의 대통령 |
|---|---|
| 임기 (1차) | 1829년 9월 1일 ~ 1833년 12월 20일 |
| 부통령 (1차) |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데 라 푸엔테 |
| 이전 (1차) |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데 라 푸엔테 |
| 다음 (1차) | 루이스 호세 데 오르베고소 |
| 임기 (2차) | 1838년 8월 25일 ~ 1841년 11월 18일 |
| 이전 (2차) | 안드레스 데 산타 크루스 |
| 다음 (2차) | 마누엘 메넨데스 |
| 출생일 | 1785년 8월 27일 |
| 출생지 | 쿠스코, 페루 부왕령, 스페인 제국 |
| 사망일 | 1841년 11월 18일 (56세) |
| 사망지 | 잉가비, 볼리비아 |
| 배우자 | 프란시스카 수비아가 이 베르날레스 |
| 직업 | 군인 |
| 소속 | 페루 왕립 육군 페루 육군 |
|---|---|
| 복무 기간 | 1809년–1821년 (스페인) / 1821년–1841년 (페루) |
| 계급 | 대령 (스페인) 원수 (페루) |
| 참전 전투 | 볼리비아 독립 전쟁 1814년 쿠스코 반란 페루 독립 전쟁 그란 콜롬비아-페루 전쟁 연방 전쟁 1841-1842년 페루-볼리비아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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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출생 -
야코프 그림
야코프 그림은 그림 동화 편찬, 독일어 사전 편찬 참여, 그림의 법칙 정립 등 언어학과 문헌학에 큰 업적을 남긴 독일의 학자이자, 법학자, 민속학자, 자유주의 운동가였다. -
1785년 출생 -
존 제임스 오듀본
존 제임스 오듀본은 아이티 출신의 미국의 조류학자, 자연주의자, 화가로, 『미국의 새들』을 출판하여 북미의 새들을 실물 크기로 묘사하고 자연 보호 정신에 영향을 미쳤으나 표절 등의 혐의도 받았다. -
1841년 사망 -
윌리엄 헨리 해리슨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미영 전쟁 영웅으로, 하원의원, 상원의원, 인디애나 준주 지사를 역임한 후 제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하여 최단 기간 재임 대통령으로 기록되었고, 그의 죽음은 미국 대통령직 승계에 대한 헌법적 논쟁을 야기했다. -
1841년 사망 -
민망 황제
민망 황제는 응우옌 왕조의 제2대 황제로 즉위 후 국호를 변경하고 쇄국정책을 고수하며 중앙집권화를 강화했으나, 기독교 탄압과 반란 야기로 국제적 고립과 프랑스 식민지화의 길을 열었다는 비판도 받는 인물이다. -
페루의 대통령 -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페루 중앙준비은행 총재, 에너지광산부 장관, 경제재정부 장관, 총리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오데브레히트 스캔들로 인해 2018년에 사임했다. -
페루의 대통령 -
알란 가르시아
알란 가르시아는 페루의 정치인으로 미국인민혁명동맹 소속이며, 두 차례 페루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재임 기간 동안 경제 위기, 인권 문제, 오데브레히트 스캔들 연루 의혹을 받았고, 2019년 부패 혐의로 체포 직전 자살했다.
2. 페루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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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스틴 가마라는 두 차례 페루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가마라는 호세 데 라 마르와 반대되는 신념을 따랐으며, 1828년 헌법을 제쳐두었다. 그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리마를 떠나 전국의 여러 곳에서 반란을 진압했으며, 그동안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데 라 푸엔테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다. 가마라는 볼리비아 합병을 추구하였으며, 페루-볼리비아 연방 수립에 반대하여 칠레의 도움을 받아 융가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볼리비아와의 전쟁을 시작하였으나, 1841년 잉가비 전투에서 볼리비아군에 패해 전사했다.
2.1. 첫 번째 임기 (1829-1833)
가마라는 호세 데 라 마르의 신념과 반대되는 신념을 따랐다. 이는 페루의 큰 헌법주의 운동과 일치했는데, 가마라는 행정부에 설정된 제한을 고려하여 반대했던 1828년 헌법을 제쳐두었다.
가마라는 많은 노력 끝에 그의 첫 헌법 정부를 마무리했다. 그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리마를 떠나 전국의 여러 곳에서 반란을 진압했다. 그러한 원정 중에 그는 대통령직을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데 라 푸엔테에게 맡겼는데, 그는 권위적인 성격을 드러내 리마에 있는 다른 정부 관리들의 적개심을 사기 시작했다.
2.2. 볼리비아 합병 시도와 페루-볼리비아 연방 전쟁 (1835-1839)
가마라는 볼리비아 합병을 추구했는데, 이는 안드레스 데 산타 크루스와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마라는 볼리비아를 단일 국가로 만들기보다는 볼리비아 영토를 페루에 편입하려 했다.
1835년, 루이스 호세 데 오르베고소와 안드레스 데 산타 크루스가 페루-볼리비아 연방 수립 조약에 서명하자, 가마라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칠레의 도움을 받아 연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에 참여했고, 융가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산타 크루스를 축출했다. 이후 가마라는 페루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