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샵신
1. 개요
아나톨리 샵신은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 주재 소련총영사관에서 활동했으며, 한글을 배워 '러-조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소련 군정청 출범 이후에는 남한의 정세를 보고하고 조선공산당을 조종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박헌영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북한 지도자 선정 과정에서 박헌영을 추천했으나, 김일성이 최종 지도자로 결정되었다. 샵신의 아내 파냐 이삭코브나 샵시나는 한국학 연구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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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샵신 |
|---|---|
| 로마자 표기 | Anatoliy Ivanovich Shabshin |
| 출생 | 1947년 12월 23일 |
| 사망 | 2014년 10월 30일 (66세) |
| 사망 장소 | 모스크바 |
| 국적 | 러시아 |
| 직업 | 미술가, 조각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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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 사회주의 리얼리즘 |
| 수상 내역 | 러시아 연방 공훈 예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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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 러시아 미술가 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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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출생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1910년 출생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
소련의 군사점령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소련의 군사점령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1967년 사망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1967년 사망 -
김학규 (1900년)
2. 생애
아나톨리 샵신은 일제강점기 MGB 요원으로, 서울 주재 소련총영사관의 부영사라는 대외직명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서울 주재 소련 영사는 알렉산드르 폴랸스키였다.
샵신의 배우자는 소련 총영사관 도서실장 파냐 이삭코브나 샵시나였으며, 샵시나는 훗날 소련으로 돌아가 한국 관련 서적을 출간하여 러시아에서 '한국학의 대모'로 불렸다.
샵신의 본명은 쿨리코프였고, 아내 샵시나의 본명은 쿨리코바였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1939년 경성부에 개설된 소련총영사관 부영사로 부임했다. 1940년 소련총영사관에 부임하여 근무하며 한국을 깊이 연구했다.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 대화에도 능통했으며, 최초의 '러-조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소련 군정청 총지휘자 스티코프는 샵신만큼 조선을 잘 아는 사람을 지금까지 본 일이 없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2.2. 해방 이후 활동
소련 군정청 출범 이후 샵신은 경성부(서울)와 평양부(평양)를 왕래하며 미군정하에 있는 남한의 정세를 니콜라이 레베데프에게 보고하고 레베데프의 지시에 따라 남한에서 조선공산당을 조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하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총수 겸 책임비서 박헌영과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1945년 8월 일본 제국이 패망한 직후 박헌영은 한반도 정책을 놓고 샵신을 찾아와 대책을 협의하였다. 서울의 소련 영사관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1946년 7월 2일 폐쇄되고, 이때 샵신도 서울을 떠났다. 그 후 그는 평양으로 가서 북한 주재 소련군 사령부 정치위원이 되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그의 직책은 미소공위 소련대표단의 일원이며 소련군사령부의 정치고문인 발라사노프(Gerasim M. Balasanov)의 부관이었다.
샵신은 믿는 한국인 친구에게 자신이 조선공산당을 통제하고 있으며 박헌영은 자신의 심복(henchman)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샵신은 직급이 높다고 볼 수 없지만 그보다 10살이나 위인 박헌영을 비롯한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2.3. 북한 지도자 선정 과정 개입
1945년 8.15 해방 직후 소련이 북한 지도자를 물색할 때, 샵신은 박헌영을 추천했다. 반면 소련 극동군 사령부와 NKVD(KGB 전신)는 88국제여단의 김일성을 추천했다. 스탈린은 9월 초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 면담 후 그를 지도자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박헌영 측의 이의 제기로 1946년 7월 초 두 사람을 모두 모스크바로 불러 면접 시험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때 박헌영의 통역을 샵신의 부인 샵시나가 맡았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그대로 지도자로 임명하였고, 이 면접 시험은 박헌영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3. 샵시나와의 관계
파냐 이삭코브나 샵시나(Фаня Исааковна Шабшина, Fanya Isaakovna Shabshina, 1906 ~ 1998)는 아나톨리 샵신의 배우자였다. 샵시나는 남편 샵신과 함께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활동했으며, 소련으로 귀국한 뒤 한국 관련 책들을 출간하여 러시아에서 '한국학의 대모'(代母)로 불렸다. 샵신의 본명은 쿨리코프(Куликов, Kulikov)였고, 아내 샵시나의 본명은 쿨리코바(Куликова, Kulikova)였다.
4. 본명
아나톨리 샵신의 본명은 Куликов러시아어였고, 아내 샵시나(F. I. Shabshina, Шабшина Фаня Исааковна러시아어)의 본명은 Куликова러시아어였다.
5. 샵시나의 저서
* 파냐 이사악꼬브나 샤브쉬나 지음; 김명호 옮김, http://www.hanulmplus.kr/tot_book/content.asp?pBID=0503 식민지 조선에서: 어느 러시아 지성이 쓴 역사현장 기록, 서울: 한울, 1996년 3월 8일.
* 파냐 이사악꼬브나 샤브쉬나 지음; 김명호 옮김, http://www.yes24.com/Product/goods/58993848 1945년 남한에서: 어느 러시아 지성이 쓴 역사현장 기록, 서울: 한울, 199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