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눈드 고르스케
1. 개요
아눈드 고르스케는 1070년경 스웨덴의 국왕이었다. 그는 《함부르크 주교들의 사적》에 처음 등장하며, 키예프 루스의 스타라야라도가 출신으로 고대 노르드어 "가르다리키"에서 파생된 이름을 가졌다. 기독교 신자였던 아눈드는 웁살라 신전에서 노르드 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거부하여 폐위되었으며, 잉에 1세와 동일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할스텐 스텐킬손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고, 호칸 적색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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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텡킬가 -
필리프 (스웨덴)
필리프는 할스텐 국왕의 아들이자 잉에 1세의 사촌으로, 잉에 2세와 공동 군주로서 1110년경부터 1118년까지 스웨덴을 통치하며 평화로운 통치를 했다고 전해진다. -
스텡킬가 -
잉에 1세 (스웨덴)
스텡킬 왕조 출신인 잉에 1세는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이교 의식 집행을 거부하다 추방되었으나 블로트 스벤을 살해하고 왕위를 되찾았고, 노르웨이와의 분쟁을 해결한 후 사망하여 필리프에게 왕위를 계승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11세기 유럽의 군주 -
필리프 1세 (프랑스)
1052년 샹파뉴에퐁텐에서 태어나 7세에 프랑스 왕위에 오른 필리프 1세는 봉신들의 반란, 불륜과 재혼으로 인한 교회와의 갈등, 왕실 영토 확장 노력 등 권력 다툼과 스캔들로 점철된 통치 기간을 보냈다. -
11세기 유럽의 군주 -
하인리히 4세
하인리히 4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서임권 투쟁으로 교황과 대립하고 아들에게 폐위되어 사망했다.
2. 생애
아담 폰 브레멘의 저서 《함부르크 주교들의 사적》에는 아눈드 고르스케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아눈드는 키예프 루스의 스타라야라도가 출신이다. 그의 성 '고르스케(Gårdske)'는 키예프 대공국을 고대 노르드어로 표기한 "가르다리키"(Garðaríkinon)에서 유래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아눈드는 1070년 웁살라 신전에서 노르드 신화의 신들에게 제사를 거부하여 폐위되었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불명예를 겪는 것에 가치를 두고, 기쁨으로 딩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브레멘의 아담이 1070년대 중반에 《함부르크 주교들의 사적》을 완성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다.
3. 잉에 1세와의 관계
아눈드는 키예프 루스, 아마도 알데이규보르그 출신이었다. '고르스케'라는 이름은 가르다리키(당시 스칸디나비아에서 키예프 루스를 부르는 명칭) 출신임을 의미한다. 기독교도였던 아눈드는 웁살라 신전에서 북유럽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거부했기 때문에 폐위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불명예를 겪는 것에 가치를 두고, 기쁨으로 딩을 떠났다." 이 사건은 브레멘의 아담이 1070년대 중반에 『교회사』를 완성하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눈드에 대해서는 잉에 1세와 동일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몇몇 문헌에서 잉에가 열심한 기독교도였다는 기술이 있다는 점, 헬보르와 헤이레크 왕의 사가에 잉에가 마찬가지로 블로트 개최를 거부하고 베스트라 예틀란드로 망명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